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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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8 views1. 물고기 뱃속 2. 회개하는 요나 3. 사실 회개하는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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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뿐인 마음
그 때 뿐인 마음
어제부터 우리는 요나서에 대해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은 요나서 2장입니다. 요나서 2장의 내용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완전 다른 반대편으로 도망가던 요나. 그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났고 제비를 뽑는 등 여러 사건들 진행 후 바다로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죠.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무엇을 했을까요?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처럼 그는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해달라고 하며 하나님이 시키는 것을 하겠다는 기도를 드립니다. 요나서 2장은 10절이라는 짧은 절로 이루어져 있지만,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생존하며 겪은 3일의 기록이 적혀 있습니다.
저는 종종 아내와 함께 캠핑을 갑니다. 하루의 캠핑이지만, 그 곳에서 지내기 위해 여러 도구들이 필요하더라구요. 한번은 겨울에 캠핑을 갔는데, 온열기구를 집에 두고와서 아내와 벌벌 떨며 잠을 잤던 적도 있었습니다. 꼭 캠핑이 아니어도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숙박을 하려면 필요한 도구들이 여러가지 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된 요나는 지금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폭풍우 속에서 사람들이 모든 짐을 배밖으로 던저 벼렸고, 뒤이어 사람들이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졌기 때문에 요나는 사실 맨몸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로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저와 아내는 사실 아무 것도 없는 노지에서 캠핑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은 곳에서 마주하는 낯선 경험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그런 낯선 경험을 즐기는 저도 요나처럼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지내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보내고 싶으신 분들은 없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어딘가에서 머물려면 준비할 것도 신경 쓸일도 많은데, 요나는 아무 것도 없이 바다에 던져졌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머물게 된 것이죠.
폭풍우가 치는 바다. 정신없이 비가 쏟아지고 파도가 출렁이는 그 순간 요나는 사람들의 손에 들려 바다에 던져졌어요. 무서웠을 것이고, 정신 없었을거에요. 그런데 갑자기 거대한 무언가가 자신을 덮쳤고 세상이 깜깜해졌어요.
혹시 물에 빠져보신 적 있으신가요? 제가 필리핀에 있었을 때 선교사님 가정과 함께 물놀이를 하러 워터파크에 갔던 적이 있어요. 저는 수영을 잘하진 않지만 생존할만큼 조금 수영을 할 줄 아는데요.
그 때 수영을 하고 있는데 인공파도가 저를 덮쳤어요. 파도가 저를 덮치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고 수영도 할 수 없더라구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지나가던 필리핀 사람이 제 손을 잡아서 당겨줘서 나올 수 있었어요.
물에 빠지기만 해도 정신 없는데, 지금 요나는 거친 폭풍우와 바람이 치는 바다를 마주했고 또 거대한 무엇인가가 자신을 덮치는 경험을 했어요. 저는 아마 기절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4년 전 저는 성대 수술을 했습니다. 그 때 전신마취를 했는데요. 여기 목 안에 있는 성대에 물혹이 생겨서 그것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는데, 성대가 중요한 부위여서, 수술하는 동안 움직이지 못하도록 전신마취를 한 것이죠. 전신마취.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마취가스를 3-4번 정도 크게 들이마시면 된다고 하셨거든요. 한번. 두 번. 세 번 들이마시는데 갑자기 공포가 몰려왔어요. 이전에 수면 마취를 했었는데 그 때는 편하게 잠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전신마취를 하는데 이상한 두려움과 공포가 몰려왔어요. 주위에서 어떤 까만 기운들이 몰려 들어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기분 나쁘고 소름 돋는 기분이 저 발끝에서부터 순식간에 뇌로 몰려 올라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4번째 가스를 들여 마실 때 공포를 느낌과 동시에 기억이 없어졌요.
간호사가 깨워서 일어났는데 수술한 부위도 아팠지만, 다시 눈을 떴다는 것에 저도 모르게 감사하다는 기도를 하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다시는 전신마취와 같은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마취가 완전히 깰 때까지 회복실에 있었는데, 그 때 요나서 2장을 묵상하게 되었어요.
요나가 바다에 던져졌을 때,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을 때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요?
갑자기 자신을 덮쳐오는 어두움. 두려움. 공포. 이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무서움. 갑작스러운 의식의 부재.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상황. 엄청난 파도와 퍼붓는 비. 그리고 물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들이닥친 알 수 없는 공포. 그 극한의 공포 속에 요나는 기억을 잃지 않았을까 하는 묵상이 되더라구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어딘지 모르는 곳에 자신이 있었어요.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당황 속에 의식을 잃었는데, 깨보니 이상한 곳. 물고기 뱃속이면, 분명히 많은 주름과 내장들이 있었을거에요.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그런 뱃속에 있었던 것이죠. 일반인이라면 그것을 보고 또 기절했을지도 몰라요. 그 곳이 어디인지 요나가 생각할 겨를이 있었을까요.
요나가 삼일동안 물고기 뱃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놀라서 소리 지르고 다시 기절하고 무서워 했을 거에요.
그리고 물고기가 요나를 먹고 한 곳에 삼일 동안 머무르지 않았죠. 삼일 뒤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하는데 그 곳이 요나가 가야했던 니느웨와 가까운 곳이었거든요. 그러니까 물고기는 요나를 뱃속에 넣고 삼일을 부지런히 니느웨를 향해 갔어요. 얼마나 꿀렁거리고 흔들렸을까요. 그리고 빛도 없었을거에요. 온통 어두움이겠죠. 손으로 만져지는 것은 물컹한 내장들이었을 것이고.
요나가 붙잡을 분
요나가 붙잡을 분
그 상황 속에서 요나가 기억하고 붙잡을 수 있는 존재는 딱 한 분뿐이었어요. 바로 하나님. 극한의 공포와 어려움 속에서 그는 하나님을 기억했고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아마 그가 살면서 했던 그 어떤 기도보다 더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의 기도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생각하고 회개해요.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요.
우리 9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아멘”
자신의 서원을 갚겠다고 해요. 서원은 인간이 하나님과 한 약속이에요. 무조건 지켜야하는 약속. 요나는 선지자로써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제 깨달았으니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에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신 명령. 니느웨로 가서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리고 “구원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자신이 살아나는 것도,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용서 받는 것.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에요.
요나는 니느웨가 정말 가기 싫었어요.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니느웨가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구원하셔야지 다른 나라 사람들을 구원하면 안 된다 생각했어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 절대 용납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나는 이제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라고 말하며,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하고 있어요.
요나의 이런 모습은, 선지자로써 해야 하는 일을 해야겠다! 라는 결단을 내린 것처럼 보여요
깨달아야 하는 것
깨달아야 하는 것
우리는 요나의 기도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어요. 요나의 기도는 그의 진심이 아니었다는 거에요. 정말 깨닫고 돌이키지 않았다는 거에요.요나는 3일이라는 시간 동안 처절하게 고민했고, 받아드리는 시간을 반복하다 적절한 타협을 해요.
요나서 2장에 기록된 요나의 기도를 보면 “나, 내”라는 주어가 총 19번이나 등장하는데요. 그의 기도를 보면 “나, 내" 이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반복돼요.
삼일이라는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생각과 인식, 시선에 대한 변화가 생기기는 했으나 여전히 요나는 자기 중심적인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죠.
2장 8절.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이것은 요나가 니느웨 혹은 다른 사람들을 지칭하며 그들을 비난하고 있는 구절이에요. 마치 자신만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거에요. 그런데 사실 그가 비난하는 사람들처럼 요나 자신도 하나님의 은혜를 버렸어요.
2장 9절.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습니다.”
하나님! 저 니느웨는, 저 사람은, 저 성도는! 저렇게 행동하고, 말에 실수가 많아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살아가요.
근데 나는 달라요! 나는 다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앉아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고,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있어요. 나는 저들과는 달라요! 하나님과 한 약속 지킬게요!
왜냐하면, 생각해보니까 니느웨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 것, 저 성도가 구원을 얻는 것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니까요!
나는 이미 구원 받았고, 저들이 어떻게 되던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까요.
요나는 지금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 것이에요. 니느웨 사람들을 위한 기도 같으나, 실상은 자기 자신은 니느웨와 다르다는 것을 여전히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결국 내가 잘난 거에요. 어찌 되었든 요나는 다시 기회를 얻었고, 니느웨가서 단 하루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말죠. 하나님은 요나의 마음을 알고 계셨어요. 여전히 바뀌지 않은 요나의 모습을 아셨어요. 그의 마음과 시선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그대로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셨어요.
나를 발견하다
나를 발견하다
저는 요나의 이런 모습에서, ‘저’를 발견했어요. 요나는 삼일동안 물고기 뱃속에서 고민했고 깨달은 것처럼 보여요. 그리고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돌이킨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그의 번지르르한 기도와 그의 행동에는 괴리감이 있어요. 3-4장에 나타나는 그의 모습을 보면 기도를 잊은 것처럼 보여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기도에도, 하나님을 인정하는 듯 보이지만, ‘나, 내’라 표현하며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의 행동 역시 그가 깨닫고 기도한 것과 너무 다르구요.
어쩌면 저도 여러분도 모두 이러한 괴리감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고 말씀도 열심히 보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삶은 여전히 그대로에요. 성경에서 말하는, 내가 말씀을 통해 깨달은 그 삶과 여전히 동떨어져 있어요. 힘들면 투정하고 짜증내요.
내 힘으로 해결하다 안 되면, 그제서야 하나님께 달려와요. 열심히 기도하고, 그것이 해결되면 그대로 끝일 때가 종종 있어요.
만약 이 말씀을 묵상하며 나의 모습이 요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느껴진다면, 우리는 정말 뼈를 깎는 고통과 아픔이 있더라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나의 삶을 돌아보고, 괴리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삶에서 고민의 흔적이, 말씀의 흔적이 나타나야만 합니다.
그 괴리감이 지속되는 이유인 죄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요나처럼 그 어려움의 자리를 벗어나고 나면 하나님과 살짝 거리를 두게 될지도 모릅니다.
요나는 4장이 끝날 때까지 자기 중심적 사고, 자기 중심적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그의 흔적에 대해 우리는 알기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어떤 삶을 살기를 바라고 계신가요. 내가 지나간 길에 어떤 흔적이 남기를 원하시나요.
저는 감히 바라기를, 모든 제2가족이 “나 중심적 사고,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 중심적 생활”을 한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살아가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그들처럼 말씀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우리가 아니라, 겉모습만 멋진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라, 정말 말씀대로 살아가는, 깨달은데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제2가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