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10 무슨 차 타고 오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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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 21장 1-11절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니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예수님은 이미 3번이나 말씀하셨다.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면 반드시 죽는다고. 그런데 3일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3번이나 말씀하셨다.
마태는 그러면서 우리를 21장으로 인도하고 있다.
1절 말씀이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드디어 가까이 왔다.
죽음이 드리운 땅, 예루살렘이다.
마태복음을 찬찬히 읽어온 독자들이라는 간파할 것이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눈여겨 보게 될 것이다.
2. 예수님은 유월절에 자기 자신을 보여주신다.
200만명이 모이는 시기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시기이다.
이럴 때에 예수님이 보이시려는 모습은 좋은 모습이 아니다.
부끄러운 모습, 십자가 지는 모습이다. 비참하게 죽어버리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200만 명이 넘는 군중이 모이는, 유월절에 보이시려는 것이다.
3. 수치심
자기 자신을 감추고 싶은 마음이 수치심이다.
자기 자신이 못 나고, 별 볼일 없다는 부끄러운 마음 때문에, 자기 자신을 숨기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인스타 해도, 못 생기고, 이상하게, 부끄러운 모습은 잘 안 올린다.
왜? 비아냥 거리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마찬가지다.
그분도 사람이신데 왜 안 그러시겠는가?
4. 수치심은 현대인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수치심은 창세기 3장의 아담과 하와 때부터 있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지음으로써, 수치심이 들어왔다.
아담과 하와를 서로가 서로를 숨기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치마를 해서 입었다.
또 하나님이 아담을 찾아왔을 때, 아담은 두려운 마음에 하나님 앞에서 숨어 버렸다.
이게 수치심이다.
5. 우리는 언제나 숨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우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숨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항상 성공하거나 항상 잘 되지 않는다.
우리 얼굴은 항상 예쁘거나, 항상 아름답지만도 않다.
언제는 화장이 잘 되도, 언제는 잘 안 된다.
언제는 머리가 잘 세워져도, 언제는 머리가 엉망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는 숨고 싶은 것이다.
6. 여러분은 어디에 자기 자신을 숨기는가?
가상 세계에 여러분 자신을 숨길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현실을 살아야 한다.
가장 좋은 장소는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 안에 숨는 것이 가장 잘 숨는 것이다.
우리의 부끄러움, 연약함, 더러움, 모든 것을 예수님 안에 숨겨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되살아난다.
다른 사람 앞에서 나를 드러내는 게 어렵지 않게 된다.
7. 청소년 시기는 부끄러움이 많은 시기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굉장히 예민한 시기이다.
그렇기에 여러분은, 더욱 예수님 안에 잘 숨어야 한다.
내 모든 부끄러운 모습을 다 받아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여러분 인생이 행복하다.
8. 예수님은 좋은 차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지 않는다.
5절 말씀이다.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지금으로 치면, 고급 승용차가 아니라, 짐차, 화물차를 타고 가신다.
특히 ‘짐승의 새끼’라고 번역된 단어, ‘휘오스’는 아들이라는 뜻이다.
이미 ‘새끼’라는 뜻이 ‘폴로스’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휘오스’라는 단어를 쓸 필요가 없다.
그런데 ‘휘오스’ 아들이라는 단어를 썼다.
왜 그럴까?
8-9절을 함께 읽어보자.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여기서 ‘다윗의 자손’이 바로 ‘휘오스’이다.
다윗의 휘오스여, 다윗의 아들이여 하면서, 수많은 무리들이 지금 예수님의 입성을 환영하고 찬양하고 있다.
9. 무리들이 기대했던 휘오스는 ‘승리자, 정복자’의 휘오스였다.
그들은 다윗의 휘오스가 나타나서, 로마로부터 자신들을 구출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랐다.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마태는 그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한다.
아니다, 다윗의 휘오스는 그런 휘오스가 아니다.
다윗의 휘오스는, 마치 멍에 메는 짐승의 휘오스와 같다.
짐 싣는 짐승의 새끼 같은 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짐을 지시러 오신 다윗의 아들이시다.
우리의 짐이 무엇인가?
끔찍하게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마음, 끔찍하게도 짓는 수많은 죗짐들,
그게 우리가 져야 할 짐이다.
그런데 그 짐을 지금 예수님이 지시겠다는 것이다.
10. 예수님은 지금 멍에 매는 짐승의 휘오스를 타고 오신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자신이 바로, 멍에 매는 짐승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11. 말씀의 결론이다.
여러분은 어떤 구원자를 바라는가?
여러분은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 인생이 되고 싶은가?
남들의 짐을 대신 져주는 화물차 같은 인생이 되고 싶은가?
예수님은 화물차 같은 인생을 사셨다. 그래서 그는 친히 십자가에서 우리 모든 죄를 지고 피흘려 죽으셨다.
여러분은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 인생이 되고 싶은가?
12. 예수님은 이제 예루살렘에 들어가신다.
10절 말씀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죽음의 도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다.
가장 환영받아야 할 도시인데, 죽음의 도시가 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도시이다.
그들이 소동하면서 말한다. “이는 누구냐?”
13.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신가?
화려한 고급 승용차를 타고 찾아오신 멋진 분이신가?
제자들은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화물차를 타고 오셨다. 그리고 우리 모든 죗짐을 지고 죽으셨다.
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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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를 타신 예수님 = 경차를 타고 오신 예수님
무슨 차를 타고 올 것이냐?
좋은 차 타고 있으면 자랑하고 싶다, 그런데 안 좋은 차 타고 있으면 자랑하고 싶지 않다.
좋을 때 자랑하고 싶다.
좋을 때 보여주고 싶다.
그렇다. 예수님은 좋을 때는 자신을 숨기셨다. 자신을 왕으로 드러내지 않으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유월절’(우리나라로 치면 설날이나 추석같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이 시기에, 예루살렘에서 십자가 지고 죽으시려고 한다.
우리가 잘 될 때는 언제인가? -예쁜 외모, 예쁜 얼굴, 이런 것들은 인스타에 올리고 보여주려고 한다. 그런데 안 예쁜 외모, 부끄러운 모습들은 인스타에 올리지 않는다. 왜? 나의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초라한 모습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 좋다.
나를 함부로 평가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이야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줄 수 있는 공동체가 좋다.
우리 이런 공동체를 한번 만들어 보자.
예수님은 ‘자신의 가장 초라한 모습’을 보이셨다. 그분은 자신이 ‘십자가 지는 장면’을 노출하셨다.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가?
수치심 : 실패, 대중적 노출, 망신, 당혹감, 사회적 거부, 조롱, 불명예와 관련된 감정
수치심은 ‘자신을 숨기고 싶은 마음’이다. 아담은 죄를 짓고 하와 사이에, 하나님 사이에, 수치심을 느꼈다.
우리가 숨을 수 있는 장소가 있는데, 거기는 ‘예수님 안’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부끄러움을 가장 완벽하게 가려주신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숨어야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과장하며 ‘우리를 숨긴다.’
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은폐하며 ‘우리 자신을 숨긴다.’
때로 우리는 슬픈데도 기쁜 척 하면서 ‘우리 자신을 숨긴다.’
또한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하지 않음으로 ‘우리 자신을 숨긴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예수의 죽음을 상징한다.
회피성 인격 장애는 거절, 비판 또는 굴욕의 위험이 있는 사회적 상황이나 교류를 피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회피성 인격 장애가 있는 사람은 본인이 부적절하다고 느끼며,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을 피함으로써 이러한 감정을 관리합니다.
회피성 인격 장애는 미국 내 일반 인구의 2% 이상에서 나타나며, 남성과 여성에게 동일하게 영향을 미칩니다.
다른 질환 또한 함께 있는 경우가 잦으며, 다음 중 하나 이상을 동반합니다.
주요 우울 장애 또는지속성 우울 장애
강박 장애
공황 장애, 특히 사회 공포증(사회 불안 장애)과 같은 불안 장애
또 다른 인격 장애(의존성 또는 경계성 등)
사회 공포증과 회피성 인격 장애가 있는 사람은 증상이 더 심각하며 하나의 장애만 있는 사람보다 생활 능력이 더 떨어집니다.
회피성 인격 장애의 원인
회피성 인격 장애의 원인
유전자와 환경 요인이 회피성 인격 장애 발달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상황에서 선천적으로 불안감을 가질 수도 있고, 어린 시절에 거절과 하찮은 존재 같은 기분이 드는 경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약 2세의 어린 나이에도 사회적 상황을 피하는 것이 관찰되었습니다.
회피성 인격 장애의 증상
회피성 인격 장애의 증상
거절에 대한 두려움
회피성 인격 장애가 있는 사람은 직장에서조차 사회적 교류를 피하는데, 이는 비판이나 거절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이나 본인에게 반감을 품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들은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동료가 본인을 비판하는 것이 두려워 승진을 거부할 수 있음.
회의를 기피할 수 있음.
본인을 좋아할 것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 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을 피함.
이 장애가 있는 사람은 명백하고 반대의 여지가 없는 증거가 있을 때까지는 타인이 비판적이고 거절을 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합니다. 따라서 모임에 참여하고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기 전, 이 장애가 있는 사람은 본인을 지지해주며 비판 없이 받아줄 것이라는 확신을 반복적으로 요구합니다.
회피성 인격 장애가 있는 사람은 본인이 조롱받거나 모욕당하지 않도록 본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립니다.
이 장애가 있는 사람은 비슷한 이유로 위험을 감수하거나 새로운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매우 꺼립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들은 위험을 과장하며 아주 작은 증상이나 다른 문제를 이유 삼아 본인이 왜 참여를 하면 안 되는지 설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은 안전과 확신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제한된 생활 양식을 선호할 수 있습니다.
비판에 지나치게 민감함
회피성 인격 장애가 있는 사람은 비판, 거절, 비웃음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이는 본인이 타인으로부터 비판이나 거절을 당하는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본인을 향한 부정적 반응의 징후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이들의 긴장되고 불안한 모습은 비웃음이나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자기 의심을 확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타 증상
사회적 상황, 특히 새로운 상황에서 이들은 낮은 자존감과 부적절하다는 느낌에 억눌리며, 본인을 사회적으로 적합하지 않고, 매력적이지 않으며, 타인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들과의 교류를 망설입니다. 무언가를 말하면 다른 사람이 잘못됐다고 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들은 조용하고 소심한 편입니다.
회피성 인격 장애가 있는 사람은 사회적 교류를 간절히 바라지만, 본인의 행복감을 타인의 손에 맡기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회피성 인격을 가진 사람은 타인과의 교류를 제한하기 때문에 비교적 고립되어 있는 편이고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적 연결망이 부족한 경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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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니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도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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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다)
1 마태 :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셨다. 감람 산 벳바게에 도착. 예수님이 2제자를 보내심
2 예수님 :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러면 즉시 묶인 나귀와 새끼가 함께 있을 것을 볼 것이다. 너희는 풀어서 나에게로 끌고 와라.
3 예수님 : 만약 누가 무슨 말을 한다면, 퀴리오스가 필요하다고 말하라. 그러면 즉시 보낼 것이다.
4 마태 : 이는 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을 성취하려는 것이다.
5 마태 : 시온 딸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왕이 너에게 오셨다.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짐 지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6 마태 : 제자들이 떠나서 예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하였다.
7 마태 :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왔다. 자신들의 외투를 그 위에 얹었다. 예수님이 그 위에 앉았다.
8 마태 : 많은 무리는 자기들의 외투를 길에 폈다. 다른 이들은 가지를 잘라 길에 폈다.
9 마태 : 앞서 가고 뒤 다르는 무리들이 소리지르고 소리지르며 말하기를, “호산나, 다윗의 아들, 찬양하리로다, 퀴리오스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지극히 높은 곳에서 호산나.”
10 마태 :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다. 온 성이 흔들리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누구냐?”
11 마태 : 무리가 계속해서 말했다. “갈릴리 나사렛의 선지자 예수다.”
개요 1
A 마태의 설명 1(1) : 예수님의 행동
X 예수님의 말씀(2-3) : 나귀를 끌어오라
A’ 마태의 설명 2 (4-5) : 이는 성경의 성취다
B 마태의 설명 3(6-7) : 제자들의 행동 :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
B’ 마태의 설명 4(8-9) : 무리들의 행동 : 예수님의 입성을 환영하고 찬양함
C 마태의 설명 5(10) : 온 성의 질문 : 이 사람이 누구냐?
C’ 마태의 설명 6(11) : 무리들의 대답 : 갈릴리 나사렛의 선지자 예수다.
개요 2
A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셨다. (1절)
B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끌어오라고 하셨다. (2-3절)
X 예수님은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셨다. 그는 ‘왕’이시다. (4-5절)
B’ 제자들이 나귀 새끼를 끌어왔다. (6절)
C 제자들이 자신의 외투를 나귀 새끼 위에 얹었다. (7절)
C’ 무리들이 자신의 외투를 길에 폈다. (8절)
C’’ 무리들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고 찬양하였다. (9절)
A’ 예수님에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다. (10절 상)
D 온 성이 질문했다. “이 사람이 누구냐?” (10절 하)
D’ 무리들이 대답했다. “갈릴리 나사렛의 선지자 예수다.” (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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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 문맥
20장
(17-19절)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세 번째로 말씀하심
(20-28절) 예수님이 오신 이유
(29-34절) 맹인 두 사람을 고치심
21장
(12-17절) 성전 정화
(18-22절) 무화과 나무 저주
(23-32절) 예수님의 권위 논쟁
(33-46절) 포도원 농부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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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
1 그리고 그들이 예루살렘 안으로 가까이 왔을 때,
그리고 올리브 산의 벳바게 안으로 그들이 왔을 때, (시점이 강조된다)
그때에(토테)
예수가 제자(마테테스) 둘을 파송하였다(아포스텔로).
*이 시점은 어떤 시점인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시점이다.
2 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가라”(포류오마이 / 명령), 너희 맞은편 코메(마을,촌락) 안으로,
그러면 즉시(유세오스) 너희는 찾을 것이다(휴리스코 / 미래). 나귀를, 결박된(수동태). 그리고 그와 함께 있는 나귀 새끼를.
그것을 풀어서, 너희는 끌고 와라(아고 / 명령). 나에게로,
3 그리고 만약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무슨?,
너희는 말할 것이다, 그들의 그 주(퀴리오스)가 필요가 있다.
즉시(유쉬스) 그가 파송할 것이다(아포스텔로 / 미래).
*1절, 3절에서 ‘아포스텔로’가 반복된다.
4 이것은, 성취시키기 위함이었다.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된,
그가 말하기를,
5 너희는 말하라(아이폰 / 명령) , 그 쉬가테르(딸), 시온의,
보라!(이두),
너의 그 왕(바실레우스)이 오셨다(에르코마이). 너에게
프라우스(온유한, 친절한, 겸손한)하다. 그래서 그는 나귀 곧 짐지는 짐승의 휘오스(아들), 나귀 새끼 위에 탔다.
*여기서 ‘짐지는 짐승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예수님이 타신 짐승은 ‘짐을 지고 다니는 짐승의 새끼’이다. 새끼라는 말만 써도 되는데 ‘휘오스’라는 말을 첨가하였다. 이는 ‘아들’ 예수를 떠올리게 한다. 다윗의 ‘휘오스’였던 그는, 짐을 지기 위한 ‘아들’로 오신 것이다. ‘십자가’
6 그 제자들이 떠났다(포류오메이 / 수동태).
그리고 예수가 그들에게 쉰탓소(명령하다, 시키다, 지시하다)하셨던 것처럼 행하였다.
7 그들이 그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들 위에 히마티온(겉옷, 옷)들을 에피티세미(위에 두다, 얹다, 씌우다)하였다.
그리고 그가 그것들 위에 에피카시조(앉다, 타다)하였다.
*에수님은 “그것들”(복수) 위에 타셨다고 되어 있다. 나귀와 나귀 새끼 둘 다에 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제자들 역시 “그것들”(복수) 위에 겉옷을 씌웠다고 되어 있다.
8 또한 많은 무리들은 스트론뉘미(펴다, 마련하다) 하였다. 그 자신들의 히마티온(겉옷)들을, 그 호도스(길) 안에,
또한 다른 이들은 콥토(자르다, 통곡하다 / 미완료)하고 있었다, 클라도스(가지)들을, 덴드론(나무)들로부터,
그리고 그들은 스노티오(펴다, 마련하다 / 미완료)하고 있었다, 그 호도스(길) 안에,
*무리들의 행동이 구체적이고 역동적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다윗의 자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9 또한 그 무리들이, 그의 프로아고(앞서 가다)가고, 또 그들의 아콜루세오(따르다, 뒤좇다)하는,
그들이 크라조(소리지르다, 외치다 / 미완료)하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기를, 호산나, 그 다윗의 휘오스(아들), 그를 찬양하라,
퀴리오스(주)의 오노마(이름)으로, 에르코마이(오다, 이르다)하였다.
휘프시스토스(가장 높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 호산나
*5절에서 ‘왕’이 오셨고, 여기 9절에서는 ‘다윗의 아들’이 오셨다.
결국 마태는 예수께서 ‘왕’이라고 말하고 있다.
10 그리고 그가 예루살렘 안으로, 에이스에르코마이(들어가다, 진압하다)하셨다,
모든 폴리스(도시, 마을)이 세이오(흔들리다, 진동하다 / 수동태)되었다,
그 성이 말하기를, 이가 누구냐?
*1절에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5절에서 마태는 너의 왕이 너에게 오셨다고 하였으며,
10절에서 예수는 친히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예수께서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으며, 이는 성경을 성취하는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11 무리들이 말하고 있었다.
이는 그 선지자 예수이다,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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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왕이 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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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벳바게 - 익지 않은 무화과의 집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이사야는 ‘구원’(예샤)을 ‘의인화’한다. 구원이 도착한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그는 짐을 지고 겸손하게 예루살렘으로 타고 가서 그 앞에 놓인 일을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당나귀를 타고, 겸손하게, 예슈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먼저 죽으러 오신 것을 반영한다. 그의 재림 때에 그는 왕에게 어울리는 말을 타게 될 것이다(계 19:11).
호산나 : 지금 구하소서, 부디 도와주소서, 구해 주소서!
군중들은 메시아가 로마 군주들로부터 그들을 구원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그’가, 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그’가 바로 구원자이자 능력자라는 믿음이 무리들에게 있었다.
나귀의 새끼, 새끼 (조명, 아들). 이것은 왕이 도착한 정상적인 방식이 아니 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보통 말을 타고 정복자로 왔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의 두려움’이 예수로 하여금 죽임을 당하게 하였다. 그들은 ‘평화의 왕’을 알지 못하였다.
무리들 : 이 사람들의 대부분은 유월절을 기념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갈릴리에서 온 순례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과 그분이 갈릴리에서 행하신 많은 기적들을 잘 알고 있었다.
유월절이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안팎에는 200만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을 것이다. 평소에는 예수님이 ‘자신을 메시아’로 드러내지 않으셨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이 많이 모인 이 시점에, 예수님은 ‘자기 정체’를 드러내신다. 자기는 ‘겸손의 왕’이시며, ‘죽임 당할 어린양’이라는 것이다. 가장 비참한 모습, 가장 초라하고 끔찍한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내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신 행위는 은혜와 구원의 행위였지, 심판의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열광하는 무리들을 보면서, 예수를 죽여야 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마태복음 3장에서 세례 요한은 ‘왕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자라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마태복음 21장에서 예수님은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계신다. 이 왕은 세례 요한처럼 죽임을 당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미 3번이나,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죽임을 당할 것이고, 3일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다.
마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났고, 마태복음 21장에서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찬양 받으신다.
이 다윗의 자손은 무리들의 기대대로 일하시지 않았다. 이 다윗의 자손은 이방인을 무찌르러 오시지 않고, 죄와 사탄을 무찌르러 오셨다.
신약정독: 복음서 편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 철거(마 21:1–17)
예수님은 지금 죄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중입니다. 하지만 무리가 바라는 것은 자기들을 괴롭히는 로마 정권과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로부터의 구원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며칠 후 예수님이 아무 저항 없이 체포되시자 실망하고 변심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것입니다(마 27: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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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절 ‘짐승의 새끼’(휘오스)
9절 ‘다윗의 자손이여’(휘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