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이긴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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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장애인 빌포터는 오랫동안 취업자리를 구해 보았지만 매번 거절당했습니다. 빌포터씨의 장애는 난산의 과정에서 의사의 실수로 생겨난 장애였습니다. 그가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신체부위는 두 다리와 왼손의 엄지와 검지였습니다. 절뚝거리는 걸음과 어눌한 말투는 잠시의 대화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를 강하게 키웠습니다. “장애를 빌미로 일이 어렵다고 핑계를 대지 마라”고 하며 빌 포터가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도록 도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장애는 취업에 언제나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모든 이력서가 떨어지고, 그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번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그 곳은 생활용품을 파는 왓킨스라는 회사였습니다. 처음에 회사의 사장은 그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에게 배운대로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사장에게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장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넵니다. “저를 가장 힘든 곳으로 보내주세요”, “저를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곳으로 보내주세요” 빌은 왓킨스의 영업사원으로 취업하게 됩니다.
그의 영업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매번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같은 시간에 초인종을 두들기며 사람들을 대했습니다. 그의 인내와 끈질김을 사람들이 알아준 것일까요? 하루도 빠짐없이 문을 두드리는 빌의 성실함을 알아보는 고객들이 늘어갔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좋은 상품을 전달하려는 마음으로 24년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찾아가 영업을 했고, 24년이 지난 후 그는 회사의 영업왕을 차지하게 됩니다. 24년간 그는 불편한 몸으로 무거운 가방을 들고 매일 15키로를 걸었습니다. 매일같이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는 놀라운 언변과 건강한 신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과 사람들이 좋은 물건을 쓰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으로 매일 사람들을 찾아가 영업했습니다.
빌 포터의 성실함은 우리들에게 인내의 소중함을 알려줍니다. 또한 매일의 신실함이 좋은 열매를 가져다 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희망을 주는 것은 놀라운 능력에 있지 않고, 적은 능력이라도 최선을 다함에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는 놀라운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늘 소망을 갖고 어려움을 극복했고, 사람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매일을 살아갔습니다. 그는 하루하루에 성실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던 교회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지켰고,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7교회중 가장 능력이 적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작은 능력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능력으로 살기 원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오늘을 실패하더라도, 오늘의 큰 능력이 나타나 보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며 다시 주님을 찾고 의지했습니다. 매일매일 주님을 찾고, 자신과 교회를 세워 나갔습니다. 그들은 약한대서 강함을 얻는 영적 비결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교인들이었습니다.
코칭 : 여러분은 여러분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극복하며 살아가고 계신가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작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고 계신가요? 자신의 어떠함으로 자신의 작음을 가리려고 하지 않으시나요? 현대의 사람들은 적은 능력을 싫어합니다. 자신에게 있는 부족함을 싫어합니다. 누군가에게 얕보이는 것은 치부이고 약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작음을, 그리고 자신의 적은 능력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적은 능력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능력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적은 능력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만나고 계십니까?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친밀하게 하나님을 찾고 능력을 채우고 계신가요?
도입 : 교회의 힘과 능력은 영혼을 살리는 능력에 있습니다. 영혼을 향한 사랑과 인내, 거룩한 삶으로 사람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는데 참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부러워하는 능력을 교회에 주시지 않았습니다. 지난 5교회중 부요함과 생동감이 있었고, 부와 명예와 능력이 있더라도 그들은 죽은 자와 같이 책망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부와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진 세상의 부는 하나님을 버리는 악한 능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부러워 할만한 것이 없더라도, 가진 능력과 부가 없더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하고 칭찬을 받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바로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그들은 어떤 능력으로 지역 속에서 살았던 것일까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들을 어떻게 사용하셨을까요? 빌라델비아가 어떤 능력으로 지역을 섬기며 살아갔는지와 그를 위하시며, 그들의 사랑을 증명해 보시는 주님의 사랑을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지면과 시간관계상 오늘은 9절까지만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빌라델비아?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들어보셨나요? 사실 그곳과 이곳은 전혀 상관이 없는 곳입니다. 빌라델비아라는 이름은 필로-사랑, 아델포스-형제의 합성어로 형제 사랑의 지역라는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빌라델비아는 버가모 왕국의 왕에 의해 지어진 도시입니다. 빌라델비아는 주전 2세기 버가모 왕국의 왕 필라델푸스 앗탈루스 2세가 건립한 도시입니다. 앗탈루스 2세의 전임 왕은 그의 형 유메네스 2세였습니다. 로마제국은 유메네스 2세가 통치할 때, 동생을 회유하여 형을 배신하면 왕위를 주겠다고 제안과 압력을 넣었지만 형을 사랑했던 앗탈루스 2세는 그 모든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형이 죽고 나서야 왕위를 잇게 됩니다. 그가 형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는 죽은 형을 생각하면서 빌라델비아를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도시의 이름을 형제 사랑을 의미하는 빌라델비아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형을 사랑했던 앗탈루스 2세는 필라델푸스라는 칭호도 얻게 됩니다.
빌라델비아는 사데로부터 40키로 떨어진 소도시였습니다. 위치상 여러 도시를 연결하는 요충지입니다. 로마와 소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지역에 이 지역이 위치해서 유명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중간을 잇는 허브역할을 하던 지역이어서 무역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 곳의 특산물로는 좋은 포도가 생산되어 포도와 포도주가 유명했습니다. 사람들은 빌라델비아의 포도주를 마시려고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그런데 질 좋은 포도주가 생산되다보니 사람들은 향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술에 취하여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숭배했습니다.
이 지역에 AD17년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근방에 위치한 사데지역은 사금생산으로 인해 큰 손실을 쉽게 메꿀 수 있었지만, 빌라델비아지역은 2/3가 파괴되었고, 재건할 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황제는 그들을 불쌍히 여겨 자금조달과 세금면제로 다시금 수도를 재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황제 숭배가 대단히 열렬했습니다. 자처해서 신전을 짓고, 자처해서 신전의 봉사자로 나섰습니다. 황제의 도움으로 지역이 살아났기에 황제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지역이 망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또한 빌라델비아는 유대의 멸망으로 유대 디아스포라가 몰려든 지역이었습니다. 그들이 속한 로마의 지역에서 막대한 세금을 내었고, 로마의회와 황제의 관심을 받아 지역의 중요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지역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의 모임을 로마에 고발하며 벌을 받게 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중 기독교 개종자들을 출교하고 그의 가족들을 몰살하였습니다. 각종 조롱과 비난과 핍박을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서슴없이 저질렀습니다.
이 지역에 사는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이 하신 말씀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8)” 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작은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그들이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교세와 재정 모두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평가는 그들의 교세에 있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능력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과 충성을 보셨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비록 작은 능력을 가졌지만 견고한 교회였습니다. 향락의 문화 속의 교회, 유대인의 핍박과 조롱 속에서도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을 신실하게 사랑했고, 섬겼던 교회입니다.
코칭 및 적용 : 여러분은 향락이 가득한 현대의 사회 속에서 어떻게 주님을 바라고, 사랑하고 계신가요? 또한 조롱과 비방, 거짓술수 속에서 여러분의 믿음을 굳건하게 지키는 믿음을 가지고 계신가요? 여러분의 능력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떤 빛을 바라고 있으신가요? 우리들도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세상 속에서 참으로 연약하고 능력이 적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땅을 밟고 굳게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의 능력은 우리의 어떠함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데서 나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선과 능력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하루는 놀라움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신자다운 자리에 묵묵히 서셔서 매일을 주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살아갑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빌라델비아 교인들의 매일의 삶을 통해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주님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복음의 도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말씀 하시는 주님에 대한 묘사
1) 다윗의 열쇠
주님께서 교회를 향해 말씀하실 때는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이었나요. “7절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주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다윗의 열쇠는 나라의 모든 것을 열고 닫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이십니다. 열쇠를 가지신 주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참된 메시아 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이 사실은 황제 숭배를 자처해서 나서는 빌라델비아 지역의 사람들에게 참된 왕이 누구인지 알려줍니다. 또한 황제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두려움을 가진 빌라델비아 지역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여러분의 삶과 인생의 열쇠를 가지신 분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통치자는 누구이신가요?
열쇠를 가지신 이에 대한 묘사의 시작은 1:18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본 그리스도 환상의 묘사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했는데, 1장과는 다르게 3장인 여기서는 ‘다윗의 열쇠’라고 표현됩니다. 주님께서 가지신 열쇠에 대해는 각기 다른 역할이 있습니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는 구원과 심판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을 의미한다면, 다윗의 열쇠는 그 나라에 들어갈 자를 결정하시는 권세 가지신 주님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그 뒤에 나라의 문을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라고 묘사됩니다.
영동제일교회의 교역자가 되면 받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교회의 모든 문을 열수 있는 마스터키입니다. 이게 정말 요긴하게 쓰입니다. 언제든지 필요한 장소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닫혀 있는 곳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거하거나 쉴 곳이 없어 교회 온 곳을 돌아다닐 때, 문을 열면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깁니다. 열쇠가 없으면 들어가서 필요한 것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키가 있으면 언제든지 들어가서 필요한 것을 꺼내올 수 있습니다. 열쇠는 닫힌 것을 열 수 있습니다. 열쇠는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다윗의 열쇠는 다윗의 창구를 열어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을 꺼내 쓸 수 있는 역할을 합니다. 나라에 많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창구를 열어 백성을 도왔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다윗의 열쇠를 열어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성도들을 도우실 것입니다. 또한 열쇠관리인은 왕을 알현하게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알현이 허락이 되면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는 참된 중보자요 통로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영동제일교회 성도님들,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기 원하신다면 참된 중보자이신 주님을 만나십시오.
다윗의 열쇠는 더 자세히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구약을 배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22장 22절이 그 배경인데요. 엘리아김에게 히스기야 왕이 명령을 합니다.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전 후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히스기야가 통치하는 유다 왕국의 살림을 책임지는 청지기인 셉나가 자신의 소명을 바르게 감당하지 않고 자기를 위해 호화로운 묘실을 만드는 등 잘못을 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책망하시고 그 직무를 엘리아김에게 맡기십니다. “16절 네가 여기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에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내었도다” 이 말씀은 셉나의 범죄로 그의 권세가 빼앗기고, 한 사람의 국가 청지기인 엘리아김에게 전권으로주시는 말씀입니다. 다윗 왕가의 모든 전권을 가진 엘리아김은 그리스도의 모형이 됩니다. 이 말씀이 그리스도에게 적용이 될 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권세를 우리 주님께서 가지고 행사하신다는 말씀이 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은 문을 열기도 하시며, 닫기도 하시는 참된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으로 묘사하신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개종한 유대 기독교인들을 출교하고,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내어 쫓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그들은 유대교의 출교가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출교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고 닫을 권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그 안에 있는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고 닫는 것은 유대인들이 아닌 우리 주님이심을 나타내 보여주고 계십니다.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을 셉나와 같이 여겨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박해하는 유대인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십니다. “9절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그들은 사단의 회당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거짓말하는 자들이었고, 거짓의 아비 사단을 따르는 자들이었습니다. 실상은 그들이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이었고, 주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유대인들을 사단의 회당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울은 교회를 핍박했는데, 주님은 자신을 왜 핍박하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의 거짓말과 핍박은 하나님의 자녀를 괴롭히는 사단의 역사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참 이스라엘이 아닐진데, 누가 참된 이스라엘/유대인입니까? 바울 사도는 이미 로마서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로마서 2:28–29).”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문을 여셔서 우리로 들어가 하나님을 뵙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유대인들로부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아니라고 조롱받으며 박해를 받고 있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참 이스라엘은 너희이며,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내주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왕이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열쇠가 주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적용 및 코칭 :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가 참된 이스라엘/유대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하시며 그 말씀과 영광을 드러내시는 삶을 살아가고 계신가요? 주님을 믿는 사람이 참 이스라엘이며, 하나님의 참된 백성입니다. “갈 6:14-16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여러분은 참 이스라엘 백성은 마음의 죄악을 깨닫고 마음에 할례를 받습니다. 마음에 할례 받은 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참된 의이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에 복종합니다.
적용 : 참 하나님의 백성-자녀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승리합니다. “요 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말씀을 따르는듯하지만 순종하지 않는 자입니까? 적은 능력이지만, 말씀하신 이를 사랑하여 순종하는 자입니까?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을 사랑함이 가득하기를 소망하며,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순종함이 풍성하게 역사하기를 소망합니다.
3. 주님을 사랑하며 순종하는 자들에게 승리를 주심
주님은 자기를 사랑하며 충성된 빌라델비아 교회를 붙드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참된 승리를 약속하십니다. “계 3: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주님께서는 매일의 삶 속에서 신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했던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인정해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심을 증명해 보이십니다. 그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사단의 회당이라 불리는 유대인들 중 몇이 그들에게 와서 절함으로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이는 빌라델비아 성도들이 견뎌왔던 하나님 앞에서 한 옳은 행동을 인정하시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의 비방 속에서도, 삶의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신실하게 믿고 사랑했던 진짜 택함 받은 백성이 누구인지 주님은 교인들에게 확인시켜 주십니다. 사단의 회당인 그들은 참 된 이스라엘 앞에 무릎 꿇을 것입니다.
시 23편에서 다윗은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주님을 경험했습니다. 다윗은 끝까지 자신이 원수 갚지 않고, 그들을 피하고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셨고, 다윗을 높이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자녀를 높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끝까지 충성된 성도님들이 우리 영동제일교회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시며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믿음의 길을 걷는 성도를 높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내하십시오. 사랑하십시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결론 :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고난과 조롱과 핍박이 더 몰려올수록, 우리에게 능력이 적을수록 우리는 주님의 능력을 더 크게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의 어떠함을 내려놓고 우리 자신을 내려 놓을 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우리를 위하시는 존재임을 주님께서 증명해 보이실 것입니다. 우리로 세상을 살아가게 하고, 세상을 이기는 힘은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함으로 모든 시험을 이기는 믿음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