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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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 간다는 것은 경사 못지 않게 애사가 늘어난다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냥 육신의 생명은 날이 갈수록 후패한 것이 자연스러우니까. 그런데, 정말 가깝고 잘 아는 사람이 돌아가셨거나, 또 편찮으시면 마음이 통해서 방문하고 살펴보게 되지만, 우리는 이것까지 일이 된다.
젊은 청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어요. 20대 후반인가 30대 초반인가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장례 예배를 드릴 때, 들어간지 얼마 안된 회사의 동료들이 찾아왔는데, 부모님께 가보겠다고 했다. 지금 15-2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생생하게 느끼는 것은 그 때 너무 사무적이더라, 들어간지 얼마 안되었으니까. 그러나 고백하기로 목사인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월요일인데, 전혀 모르는 분의 뵌적 없는 아버지. 순간 “아~이 참” 이런 마음이 생기는 거다. 뭔가 계획이 있었겠지. 쉬던지 놀러가던지 그러나 순간 스스로 놀랐던 것은 이런 일도 사무적이 될 수 있구나!
물론 사무적이라도,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도 찾아보는 것이 낫겠지만, 본문의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다.
내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하나님이 되었다는 것은 겉모습으로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상황이 되었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마음에 천국이 임하고, 예수님의 마음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1. 공감할 수 있는가

마리아가 운다. 마르다는 안 울었다.
이 삼남매를 예수님께서 가까이하고 사랑하셨던 이유는?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아마 일찍 여의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외로움과 아픔들을 이 남매들이 잘 이겨냈을 것이다. 아마 당시 배경으로는 굉장히 어린 사람들이었을 수도, 아직 시집 장가 가지 않았으니까 20대나 10대 후반이었을 수도.
그런데, 오빠가 죽은 것이다. 어찌 눈물이 안났겠는가?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으셨겠는가?
예수님은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아끼시는 부분이다.
기억할 것을 우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서로 도움을 얻기 위해서 심한 경우는 빼먹기 위해서 능력이 있고, 뭔가 풍성하면 가까이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시는 이유는 그래서가 아니다. 내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시기 때문이고, 그것이 불쌍해서이다.

2. 예수님의 역사는 가볍게 이루어 지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깊이 사랑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개인도 교회도 도움을 주면서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모욕감을 주는 경우가 참 많다.
“뭐 갖고 싶은 것 없니?” - “패딩이요”
돈까스.
전후 문맥을 잘 읽어야 하는데, 죽기를 기다린 것은 아니고···
요한복음 11:5–7 nkrv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요한복음 11:39 nkrv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성경에 정확히 나와있지는 않지만, 죽어가서 사람이 왔을 때 이미 나사로가 죽은 것을 아신 것이다. 살아있는데 죽기를 기다리신 것은 아니고, 그렇게 사람 목숨을 가볍게 여기신 것은 아니고···.

3. 누구보다 “공감”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볼 때, 묵상할 수록 신기한 것.
아픈 사람을 낫게 하셨지, 멀쩡한 사람을 아프게하지 않으셨다.
아픈 사람, 불편한 사람, 부족한 사람에게 죄를 가지고 나무라지 않으셨다. 도리어 공격하는 이들을 공격하셨다.
예수께서 지금 이적이 일어날지 아닐지 의심하고 계신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 때 함께 우셨다(35절) 어찌보면 책망하실 상황이다. 살아난다는데 자꾸 우니까.
나에게도 그러하시다. 나조차도 부끄러울 때 많지 않은가? 실수와 잘못 때문에. 믿음 없음 때문에 그렇지만 정말 그렇더라도 주님은 바로 그 부분에 공감하시고, 회복시켜 주신다. - 심리학적인 위로를 주신다는 말이 아님. 진정한 위로를 받아보면 그렇게 못하지. 사실 내가 잘못한게 아니야, 누가, 누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리고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남의 잘못 빠르게 찾는 그것도 부족한 사람, 아파하는 사람에 대해서 정죄하고 잘못찾는 이들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로마서 12:15 nkrv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4.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그때에 마음이 하나되어 공감하고, 서로의 마음이 통하고 주님과 마음이 통할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보는 역사가 일어난다.
예수께서 멀리서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보셨다. 그리고 공감하시고 이렇게 그 영광을 함께 보도록 역사하셨다.
아프다 낫는 역사보다, 죽었다 살아나는 부활의 역사와 영광이 더 크다.
누구보다 죽음에 대한 아픔이 큰 이 삼남매에게 주님은 큰 위로를 주셨다.
고린도전서 15:20 nkrv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요한복음 11:25–26 nkrv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가장 절망적인 그 자리에, 이미 죽어서 냄새나는 그 자리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꽁꽁 묶인 그것이 풀리는 역사가 있기를 소원한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아픔에 눈물흘리시기에 그런 역사는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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