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는 오늘도 내 삶에 살아 역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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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 왜 중요한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주일 새벽이기 때문에 이 날이 기독교가 주일에 모이게 되었다. 유대교는 토요일에 안식한다. 그러나 안식일 지난, 안식 후 첫날에 예수님의 부활이 있었다고 보도 되었고, 자연스럽게 부활하신 날에 모여 예배하다보니 기독교는 지금의 일요일이 함께 모여예배하는 주일이 되었다. 그만큼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부활’이다.
이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 기독교는 이 사실에 기초한다. 철저하게 부활에 기초한 종교이다. 예수님의 승천이후, 그의 제자들은 다 이 부활의 증언이었다. 그 부활에 대한 증거가 무엇인가? 약속하신 ‘성령'이 폭발적으로 임한 것이다.
요한복음 16:7 (NKRV)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당시 유대인들에 의한 강한 반발과 핍박이 있었는데,,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거기에서 바로 다 사라져버리고 말았어야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굉장히 잔혹한 공포이자, 로마시대의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기때문에,, 거기에서 무서워서 겁을 먹고 끝났어야 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가고 만나신다..
그리고 그분의 부활과 하늘로 올라가신 것을 목도한 이후,, 성령이 제자들에게 부어져서 망한 것 같은 기독교가 폭발적으로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다. 성령의 역사로 베드로의 설교하는데 성령의 역사로 3천명씩 회개한다..
이것이 왜 가능한가? 그분이 ‘부활’하셨기때문이다. 그분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리도 지금 이순간 예수님 그분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분을 만날 수 있다.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에 가장 큰 기적을 말하자면,, 구약- 창조, 신약 - 부활의 기적. 이 기적을 이해하고 믿게될때 성경의 모든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다.
기적은 자연의 원칙을 초월한다.. 그래서 과학과 이성이 중시되고, 증명 가능한 것만 믿으려는 이 시대 속에서,,, 믿기가 힘들다.. 기적이 이성,상식적으로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이성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믿음으로, 이해되는 것,,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의 창1장1절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는다면,, 성경의 모든 이야기들이 파노라마처럼 쫙 열리면서 다 받아들여진다. 이것은 성경을 믿음으로 열려지는 영역이다. 이것을 받아들일때 성경의 모든 기적들은 해석이 가능하고 이해가능하다. 다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이것을 믿지 않고 이성적으로만 받아들이려한다면,, 계속 걸린다.. 이 이성과 코드가 잘맞는 것이 진화론이다. 진화론도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지 못함에도 못하고 사람들이 매력을 끄는 이유이다.
창조와 부활을 안믿으면 성경이 풀리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믿는 모든 믿음은 헛된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린도전서 15장 (NKRV)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그러나 그분은 부활하셨다. 그분은 생명이다. “영원한 생명"이다. 그분은 부활하셨고, 예수를 믿는 모든 자도 그분의 부활에 참여할 것을 성경은 약속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5:52–55 (NKRV)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이다. 사망과 죽음도 그분의 부활로 정복되었다. 왜? 그분 자체가 생명의 근원이자, 본질, 영원한 생명이시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므로 이 부활의 예수님과 우리가 연할할때에 우리도 영원한 생명의 부활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나라다
요한복음 11:25–26 (NKSV)
25.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26.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그런데 우리가 이 부활로 나아가기전에,,예수님의 십자가를 통과 해야한다. No Cross No Crown. 고난 없이 영광이 없다는 유명한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부활의 영광을 누리기위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과해야 한다.
2.십자가가 있기에 부활이 있다.
십자가는 내가 죽는 것이다. 무엇이 죽는 것인가? 나의 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내 삶의 주인되고 싶은 나의 자아, 내 모든 죄, 허물, 내 모든 저주들을 예수님이 다 끌어안고 싶자가에서 죽으셨다.
*다음 그림을 한번 보자 * 그가 십자가에서 본것은 이라는 제임스 티소라는 분의 1980년대 그림이다. 무엇이 보이는가? 내가 십자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도 같이 죽은 십자가다.
갈라디아서 2:20 (NKSV)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부 이레니우스는 ‘총괄 갱신’이라는 말을 이야기 한다.
나의 자아가 죽고 내가 예수님과 연합할때, 그리스도는 우리의 안 좋은 모든 것을 가져가시고, 그분의 좋은 것이 우리에게 온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가 우리처럼 된 것은 우리가 그분처럼 되도록하기 위함인데, 부패하는 우리가 부패할 수 없는 그분처럼 되도록 하기 위해서 부패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부패하는 인간이 된 것이다.
루터도 이렇게 연결지어서 죄악되고 불의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가 거룩하고 의롭고 살아 계신 그분처럼 되도록 하기 위해서 거룩하고 의롭고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죄악되고 불의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처럼 되었다'고 말이다.
“우리를 위하여” 죄인된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완전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신 예수 안에서 ‘죄와 죽음’이 정복된다.그리고 ‘저주와 죄와 죽음이 파괴되고 의와 생명이 그것들을 대치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사랑이다. 성육신이란 예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신일을 말한다.
예수님의 성육신, 그 하나님이 인간이 되심은, 그분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은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분 자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랑'이시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그리스도, 성령 하나님이 완전한 사랑의 하나됨, 하나로 연합되어 계시기에, 이분과의 사귐과 교제에 우리도 동참하기 위해 지어졌다.
그러나 이슬람은 다르다. 그들이 고백하는 알라 하나님은 단독자이다. 사랑이 없다. 오직 공의만 있을뿐이다. 그래서 그 알라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알라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율법적으로, 노력이 무지 중요하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 완전한 인간이 되셨다. 그것은 인간된 우리의 모든 문제와 죄, 저주들을 다 끌어안기 위해서다. 그래서 인간이 되신 것이다. 우리 인간이 갖는 모든 고통을 공감하신다.
이사야 53:3–6 (NKSV)
3.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4.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5.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6.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인간의 모든 문제를 다 끌어안기 위해서 인간의 옷을 입고, 인간의 가장 낮은자리로 내려가셨다. 온갖 수난, 모욕, 정죄, 억울함, 핍박, 매맞음, 십자가, 죄로 인한 인간들이 받아야할 모든 문제를 다 십자가에서 끌어안으셨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와 어두움을 끌어안가고 십자가상에서 죽으셨다. 거기에서 나도 같이 죽은 것이다. 나의 옛사람과 나의 죽어야할 자아가 같이 못박혔다. 내 모든 저주를 갖고 십자가로 가져가신것이다.
이것을 믿는 자에게는 어떤 낙심과 문제가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때, 예수님이 어떤 저주들도 의와 생명으로 축복으로 바꾸어가는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 이것이 총괄갱신이라는 개념이다.
이 예수를 믿는가? 이 예수를 여러분의 주인으로 초청하라. 이 예수가 여러분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 예수가 내삶의 주인이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믿고 죄에 대하여 죽은자로 여겨라. 여러분의 자아가 예수님의 십자가 상에서 죽었음을 선포하라.
주님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주님 나의 자아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이제 나는 예수님의 통치함을 받아, 주님의 뜻대로 사는 존재입니다.
예수와 함께 죽을때 부활의 산 소망이 피어난다.
3.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오늘 내 삶속에 초청하고 만나라.
베드로전서 1:3 (NKSV)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산 소망을 갖게 해 주셨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만이 부활의 새생명이 주어진다.
우리의 자아는 십자가상에서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것이 거듭나는 것이다. 부활의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서, 이제는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를 위해서 사는 삶이다. 그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셨으니, 우리도 또한 그분을 위해 사는 것이 마땅하다.
그가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부활생명이 오늘 성령을 통하여 내 안에 임재하신다. 부활하신 주와 동행하라.
기도1. 총괄 갱신,,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인간의 옷을입고 와주셔서,, 내 모든 문제와 죄, 모든 고통, 질병, 문제들을 끌어안고 십자가 상에서 죽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습니다. 나의 모든 죄의 문제들, 저주들도 예수님 십자가에서 해결되었음을 믿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모든것을 이루신 예수의 이름에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에 자유가 있습니다. 기도합니다.
2.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나의 옛자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내 자신을 위해사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과 날마다 동행하며 살기 원합니다. 내 뜻대로가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살기 원합니다. 우리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들을 회개하며, 나의 자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선포하며,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자.
3. 주님 우리에게 산 소망이 되어주심에 감사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날마다 동행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 부활하신 주님께 각자의 기도제목으로 또 올려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