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 이르는 회개(중생과 회심)

예수사랑 2022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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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장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요한복음 3:3–7 NKRV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M1. 환영과 주제 제시

이른 아침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오늘은 예수사랑 새벽기도회 두번째 시간으로 생명과 회개에 대해 함께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에 이르는 회개로서 중생의 은혜를 누립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공생애 첫해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셔서 많은 이적을 행하시고 계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유심한 마음으로 관찰했던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찾아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는 예수님은 천국에서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천국을 모른다고 말씀하시며 거듭나지 않는 자는 천국을 볼 수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본문 3절을 봅시다.
요한복음 3장 3절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니고데모를 매우 자극했습니다. 무엇보다 거듭난다는 말이 걸렸습니다. 사람이 한번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다음 어떻게 다시 어머니 태로 들어갈 수 있는가 말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 의문은 결국 영적 세계에 대한 그의 무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거듭남을 의미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에 대해 대답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5절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거듭남이 없이는 천국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고 다시 한 번 더 선포하신 것입니다.

M2. 중생의 은혜

예수님의 이 선언은 영과 육을 가르는 엄청난 선포였습니다. 사람이 육에서 태어나 그대로 있으면 육일 뿐이지만, 물과 영으로 거듭나게 되면 영이 된다는 놀라운 진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6, 7절을 봅시다.
요한복음 3장 6, 7절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영이 되는 새로운 탄생이 있다는 선언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사람은 중생하게 되지 않으면 결코 영이 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도를 닦고 관상 기도에 힘쓰고 신비한 경험을 아무리 많이 해도 거듭남이 없으면 그는 진정한 영이 될 수 없습니다. 육은 육이고 영은 영인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중생의 은혜를 생명에 이르는 회개라고 부릅니다. 웨스트민스트 대교리문답 76문은 이에 대해 이렇게 가르칩니다.
문76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무엇입니까?
답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으로 죄인의 마음속에 역사하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
여기에 보면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중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령과 말씀, 곧 물과 성령으로 영이 거듭나는 것을 중생이라고 할 때 이 중생은 바로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Born again이라고 해서 내가 영으로 다시 한 번 더 태어나 새로운 영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성령과 말씀으로 거듭나게 될 때 비로소 천국을 보며 천국을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물론 이 은혜는 사람이 자력으로 얻는 은혜가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과 말씀의 사역이기 때문에 사람이 어떻게 해서 얻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 편에서 베풀어주시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섭리적 은혜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영의 거듭남을 위해 성령님과 말씀을 움직이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오직 은혜입니다.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주시는 참된 믿음의 은혜와 같이 사람은 오직 은혜로서만 중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M3. 회심의 은혜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인 중생, 곧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사람이 체험하고 누릴 수 있습니다. 좀 전에 읽은 대교리 문답 76문은 좀 더 긴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체 내용을 같이 봅시다.
문76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무엇입니까?
답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으로 죄인의 마음속에 역사하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로써 죄인은 자기 죄의 위험과 추함과 가증함을 보고 느끼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통회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깨달아 참회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기 죄를 슬퍼하고 미워하여 그 모든 죄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이키며, 새로운 순종의 모든 길에서 부단히 하나님과 동행할 것을 결심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뒷부분에 보면 중생은 우리에게 놀라운 경험을 가져다 줍니다. 보고 느끼고, 깨닫고 참회하고, 슬퍼하고 미워하며, 돌이켜 결심하고 노력하는 체험을 가져다 준다고 교리문답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중생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시는 선물이지만, 그 결과는 우리가 체험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청교도들과 개혁파 신앙의 선배들은 이를 두고 회심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회심의 체험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중생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생은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성령과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일으키신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생한 날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주시는 은혜를 통해 우리는 나의 중생을 체험할 수는 있습니다. 이날은 나의 죄악이 내 눈에 보이고, 그것을 느낄 수 있는 날입니다. 통회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깨닫고 참회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죄를 슬퍼하고 미워하게 되고 돌이켜 새 삶을 결심하고 노력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체험의 날이 곧 회심의 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성도들 가운데는 회심을 깊이 경험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생을 아직까지 확신하지 못하고 개인적으로도 눈물을 흘리며 죄를 미워하는 거룩한 결단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전혀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청교도들과 개혁 신앙인들은 믿음 생활에 있어서 성도들이 회심, 곧 중생을 깊이 체험하는 은혜를 구하여 기도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자신의 회심의 날을 감사하면서 성도들에게 주신 중생이 경험적으로 성도들 각자에게 임하기를 구하도록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중생은 분명히 체험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죄가 단순히 머리속 생각으로 안해야 할 일이라고 결론내리는 정도가 아니라 나의 심정에 변화가 일어나 죄를 증오하고 미워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진정한 영적인 체험이 있습니다. 교회사 안에서 이런 놀라운 체험을 하신 분들은 그 양상이 다양합니다. 루터와 같은 이는 수년간의 방황을 통해 어느날 성경을 공부하며 학교의 탑을 돌던 중에 큰 깨달음을 가진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칼빈과 같이 어느날 우상을 섬기며 카톨릭 교회의 신앙에 젖어 살던 자신에게 깊은 죄인됨의 깨달음을 느끼고 순식간에 변화된 분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 좋다는 우월은 없습니다. 다만 이미 주신 중생을 경험하는 삶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 세계에는 이런 놀라운 회심의 역사가 있고 우리의 고백서는 그것을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장로교회는 신앙의 선배들이 가졌던 깊은 영적 체험의 유산을 누리고 있지 못합니다. 성도 여러분, 영의 마음의 끈을 굳건하게 다지고 깊은 회심의 체험을 경험하고 누리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M4. 성경에 나타난 회심

성경에서 회심을 체험한 대표적인 인물로 사도 바울이 있습니다. 물론 오늘 본문의 니고데모도 마찬가지의 체험을 한 것이지만, 우리가 아는 사도 바울의 체험은 너무도 놀라운 영적 회심의 체험입니다. 사도행전 22장에는 바울이 자신의 회심 체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 앞에서 간증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6-8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도행전 22장 6-8절
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당시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이 빛은 보았는데 음성은 바울만 들었습니다. 이후 그는 앞을 볼 수 없어 사람들의 손에 끌려 겨우 다메섹으로 갔는데, 경건한 사람 아나니아가 와서 말씀으로 그의 눈을 뜨게 했고, 예수님에 대해 알고는 세례를 받았다고 간증합니다. 이러한 특별한 회심 체험은 이후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복음의 사역자가 되게 했던 것입니다. 사실 그는 박해자였습니다.
디모데 전서 1장 12, 13절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이런 바울이 중생의 은혜를 주신 예수님을 체험하면서 놀라운 복음의 사역자로 전환하는 은혜를 누렸던 것입니다.

M5. 적용과 결단

저도 대학교 3학년이 되던 1989년 1월 겨울에 엄청나고 두려운 영적 체험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1988년 가을에 참가했던 수련회에서 저는 주기도문 강해를 듣고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때 교회 대학부에서는 그 설교를 녹음한 자료들을 구입하여 돌려서 듣고는 했습니다. 그 겨울에 저는 부산 구포에 있던 집에서 그 설교를 들으며 오후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간이 되어서 제 마음은 엄청난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설교의 내용을 듣던 중에 제 마음에 갑자기 지금까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이 떠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감히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제가 제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그렇게 살았던 것입니다. 다음 설교를 더 듣지도 못했고,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방문 밖에 그 주인이 서 계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두려움은 저를 제법 오래 사로잡았습니다. 방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고 그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냥 그렇게 3시간을 방 안에 갇혀 있다가, 저녁 때가 되어서 어머니가 식사하라고 부르시는 것에 힘을 내어 겨우 문을 열고 방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사실이 계속해서 저를 사로잡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로 저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 다시 한번 사역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강한 부름을 확인했습니다. 이 큰 체험 이후에 저는 저의 생애를 새롭게 하여 제 인생의 주인을 따라 사는 새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 안에서 주시는 믿음은 우리에게 중생을 주시는 은혜가 됩니다. 성도인 우리들은 이 중생을 깊이 체험하는 회심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저는 성경 공부를 통해 믿음의 회심을 경험한 많은 간증들을 들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안에는 이러한 회심의 은혜를 깊이 누리지 못하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항상 미지근해 보이기도 하고, 죄인됨에 대한 깊은 깨달음도 약해 보이기도 합니다. 믿음은 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믿음을 북돋우십니다. 내게 주신 중생의 은혜를 깊이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학문과 문화의 모든 유혹에서 이기는 길은 오직 중생의 은혜 외에는 없습니다. 참된 중생을 통해 온전한 복음을 누리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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