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을 기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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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교회의 문제
오늘날의 교회의 문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우리가 경험하는 교회는 어떤 모습입니까? 건강하고 온전하다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 반대라 할 수 있을까요? 톰 레이너라는 한 학자는 “우리가 건강검진을 받을 때 혈압이나 체온을 재며 위험한 징후는 없는지 알기 원한다"며 교회 또한 "증상을 통해 진짜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가 연구를 통해 제시한 병든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증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예배 참석자 수 감소 2. 예배의 기쁨과 생동감의 결핍 3. 전도의 열매가 없음 4. 지역 사회에 낮은 영향력 5. 실제 사역보다 더 많은 모임 6. 기대감의 상실
우리 청년부와 나아가 이 시대의 한국 교회를 생각해보았을 때 꽤 많은 것이 해당된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몇 가지 통계를 통해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합시다. 그래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 해를 거듭할 수록 예배를 참석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더욱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해를 거듭할 수록 교회는 한국 사회에서 더더욱 호감가지 않는 집단으로 여겨지고 있고, 지역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교인의 수가 늘고 있다는 교회들마다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전도의 열매를 맺기보다는 성도들이 기존의 교회에서 출석하는 교회를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배는 생동감을 잃고 미지근해지거나 죽어있는 경우가 많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는 이제 기대감을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심각한 일입니다. 우리는 방금 6가지 증상에 모두 그렇다고 체크를 한거거든요. 사실 이런 증상이 나타난 것은 꽤 오래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간 다시 건강하고 온전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고자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결과가 무엇인가요? 교회마다 이 문제를 해결해보기 위해 재정을 쏟아부어 보기도 하였고, 이런저런 많은 프로그램들을 실행해보기도 하였습니다만 그 어떤 노력도 병들어가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바꾸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이 문제에 대처할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할 것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이 문제에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이 정직한 고백일 것입니다.
역사적 패턴
역사적 패턴
지난 2천여 년의 기독교의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 교회는 성장과 쇠퇴를 반복해왔습니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패턴이 나타나는데요, 교회가 일정 기간 쇠퇴를 거듭하다 어느 정점을 찍고 급격한 반등을 이뤄내는 패턴이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각기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지역에서 이런 급격한 반등의 패턴은 어김없이 나타났지요. 어떻게 해서 갑자기 이런 폭발적인 반등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이런저런 배경을 살펴보지만 모든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놀라운 일들을 통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부흥이라고 부릅니다. 어떠한 인간적인 요인들로서도 설명되지 않는 일, 말그대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일, 성령의 역사하심이 강력하게 나타나 교회가 생명력을 되찾고 세상을 향해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일 말입니다. 교회의 위기의 순간마다 이러한 부흥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지금 생명력을 잃고 위기의 때를 보내고 있는 우리의 교회에도 부흥이 필요합니다. 이 긴급한 필요에 우리의 마음과 기도가 모여야 합니다.
19세기기의 유명한 설교자 앨버트 반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의 거대한 공동체가 부흥이 실재하며 소원할 만한 것임을 확신하게 되는 그날, 교회의 역사에는 새 시대가 열릴 것이며 오순절 날과 같은 능력이 나타날 것이다.” 이 시대의 교회들이 마주한 가장 큰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부흥이 실재하며 소원할 만한 것임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모두가 패배감에 젖은 채로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기대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거대한 압력 아래에서 방향을 잃고 그저 바쁘게 살아가며 부흥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여유를 갖지도 못하구요, 부흥을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한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이 문제에 대처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역사로서만 교회가 다시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부흥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부흥을 기대하게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부흥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게 될 수 있을까요?
길갈에 세운 돌
길갈에 세운 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열두 돌을 길갈에 세웠습니다. 이 열두 돌은 어디에서 가져온 것입니까? 수 4:5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로 들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라”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이야기를 조금만 되풀이 해봅시다.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그 땅의 일곱 족속을 쫓아내고 가나안 지역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이제 그들의 눈 앞에 있는 요단강을 건너면 가나안 지역에 입성하게 되는데요, 당시 그들이 요단강을 건너려 할 때가 마침 곡식을 거둘 시기 즉, 물이 가장 불어나 있을 시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모세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지금 여호수와와도 함께 하고 계신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달을 수 있게 놀라운 일을 나타내실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먼저 요단강으로 나아가 요단 강물을 밟자 요단 강물이 둑이 생긴 것처럼 멈추어 섰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길이 멈추어 드러난 땅을 밟아 요단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다 건너자 여호수아에게 각 지파별로 한 사람씩 뽑아 요단 강물이 있었던 곳으로 가서 돌 열 두 개를 가지고 나와서 길갈에 세우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열 두 돌은 강물이 멈추어 섰던 그곳,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던 그곳에서 가져온 돌입니다. 이 돌들은 마치 홍해를 건널 때 일어났던 것처럼 기이하고 신비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음을 가리키는 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이런 돌들을 세워야만 했을까요? 얼핏 생각해보면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은 너무나 신비한 일을 경험하여서 그들의 평생에 잊혀지지 않을 만큼 생생한 기억으로 남았을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체험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모일 때마다 이 일에 대해 끝없이 말해주었을 것임이 불보듯 뻔합니다. 이렇게 전수되는 이야기를 통해서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먼 옛날 선조들이 요단을 건널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셨다고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굳이 강으로 다시 돌아가 큰 돌을 어깨에 메고 나와서 그들이 진을 칠 곳까지 가져가 세우는 아주 수고스러운 일을 하게 하십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은 인간이 쉽게 잊어버리는 존재라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놀랍고 신비한 사건이라고 해도 몇 세대가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의 후손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될 수도 있음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돌을 가져와 유숙할 곳에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돌을 본 자손들이 “이 돌들이 무엇입니까?” “이 돌들이 무슨 뜻입니까?” 물을 때에 그들에게 하나님이 나타내신 일들을 전하도록, 그래서 계속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이런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뿐만이 아니라 우리 또한 쉽게 잊어버리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놀랍고 기이한 일이라도 쉽게 잊어버리고 맙니다. 우리 중에 과거에 일어났던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그 일들을 기억하며 다시 한 번 이 땅에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주시라 기도하는 이가 몇이나 있습니까? 참으로 감사한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길갈에 세운 열두 돌과 같은 것을 남겨두셨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생생하게 체험한 각 시대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기록은 무엇입니까?” “이 기록들이 무슨 뜻입니까?” 물으며 들여다볼 때 우리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증언해줄 기록들이 곳곳에 존재합니다. 오늘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이러한 부흥의 시대에 쓰여진 기록들을 살펴보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함께 기억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 땅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길 기대하며 간절히 기도해보고자 합니다.
1907년 평양 대부흥
1907년 평양 대부흥
부흥의 본질
부흥의 본질
우리가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 있는 부흥의 본질은 함께 모인 다수의 사람들, 교회 전체, 혹은 다수의 교회와 지역, 나라 전체에 성령이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각 사람들 가운데 임하십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이전과 다르게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게 되구요, 성령님께서 그들을 통치하시고 능력을 나타내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부흥의 본질입니다.
부흥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영적인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며 전과는 달리 그것을 명확하게 보기 시작합니다. 이전에 수백 번 반복해서 들었던 그 일이 이제는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먼저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입니다. 이사야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하며 탄식하였던 것과 같이 반응하게 됩니다. 부흥의 때에는 항상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 앞에 두려움을 느끼며,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에 대해 깊고 무섭게 여기기 시작합니다. 극심한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악하고 더러우며 가치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동안 바리새인처럼 기도했던 이들이 세리처럼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하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바울처럼 자신이 이전에 알고 행사던 것들이 다 배설물과 같은 것들이었다고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당황하고 절망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을 간절히 의지하게 됩니다.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우리를 책망하시며 깨우치시는 성령의 역사 가운데 사람들은 깊은 회개를 통과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분명하게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하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고 감격과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내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제는 진실로 나를 살리는 복음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자신을 사로잡는 유일한 관심사가 됩니다. 모든 이들이 만나는 곳곳마다 간증이 넘쳐납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자신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을 간증하다가 이내 그 모임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영광을 찬양하는 모임으로 바뀝니다. 누구도 이 모임이 끝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예배 시간이 끝나기만 기다렸던 이들이 이제는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듯이 이들의 모임은 계속됩니다.
또한 이들은 이제 교회 밖의 다른 이들에게 거룩한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웃들에게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를 전하며, 이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내 가족, 내 친구, 내 이웃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를 바라며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거룩한 부담감이 그들을 더욱 깊고 간절한 기도로 이끌어갑니다. 그리고 이들의 기도를 통해서 또 이들의 증언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되풀이되며 퍼져나갑니다.
이것이 부흥의 때에 나타나는 일들의 대략적인 모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