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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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 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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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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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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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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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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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Tone
Analy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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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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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t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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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Tone
Open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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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cient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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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al 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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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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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토로이드는 미국의 한 부유한 시였습니다.
이 지역은 자동차 공장으로 유명한 도시였습니다.
자동차 생산이 너무나도 잘 되고, 잘 팔려서 미국의 어떤 지역보다도 부유한 지역이었습니다.
공장이 잘되다보니 노동자들이 넘쳐나 시의 분위기는 활기찼습니다.
또한 자동차로 유명한 곳이다보니 자동차 경기도 열릴 정도로 사람들은 이 도시에 열광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부패와 운영실패, 그로인한 도시의 인구 감소와 노동인력 감소를 가져왔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이 도시를 떠났습니다.
부동산은 남아돌지만, 여전히 땅값, 집값은 비싸 도시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점차 도시는 폐허가 되어버렸고, 기업 인사 백인들의 철수, 흑인폭동과 살인 범죄율의 증가등 좋지 않은 상황만 반복되었습니다.
이렇게 상황은 이렇게 열악하지만 디트로이드시의 시민들은 시를 살릴 노력에 대해서는 포기한 듯 보였습니다.
또한 그드른 여전히 과거에 누렸던 풍요로움과 영광을 그리워하며 자신이 그런 영광을 가졌던 사람임을 자랑하는 자존심만 남은 지역 되어버렸습니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미국 민주주의-자본주의의 표본이었던 곳이 겉만 화려하고, 속은 공허한 도시의 반면교사로 남게 되었다고 안타깝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코칭 및 도입 : 과거의 영광은 현재의 풍성함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풍요로움은 다시금 노력하는 신실한 오늘을 통해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과거만을 그리워해서는 아무것도 얻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오늘은 어떠하신가요?
우리의 신앙도 이러합니다.
여러분의 오늘은 살아있고, 생명력이 있는 삶을 사셨나요?
내가 과거에는 풍성했다고 하시며, 오늘을 잊고 살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오늘 말씀을 나누는 사데교회가 바로 이런 교회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파악하며, 회개하며 삶을 주님께로 돌이키라고 하십니다.
일깨어서 살아가라 하십니다.
오늘 사데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이 다시 주님으로 일깨어 일어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데교회에게 어떻게 편지를 시작하실까요?
“1절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데라는 단어에는 살아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사데교회도 디트로이드와 같이 과거의 영광과 현란한 외관만을 자랑하였지만, 그들은 실상 매우 공허한 현실을 살고 있었습니다.
1) 사데는?
사데는 어떤 지역이었나요?
사데는 내륙으로 자리잡힌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자연적으로는 천해의 요소로 삼면이 절벽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은 절벽 위에 세워졌습니다.
성지순례를 갔었을 당시, 많은 수도원들이 절벽에 구멍을 뚫어서 박해와 공격을 피한 것을 보았는데, 이와 같이 그들도 절벽을 성으로 지었던 것 같습니다.
이 지역은 단 두 번 함락을 당했었습니다.
첫 번째 고레스왕, 두 번째로 안티오쿠스 3세에 의해 함락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두 번다 동일한 방법으로 함락을 당했습니다.
그 방법은 모두가 잠자는 새벽에 절벽을 조용히 한 발자국씩 올라가 침투한 것이었습니다.
제일 미련한 방법이었지만, 제일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데를 함락시켰다.”는
말을 한 말장난-속담이 있었는데, 이 말의 뜻은 “그가 모든 것을 이루었다.”,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의미를
가질 정도로 대단한 업적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경제적으로 부요했습니다.
이 부요함은 그리스도인들도 함께 누렸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부유하고, 방탕과 사치, 쾌락을 누렸기에 구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필요를 못느겼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양모산업으로 패션이 발달되었고, 사금이 발견이 되어 막대한 양의 금화와 돈을 융통할 수 있었습니다.
환경적으로 굉장히 좋아서 쉽고 편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데지역에 지진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지진은 모든 것을 파괴했습니다.
한 순간 사데지역은 모든 것을 잃은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금방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사금과 양털 제조업이 손실을 메꿀정도로 엄청난 돈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입니다.
자립적인 도시는 아쉬울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2) 사데교회는?
교회 공동체는 박해가 없었던 것이 특징입니다.
왠만하면 주님께서도 그들에게 그들의 고난을 알고, 지켜보고 계심을 말씀하셨을 텐데 언급이 없습니다.
이러한 언급이 없음은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문제가 많은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핸드릭슨은 사데교회는 회칠한 무덤같다.
그리고 이들이 누린 평강은 공동묘지의 평강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예화 :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 문제가 많은 금쪽이보다 형이나 누나가 더 문제가 많은 경우를 발견하게 됩니다.
가끔씩 오은영 박사는 조용하게 금쪽이의 모습만을 살피는 문제 없는 형제를 진짜 금쪽이로 삼기도 합니다.
문제없이 사는 것이 다 좋은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사람이 보기에 저 아이/ 저 교회는 괜찮아보인다고 정말 괜찮은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더 부유하고, 살아있는 사데교회는 주님이 보시기에는 생명 없는 교회였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과 믿음이 사라져 있는, 그것을 부인하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진짜 금쪽이는 사데교회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참 전문가처럼 사데교회의 문제점을 밝혀 말씀하십니다.
“2절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사데교회는 온전한 것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질문 : 그렇다면 문제가 없는, 온전한 교회는 어떠한 교회인가요?
무엇이 온전한 교회입니까?
우리가 가고 싶은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요?
주님께서 죽었다고 하시는데, 살아있는 교회는 어떠한 교회입니까?
프로그램이 많고, 행사가 많고, 양육이 온전히 자리잡힌 교회입니까?
교인들이 모두 밝고, 명랑하고, 사랑으로 성도들을 맞이해주는 곳입니까?
넓은 주차장으로 서로 간의 얼굴이 붉힐 일이 없는 교회인가요?
현대식 예배로 현란한 일렉기타와 드럼, 사람들의 감정을 터트리는 예배입니까?
예화 : 사실 이 질문 속에는 참된 교회에 대한 질문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습을 갖춘 곳은 기독교/교회가 아니어도 가지고 있는 종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유튜브 속 법회/절의 집회는 찬불가와 법전으로의 수양을 닦는 일이 풍성합니다.
사람들의 모습은 업보와 수양 때문에 더 밝고 친절하고 따뜻합니다.
또한 유튜브 쇼츠로 우연히 승려분의 1분 설교를 들었는데, 이 땅에 온갖 고난과 불의와 탐욕이 가득한 이유는 사람들의 죄악때문이며, 우리에게 참 길을 알려주시기 위해 부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웃음을 금치 못했습니다.
승려분만 서있지 않았다면 완전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절도 교회도 경건의 모습, 참 종교/교회의 모습은 따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참된 믿음과 예수님의 생명은 그 어떤 역동적인 예배도, 프로그램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적용 : 참된 교회의 모습, 참된 온전함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참 평가는 하나님에게서 채우고,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로서는/ 우리의 힘으로는 측정할 수도 세울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세워주셔야 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교회와 우리의 삶을 주님의 온전함으로 세워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주님께서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자신의 온전함을 세워나가십니까?
여러분 뛰어난 외적인 모습으로 여러분을 세워나가지 마시고, 참된 믿음으로, 예수님을 붙드는 성도가 됩시다.
우리는 외적인 모습 말고, 내적인 믿음을 가진 모습을 온전히 세우라는 말씀에서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고후 6:7-10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인생의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여전히 주님을 붙들어 기뻐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3) 사데교회에게 주신 3가지 명령
잭 템프시는 “~을 얻고 싶거든, ~을 버리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또한 잭 윌스는 어려워진 회사를 살리려고 자신의 회사에 있는 모든 상품 중 1-2위만 남기고 모두 버렸습니다.
다른 것을 모두 살리기에는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진짜가 무엇인지 안다면 과감히 버리고 살려야 함을 그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죽여야 하는 것, 잘라내야 하는 것은 과감히 잘라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주님께서 사데 교회에게 하신 말씀과 참 연결이 잘 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살기 위해, 더 깊은 생명에 거하기 위해 생명이 아닌 것들, 거짓 것들을 버리고, 죽여야 했습니다.
“죽게 된 것을 굳게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그들을 살리기 위한 주님의 손길이었습니다.
주님은 사데교회를 온전케 하시기 위해 3가지 명령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굳게 해야 할까요? “2-3절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1) 일깨어(깨어나라)
사데는 천해의 요새로 함락이 쉽지 않은 지역이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 때문에 그들은 전쟁 중에도 마음을 쉽게 놓았습니다.
절벽에 무슨 수로 찾아오겠는가 하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레스와 안티오쿠스 3세는 이 일을 해냅니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저녁부터 새벽까지 절벽에 사람들이 올라가게 한 것입니다.
많은 희생을 치뤘지만 모두가 목숨을 걸고 절벽을 탔습니다.
입구에 도착한 적군은 성을 쉽게 함락했습니다.
이 전쟁에 함락이 쉬웠던 이유는 잘못된 믿음으로 전쟁 중에 모두가 잠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코칭 및 적용 : 사데는 전쟁 중, 잠이 들어 있어 망했습니다.
이처럼 사데처럼 영적으로 무감각해져 있으며, 영적으로 잠들어 있어 영적 전투와 주님의 평가에서 최하점을 받은 사데교회에게 주님은 깨어나라!! 일어나라 외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깨어 계십니까?
여러분은 영적으로 민감해져 주님의 말씀에 반응을 하고 계신가요?
깨어있음의 예시 : 그렇다면 깨어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감람산 기도에서 잠들어 있는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 하시나 잠들어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마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그들은 분명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깨어 기도해야 했지만 육신이 곤하여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말씀에 반응을 하여 기도해야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깨어있지 못함은 ‘말씀이 육신을 이기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감정과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육신-욕심이 우리를 이기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삶에 역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잠들어 있는 상태 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현제 말씀이 역사하고 그에 반응하고 계신가요?
영적으로 잠들어 있다면 주님을 온전히 바라고 주님께 나아갑시다.
(2) 기억하고, 생각하라
예화 및 적용 : 우리에게 주신 처음 은혜를 기억하고 처음 것을 더욱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종교개혁이 이와 같을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를 잊고, 교회의 전통과 예식, 행위를 강조했던 가톨릭은 진리에서 떠났습니다.
처음 행위를 잊었고, 예식으로는 살아있는 듯 보였지만 그들은 죽었습니다.
이런 상황 종교개혁자들은 복음 진리를 다시금 기억하고, 생각하며 진리로 돌아왔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처음 진리를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누렸던 말씀과 생명의 은혜로 다시금 나오십시오.
(3) 회개하고 순종하라
회개와 순종은 대개 마음이 동할 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회개와 순종은 그 자체로 순종할 때 역사하는 것을 우리들은 발견합니다.
교회에 나가기 정말 싫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교회에 나오고 예배를 드리다보면 은혜가 충만하고 재미있던 때가 정말 많았습니다.
전도도 그러합니다.
저는 대학교 시절 5년간 국립의료원에 매일 화요일 찬양으로 전도하는 전도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피곤하고 나가기 싫은 날이 있었는데 유독 참여한 날은 기쁨이 넘치고, 감사가 넘치는 역사를 경험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님께서 외치시는 회개와 순종의 요구에 마음의 동함을 기다리지 마시고, 지금 이 자리에서 돌아와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순종에는 회복이 있고, 채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데교회에 무엇을 회개하라고 하시나요?
그들의 잠들고 죽어 있는 삶을 회개하라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이 역사하지 못하고, 반응하지 못한 잠들어 있는 영혼을 깨웁시다.
회개하여 삶이 회복되고 교회가 살아나기를 소망합시다.
적용 및 코칭 : 여러분 요한계시록의 7교회는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교회가 있나요? 그렇지 못하였고,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영원한 지상의 교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교회/ 천상의 교회는 언제나 굳건히 서 있습니다.
회개하며 몸을 더럽히지 아니한 성도들이 사데교회에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들처럼 우리도 여전히 땅에 거하지만, 믿음을 지키며 우리의 교회를 온전히 세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천상의 교회를 사모하시는 여러분은 지금 어떤 교회를 세우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옷을 희게 빨고 계신가요?
5) 결론 : 부유함 속에서의 나태함,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한 믿음을 버려라
예화 : 여러분 저는 참새와 매추라기도 많이 구워 먹어 봤습니다.
그리고 개구리도 구워 먹어 봤습니다.
그래서 그런데요.
냄비 속의 개구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끓는 냄비에 개구리를 넣으면 곧바로 튀어나와 삶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물을 서서히 끓이면 개구리는 물이 끓는 것을 모르고 서서히 익어 죽어갑니다.
이처럼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박해의 불이 떨어졌을 때, 믿음을 강하게 지키고 교회를 지켰지만, 사데교회처럼 부유하고, 편안한 환경에 놓였을 때 그들은 안일한 신앙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데교회의 현실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지 우리는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잠자다 망한 사데 교회처럼 영적으로 잠들어 있어 앞으로 오게될 환란과 심판에 대처를 못하는 성도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들려 영혼이 깨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사데교회는 온전함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온전함을 찾아 볼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들의 삶은 박해가 없어 편안함이 가득했고, 힘을 내어 신앙을 이길만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좋은 프로그램, 교회의 화려한 모습은 있었지만 믿음과 신앙의 본질을 따름이 없었습니다.
주님으로 세워진 참된 교회의 모습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생명이 없는 죽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주님 안에 참된 온전함이 있습니다.
주님의 생명 안에 참된 온전함이 있습니다.
주님 안에 거합시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주관하시어 온전케 되고 주님으로 살아가도록 날마다 주님께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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