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1-26
밤샘 청문회가 끝나자(참조, 26:57–68; 밤/아침에 관한 문제) 유대 당국자들은 자신의 판결을 실행에 옮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사형은 로마 총독의 명령에 의해서만 시행할 수 있었지만(요 18:31; Sherwin-White[35–43]는 이러한 법 규정에 대한 초기의 의문을 효과적으로 잠재웠다) ‘신성모독’과 같은 죄는 빌라도의 관심 밖의 일이었다. 따라서 적절한 죄목과 설득을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한 ‘의논’이 필요했다. 그들은, ‘총독 빌라도’(주후 26–36년. 그의 공식 직함은 ‘프라이팩투스’[praefectus]였다)는 유대인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는 완고한 자로 악명 높았기 때문에 일이 쉬울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비기독교 자료에서 묘사하는 그의 모습은 복음서의 내용보다 더 부정적이다. 그는 유월절 기간 중 예루살렘에 머무르곤 했다. 그러나 그가 머문 곳(27절의 ‘관정’)의 위치가 전통적으로 생각해온 성전 북쪽 안토니아(Antonia) 요새인지 웨스트 힐(West Hill)에 있는 헤롯의 옛 궁전인지는(Blinzler, 173–176) 논쟁이 되고 있다. 최근의 주석가들은 후자를 선호한다
두 본문은 예수님의 예언(26:24는 유다에 대한 예언이며 26:34는 베드로에 대한 예언이다)을 성취했지만 베드로의 통곡(회개의 통곡인가? 참조, 26:75 주석)은 유다의 절망적 가책 및 자살과 대조를 이룬다. 유다에게 특별한 초점을 맞춘 마태의 묘사(26:14–16, 21–25, 47–50)는 의도적인 배교(베드로의 일시적 실수와 반대된다)의 결과에 대한 희미한 경고에서 절정을 이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