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

요한복음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164 views
Notes
Transcript
날마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예수님은 우리가 거룩해져서 하나되고, 이를 통해 주님께 영광돌리기를 원하신다.
[서론]
예전에 미국에서 유학하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미국 유학을 하다가 주님을 만나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그 분이 다른 유학생들에게 들으니 부모님들이 날마다 기도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혼자 믿다보니 아무도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지 않는 것만 같았습니다.
믿는 부모님을 둔게 너무 부러웠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성경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언제나 기도해주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입니다.
‘따라서 그는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늘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의 간구를 하십니다.’
‘아하 예수님이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구나…’
그 자체만으로 그 분은 너무나 큰 위로와 격려를 얻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주지 않으시지만 우리 예수님은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구나.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매일마다 기도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믿는 부모님들도 자식들을 위해 매일마다 기도합니다.
교회 새벽예배 가면 어머님들이 많이 나오시는데 기도를 들어보면 대부분 자식기도들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교회기도도하고, 세상 기도도하지만 그건 짧게 하고 대부분 자식기도를 길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적 부모이자 신랑되신 우리 예수님도 매일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기도하실까요?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반드시 세가지만큼은 기도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세가지를 통해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본론]
먼저, 오늘 말씀의 배경을 알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은 보통 1-12장까지를 표적의 책이라고 부르고, 13-20장까지를 영광의 책이라고 부릅니다.
표적이란 예수님이 행하신 7가지 기적들을 집중적으로 기록했다는 말이고, 영광의 책이란 예수님이 십자가로 가시는 길을 집중적으로 기록했다는 말입니다.
13-20장까지가 영광의 책인데 그 중 13-17장까지가 예수님의 유언과 같은 가르침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유언의 마지막부분인 17장에 예수님의 기도가 등장합니다.
먼저 예수님 자신을 위해 기도하시고, 그 다음에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마지막으로는 미래에 믿음을 가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이나 나중에 믿음을 가질 사람들을 위한 기도 역시 모두 결국 우리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먼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가르침이 바로 기도였다는 사실이 참 의미심장합니다.
제자들을 위해 예수님이 해주실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역시 기도였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만큼 좋은 선물이 있을까요?
‘나는 너를 위해 매일마다 기도하고 있어’
얼마나 든든한 말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 매일 기도하십니까?
무엇을 기도하십니까?
그럼 이제 예수님의 기도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첫번째 기도제목은 우리가 거룩해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17절입니다.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원래 제자들을 위한 기도가 앞에 또 한가지 등장합니다.
그것은 제자들을 세상의 악에서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떠나시면 직접적으로 제자들을 지켜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 역시 세상의 미움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을 악에서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기도하신 것은 제자들이 거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거룩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레위기를 공부했기 때문에 거룩에 대해서 더 잘 깨달을 수 있습니다.
거룩함의 기본은 ‘구별됨’입니다.
레위기에서도 하나님의 것들은 모두 구별되어 드려졌습니다.
흠이 없는 소나 양을 잡아 드린 것이 바로 이런 구별됨이었습니다.
지성소도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도록 구별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거룩하게 해달라는 예수님의 기도는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구별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영적 미세먼지같은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제자들을 정결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거룩하게 될 수 있을까요?
17절을 보면 우리는 진리로 거룩하게 됩니다.
그런데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시편 119: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세상을 분별하여 취할 것은 취하고 취하지 말아야 할 것은 취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 기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은 마치 우리의 안경과도 같습니다.
안경이 없으면 모든 사물을 흐리게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발걸음이 불안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안경을 쓰면 또렷하게 보고 똑바로 걸을 수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 삶을 분별하여 똑바로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 교회에서 큐티를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세상의 악과 거짓 신들은 매일마다 우리의 마음을 정복하기 위해 폭격합니다.
코로나로 집에만 있어도 인터넷을 통해 세상은 벌써 우리 마음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욕망을 부추기고, 세상의 잘못된 가치관과 은밀히 타협하게 만들려합니다.
이런 영적 전투에서 우리 마음을 지키려면 무기가 필요한 데 그 무기가 바로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19절에 보면 예수님이 자신을 거룩하게 하셔서 제자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순서로 보자면 예수님이 먼저 거룩하게 되셔서 제자들도 말씀으로 거룩해진다는 의미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어떻게 예수님은 스스로 거룩하게 되시나요?
예수님이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발적으로 순종하셔서 제사의 제물이 되셨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에서 속죄제사의 제물을 바쳐야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 제물은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진 존재가 되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원래 죄가 없으셔서 거룩하신데 왜 또 거룩해질 필요가 있으실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신 것은 바로 우리들을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으셔서 우리가 하나님께 바쳐진 존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거룩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거룩해진 우리가 계속 거룩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말씀인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는 거룩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들이 거룩해지기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진리로 거룩해지는 데서 그치면 안됩니다.
진리는 배타성을 지니기 때문에 반드시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독선적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두번째 요소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두번째 기도제목이 된 이유입니다.
두번째로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되기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미래에 믿음을 가질 사람들, 바로 우리들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때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고, 지금도 기도하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가 사랑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21절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이것을 벤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하려고 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 안에 계시는데, 예수님은 또 하나님 아버지 안에 계시고, 또 믿는 이들도 하나님과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게 어떻게 수학적으로 표현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바는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됨이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성령이 빠져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지금 예수님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집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님 역시 하나님과 예수님과 함께 교제하시고 연합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사랑의 관계로 하나되는 것이 기독교의 하나됨입니다.
그럼 세상의 하나됨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세상의 하나됨은 통일성이 아니라 획일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내 생각과 같아지게 만드는 것이 하나됨입니다.
마치 교복이나 군복을 똑같이 입는 것과 같은 획일적인 모습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를 닮은 교회의 하나됨이란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갖는 것입니다.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마치 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와 같은 것입니다.
다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지만 하나의 조화로운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다.
내 목소리, 내 악기만 소리 내려 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고 맞춰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예를 들어볼까요?
교회에 동일한 mbti만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맨날 저같은 P유형만 있으면 일 진행이 더뎌질 것입니다.
저는 아이디어가 생기면 자주 바꾸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 채원샘이나 지민자매같은 J성향이 필요한 것이죠.
이처럼 교회는 다양한 mbti를 가진 분들이 서로 하나됨을 이루는 곳입니다.
성향뿐이겠습니까?
교회는 나이, 성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됨을 이루는 곳입니다.
제가 영국에 있을 때 제 하우스 그룹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직업상으로는 신학생도 있고, 고위직 공무원도 있고, 자동차 수리공도 있고, 국적상으로는 한국인, 불가리아인, 영국인, 독일인, 나이로도 너무 다양한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물론 세상에도 사랑의 관계로 하나됨을 이루는 곳들은 있습니다.
심지어 조폭집단도 서로 아끼는 가족같은 관계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진리의 말씀 안에서 사랑을 이루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진리가 없이 사랑만 있는 공동체는 점점 어리석어 집니다.
또한 진리는 있지만 사랑이 없는 공동체는 점점 교만해집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진리 위에서 사랑으로 하나된 공동체여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역시 부족한 모습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 중 하나가 교회가 동성애자들을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진리만 앞세우고 사랑이 없으니 동성애자들이 다가오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 또다른 무리들은 진리는 무시하고 사랑만 강조하니 받아들이기 힘든 것입니다.
저도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이런 균형을 잡는다는 게 어려워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교회가 이런 고민을 하며 동성애자들을 진리와 사랑으로 대하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나됨을 통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21절 후반절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하나됨을 이루는 것이 우리 자신들에게만 좋은 것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우리의 하나됨의 목적지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와 사랑으로 하나되는 모습을 보며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고 믿게 하여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하나된 교회공동체의 모습을 보며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보게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한국교회 중에 얼마나 싸우는 교회들이 많습니까?
교회가 크던 작던 겉은 멀쩡해보이지만 속은 분쟁과 다툼이 있는 교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가 해외에 있을 때도 한인교회들이 얼마나 자주 갈라졌는지 모릅니다.
그리 큰 교회도 아닌데 싸워가지고 두개 세개로 쪼개집니다.
얼마나 세상 사람들 보기에 안 좋은 모습이었는지 모릅니다.
자,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들이 진리와 사랑으로 하나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리와 사랑으로 하나됨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제목이 등장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영광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24절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여 주시고, 창세 전부터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주신 내 영광을 그들도 보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여기서 창제전부터 하나님이 예수님께 주신 영광이란 무엇일까요?
26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게 하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영광이란 아들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어떤 사랑일까요?
영원한 사랑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이며, 무한한 사랑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태초부터 하나님 아버지께 받았던 그 사랑을 우리들도 받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제가 성경공부 시간에 사람이 진짜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두가지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삶의 의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신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내 기도에 무조건 응답해주시는 것으로 사랑받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부모가 자식이 요구하는 거 뭐든지 다 들어주는 것을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맹목적인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신다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가진 것을 통해 우리의 가치를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자신 역시 내 가치를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판단하려 합니다.
내가 돈이 없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 없으면 쪼그라든 깡통처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시고, 받아주십니다.
제가 언젠가 길거리를 걷는데 한 아주머니랑 아주머니보다 더 큰 성인이 손을 꼭 붙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 성인분이 걷는 모습이 이상한거에요.
제대로 걷지 못하고, 뭔가 불편해 보이더라구요.
어떤 장애를 가진게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그것을 보며 그 아주머니가 엄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아니면 누가 그 사람 손을 잡아주겠습니까?
사람들이 쳐다보는데 그 눈길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손 잡아주는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는 언제나 우리의 손을 놓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잘날 때만 붙잡아 주시는 게 아니고, 우리가 못날 때에도 우리의 손을 붙잡아주십니다.
우리를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더욱 사랑해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2000년전 우리 곁을 떠나 하나님 아버지께 가셨지만 우리에게는 성령이 계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하나님 말씀 속에 배어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성령은 그 하나님의 사랑이 계속해서 우리안에 머물게 해주십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깨닫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매일 보는 똑같은 십자가인데 어느 날 십자가를 보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십자가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이 다시 깨달아졌기 때문입니다.
자기 외아들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실 정도로 나를 사랑하셨구나.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뒤집어 쓰고 죽으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셨구나.
자신의 생명을 주시는 사랑만큼 무조건적이고 귀한 사랑이 어디 있을까요?
[결론]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2000년전 십자가 지기 전에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셨던 주님은 여전히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날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처럼 주님은 우리를 위해 날마다 기도해주십니다.
예수님의 그 기도제목은 우리가 말씀으로 거룩해지는 것이고, 우리가 하나되는 것이며,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런 모습을 통해 세상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궁금해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한 몸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요?
예전에 아내가 한번 알레르기로 크게 아팠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는 부부가 한 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구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한 몸이라는 것은 교회 지체가 아플 때 같이 아파하고, 기쁠 때 같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며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다음주는 예수님의 고난주간입니다.
고난주간동안 여러분은 무엇을 하실 계획이십니까?
저는 우리 교회가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날마다 줌으로 몇분이라도 모여서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기도하다가 부활절을 기쁨으로 맞이하시는 우리 다카포 식구들이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