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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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십니까?

마태복음 28:1–9 (NKRV)
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우리 한번 옆사람과 이렇게 인사해보겠습니다. 샬롬. 샬롬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주 쓰는 인삿말입니다. 직역하자면 평안하십니까? 라고 안부를 묻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인사를 많이 합니다. 전도사님이 우리나라에도 이런 샬롬과 같은 인삿말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아주 적절한 인삿말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안녕하십니까는 아닌데 샬롬과 같이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별일이 없음을 확인 하는 인사가 뭐가 있겠습니까? 식사는 하셨습니까? 라는 인삿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에 진심인 민족이라서 상대방의 안부를 물을때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녀? 밥은 먹었어? 라고 인사를 대신 하기도 합니다. 이는 말그대로 어디가서 굶고 다니지는 않는지 , 평안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 인삿말입니다.
지금 이렇게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여러분들은 평안 하십니까? 평안이 모든 것이 원만하여 마음에 걱정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지금이렇게 전도사님이 펴안하냐라고 묻는다면은 아마 대부분 그렇지 못합니다. 라고 대답할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지금 전쟁과 같은 시험기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첫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 고1 학생들 또 대학 입시에 직접적으로 영향이 가는 고3들 그밖에 모든 학생들이 모두다 시험기간에 큰 부담을 느끼고 지쳐간다라는 겁니다. 이렇게 시험과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서 우리 마음에는 평안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시험기간에만 평안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k 학생들은 시험이 아니더라도 많은 문제들 때문에 평안이 없습니다. 친구관계를 비롯해서 , 가족문제, 진로문제, 이성문제 때문에 마음 졸이고 힘들어하고 어려워 한다라는 겁니다. 이렇게 마음가운데 근심 걱정이 가득한 여러분들에게 , 평안이 없는 여러분들에게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이 말씀이 도움이 될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함께 살펴본 본문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자들에게 부활하시고 난 후 첫 인삿말을 건네시는 장면을 우리는 살펴볼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자들에게 처음으로 건넨 인사는 잘지냈어? 보고싶었어 라는 말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아까 나눴던 인삿말과 같은 평안하냐? 라는 인삿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처음 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라는 질문으로 인사를 대신 한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말로 그들에게 인사를 하신것일까요?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평안하냐 라고 말씀하셨지는 알아보기 위해 이때 여자들의 내적인 상태가 어땠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여자들이 막달라 마리아와 동명이인의 마리아 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 그들의 마음이 어땠는지 우리는 명확하게 답을 내릴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이였고,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께서 행하신 일들을 따라 행했던 자들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경험하게 되고 사랑하던 예수님을 잃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였던 제자 공동체는 뿔뿔히 흩어지게 되고 , 그동안 의지 해왔던 예수님 또한 죽음으로 그들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이 여자들의 마음이 어땠을것 같습니까? 평안하냐 라고 물으 셨던 예수님의 인삿말과는 달리 전혀 평안하지 못했을 겁니다. 슬픔이 가득하고 두려움이 가득하고 또 어떨때는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으로 분노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나의 힘으로는 뭘 어떻게 해보지도 못한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분통이 터지기도 했을것 같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가운데 놓여있고 전혀 평안하지 못했던 이 여자들에게 오늘 우리 예수님께서는 평안하냐 라고 인사를 건네고 계신겁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전혀 평안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녀들의 어려움과 슬픔과 분노와 무기력함의 모든 이유가 바로 예수님께서 그녀들 곁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조금더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그녀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실것을 몰랐고 , 예수님께서 그녀들 곁을 영원히 떠났다 라고 오해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들의 인생에는 슬픔이 찾아오고, 무기력함이 찾아오고 어려운 시련과 고난이 그녀들을 덮었을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들은 이 사실을 통해서 정말로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찾을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에게 찾아오는 인생의 슬픔과,두려움과 또 이유없이 찾아오는 나를 향한 분노 또는 세상을 향한 분노가 , 나의 연약함을 깨닳았을 때 찾아 오는 무기력함이 지금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상황 때문이 아니라, 어떤 눈에 보이는 사건들이 아니라 알고보니 우리 곁에 예수님이 없기 때문에 처해지게 된 일이라는 것을 알수가 있다라는 겁니다. 여러분, 사실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논리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지금 겪고 있는 내 마음의 문제를 그저 1차적인 사건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하는게 바로 사람이라는 겁니다. 정말로 깊게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 마음에 왜 평안이 없을까? 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내가 지금 친구관계에 문제가 있으니깐, 지금 내가 시험기간이니깐, 지금 나는 공부에 치여 살기에 바쁘니깐, 지금 내 가족이 엉망이니깐 내가 이렇게 화가 나고 , 지치고, 슬프고, 무기력하구나 라고 생각한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여러분들이 무기력 하고 지치고 슬픈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은 단지 1차적인 원인입니다. 이 1차적인 원인은 진짜 원인을 찾지 않고 해결하지 않으면 그 모습은 바꿔서 여러분들을 덮을뿐 이러한 1처적인 원인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겁니다. 내가 시험기간이니깐 힘들고 평안이 없는게 아니라는겁니다. 진짜 이유는 바로 우리가 성경에서 여자들의 모습을 지켜본것과 같이 예수님이 여러분의 옆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조금더 적나라하게 이야기 해볼까요? 여자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실것을 모르고 예수님이 죽음 가운데 영원히 안치되셨을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같지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의 일 속에서, 시험기간에서, 학교에서, 친구관계, 가족문제에 대해서 우리 예수님이 죽었다라고 여기고 있다라는겁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은 죽었다 라고 여기고 있기때문에 마치 그렇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마음 가운데에 슬픔이 자라나고, 지치고, 무기력하고, 분노가 가득 하다라는 겁니다. 진짜 이유를 이제 알겠습니까? 1차적인 사건들 때문이 아니에요. 그 가운데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게 진짜 이유입니다.
이런 여자들에게, 이런 여러분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을 건네십니다. 평안하냐고. 성경에서 쓰인 이 평안이라는 단어는 다른 곳곳에서 기쁨이라는 단어로도 함께 쓰이고 있는데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묻는겁니다. 기쁘냐고. 누구누구야 너 지금 평안해? 너 지금 기쁨이 있어? 시험기간 속에서, 또 여러 문제들이 놓인 가운데 평안해? 기뻐? 라고 묻고 있다라는 겁니다. 놀라운것은 부활하신 참된 생명이신 예수님을 다시 만난 여자들은 그 마음가운데 큰 기쁨이 생겨나게 됩니다. 우리 8절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이 여자들의 마음이 채워지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서움이라는 것은 떨리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귀신 본것과 같이 마치 못볼것을 본것 마냥 무서워 한 것이 아니라, 경외하고 경배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 여자들의 마음 가운데 무엇이 회복이 되었습니까? 이 여자들이 경배하고 예배드려야 할 대상이 정리가 된것입니다. 우선순위에 회복이 일어나게 된것입니다. 상황에 무서워하고, 환경에 무서워 하여서 그것을 경배하고 그것을 경외했던 여자들이 생명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니 그들의 영이 회복하니 보이지 않았던 영적인 일들의 우선순위가 보이기 시작한것입니다. 그녀들이 진정으로 경배하고 예배 드려야하는 대상이, 그녀들의 삶의 가장 최우선순위가 우리 에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것이라는 겁니다.
지금 시험기간으로 많은 친구들이 공부에 매여 살아가고 있을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친구들 중에서 우선순위를 잘 지키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다라는 겁니다. 전도사님은 그동안 많은 학생들을 지켜봐 왔습니다. 안타깝게도 영적인 우선순위를 지키지 못해 공부에만 매여 살아가던 친구들의 결말을 전도사님은 너무나도 많이 지켜봤다라는 겁니다. 대학은 다 잘갔습니다. 좋은 결과가 많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사님이 안타까웠던 것은 그 결과에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셨을때 에서가 승승장구 하도록 내버려 둔것과 같이, 에서가 큰 세력을 이루고 큰 민족을 이루고 큰 재산을 쌓는것을 그냥 내버려 두신것과 같이 영적인 우선순위가 올바르지 않는 친구들을 내버려 두시는 것을 많이 지켜봤습니다. 전도사님이 할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미래에 언젠가는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기를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다 라는 겁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평안하냐 기쁘냐 라고 물으시면서 여러분들이 마치 죽은것과 같이 여기던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평안의 원인이 되심을, 기쁨의 진짜 이유가 되심을 말씀해주십니다.
또 그녀들의 마음에 무엇이 생겨납니까? 큰 기쁨, 평안이 생겨납니다. 그녀들을 힘들게 하던것들이 생명되신 예수를 다시 만나니 ,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니 힘들게 하던 것들은 이내 사라지고, 아니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것들은 이내 눈에 밟히지 않고 이제는 생명되신 예수로 인해 평안과 기쁨이 다시 샘솓기 시작했다 라는 겁니다. 세상이 줄수 없는 기쁨과 평안이 그녀들의 마음에 넘쳐나기 시작했다라는 겁니다. 다시한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니깐,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기 시작하니깐 마음속에서 생겨났던 두려움과 슬픔과 분노와 무기력함이 사라지고 그곳에 평안과 기쁨이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유일한 참된 평안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전도사님이 요한복음 십사장 이십칠절의 말씀을 읽어주겟습니다.
요한복음 14:27 (NKRV)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께서만 우리 마음에 참된 평안을 주실수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어떤 찰나의 평안과도 비교할수 없는 영원한 평안과 기쁨을 우리는 예수님에게 받을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할일은 무엇입니까? 다시한번 예수를 붙잡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예수님에게 돌아가는 겁니다. 날마다 예수님을 붙잡으려 노력하고 성령충만으로 살아야 합니다. 비록 세상 풍파와 수 많은 세상 일들이 여러분들을 지키게 하고 끌어내리려 할지라도 우리가 할일은 단 한가지 입니다. 다시 예수님에게 돌아가는 것, 언제나 예수 곁에 머물것을 잊지 않는 것 입니다. 신앙의 원리는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예수 생명.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참된 평안과 생명이 예수께 있고, 예수를 떠나면 그 평안과 기쁨을 모두 잃게 되는것 너무나도 간단한 원리나느 겁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연약하기에 이 사실을 잊을때까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럴때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오늘과 같이 말씀을주시며 여러분들이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기를 원하신다는 겁니다.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요, 그래야 지치지 않습니다. 그래야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수가 있습니다.
우리 이 시간 다같이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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