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사도신경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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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믿는 분은 누구인가 2. 전능하신 천지의 창조주 3. 주관하시는 하나님 4. 신앙 5. 신앙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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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분

우리 지난 주에는 사도신경이 왜 쓰여졌고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왜 우리가 선포해야 하는지에 대해 나눴어요. 오늘부터는 사도신경의 선포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의미를 살펴보려 해요. 오늘은 첫번째 고백.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에요.
우리가 매주 하는 고백의 맨 앞부분에는 하나님이 등장을 하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66권의 성경에서 수없이 등장하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기 이렇게 딱 한 마디로 정리 되어 있어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천지의 창조주 되신다! 라는 고백이죠. 전능하신 천지의 창조주의 의미를 한번 살펴보면 다음과 같아요.

13년만에 나타난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성경 본문이 있어요. 하나님이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이라'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있어요. 어디일까요? 창세기에요. 창세기 17장이에요. 창세기 17장은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대화를 하시는 장면이에요.
하나님을 의지해서 고향을 떠나 어느덧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가 되었어요. 99세가 된 아브라함 앞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는데요. 하나님이 나타나자 아브라함은 놀라요. 왜냐하면 지난 13년동안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지 않으셨거든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은 13년동안 첩에게서 낳은 이스마엘을 지극정성으로 키우며 돌보고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고향을 떠나라 말씀하시면서 3가지 약속을 하셨잖아요? 그 중 하나가 별과 모래와 같이 수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하셨던 것이었어요. 고향을 떠나 외국에서 정착해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그에게 자식이 없었죠.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기다리다 결국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하는, 불법이 아닌 방법을 통해 아들을 낳았어요. 자신의 아내의 종에게서 아들을 대리 출산하게 한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을 자신의 후손.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이라 생각하고 13년간 사랑하며 양육했어요.
하나님은 이스마엘이 태어나고 13살이 될 때까지 아브라함에게 따로 나타나지 않으셨어요. 그러니 아브라함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주시겠다 한 아들이 이 아이가 맞겠다 싶었을거에요. 아이어도 이 아들이어야만 했죠. 왜냐하면 86세에 아들을 낳았거든요. 그리고 지금 자신의 나이는 99살이거든요. 그리고 아내의 나이는 89살. 그러니 이스마엘이 아니면 안되는 것이죠. 또 언제 아들을 낳겠어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아브라함 앞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어요. 무려 13년만에. 그리고 그렇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세요.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13년만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아 잘 지냈니?” 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리고 ‘내년 이맘 때쯤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세요. 아브라함은 그 이야기를 듣고 겉으로는 긍정했지만 속으로는 웃었어요. 뒤에서 듣던 아내 사라도 웃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거든요. 99세의 남자와 89세의 여자가 아들을 낳는다? 진짜 있을수도 없는 일이고 생겨날 가능성이 0%에 가까운 사건이니까요. 심지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그 말씀에 퉁명스럽게 대답해요.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합니다.” “이스마엘이나 잘 살면 되는거죠.”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아가면 되는거죠"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한번 더 “내년에 아들을 낳을 것이다.” 말씀하시며 그 아들이 “나와 너의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세요.
여러분이 아브라함이었다면 이 상황에 어떤 감정이 들었을 것 같으세요?
저는 황당했을 것 같아요. 아니 13년동안 이스마엘을 키울 때 어떤 말씀도 없으시더니, 마치 허락하신 것처럼 침묵하시더니 갑자기 나타나서 “전능한 하나님이다" “내년에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 아들이 너와 나의 언약이다"라고 하시잖아요. 멘붕이 오지 않았을까요? 이해 되지 않는 상황이죠. 내년에 사라를 통해 아들이 태어나면, 13년간 사랑으로 키어온 이스마엘은요?
왜 하나님은 13년만에 나타나셔서 ‘전능한 하나님이다!’라고 자기를 드러내셨을까요. 차라리 좀 일찍 나타나시지. 처음부터 아들 제대로 주시지 왜 이제와서 이러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기다리셨던거에요. 사람의 힘으로 살아내고 방안을 찾아가던 아브라함의 마음의 긴장이 풀릴 때를 기다리셨어요. 사실 하나님이 주시겠다한 방법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지만, 아브라함은 참다 종을 통해 아들을 낳았고 자신의 아들로 삼았어요. 그의 마음 속에도 찝찝한 무엇인가가 남아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주신 방법이 아니면 어떻게 할까.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했는데, 이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어떻게 할까. 라는 부담감이 그에게 있었어요.
그 모든 부담감과 긴장이 13년을 이스마엘과 살면서 풀리게 된거죠. 그래 ‘이 아들이 맞았던거야.’라는 자신도 모르게 인정하고 받아드리던 그 때. 그리고 더 이상 우리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도 몸도 아니야. 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셨던거에요.
이제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이라는 분을 완전히 의지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했어요. 자신을 전능하다 드러내시며 아들을 주겠다 하셔요. 비웃었는데 진짜 아들을 주겠다 말씀하세요. 이제 그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어 문장인데요. It’s out of my hands. 내 손을 떠난거에요. 이제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없어요. 하나님을 완전히 의지해야 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확신을 갖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들의 손에서 이 문제는 떠났어요. 이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릴 때에요.
그리고 하나님은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도 말씀하셨어요. 여기에서 ‘앞에서'라는 말은 얼굴을 의미해요.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코람데오. ‘내 얼굴 앞에서 행하라'라는 의미에요.
“너의 삶 앞에 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라. 내가 너에게 눈을 고정하고 있음을 기억하라.”
“이제부터 나를 의식하며 살라!” 말씀하신거에요.
전혀 불가능하다 생각되었던 그 순간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자신의 전능함을 보이시고 진짜 아들을 1년 뒤. 아브라함이 100살. 사라가 90살 되던 때에 주셨어요. 아브라함의 앞으로의 삶은? 원래도 그랬지만 이전보다도 더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갔겠죠.
창조주 하나님
창조주. 무엇인가를 창조해낸 주인이라는 뜻이죠.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라고 선포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시작되고 있어요.
세상에도 수많은 창조 설화들이 있죠. 그 설화들과 우리가 읽는 성경의 창조와는 다른 점이 있어요. 세상의 창조 설화는 뇌피셜로 썼다는거에요. 사람의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에요.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유는요. 인간이 뛰어나서가 아니에요. 죄로 인해 끊어졌지만 우리 안에 남아있는 하나님 형상의 흔적. 하나님이 새겨놓으신 흔적이 희미하게라도 남아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흔적을 따라 신을 만들어내고 그 신에 대한 이야기를 꾸며내거든요.
창세기는 모세가 썼어요. 모세가 창세기를 쓸 때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을 눈으로 몸으로 경험했어요. 430년간의 노예 생활을 마치고 애굽에서 나왔어요.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던 그들이 하나님을 찐하게 경험했어요.
애굽에서 탈출하기 직전에 일어났던 10가지 재앙과 출애굽 후 일어난 홍해가 갈라지는 사건. 그들은 부모님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들어오던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하게 된 것이죠. 막연했던 하나님이라는 신의 위대하심과 능력이 실제로 다가왔어요. 자신들이 믿어왔던 모든 신들은 10가지 재앙 앞에 무력하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그리고 바다가 갈라졌어요.
그것을 본 그들의 머리에 하나님이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었을 것 같아요? 이것을 만든 분이 아니라면 열가지 재앙에 나타났던 다양한 모습 그리고 바다를 갈라낼 수 없을것이다. 진짜 이 분은 들어왔던데로, 전수 받은 신앙대로 창조주이다! 이것을 만드셨으니 통제가 가능한 분이다! 라는 이미지가 팍 박혔을거에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셨어요. 세상을 만드신 이유는요.
너저분해 보이는 혼돈을 정리 정돈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에요. 계획이 있으셨던거에요. 6일간 이어진 천지 창조는 저와 여러분을 위한 것이었어요. 저와 여러분을 위해 만드신 이유는 우리와 함께 교제하고 싶어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싶으셨어요. 그리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어요.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 온 모든 일과 앞으로 겪을 모든 일들은요. 하나님께서 준비해놓으신 계획 안에 있는거에요. 저는 진짜 확신해요. 때론 우리의 힘듦과 아픔이 이제 좀 끝이 났으면 하지만 그래도 이 일은 하나님과 찐교제를 위해 달려가는 과정이라고 확신해요.
하나님은 우리를 혼자만의 고통과 외로움으로 밀어내고 던져버리고 모른 척하지 않으시잖아요. 세상 그 어떤 것도 따라할 수 없는 찐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잖아요. 그리고 우리를 지금도 죽음 이후에도 책임진다 말씀하세요.
우리는 우리를 만들고 우리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우리를 위해 온갖 좋은 것을 준비하신 그 창조주를 믿고 있는거에요.
여러분의 삶에도 분명히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한 적이 있을거에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나도 모르게 외쳤던 순간이 있었을거에요. 뭔가 거창한 경험이 아니더라도 분명히 여러분은 곁에서 여러분을 일으켜 세워주고 위로하고 계시는 그 하나님을 분명 경험 했을거에요.
우리가 지독한 자기 연민에 빠져있을 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사람들을 보내어 위로 해주셨을거에요.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찾아달라 수없이 외치셨을거에요.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저를 통해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면서 이제는 나를 봐달라! 외치고 계실지도 모르죠. 너가 외치는 그 고백처럼. 전능한 나. 세상을 창조한 나를 이제는 바라봐 달라고!! 말씀하고 계실지도 몰라요.
여러분 요즘 참 힘들죠? 해야 할 것도 많을 것이고, 미래에 대한 고민도 많을거에요. 괜히 조급해질 때도 있을거고, 내가 이렇게 살려고 공부했던 것이 아닌데, 나는 왜 이것밖에 못할까? 하는 생각들도 있을거에요. 있잖아요. 그 때 진짜 정말 말도 안되는 부탁일수도 있는데요. 여러분이 고백한 그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억지로라도 떠올려주세요. 억지로라도 승질을 내더라도 하나님을 불러주세요.
참다 못해 터져나온 그 신음을. 0.1초의 찰나도 하나님은 놓치지 않으실거에요.
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라는 선포는요. 하나님이 나를 끝까지 책임진다!! 는 나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거든요. 습관적이었던 무엇이 되었던 우리 매주 고백했잖아요. 하나님은 그 고백을 다 듣고 계셨어요.
여러분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준비까지 다 마치셨어요. 그런데 우리가 고백만 했을 뿐 곁을 절대 내어드리지 않으니, 고백만 하고 내 힘으로 살아가다 보니 안타깝게도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죠.
때론 내 삶에 일하셨던, 나에게 찾아오셨던, 나를 위로해주셨던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만으로도 큰 은혜가 될 때가 있어요. 지금 정말 너무 숨막힐정도로 힘들거나 혹은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여러분의 삶을 한번 곰곰히 돌아보세요. 그리고 넘어왔던 수많은 위기들과 어려움들을 어떻게 견뎌냈었는지 묵상해보세요.
사실 저는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참 많이 미안해요. 저는 여러분처럼 치열하게 미래에 대한 고민과 취업 준비 그리고 직장에서의 고충들을 많이 경험해보지는 못했으니까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미래에 대한 고민, 취업, 직장등을 경험해보았지만요. 여러분이 지금 겪고 있는 그 고민과 어려움에 비할 것이 못되거든요.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이 말은 꼭 하고 싶어요.
여러분이 믿고 선포하고 있는 그 하나님은요. 성경을 읽어봐서 알겠지만요. 중요한 시점마다 등장하셨어요. 그 시점이 내가 생각하기에 늦어 보이는 것 같지만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등장하셔서 해결사처럼 모든 일을 단번에 정리하셨어요.
이스라엘의 삶을 주관하셨어요. 그 하나님이요. 지금도 여러분의 삶을 함께 하고 싶어하세요. 주관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어려운 시기들을 버티고 견뎌내면서 또 일어나면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거에요.
우리가 선포하며 고백한 하나님은 앞으로도 나 그리고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의 삶과 함께 할거에요.

신앙의 고백

사도신경을 원어로 보면요. Credo 고백으로 시작해서 Amen으로 끝이 나요. 그러니까 나의 고백이면서 동시에 선포를 하는 것이죠. 내가 고백하는 대상은 크게 4가지로 생각할 수 있어요.
첫번째 대상은 하나님이에요.
두번째 대상은 나의 대적 마귀에요.
세번째 대상은 바로 나 자신. 선포를 하면서도 의심하고 흔들리는 나
네번째 대상은 다른 사람. 하나님을 잘 모르는 사람이에요.
사도신경의 첫 문장.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이것을 우리 이렇게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분. 전부. Everything
나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 nothing
우리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지 못하고 자꾸 힘들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에요.
우리는 나 스스로를 Everything이라 생각하거든요. 마치 내가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거든요.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요. 삶이 더 어려워져요. 계속 지쳐만 가요. 뭔가를 해보고 싶어서 열심히 도전하고 덤벼들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데요. 잘 안 될때가 많아요. 그리고 남에게는 관대하면서 나 스스로에는 엄청 엄격해요.
내 나이 때에 사람들이 이런 것을 하고 있으니, 원래 내 계획은 이랬는데 난 꼭 이걸 해야 해! 라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틀과 강박관념 그리고 세상이 요구하는 것에 나를 끼어 맞추는거죠.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내가 보잘 것 없어 보여요. 여러분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의 역작 중에 역작인데요. 내 스스로가 보잘 것 없다 생각하고 나는 이것밖에 안되나? 라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상처를 깊은 상처를 매일 매일 내게 되는거에요. 내가 Everything이라 생각하니까.
첫 사람 아담이 죄를 지은 이유. 내가 Everything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잖아요. 수많은 언어가 생겨나게 한 바벨탑 사건. 내가 Everything이 되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성경에 기록된, 삶의 주도권을 내가 잡고 Everything이 되고자 했던 모든 노력들은 다 실패했어요. 내 스스로가 뛰어나고 통제가 가능하다 생각했지만요.
현실은 I am nothing. 우린 하나님 없이 아무 것도 아니에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I am nothing이라고 고백한 적 있었나요? 저는요. 하나님 앞에 나는 무력한 존재이다. 이 고백을요. 군대에서 진짜 간절하게 했어요. 2주간의 공수교육을 마치고 낙하산을 매고 비행기에 올라탔어요. 그 때 저의 마음은요. 엄청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2주간의 공수교육을 통해 마치 내가 초사이언인3가 된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처음 교육에 입소했을 때요. 탈영하고 싶었어요. 저 나름 체력 좋다 생각했거든요? 근데 저질이었어요. 초저질. 첫날 다행이 구토는 하지 않았지만 체감상 6-70도의 오르막길을 2-30분 뛰어 올라가는데요. 김건모의 핑계를 부르라고 하는거에요. 저는 그 노래 가사를 잘 몰라서 대충 따라 부르기만 했는데도 진짜 죽을거 같은거에요. 진짜 이러다 죽겠다 싶었어요. 하루는요. 뛰어 올라갈 때 피구왕 통키 노래를 부르라고 하는데요. 눈물이 쏟아지는거에요.
아침 해가 빛나는 끝이 없는 바닷가 맑은 공기 마시며 자아 신나게 달려보자
뒤돌아 보지마 패배가 있을 뿐 반짝이는 눈동자로 승리를 향해 가자
뜨겁게 타오르는 정열의 벅찬 가슴 고된 훈련과 도전으로 시련을 이겨내리
너는 될 수 있어 세계의 피구왕
눈물이 나겠어요. 안나겠어요. 고된 훈련과 도전으로 시련을 이겨낸다고 내가 고백하면서 뛰는거잖아요. 진짜 눈물이 미친듯이 쏟아지는거에요. 그러면서 진짜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해지기 시작 어요. 거의 초사이언 1이 되었다가, 계왕을 만나서 초사이언3까지 되었던 손오공처럼 저도 점점 몸이 좋아지고 똑같은 구보를 해도 숨이 안차게 되는거에요. 진짜 고된 훈련과 도전으로 시련을 이겨낸거죠.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거? 뭐 그까이꺼 못할거 뭐야. 하면서 낙하산 매고 비행기를 탔어요. 올라갔어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진짜 좀 오버하면 낙하산 없이도 뛸 수 있을만큼의 자신감. 그런데요. 강하할 때가 되고 비행기 옆문이 열리고 그 앞에 딱 섰는데요. 무섭더라구요. 자신감이고 초사이언3고 뭐고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더라구요. 낙하산 안펴지면 나 죽는데?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뛰어내렸어요. 낙하산이 펴지고 하늘에 떠올랐어요. 혹시 패러글라이딩 해본 청년 있나요? 하늘에 떠 있을 때 어때요? 좋지 않아요? 저는 진짜 누려보지 못한 평안을 하늘에서 누려봤어요. 하지만 그 평안도 3-5초 정도에요. 영화 킹스맨처럼 내가 낙하해야할 지점을 찾아 바람을 타고 이동해서 떨어져야 하거든요. 정신이 없어요.
낙하지점을 찾아가면 그게 끝이 아니에요. 지상에서 100m 정도 남게 되면 땅이 하늘로 막 솟구쳐 오르거든요. 그때 공포감을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착지 할 때까지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더 이상 낙하산을 움직일 수도 없고, 그냥 이제 떨어지는 것밖에 없어요.
정확한 장소를 찾아와서 그 위에 떨어지는데도요. 나를 믿을 수 없는 시간이에요. 나의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이에요. 떨어져서 살던지 다쳐서 최소 6개월 병원에서 살던지 둘 중 하나밖에 없는 시간이에요. 100m 위에서 땅이 솟구쳐 오를 때 저는 정말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했어요. 그리고 내 자신감은 이 것 앞에 휴지조각보다 못하다. 나는 무기력하다. I am nothing이다. 많이 외쳤어요.
나에게 아무리 뛰어난 체력과 능력이 있어도, 나에게 아무리 큰 자신이 있어도. 내 손을 벗어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구요.
우리는 이 신앙고백을 통해 나 자신을 제대로 보고 인정해야 해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고백해야 해요. 그래야 하나님의 그 일하심이 우리 눈에 보이고 피부로 와닿게 되는거에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여러 모습으로 계시하셨는데요. 그 중 하나가 ‘엘 샤다이'라는 표현이에요. ‘엘 샤다이'는 Almighty God이란 뜻이에요. 전능하신 하나님. 불가능이 없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인간과 언약을 맺을 때 드러내신 이름이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해주셨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주셨고 소망을 갖게 하셨어요. 그리고 그 소망을 반드시 이루어주시겠다 약속하셨어요. 우리가 정말 그것을 믿는다면요. 그리고 하나님이 정말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라고 믿는다면요!!! 우리를 흔드는 수많은 유혹 앞에서 견뎌낼 힘을 얻게 될거에요.
내 손을 벗어난 상황.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삶의 무게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라고 인정할 수만 있다면,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될거에요.
우리가 해 왔던 사도신경의 첫번째 고백. 그것이 바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나에겐 전능하신 하나님이 필요합니다!”를 선포하는 것이었어요.
아까 제가 사도신경의 고백은 크게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고 했었잖아요?
첫번째 대상은 하나님이에요.
두번째 대상은 나의 대적 마귀에요.
세번째 대상은 바로 나 자신. 선포를 하면서도 의심하고 흔들리는 나
네번째 대상은 다른 사람. 하나님을 잘 모르는 사람이에요.
각기 다른 대상들을 향한 고백은요. 이런 뜻을 담고 있어요.
첫번째 대상 하나님께 나의 신앙을 고백하며,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 삶에 일어난 모든 사건들과 일들은 다 한 가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때론 나의 삶이 힘들고 지치고 어렵고, 또 나 스스로가 한심해보였지만, 지나고 나니 이 모든 것들은 다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이었군요!
내가 지금도 살아 숨을 쉴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 덕분입니다. 하나님 제 영광을 받아주십시오! 라는 고백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향한 고백은 나의 모든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립니다! 라는 것이죠.
두번째 대상 나의 대적 마귀에요. 우리가 하나님 영광 받으세요! 라고 선포하는 것에 또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어요. 그것은 바로 나를 향한 모든 마귀의 전략은 작동하지 않는다. 너는 실패할 것이다. 나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한, 마귀의 모든 유혹과 괴롭힘 그리고 고난은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 를 동시에 외치는 것과 같아요.
여러분을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하는 모든 상황과 순간들은 영원하지 않아요. 반드시 마귀의 전략은 실패해요. 절대 승리할 수 없어요.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는 한 여러분은 삶의 어려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요. 왜냐하면 나는 반드시 승리한다. 라 말하는 고백을 듣는 대상이 바로 나. 여러분이기 때문이에요.
세번째 대상 나. 자기 자신이에요. 지금도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거에요. 그래서 뭐. 내 삶은 여전히 힘든걸. 나는 말씀대로 살지 못하겠는걸. 나를 유혹하는 것들이 더 많고 그게 더 재미있는걸? 그래서 저 말씀이 나랑 무슨 상관이야. 등등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어요.
네 맞아요. 우리가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은혜를 받아도 나를 둘러싼 환경은 그대로라 받은 은혜 다 엎어버릴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흔들리는거잖아요. 의심하는 거잖아요. 말씀대로 살면 지금 어떻게 살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 라 생각하며 흔들리고 의심하잖아요. 당연해요. 어쩔 수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앙을 고백. 선포하게 하셨어요. 매주 선포하게 하셨어요.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는 마귀가 나를 아무리 공격해도 데미지를 입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와 함께 합니다! 라 말하는 그 고백!
여러분이 내 입으로 하는 그 고백. 스스로 듣잖아요. 그 고백이요. 여러분의 속사람은 강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어요. 여러분 안에 있는 변화하고 있는 그 속사람이 자유와 평강을 누리고 있었다는거에요.
내가 의식하지 않고 했던 그 고백이 사실은 하나님 앞에 흔들리고, 신앙생활에 기복을 타고 내 믿음은 부족해.. 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아니야!라고 내가 나에게 선포하고 있었던 거에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습니다. 엘 샤다이. 창조주. 그 분의 영광이 나와 함께 합니다. 그러니 난 괜찮습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상한 그 심령에, 여러분 스스로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회복을 선포하고 있었던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 고난을 참고 견뎌낼 수 있는 힘과 내성이 있어요.
마지막 대상 다른 사람. 하나님을 잘 모르는 사람 혹은 불신자에요. 여러분이 이 고백의 의미를 깨달아갈 수록, 그 고백의 무게와 깊이를 이해할수록 여러분에게서 빛이 날거에요. 애써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여러분을 통해 선포했던 하나님의 그 영광이 반짝 반짝 빛이 날거에요.
저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만 자랐어요. 일반대를 나오고 또 여러 경험들을 해보았지만 그래도 저의 삶의 반경은 늘 교회 공동체 안에 있었어요. 그러던 중 제가 교회 공동체를 떠나 홀로 서야 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 때 태국에 잠깐 있었는데요. 너무 궁금한거에요. 하나님을 모르는 나와 같은 또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들은 여행지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또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가 너무 궁금했어요.
그래서 태국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제가 어떤 사람인지 밝히지 않았어요.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겼어요.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도 ㅁㄴㄹ8맬너ㅣ아멘. 할 정도로 티 안나게 식사기도를 했어요. 그런데요. 얼마 못가서 걸렸어요.
분명 나랑 같은 나이대고 또 같은 문화와 교육을 받았는데요. 그 친구들이 저에게 이렇게 묻는거에요. “너 교회 다니지?” 제가 뭐 특별하게 한게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대번 아는거에요. 그냥 제가 하는 행동이나 말 등에서 느낌적인 느낌으로 교회를 다닐 것 같았다는거죠.
좀 재수 없나요. 그럼 미안요. 무튼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내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드러내지 않아도 여러분이 선포하면 할 수록, 고백의 의미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주위 다른 사람들은 여러분을 인정하게 될거에요. 그들이 싫어도 여러분의 존재. 여러분과 함께 하는 하나님에 대해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될거에요.
나와 특별하지 않은데, 학교도 비슷하고 월급도 비슷하고 나보다 뭐 특별하게 잘난 것 없는데 여러분에게 느껴지는 묘한 아우라와 여유 그리고 행동등을 통해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여러분을 받아드리고 인정하게 될거에요.
여러분이 하는 한 줄의 짧은 고백이 4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이죠.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습니다.
I am nothing. God is Everything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부이십니다!
전부이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나를 둘러싼 모든 마귀의 전략은 이미 실패했습니다!
마귀의 실패를 보았으니 나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를 통해 다른 이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121편이 여러분이 고백한 하나님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우리 힘들면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면서 멀리 쳐다보며 동공에 시선을 풀잖아요?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면서 이런 의문을 가진거에요. 나를 돕는 이 도움의 손길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의 이 어려움을 누가 도와줄 수 있을까?
아! 그 도움이 천지를 만드신 여호와에게서 왔구나!
그 분이 나를 지켜주시는데, 졸지도 않고 나에게 눈을 고정하고 지켜보고 계시는구나. 잠도 자지 않고 나만 바라보고 계시는구나
내 오른편에 서서 모든 마귀의 공격을 막아내고 계시는구나!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나를 공격하고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 그 분이 나를 영원토록 지키시는구나!
여러분이 고백한 하나님이 이런 분이에요. 여러분의 고통과 아픔을 그 누구보다 공감하시며 속상해하시고 함께 울어주고 계셨어요. 여러분이 다시는 그 상처 속에 빠져 살지 않도록 옆에 서서 지키고 계셨어요. 모든 공격을 막고 여러분에게 괜찮아! 내가 있잖아! 라고 외치고 계셔요.
여러분은 그러한 전능한, 천지의 창조주를 믿는다고 고백해왔던 거에요.
사랑하는 가온누리 청년부 여러분. 지금까지 여러분을 지탱하게 해준 것은 무엇이었나요? 여러분이 버틸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이번 한주를 살아가며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주세요. “내가 버틸 수 있도록 지탱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질문이 여러분의 하는 고백의 의미를 더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줄거에요. 그리고 이번주 고난주간이잖아요? 특별새벽기도회도 있는것 아시죠? 그 시간을 기억하고 함께 지키며 예배하고 예수님을 묵상하길 바래요.
고난 주간 설교가 아닌 첫번째 고백을 오늘 나눈 이유가 있어요. 여러분이 버틸 수 있었던 힘과 능력 그리고 버팀목이 되어주신 분이 바로 우리를 위해 고난을 스스로 감내하신 분이기 때문이에요. 아까 말했던 질문 “내가 버틸 수 있도록 지탱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질문하세요.
그리고 고난주간을 보내세요. 그럼 내가 버틸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분이 누구인지 다른 때보다 더 여러분 마음에 깊이있게 다가올거에요.
다음 주 사도신경. 신앙고백을 하는 그 시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습니다.” 이 선포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길 기대하며 저도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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