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대리 통치자(창1:26-29 )

킹덤스토리 해설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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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세상이 보는 사람
오랜시간 동안 세상의 학문들이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고 하는 소크라테스 이후로 철학은 우주에서 인간으로 관심을 전환하며 오랜 시간동안 인간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심리학은 인간의 내면에 관심을 가집니다. 사회학은 인간의 삶과 관련해서 인간의 관계를 살핍니다. 법학이나 윤리학은 인간을 행동하는 주체로 이해하고 의학은 건강의 관점이나 질병으로부터 회복되는 관점에서 인간을 다룹니다.
하지만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가장 정확하게 하려면 사람이 본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질적으로 어떤 존재인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은 최고의 피조물이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 최고의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무엇이 있으라’하고 명령하시며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창조되는 과정은 좀 다릅니다. 26절에 보시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다스리게 하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 ‘우리’라는 말이 나오는 부분에 학자들 간의 논쟁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하나님이 삼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라는 말씀을 하셨다라고 봅니다. 또 문법적인 차원에서는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나타내기 위한 장엄복수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이라고 쓰는 엘로힘도 원래 복수형인데 동사를 단수로 씁니다. 하나님께서 충만하시고 광대하신 분이라서 이렇게 씁니다.
이렇게 광대하고 충만하신 삼위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기로 어떤 내적인 협의를 하셨습니다. 다른 피조물을 창조하실 때와는 다른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피조물들 가운데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다른 피조물들은 그저 있으라 하고 명령으로 지어졌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내적인 협의 혹은 신적인 협의 가운데 창조되었습니다.
또 사람이 최고의 피조물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라고 표현하는데 많은 주석가들은 둘 다 의미상으로 비슷한 다른 단어를 나열한 문학적인 기법으로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고대에 형상과 모양이라는 단어 첼렘과 데무트를 쓸 때는 주로 사람이 어떤 나무나 돌을 가지고 신상을 만들어낼 때 쓴 단어입니다. 성경에서는 이와 반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첼렘과 데무트라는 단어 형상과 모양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죄인들은 하나님 대신에 정성스레 신상을 만들고 섬기지만 하나님께서는 정성을 들여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귀한 피조물인지 알 수 있습니다.
26절과 27절에서 사람을 지으신 것을 말하고 28절에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복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 다음에 29절과 30절에 소위 음식 명령이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사람에게 주어서 먹을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30절에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들에게는 그냥 모든 풀을 먹을 거리로 주셨습니다.
보시면 사람을 제일 마지막에 지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먹을 것을 먼저 언급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채소와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주시고 동물들에게는 그냥 모든 풀을 주셨습니다. 먹을거리도 사람을 위해 구분시켜서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먹는 일에 있어서 나중에 지음 받은 사람의 것을 먼저 언급하고 또 동물들과 먹는 것을 다르게 말씀하신 것을 보아서 우리는 사람의 존재가 다른 피조물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31절에 사람까지 창조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들에 대한 평가를 한 번 더 하십니다.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라고 묘사합니다. 여섯 번째 날에만 평가가 두 번이 나옵니다. 25절에 육지짐승까지 지었을 때는 그냥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말씀하고 31절에는 심히 좋았더라라고 묘사합니다. 25절과 31절은 같은 날이고 달라진 것은 사람이 생긴 것 말곤 없는데 천지만물 위에 사람이 있다는 것자체로 여태껏 하지 않으셨던 최고의 찬사를 하셨습니다. 광활한 우주에 행성들이 생겼을 때도, 극지방의 하늘에 아름다운 오로라가 펼쳐졌을 때에도, 얼룩말들이 떼를 지어 초원을 이동하는 장관이 펼쳐졌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심히 좋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만물 위에 섰을 때에야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인구절벽 시대라고 해도 우리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사람이 얼마나 귀한 줄 모르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 사는 세상을 떠나 좋은 경치도 보고 여행도 다니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천하의 절경보다 사람을 더 좋아하셨습니다.
(적용) 우리는 사람이 별로 귀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갑니다. 사람이 등급화 되고 수치화 되고 도구화 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등수가 매겨지고 등급이 매겨집니다. 좋은 점수를 받아야 자신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이건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면 존귀한 존재고 그렇지 않으면 필요없는 존재로 여기게 됩니다.
사람은 사람자체로 중요하고 존귀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 따라 지으시고 극찬을 하신 존재가 사람입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고 등급을 매깁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특히 교회에서 이런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세상은 그렇게 하더라도 교회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소중하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며 말하며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 학생들, 청년들이 얼마나 귀합니까? 인물들도 다 좋고 성격도 좋고 공부들도 잘하고 봉사도 잘하고 우리 교회 청년들만한 청년들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점 때문에 학생들과 청년들을 아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극찬하신 존재기 때문입니다. 유치부부터 어르신들까지, 새가족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먼저 그를 존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혹시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보잘 것 없이 느껴집니까? 하나님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사람을 등급 매겨서 거기에 따라 선호하는 세상의 방식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람을 사랑하게 되길 바랍니다. 사람이 최고의 피조물이라는 고백 안에서 이런 일이 가능합니다.
2- 최고의 피조물인 사람이 다스리고 교제하게 하셨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최고의 피조물인 사람이 다스리고 교제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아까 형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고대근동에서 하나님의 형상, 신의 형상이 있다는 것은 신의 대리자나 왕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26절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사람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스리는 것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사람이 다스리는 것은 사람이 독자적으로 판단해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어떤 소통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군대에서 중대장은 중대를 지휘하기 위해 바로 아래 지휘관인 소대장과 소통을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인 다스림을 위해서는 하나님과 소통하고 교제해야 합니다. 이 방법은 사람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먼저 받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먼저 다스려주셔야 사람이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다스림은 자율성이 없이 위에서 내려온 것을 기계적으로 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2장 19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동물들과 새들을 아담 앞으로 이끌어가십니다. 그리고 아담이 동물들과 새들의 이름을 짓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이 동물의 이름은 이렇게 지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이름 짓는 일을 아담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어떻게 짓는지 궁금해하시고 지켜보셨습니다. 이름을 짓는 것은 대상을 구분하는 역할 뿐 아니라 대상을 소유하는 역할도 합니다.
요셉이 애굽 왕실에 들어갈 때 왕이 요셉을 어떻게 했습니까? 요셉에게 사브낫바네아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이제 요셉이 바로의 통치를 받는 바로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가 포로로 잡혀갔을 때 바벨론 왕실에서 그들에게 이름을 새로 지어줬습니다. 벨드사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입니다. 이제 바벨론 왕실의 사람, 느부갓네살의 통치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소유권, 통치권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을 수 있도록 동물들이 아담 앞으로 오게 하셨고 아담은 하나님께 위임 받은 통치권을 능동적으로 활용해서 동물들에게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에덴동산에서부터 이뤄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졌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 통치권은 아담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존재일 때 정당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2장 15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경작하다라는 동사 아바드는 섬기다 예배하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했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교제했기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에덴동산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며 찬양하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아담은 에덴동산을 정당하게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증명) 사무엘하 23장에 보면 다윗이 다스리는 자의 이상적인 모습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3장 2절부터 5절까지를 살펴보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세우시고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구원을 이루고 소원을 이룬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리하여 통치하는 피조물로 부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다스릴 때 그 다스림이 정당한 것이라고 다윗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적용)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으로 말미암아 가장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의 역할도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지 않을 때는 내가 가진 것들을 내 마음대로 사용했지만 이제는 우리가 있는 가정과 학교, 직장, 인간관계, 재무관계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통치 원리에 맞게, 말씀의 원리와 부합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아담이 동물 이름 짓는 것을 지켜보듯이 하나님께서 우리가 잘 다스리는지 지켜보십니다. 우리 앞으로 다스릴 것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다스리기 이전에 하나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아버지인 성부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라 부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 충만하게 거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삼위 하나님의 사역 안에서 하나님과 끊임없이 교제하며 통치자로서 준비됩니다. 예배를 통해 기도를 통해 나에게 무엇이 있는지 무엇을 다스려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가정을 다스릴 때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부부 상호간에 태도는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에 대해 잘 가르치고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직장에 있을 때 악한 상사일지라도 주께 하듯 하고 믿는 상전일지라도 오히려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깍듯하게 대해야 합니다. 젊은이가 좀 더 아는 것이 많다고 해도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게 겸손해야 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젊은이들에게 공감하고 존중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어르신들을 보면 제가 얼마나 존경하는 마음이 드는지 모릅니다. 장로님, 권사님들께서 젊은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하고 인사해야 하는지 고민하시는 걸 봤는데 저도 저런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우리가 가진 재능과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해서 우리가 가진 것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원동력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잘 다스리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뿌리면 거름이고 품으면 똥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우리의 다스림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최고의 피조물로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주어진 것을 잘 다스리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3- 다스리는 것에 필요한 복을 주셨다.(먹을거리)
(설명)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다스리는 것에 필요한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28절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늘과 땅에 있는 것을 다스리고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십니다. 이것을 소위 문화명령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문화명령을 실천할 수 있도록 복을 주십니다. 지난 주에 살펴본 것처럼 신하에게 복을 주는 것은 왕의 일입니다. 절대적인 통치자인 하나님께서 인간통치자를 다스리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복은 실제적으로 29절에 음식명령으로 구체화됩니다. 하나님께서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모든 나무를 인류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을 먹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류가 다스릴 동물들이 먹을거리도 주셨습니다. 30절에 푸른 풀로 나온 것들을 동물들이 먹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인류가 먹고 다스릴 수 있도록 하는 양식도 주셨고 동물을 다스릴 때 필요한 동물들의 먹을거리도 지정해주셨습니다. 사람이 자기 먹을꺼만 먹고 동물들 먹을거리가 없으면 어떻게 동물들을 다스리겠습니까? 반대로 사람의 먹을거리를 덜어내서 동물에게 주는 일도 없었습니다. 비합리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다 마련하셨습니다. 사람과 동물이 모두 먹을거리가 있어야 분쟁이나 어려움 없이 잘 다스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배려 깊으시고 세심하신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먹을거리, 동물의 먹을거리를 다 마련하셔서 사람이 동물을 다스리는 일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구체적인 복을 통해서 대리통치자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29절에 온 지면의 씨맺는 모든 채소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온 지면이라는 단어를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한정된 복을 주신 것이 아니라 만유를 대상으로 사역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복을 주셨습니다. 온 지면에 있는 것으로 주셨습니다.
(증명) 구약의 중요한 명령이 문화명령이라면 신약의 중요한 명령은 지상명령입니다. 가장 중요한 명령이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28장에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께서 분부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이 명령 또한 다스림의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백성을 모아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하는 일입니다. 이 일에 있어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셨습니다. 무엇을 주셨습니까? 하늘과 땅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 28절에 나온 땅과 하늘과 바다에 있는 것들을 다스리라고 한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아담이 죄로 인해서 문화명령을 지키는 것을 실패했지만 이제 복음 전하는 일을 통하여서 다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 모아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는 곳 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도 신약시대에도 하늘과 땅으로 표현되는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인류가 대리통치자의 역할을 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적용) 혹시 우리가 가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이 버겁지 않으십니까? 나에게 돈이 좀 더 많더라면, 나에게 인맥이 좀 더 탄탄하다면, 내가 조금만 더 똑똑한 사람이라면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조금만 더 많더라면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그때마다 우리의 통치 사역의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가장 바라시고 우리가 이 일을 잘 해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충만하게 주실 줄로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핑계삼은 우리의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그 자체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필요한 것을 반드시 공급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에 들은 설교를 기억합시다. 제자들은 광야에 있는 사람들을 먹일 때 200데나리온의 돈이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제자들은 돈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헌신의 문제고 믿음의 문제였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이게 필요하고 저게 필요하고 우리 나름대로 필요목록을 작성합니다. 그런데 이 목록이 하나님이 작성하신 목록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복을 충만히 더해주시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필요한 것을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세우도록 하십니다. 전도사 시절에 전도할 때 전도비를 얼마나 조금 책정해주는지 일주일에 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노방전도를 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리보 젤리 백개 들은거 한통을 가지고 전도를 했습니다. 그걸 초등학생들 관심을 끌기 위해서 보드판을 만들고 퀴즈를 만들고 버린 박스로 색종이를 발라 주사위를 만들어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폐품으로 게임판을 만들고 조그만한 하리보 젤리로 전도를 했는데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복음을 들었는지 모릅니다. 거기서 등록한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주시던지 지혜를 주시던지 어떤 상황을 주시던지 어떻게든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충분한 복을 주십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채워주십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람은 최고의 피조물로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통치하는 존재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충만한 복을 더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도록 하십니다. 남은 한 주간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기억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힘차게 확장했으면 좋겠습니다. 다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제목
1- 말씀 들은 것: 우리는 통치자로 부름받은 하나님의 형상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삶의 현장을 하나님의 나라로 가꿀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충만한 복을 주십니다. 이 시간 기도할 때 하나님께 부여받은 이 하나님 나라 건설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충만한 복을 부어달라고 기도하고 내 생각과 내 관점의 복이 아닌 하나님 관점에서 필요한 복을 깨닫고 사용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2- 나라를 위한 기도: 얼마 전 대선이 끝나고 당선인이 다음달부터 취임을 하고 국정을 운영합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니 대통령과 내각을 통하여서 하나님나라의 가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분열과 혐오와 양극화가 해결되고 건강한 가정과 사회질서가 세워지도록 기도합시다. 로마서 12장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위정자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로 쓰임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기도하길 원합니다. 기도합시다.
3- 다음세대를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 다음세대가 세상 가운데에서 어떤 평가를 받든지 우리의 다음 세대는 약속의 자녀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세상 가운데에서 하나님 백성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다음세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유치부부터 청년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서가 부흥성장하고 복음전하는 부서가 될 수 있게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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