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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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0 views하나님의 부르심 1. 모세 2. 바울 3. 기드온 4. 사무엘 5. 다윗 6.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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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설교 제목: 하나님의 부르심
수요예배설교 제목: 하나님의 부르심
본문: 출3:1-14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저는 중국에서 예수님을 믿고 13년간 살다가 신학교로 부르심을 받고 온 가족이 마치 야곱처럼 짐을 꾸려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중국에 오래 살다가 고국인 한국에 들어와보니 감사한 점이 참 많습니다. 특히 한국의 복지가 너무 훌륭합니다. 의료복지도 너무 잘 되어있습니다. 중국에서 거의 혜택을 못 누리다가 한국에 와서 이러한 혜택을 누리게 되니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래 어떠한 삶에서 부르심을 받았는가를 생각해보면 감사의 삶을 사는데 큰 힘을 얻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 말씀이 “감사의 렌즈로 삶을 바라보라” 였는데 우리는 우리가 어떤 비참한 상황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생각해보면 감사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나같은 자에게 짝을 주셔서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남편의 자리로 불러주신 것에 정말 감사하게 됩니다. 나 같은 자에게 자녀들을 주셔서 하나님 아버지를 대리하여 아버지의 자리로 불러주신 은혜에 감사하게 됩니다. 나 같은 자에게 은혜를 주셔서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대언자로 불러주신 은혜에 감사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억하고 감사의 삶을 이어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장면입니다. 3가지 교훈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개요
부르신 곳
부르신 증거 (출3 12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부르신 분의 이름
먼저 부른 곳입니다.
출3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부르신 곳은 광야에 있는 하나님의 산 호렙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광야는 영어로 wilderness로 번역되었는데, 광야는 wild한 곳 즉 살기에 아주 거친 곳입니다. 또한 호렙은 마른, 황폐한 이란 뜻.
모세는 원래 이스라엘 민족 곧 히브리 아이였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로 물에서 구원을 받아 애굽 공주의 아들로서 자라게 됩니다. 그는 원래 애굽 공주의 아들로서 얼마든지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 즉 히브리 민족을 자신의 형제로 생각했다. 출2 11 “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그는 자신의 형제들과 함께 고난 받기를 기뻐했다.
히11 24-26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그리스도의 수모, 모욕)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꺼이 자신을 던졌다. 자신의 형제들을 핍박하는 애굽 사람을 쳐죽였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형제들을 구원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쓰라린 실패였다. 자신을 알아줄 줄 알았던 자신의 형제들은 이런 모세에게 출2 14 “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모세는 자기 형제들에게 버림을 받게 된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몸을 던졌는데, 결과는 완전한 실패다!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뤄보려했던 모세는 이제 자신을 죽이려는 애굽왕 바로를 피해 이방땅으로 도망해야 하는 신세가 된다. 자기가 누리던 모든 세상의 부귀와 권력과 인맥은 다 사라지고, 이제 비천한 나그네, 양치기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한 비천한 삶이 40년간이나 이어진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 없어 보이는 삶이 계속된다. 하루 하루 자신에게 맡겨진 장인의 양들을 돌보며 나그네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가난한 심령에 하나님께서 사라지지 않는 불로 찾아오신 것이다.
황폐한 곳에서 모세를 만나주신다. 황폐한 곳으로 찾아와 주신다. 생명력이라고는 찾기 어려운, 스스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곳에 찾아오신다. 바로 이곳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셨고 모세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가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쫓겨나서 80세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찾아오셨다. 권력자가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양들을 돌보는 처지에 있을 때 찾아오셨다. 이방땅에서 나그네로 지내고 있을 때 찾아오셨다. 광야 메마른 땅에서 스스로 소망을 가질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따. 이것이 기쁜 소식 복음이다. 다른 모든 종교는 열심히 노력하면 소망을 가질수 있다고 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셨기 때문에 소망을 갖는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소망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소망은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소망은 그것의 주인이시요, 창조자 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얻는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 그 자체가 되신다. 하나님께서는 소망없이 살아가는 모세를 만나기 위해 기꺼이 광야 황페한 곳으로 찾아오셨다. 메마른 땅으로 찾아오셨다. 의지할 것 아무것도 없는 사막으로 찾아오셨다. 거친 들판에 오셔서 그 이름을 부르신다. 메마른 심령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곳도 바로 광야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시로 우리 마음의 황폐함을 경험한다. 아침에 생명력을 얻었다가도 또 좀 있다가 다시 황폐함을 경험한다. 하루에도 여러차례 4계절을 경험한다. 설교를 준비하면서도 그렇다. 그러면서 절실히 깨닫게 된다. 설교를 내 힘으로 만들어낼 수 가 없구나! 하나님이 나를 찾아와주셔야 나를 만나주셔야 은혜를 주셔야 할 말을 얻게 된다. 황폐한 심령에 생명을 받게 된다. 더 이상 내힘으로 안되는 구나를 뼈져리게 체험한 심령에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서 찾아오신다. 마5 3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내안에 의지할 만한 다른 것들이 다 제거되어 더 이상 의지할 대상이 없어 비참한 상태에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신다. 자신을 나타내시고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를 개별적으로 만나 주신다. “모세야 모세야 “ 두 번이나 친히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신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만났는가? 우리가 언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했는가? 우리가 언제 주님의 이름을 불렀는가? 바로 우리가 낮을 때로 낮아져서 우리의 심령이 메마른 땅과 같이 소망이 없었을 때가 아닌가? 더 이상 이 생명을 내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을 때가 아니었던가?
저는 중국에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음. 한국에서 삶이 소망이 없었음. 어머니가 다단계 사업을 하셨는데 그 일로 새아버지 이혼하게 되었고, 온 가족이 이 일로 따로 따로 살게 됨. 콩가루 집안이 되었고, 직장생활에 흥미를 잃은 저는 세계일주나 해보자고 중국으로 여행을 떠남. 5개월간 배낭여행 함. 그리고 크리스찬 친구를 만났고, 아무 의지할 곳 없는 저에게 중국 연태 가정교회에서 복음을 듣게 됨. 세례도 받게 됨. 다른 의지할 대상이 있는 곳이었다면 교회에 나가지 않았을 것. 의지할 대상이 없으니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을 때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었던 것. 그러니 광야에서 우리를 부르신 것에 감사해야! 내 뜻대로 안 돼서 나가 떨어진 그 삶의 현장 한 복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를 부르신다.
모세처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잘 해볼려고 했는데, 실패하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내 힘과 뜻이 꺽인 곳,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신다. 그러니 내 뜻이 좌절된 곳, 내 생각대로 잘 안 된 상황에 감사하시라! 오히려 내 뜻대로 안 되었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시려고 우리를 다시 부르실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자신이 한번 부른자를 버리지 않으신다. 결국 우리를 통해 이루시려는 선한 뜻을 이루실 것이다. 할렐루야!
2. 두번째 교훈은 모세를 부르신 증거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고, 자신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하신 약속을 기억하셔서 그들의 자손들을 구원할 계획을 말씀하심. 출3 7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고통을 보았고,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그들의 근심을 아셨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구원할 구원자로서 모세를 보내는 것입니다. 출3 9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출3 10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모세를 바로 공주 손을 통해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그를 통해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미 그 백성들에게 실패를 맛본 상황입니다. 그들을 자신의 힘으로 구원하려 하였으나 그들은 그를 거부했습니다. 출2 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자신의 선한 뜻이 어떻게 거절되고 거부되는지를 보았습니다. 자기 형제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런 형제들에게 다시 갈 용기가 없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그들을 구원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 자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부정적인 반응을 합니다. 출3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주님, 제가 해봤어요! 안돼요! 저는 이 일을 감당할 능력이 없어요! 저는 그일에 실패하여 바로 왕을 피해 이곳에 와 있어요! 저를 거부했던 사람들을 제가 어떻게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겠습니까? 저는 할 수없습니다. 모세는 이러한 현실을 깊이 인식하며 묻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 인데 이 일을 감당하겠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대답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출3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두려워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먼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먼저 소명자에게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누구인데 갑니까? 라는 질문에 하나님의 대답은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 우리가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누구인지 보다는 하나님을 철저히 의식하는 것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해줍니다. 우리는 겁쟁이 기드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미디안을 두려워하여 몰래 밀을 타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삿6 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그런 기도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삿6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원어에는
יְהוָ֥ה עִמְּךָ֖ גִּבֹּ֥ור הֶחָֽיִל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신다. 큰 용사여!” 라고 되어있습니다. 여호와란 말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지요! 겁쟁이 기드온이 큰 용사라 불릴 수 있는 것은 그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가 그와 함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 모든 피조세계가 그로 부터 창조되었고, 그를 의지하여 기동하고 있는데, 그분이 기도온과 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온은 큰 용사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을 바라보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에 부르심을 받고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그 일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출생과 그 생애를 길게 설명하지 않고, 자”내가 너와 함게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러가지 문제 앞에 우리가 너무 작아 보일 때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부르신 분이 누구신가? 그분이 어디에 계신가? 나를 부르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 이십니다. 온 천지를 만드시고, 지금도 그 말씀으로 통치하시고 다르리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어디에 계십니까?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나를 이 삶의 현장에 부르신 분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나는 부족하고 더러운 걸레와 같이 아무런 내 세울 것이 없지만 그분이 친히 내려오셔서 나를 찾아오셨고, 만나주셨고, 나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친히 이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 내 모든 상황속에서 함께 하신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 우리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시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출3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모세가 그 백성을 인도하여 낸 후에 그들이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섬긴다는 말은 애굽의 종살이 하다 할 때 쓰는 아바드 란 말입니다. תַּֽעַבְדוּן֙ אֶת־הָ֣אֱלֹהִ֔ים עַ֖ל הָהָ֥ר הַזֶּֽה׃, 출 3:12.
애굽을 섬기던 자들이 이제는 하나님을 섬기게 된 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섬기는 장소가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이 아니라 이 산 쪽 호렙산입니다. 마른 또는 황폐한의 뜻을 가진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된다고 말씀하시며 이것이 모세를 보내신 증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풍족한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시면 좋을 텐데 황폐한 곳에서 섬기도록 하십니다. 섬김의 대상은 애굽에서 하나님으로 바꿨지만 섬기는 환경은 오히려 더 악화된 것입니다. 구원받아 그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장소는 황폐한 산입니다.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하시고 나서, 그 백성을 이끄시는 곳은 황폐한 사막입니다. 광야입니다. 광야의 적막한 한 산입니다. 왜 그럴까요? 광야를 통과하지 않고는 약속의 땅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황폐한 땅, 버려진 땅, 모두가 원하지 않는 땅 그곳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길을 가셨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렸던 사람들에게 천국이 가까웠음을 선포했고, 구원이 임했음을 보여주셨고, 병든자와 귀신 들린자를 치료하셨는데, 갑자기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십니다. 버져진 곳으로 가십니다. 모든 사람들을 실망하게 만드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고 피하는 십자가로 달려가십니다. 십자가의 치욕을 짊어지십니다. 그 십자가를 통과하자 사람들은 그를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길 끝에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십니다. 광야, 황폐한 땅을 통과하여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십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환경이 더 나빠졌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환경이 더 황폐해졌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깁니다. 광야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라며 하나님을 더 알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광야의 황폐한 산 호렙산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았는데, 상황이 더 악화되었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말씀을 따라 나섰는데, 상황이 더 황폐해졌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그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절실하게 섬기게 될 것입니다. 다른 의지할 것들이 다 제거된 상태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게 될 것입니다. 이 것이 우리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축복입니다. 어려운 상황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섬기고 계십니까? 힘을 내세요! 이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증거입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좌절중에도 하나님을 포기하지 못하고 찾고 계십니까? 기뻐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시고 함께 하시는 증거가 됩니다. 구원을 받을 때 기대했던 약속의 땅과 지금의 현실이 너무 달라서 실망하고 계십니까? 힘내십니오! 그것이 원래 하나님의 계획이셨씁니다. 그 황폐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신 증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 내가 이러한 상황에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구가, 하나님을 찾고 있구나! 이보다 더 큰 증거가 어디있겠습니까? 출애굽기 제목처럼 애굽을 탈출한 하나님의 백성은 광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을 받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할렐루야!
3. 마지막 교훈으로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것입니다. 모세가 다시 하나님께 묻습니다. 출3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출3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십니다. 엘로힘은 신이라는 뜻.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입니다. אֶֽהְיֶ֖ה אֲשֶׁ֣ר אֶֽהְיֶ֑ה 출 3:14.
I am who I am. 우리 말로 하면 나는 나다. 모든 존재 가운데 여호와만이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모든 피조세계는 다른 존재를 의존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큰 부자라도 스스로 연필 한 자루 만들 수 없습니다. 혼자 나무를 구해서 연필심을 구해서 잘 잘라서 가공하고 만드는 일은 모두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이 피조셰계의 아무런 도움 없이도 홀로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오히려 이 피조세계는 그분이 꼭 필요합니다. 그 분이 태양을 그 자리에 붙들어주시지 않으면 지구에 있는 모든 것들은 다 타버리거나, 다 얼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홀로 높이 계셔서 이 모든 것들을 다스려주셔야 이 만물은 유지됩니다. 저 우주에 수많은 별들중에 작은 별 하나만 지구에 부딛쳐도 지구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온 우주의 창조주의 이름이 바로 스스로 있는 분 즉 여호와 이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 이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기에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십니다. 아브라함때에 약속을 지키셨던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죽은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동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자신이 약속하신 것에 대해 결코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알파요 오메가 이시며,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분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동일하신 분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이름입니다. 지방선거철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몰라도 전남도청 앞에 공약실천율이 아주 높다는 홍보가 있습니다. 공적인 약속을 하고 얼마나 지켰는지를 평가하는 것인데, 하나님이 공약 실천율이 100%이십니다. 그 이름 여호와스스로계신분에 합당하게 그 본성에 합당하게 늘 신실하시고 성실하셔서 약속을 반드시 다 지키십니다. 그 하나님게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 백성들에게로 보내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부르신 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늘 동일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처음 부르셨을 때나 지금이나 그분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늘 신실하게 당신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뜻에 충실하셔서 일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늘 늘 신실하게 기억하시고 지키십니다. 그 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삶의 현장으로 그냥보내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게 하십니다. 광야와 같은 삶의 현장을 수시로 경험하지만 여전히 그분을 섬기게 하십니다. 우리를 황폐하고 비천한 자리에서 불러주신 분을 기억합시다! 이 비천한 곳, 황폐한 곳까지 내려오셔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불러주시고,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빌1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할렐루야!
찬송가 20장 큰 영광중에 계신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