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Easte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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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제 :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자가 됩시다.
명제 :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자가 됩시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도 중등부 예배를 함께하는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함께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설교제목으로 “Happy easter” 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함께 나눌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24장 1-12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십시오. 우리 함께 합독하시겠습니다. 시작
24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서론 예화>
여러분 부활절에 계란을 나눠주는 이유를 아시나요? 계란을 나눠주는 계기는 여러가지 썰이 있는데요. 첫번째로 고난주간에 지친 성도들의 영양보충을 위해 나눠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과거부터는 부활절 전 한주간을 ‘고난주간’으로 삼아 금식을 행했다고 합니다. 특히 중세시대에는 달걀이 영양가 높은 고급 음식으로 여겼기 때문에 성도들이 달걀을 먹으며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면서부터 부활절 달걀의 유래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두번째로 달걀 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에서 부활하신 모습을 달걀 껍질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에 빗대어 달걀을 선물했다는 유래가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부활절을 기념하여 모든 친구들은 예배 마치고 달걀을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아멘.
오늘 말씀에서는 한 여자가 새벽부터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당연히 예수의 시체가 있어야 되는 그 자리에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두 천사가 나타나서 여자와 마주하게 되는데요. 천사가 여자에게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라며 조언을 해줍니다. 여자는 예수님이 말씀해주셨던 것이 생각나서 사도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고 어이없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고 베드로는 이 말이 정말 진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무덤으로 직접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건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깨닫는 시간이 되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왜 우리에게 중요한 사건인지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우선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서 여러분들이 깨닫길 원하는 것은
첫번째로 “우리에게 부활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입니다.
누가복음 24장 9-12절 말씀을 함께 봉독해보겠습니다.
9 여인들은 무덤에서 돌아와 열한 제자들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모두 알렸습니다.
10 (그들은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였습니다. 그들과 함께 있었던 다른 몇몇 여인들도 이 일을 사도들에게 말했습니다.)
11 그러나 사도들은 여인들의 말이 어처구니없게 들렸으므로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12 하지만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몸을 굽혀 안을 들여다보니 고운 삼베 천만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이상하게 생각하며 돌아갔습니다.
9-12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하신 소식을 제대로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보였습니다. 그나마 베드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덤에 달려가서 확인하는게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들의 이 미지근한 반응이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 몇일 전만해도 하루종일 동고동락 생활을 했던 예수님이 처절하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을 했는데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쉽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다시 부활하신 사건이 너무 멀게 느껴지는 2022년 이후이기 때문에 이 사건이 그렇게 크게 와닿지 않을것 같습니다. 이렇게 받아드리실 수 있겠죠. ‘전도사님이 그러는데 2천년전에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데 그런데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데, 그리고 3일뒤에 부활하셨데’ 이렇게 미지근하게 이 내용을 받아드리는 것은 이 사건이 우리시대에 발생했던 사건도 아니고 예수님과 직접적으로 교류를 해본 경험이 없어서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만약 제가 예수님처럼 죽었는데 부활을 하여 여러분들 앞에 다시 나타난다면 여러분들은 어떠할 것 같나요? 제가 불의한 사고로 죽어서 장례까지 다 치룬 상황이라고 칩시다. 만약 제가 죽으면 여러분들은 제 장례식을 참여하러 오겠죠? 여러분들의 두 눈으로 죽어서 관에 들어가 있는 저의 모습을 목격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다시 부활하여서 여러분들의 앞에 나타난다면 얼마나 놀라시겠습니까? ‘어 이상하다? 분명 전도사님은 얼마전에 돌아가셨는데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 앞에 멀쩡하게 서 계실 수 있는거지?’ 라며 신기하기도 하지만 의문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본인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와 긴밀하게 관련이 있는 가까운 존재가 부활했던 사건이라고 여기고 말씀을 받아드려보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정말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왜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요?
바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 말씀을 함께 봉독해보겠습니다.
23 죄의 대가는 죽음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입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 안에는 죄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의 대가로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우리가 영접하고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라는 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님과 같이 죽음을 이긴 부활의 영광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정말 중요한 사건이고 우리 신앙의 본질일 수밖에 없는 사건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중등부 친구들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의 의미를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표징을 나타내신 덕분에 우리가 죽음을 이기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그 소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두번째로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서 여러분들이 깨닫길 원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만큼 예수님의 부활도 우리에겐 정말 중요합니다.”
함께 누가복음 24장 6-8절 말씀을 봉독해보겠습니다.
6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너희와 함께 계실 때 하신 말씀을 기억해 보라.
7 ‘인자가 마땅히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3일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라고 하시지 않았느냐?”
8 여인들은 예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면 천사가 예수님께서 이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내용인 ‘인자가 마땅히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3일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기억나게 도와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보면 예전에도 비슷하게 예고하셨던 메시지들이 몇가지 더 있는데요. 바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 부인하게 될거라는 메시지를 예고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건이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했던 그 사건을 3번이나 예고했던 적이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사건들의 공통점들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사건들은 모두 중요한 사건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은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한 정말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사망의 권세에서 부활하신 사건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켜주시기 위해 정말 중요한 사건입니다. 아멘.
사랑하는 우리 중등부 친구들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건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나요? 예수님의 부활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친구들의 대부분은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를 전혀 모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만큼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 분명 죄는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으로 대속해주셨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라고 질문이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죄는 우리의 본연의 성질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확실하게 예수님의 단 한번의 희생으로 죄값을 해결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본연의 성질은 하나님나라에 입성하는 그날까지 남아있어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덕분에 죄값은 다 해결되었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죄의 종노릇을 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에 우리도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아멘.
사랑하는 중등부 친구들 죄의 종노릇에서 해방할 수 있는 키는 부활 신앙입니다. 이미 우리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이기셨습니다. 항상 죄의 권세에 무릎 꿇고 복종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항상 똑같이 반복되는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항상 반복되는 실수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는 이 죄악에 벗어날 수가 없어… 이 죄의 유혹에 벗어날 수가 없어…” 라며 항상 패배주의자처럼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중등부 친구들 이미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이기셨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이기셨다니깐요? 이미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이기셨습니다!! 아멘.
우리는 그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됩니다. “나는 평생 죄악에 벗어날 수가 없고 평생 죄의 종노릇하며 살게될거야.” 라며 단정하지 마십시요. 이미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믿는 순간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됩니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기도드리겠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도 다시 부활하신 주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또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왜 중요한 사건인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표징을 나타내신 덕분에 우리도 부활의 소망과 영생에 대한 소망을 품을 수 있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사건 덕분에 우리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 저희들이 예수님의 부활하신 신앙을 굳게 붙잡고 당당한 승지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옵소서. 마귀와의 전쟁에서 예수님이 승리하셨으니 우리도 승리한 줄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헌금을 위한 기도>
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헌금으로 주님께 마음과 정성을 표현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것에 일부를 헌금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우리의 작은 헌금을 받아 주시옵소서. 우리의 헌금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회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선한 사역에 쓰임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