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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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장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M1. 문제 제기
M1. 문제 제기
우리는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중생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중생은 우리의 삶에서 체험적인 사건으로서 회심을 가져온다는 사실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회개의 삶은 중생을 체험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일까요? 내가 믿음으로 중생하여 회개를 체험하고 나면 그로써 성도의 삶이 다 이루어진 것일까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8문은 중생과 회심,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진정한 회개라고 소개합니다.
88문 사람의 진정한 회개는 무엇입니까?
답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뜻하는 중생을 체험한 이후 성도는 진정한 회개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새로운 삶을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삶이라고 가르치십니다. 믿음의 선물을 받고 은혜의 새 백성의 길을 가는 이들은 회심 이후에 자신의 죄성을 부인하고 죽기까지 싸우는 견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은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체험한 성도들이 살아야 하는 진정한 회개의 삶을 함께 묵상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M2. 성도의 견인
M2. 성도의 견인
예수님의 제자들은 회심을 통해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체험하고 죄를 죽이고 의를 이루는 진정한 회개의 삶을 삽니다. 이를 우리는 견인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성도의 견인은 인내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인내라는 것은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라면 견인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이르기 위해여 정욕과 싸우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베드로 후서 1장 4절에는 견인을 교훈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사도는 성도가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려면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이를 피하고 이기라고 교훈합니다. 이것이 견인의 삶입니다. 성도가 복음을 알고 구원의 주를 믿는 은혜를 경험하여 생명에 이르는 회개인 중생을 체험하고 나면 그 사람은 새롭고 놀라운 권능을 누리게 됩니다. 베드로는 이 영광을 먼저 이야기했었습니다. 우리 베드로 후서 1장 3절을 봅시다.
베드로 후서 1장 3절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여기 보면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아는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뜻은 한마디로 믿음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즉,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을 통해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통해 이런 놀라운 것들이 주어지기 때문에 이제 성도는 정욕과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하는 영적 싸움, 곧 견인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회심을 경험한 성도는 견인의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견인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견인의 삶은 네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오늘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에 대해, 내일은 미래를 묵상하고 현재를 싸우는 삶에 대해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M3. 자기를 부인하는 삶
M3. 자기를 부인하는 삶
먼저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에게 나타나는 회개의 삶, 곧 견인의 삶은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자신의 인격을 부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죄인이지만 나라고 하는 인격의 정체성은 항상 존재하고 영원히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나 자신 안에 있는 모든 죄성과 그 죄성의 욕구를 부인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담 안에서 인간은 철저한 자기중심적인 존재로 변질되어 버립니다. 자신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자기의 아성을 쌓아 내가 우주의 중심이 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도 종교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자기 자신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알고 그 앞에서 엎드려 경배하는 삶을 살지 않고 도리어 자기의 기쁨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는 자들입니다. 바울은 말세를 사는 사람들의 특성을 잘 알려 주는데 조금 길긴 하지만 디모데 후서 3장 1-5절의 말씀을 같이 봅시다.
디모데 후서 3장 1-5절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여기에 나타난 모든 것들이 곧 타락한 내 안에서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자기 사랑, 돈 사랑, 자랑,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고, 경건의 능력은 없고 모양만 드러내면서 자신을 가리는 외식이 넘쳐나는 모습, 이것이 바로 주님이 부인하라고 하시는 나 자신의 모습입니다. 이런 특성들을 가지고 사람은 자기 안에 자신을 왕국을 세우고 성도가 되었다고 하면서도 이 성을 무너뜨리지 않고자 합니다. 하나님께 내가 쌓은 이 성도 보존해 주시면서 나를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8장 34절입니다.
마가복음 8장 34절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자기 사랑에서 돌아서라고 한 명령은 주님께서 자기를 부인하라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그 말씀을 순종하여 선포한 것입니다. 성도인 우리는 철저하게 내 안에 있는 죄성들을 부인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나를 부인해야 할까요? 자기 부인의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요?
M4. 십자가를 지고
M4.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는 자기 부인의 범위를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데까지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를 부인하기 위해 힘써야 할 범위를 말합니다. 곧 죽기까지 자신을 부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속에 있는 죄와 싸우는 것, 이 싸움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것을 얻으려고 목숨을 거는 것을 봅니다.
저도 회심의 순간을 경험하기까지 이 세상에서 최고가 되려고 얼마나 목숨을 걸었는지 모릅니다. 하루 4시간 이상을 결코 자지 않았고, 어떤 때는 한 주간 내내 2시간도 잠을 안자면서 지식을 쌓고 세상의 일등이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살았습니다. 이 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데 그 정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젠가 김연아 선수가 어린 시절부터 자신과 끊임없이 싸우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어요. 그렇게 해야됩니다. 세계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은데 그 정도도 안하면 안되죠. 이 세상에 얼마나 노력하고 뭔가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그들이 하는 것 이상을 했기 때문에 이 열악한 대한민국의 빙상 환경에서 그녀는 세계를 놀라게 한 피겨 여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죽기까지 수고하는 것, 성도인 우리에게 남은 삶이 바로 이 삶입니다. 우리는 죽기까지 죄와 싸워야 합니다. 내 속에 있는 죄들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세상 속에서 견인의 삶을 살아갈 때 이는 목숨이 다하기까지 그렇게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따르면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는 삶을 이길 수 있을까요? 나 자신을 극복하여 거룩을 내 삶에서 이룰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로마서 7장 25절을 봅시다.
로마서 7장 25절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죽기까지 최선을 다해도 우리는 내 마음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이 순종하지 못하는 것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일이 이루어지 지지 않아도 우리가 죄인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감사하는 복음의 비밀입니다. 로마서 8장 1, 2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로마서 8장 1, 2절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여기에 견인의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가 죽기까지 죄와 싸우는 일을 하는 이유는 온전해 져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서 주신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견인합니까? 그렇죠, 이제는 믿음이 왔기에 내가 죄인이 아닌 줄 알기 때문입니다. 설령 내 몸이 죄에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더이상 죄인의 신분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견인을 하는 것입니다. 이미 다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더 죄와 관련한 삶을 살지 않는 것입니다.
M5. 적용과 결단
M5. 적용과 결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베드로의 증언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십니다. 물론 우리는 아직까지 죄의 잔재들로 인해 여전히 몸이 죄를 따라가는 것을 보고 있지만, 결코 우리의 의지와 우리의 뜻은 죄와 함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기까지 죄와 싸우고, 십자가에 다시 죽기를 각오하고 나의 죄성을 거부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을 회복한 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성도들에게 죄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골로새서 3장 5절과 8절 말씀을 봅시다.
골로새서 3장 5, 8절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성도는 땅에 있는 지체, 곧 자신 안에 있는 죄성의 욕망들을 죽이고 살아야 합니다. 내 목숨이 다하기까지 그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제는 믿음 안에서 거룩이 내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기 위해 애쓰는 삶이 아닙니다.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변화된 의지로,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뜻을 따라 목숨을 걸고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골로새서 3장 10절의 말씀을 봅시다.
골로새서 3장 10절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형상의 새 사람을 입은 자는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식은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알고 행하는 믿음의 지식을 말합니다. 이제 성도는 이 지식의 새 옷을 입은 자이기에 아버지의 참된 형상인 거룩과 의를, 나아가 지식의 새 옷을 입은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기까지 거룩을 향해 살아가는 삶을 삽니다. 주신 말씀을 마음에 붙들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죽기까지 견인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