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평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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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그리스도의 평강
1. 두려움을 이기는 평-강
2. 사명을 감당케하는 평강
3. 의심을 극복하는3-+
평강
우리 인생은 평강 또는 평안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인간은 너무도 연약해서 늘 두려움, 걱정, 불안에 휩싸이기 쉽다. 특별히 우리의 양심이 우리 죄를 지적한다. 마귀도 늘 우리의 죄를 그냥 두지 않고 고소한다. 끊임없이 지적한다. 죄사함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한다. 참된 생명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언젠가 자신의 손주를 후진하다가 실수로 차로 치여 죽인 신자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죄로 너무 괴로운 시간을 보냈음. 원래 섬기던 주일학교 사역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냄. 도저히 자기 손주를 죽인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것.
우리의 양심은 어떠한가? 끊임없이 우리가 저지르는 무관심과 냉담함, 무정함, 시기, 질투, 게으름 등으로 괴롭지는 않은가? 죄문제 앞에 시름에 빠져있지는 않은가? 아무리 작은 죄라도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떨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우리 인생은 죄사함을 이루신 그리스도의 평강이 필요하다. 샘솟는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필요하다. 이 평강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부활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평강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제자들과 도마에게 총3번이나 “너의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평강을 다 누리게 되길 축원합니다.
1. 오늘 본문에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닿고 있었다. 요20 19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안식 후 첫 날 즉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일 날 저녁에 제자들이 모였다. 그런데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한분이시라는 말씀은 알았지만, 그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하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자신의 리더를 죽인 유대인들이 자신을 죽일까하여 두려워하였을 것이다. 제자들이 밤에 와서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간 것 이라는 누명을 쓰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마28 13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그런데 그렇게 제자들이 두려워하며 문을 닫고 모여 있는 곳에 예수님께서 놀랍게 찾아오신다. 요20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께서 오셨는데, 어디로 오셨는가? 그들 가운데로 오셨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가운데 서셨다. 예수님은 쓸데없이 주목 받기를 좋아하는 분이 아니다. 유대인들이 자신을 왕으로 세우려 했을 때, 그들을 흩으셨고, 홀로 기도하러 가셨다. 그런데 그는 이제 모두가 주목할 수 있도록 그들 가운데 서신다. 부활하신 몸으로 초자연적 능력으로 막힌 문을 뜷고 그들 가운데 서신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말씀한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간절히 필요한 제자들에게 가장 귀한 것을 주신다. 그들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여시고 평강을 선포하신다. 빛이 있으라 말씀하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평강이 있으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이 말씀하신면 그대로 되는 것이다. 그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이 있기때문이다. 그 놀라운 능력으로 그들의 두려움을 날려버리신다. 그러면서 연약한 제자들에게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이신다. 요20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주님께서 평강을 선포하시고, 그들이 믿을 수 있도록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자 제자들은 주를 보고 기뻐한다. 주님은 평강의 왕이시다. 평강의 왕으로 이땅에서 오셔서 약속대로 평강을 주신다. 요14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평강의 왕 예수님만의이 이러한 평강을 주실 수 있다. 우리는 때로 불안에 사로 잡힌다. 자녀들을 보면서 불안해한다. 우리의 믿음 없음에 불안하다. 우리의 능력 부족에 불안함, 재정적 상태에 불안해함. 인간관계에 불안해한다. 이렇게 불안해 하지만, 이러한 두려움은 오직 주님만이 해결하신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내 불안의 벽을 뚫고 예수님이 들어오신다. 오셔서 평안을 주신다. 강도사 고시를 준비하는데 두려움 찾아옴. 다음주까지 논문과 설교 주해를 제출해야 하는데, 잘 마칠 수 있을지 두려워짐. 포기하고 내년에 볼까 하는 생각도 듬. 내가 할 일이니 누구에게 도움 요청도 할 수 없다. 어찌해야 하는가! 그 때 부활의 주님이 생각났다. 주님의 말씀을 붙들자는 생각 들었다. 시56 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오늘 새벽에 일찍 깨서 룻기를 읽는데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언약적 사랑을 보면서 은혜를 받았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의 집안은 남편과 아들들이 다 죽고 망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왔고 그 지역의 유지 보아스의 선대를 입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한다. 기업무를자 고엘을 기억한 것이다. 룻3 9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집안이 망해도 친적 중 가장 가까운자가 값을 치르고 자신의 기억을 다시 회복시켜주는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기억한 것이다. 결국 그 하나님의 약속에 시어머니와 룻은 자신들의 삶을 맡겼고, 보아스는 갑자스럽게 자신을 찾아온 룻을 저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절차를 밟아 룻과 나오미 가정을 회복시켜준다. 그리고 그 자손에게서 다윗 왕이 나오게 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의지하며 나오는 자에게 평강을 주신다. 부활의 주님께서 친히 우리 마음 문을 여시고 마음 가운데 서서 평강을 주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을 두려워하고 계십니까? 돈? 자녀? 죄? 미래? 능력때문에 두렵습니까? 약속을 못지킬까 두렵습니까?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의 두려움을 아십니다. 두려움을 아시고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그러니 주님을 기다리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다리십시오! 주님이 평강을 주십니다.
2. 주님은 다시 평강을 재차 선포하십니다. 요20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번에게는 사명을 주시기 위해 평강을 선포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우리는 주님의 평강이 없으면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타락한 후에 이기적인 자신의 욕구만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주님의 명령은 이웃을 내모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은 주님의 평강이 주어질 때 가능합니다. 주님의 평강이 우리의 심령을 지배할 때 내 자아가 죽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볼 용기가 생깁니다. 손해볼 일이 있어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내 계산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길도 주님의 뜻이라면 도전해볼 힘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평강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다시 평강을 주시면서 그 보증으로 성령님을 주십니다.
요20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주님은 우리의 평강을 선포하시고 그냥 보내지 않으십니다. 성령님을 주십니다. 마치 창조때에 인간을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창2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역자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다. 우리가 전해야 할 주님의 말씀은 결코 스스로 깨달 을 수 없는 진리이다. 오직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셔야 알게 된다. 요20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주님의 백성들에게 죄사함을 받도록 선포해야 하는데, 이것은 오직 성령님께서 해주셔야 받게 되는 진리다. 사역자들은 성령에 힘입어 전할 뿐이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야 복음을 전할 힘을 얻게 된다. 성령께서 복음에 합당한 자들에게 깨닫는 은혜를 주실 것이니 우리는 전할 힘을 얻는다. 마10 12-13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우리가 전한 복음이 그 영혼에게 합당하면 우리가 전한 복음은 그 영혼에게 평안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영혼에게 합당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성령님을 의지하며 부활하신 주님의 평강을 전할 뿐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복음전파를 통해 부활의 주님을 믿게 하시며 평강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3. 끝으로 불신을 극복하는 평강입니다. 도마는 안식 후 첫날 제자들과 함께 있지 못했다. 마땅히 함께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뿐아니라 도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제자들의 말을 믿지 못합니다. 요20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이런자를 주님은 내치지 않으신다. 그런 도마에게 찾아오셔서 다시 평강을 선포하십니다. 요20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보았는데, 자신은 아직 그를 보지 못했고, 불신앙으로 부활의 주님을 믿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그 영혼이 우울했겠습니까? 다 부활의 주님을 보았는데 자신만 못보았으니 말입니다. 의기소침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그 자리에 없었으니 누구를 책망할 수도 없습니다. 도마의 이런 마음을 가장 잘 아시는 주님께서 또다시 찾아오십니다.
겸손의 왕 주님은 친히 자신을 다시 낮추셔서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신다. 만지기를 허락하신다. 부활의 주님을 불신하는 자가 아니라, 믿는자라가 되라고 하신다.
도마는 못자국에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않겠다고 했으나, 그는 결국 예수님의 등장에 그리고 그 말씀에 만져보지도 않고 믿게 된다. 요20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는 말씀에 도마는 즉시 대답합니다. 요20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도마의 말을 그대로 토시 하나 빼지 않고 반복하시는 주님의 겸손을 본 것입니다. 분명 도마가 말할 때 함께 계셨다는 기록이 없는데 어떻게 아셨을까? 주님은 우리의 모든 말을 듣고 계신다. (예화)부목사님과 운동하자고 함. 담임목사님께서 운동시켜주심. 할렐루야! 이렇게 세밀하게 우리를 인도하심.
주님의 못자국을 만지고 믿겠다던 의심 많던 도마는 이제 예수님을 나 여호와, 내 하나님이라 고백합니다. 주님은 유대인에게 여호와 하나님 입니다. 인간에게 결코 붙일 수 없는 칭호로 예수님을 부르며 신앙을 고백합니다. 주님 주시는 참된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면 믿겠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 알게된다. 예수님이 평강의 왕이이요, 내 하나님이란 사실을 말이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이 평강을 주시기 위해 주님은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고,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두려움에 떠는 우리들을 찾아 오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입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세상에서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두려움이 찾아오면 평강의 주님을 기억하세요! 평강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세요! 부활의 주님께서 평강을 주십니다!
평강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사명의 자리로 보내십니다. 그런데 그냥 보내시지 않고 성령과 함께 보내십니다! 주님 주시는 평강이 없이는 사명을 감당할 수 없으니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예수님과 동일한 본질이신 성령님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도록 도우시니 우리는 평강을 누릴 수 잇습니다.
의심하는 도마에게 주님은 평강을 주십니다. 있어야 할 은혜의 자리를 놓친 적이 있지만, 다시 그 자리에 모였을 때 주님은 그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의 의심을 받아주십니다. 친히 그의 요구를 다 들어주십니다. 그 요구를 다 들어주셔서라도 그의 믿음을 세워주시길 원하십니다. 의심하며 불신하며 사는 인생이 아니라 믿고 주님 주시는 평강을 누리는 인생을 살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 그리스도의 평강입니다. 날마다, 두려울 때마다, 사명을 감당하기 버거울 때 마다, 의심이 들때마다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아멘!
설교후 찬송 : 당신은 영광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