아브라함의 늙은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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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젊을 때나, 나이 들어서나 변함 없이 섬김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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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 없는 믿음. 섬김, 헌신, 충성.

창세기 24:2, 54. "아브라함의 늙은 종"
변함 없는 믿음. 섬김, 헌신, 충성.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음으로 이제는 그의 아들 이삭이 결혼하길 원했습니다. 다만, 이방 여인을 아들의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믿을 수 있는 종, 자기 집의 모든 소유를 책임지고 있는 늙은 종을 불렀고, 그에게 이삭의 배필을 구해 오라고 명했습니다.
100세가 되어 얻은 사랑하는 자식인 만큼 그 아들의 삶이 행복하길 원했습니다. 그 기초가 되는 가정을 이루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고, 심사숙고할 일이었습니다. 그런 중대한 일을 맡길 수 있던 늙은 종, 그는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주는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함께 한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이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었던 늙은 종처럼 하나님께서 이 땅을 변화 시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일꾼을 찾으실 때, 그 거룩한 사역을 맡길 수 있는, 하나님께서 믿을 수 있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달란트 비유를 보면 알 수 있듯,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맡긴 일이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다섯 달란트, 어떤 이에게는 두 달란트, 어떤 이에게는 한 달란트. 이를 통해 어쩌면 하나님은 차별하는 분이라고 착각 할 수 있겠지만, 말씀에 보면 “재능대로(마 25:15)”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좀 더 직역을 하자면 “가능성, 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곧, 주인이 종들에게 다섯, 둘, 한 달란트를 맡긴 것은 그들이 그것을 감당 할 수 있는 능력대로 나누어 줬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능력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 종들의 평소 삶을 봤던 것입니다. 결국 주인이 맡긴 대로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다섯 달란트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늙은 종을 불러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맡겼습니다.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일을 맡긴 것에 대한 부러움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봅시다. 종의 평소 행실이 어떠하였기에 아브라함의 집의 모든 소유를 맡기고 아들의 아내를 찾는 중대한 일을 맡겼겠습니까?
늙은 종은 믿을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살면서 입으로 “나는 너를 믿는다.”라고 말하긴 쉽습니다. 그러나 정말 무엇인가 중요한 일을 시키거나 부탁 할 때에 정말 믿고 있는지 아니면 말로만 믿는다고 했는지 드러나게 됩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이 종을 믿지 못하였다면, 그의 집의 모든 소유를 맡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집의 소유는 물질이기에 맡겼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를 진정 신뢰하지 못한다면 그의 소중한 아들 이삭의 배필 찾는 일을 시킬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늙은 종은 그가 늙기 까지 아브라함을 섬기며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믿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믿음을 준다는게 무엇입니까? 신실한 삶을 통해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내일은 저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변함 없는 사람,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변덕 없는 사람이 바로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단지 변함 없기만 한 것이 아닌, 더 나은 내일로 발전해 가는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의 종이었습니다. 그는 종의 신분으로 주인에게 최선의 삶을 살았기에 믿음을 준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나 있는 늙은 종, 그는 아브라함이 믿을 수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에게 모든 소유를 맡겼고, 무엇보다 소중하고 귀한 자신의 아들 이삭의 배필 찾는 일 까지도 맡겼습니다.
우리 믿음의 식구들 역시 우리가 어느 분께 속한 존재인지 기억하고, 우리 모두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때론 목숨을 내걸 수 있어야 하고,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하며, 어떤 유혹과 미혹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 뿌리칠 수 있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변화시킬 일꾼을 찾고 있습니다. 패역한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 찾음에 합당한, 하나님께 믿음 주는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늙은 종은 변함 없이 성실했고, 그 성실은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힘을 얻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10절 한 절에 기록되어 있기에 아브라함의 종의 여행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리적인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거주하고 있었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부터 메소포타미아의 나홀의 성까지의 거리가 정확하게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아브라함의 종이 주인의 아들 이삭의 아내를 찾기 위하여 여행했던 팔레스타인에서 메소포타미아까지의 거리는 포로 귀환 때 학사 에스라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인도하여, 바벨론으로부터 약속의 도성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면서 여행하였던 거리와 비슷한 거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정확한 거리계산이라라고 주장하기에는 조금은 무리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성경지리적인 관점으로 볼 때 그렇다는 말입니다.
학사 에스라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이끌고 바벨론에서 출발하여 예루살렘에 도착하기까지 여행하였던 거리는 직선으로만 계산하여도 850Km에 이른다고 합니다. 직선으로만 850Km에 이른다면 실제 여행하였던 거리는 1,440Km에 이를 것으로 학자들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무려 3,600리나 되는 엄청난 거리였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학사 에스라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무려 네 달이나 걸어야 했습니다(에스라 7:9절).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유대의 헤브론이나 혹은 네게브 지역에서 메소포타미아의 나홀의 성까지의 거리는 적어도 수 천리 멀고도 먼 길이었습니다. 더구나 당시는 오늘날처럼 비행기나 자동차 같은 교통수단도 없었고 도로 역시 오늘날처럼 잘 다듬어진 고속도로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낙타 열 필에 이삭의 아내가 될 처녀와 가족들에게 혼인 예물로 전해 줄 좋은 것들을 싣고 길을 떠나 도보로 수 천리 길을 여행하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낙타를 타고 여행을 하였든 걸어서 여행을 하였든, 수 천리 먼 길은 결코 하루아침으로 마쳐질 길이 아니고 수일 혹은 수십 일이 걸렸을 여행입니다. 이에 더하여 강도의 위험이나 자연의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 더욱 피곤하고 힘겨웠을 여행이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종은 “늙은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이 든 사람이 먼 거리를 여행 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종은 자신에게 맡긴 일에 충성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젊은 시절의 찬란했던 과거를 회상합니다. 젊음의 활력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노년을 이야기 하며, 더 이상 무언가 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물론, 나이가 들고 몸이 지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아브라함의 늙은 종과 같은 모습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늙었습니다. 힘이 빠졌습니다. 이제 쉬고 싶을 나이가 되었습니다. 많은 일을 하였고, 충분히 쉴 만한 때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종은 아브라함의 간절한 부탁을 듣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힘썼습니다.
아브라함 앞에서 변함없이 충성하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떻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우리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충성스럽고 신실한 모습인지요?
종이 젊은 시절에 했던 일과, 나이가 들어 했던 일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두 아브라함이 시키는 일, 원하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것은 젊을 때나 나이 들었을 때나 변함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찾으십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힘이 없어졌다고, 물질의 여유가 없다고, 젊음의 활력이 없다고 필요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각각의 영역에 적합한 필요로 우릴 부르십니다. 젊은 시절에는 몸으로 하는 일에 부르셨다면, 나이가 들어 몸이 약해 졌다면, 다른 일로 우릴 부르십니다.
그러한 부름에 응답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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