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죄성을 드러내는 복음
창세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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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viewsAG1 아브람, AG2 예수님, AP CP PW 드러내심 MIW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SC 견인 A 하나님의 약속, C 사래의 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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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인사와 환영
S1. 인사와 환영
여러분 반갑습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사랑합니다’ 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지난 한 주간은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 성도로서의 새로운 힘을 얻는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교단 70주년 기념 새벽 기도회를 잘 마친 교회들은 모두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결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신 말씀들을 마음에 잘 붙들고 은혜 가운데 복된 삶을 누리는 모두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한 것은 마침 이 기간에 맞추어 코로나에 대한 방역 조치들이 대폭 완화가 된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코로나가 함께 하기 때문에 자체적인 조심을 해야 합니다만 외적인 규제가 풀림으로 식당과 주일학교 모임 등 대부분의 활동들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방역에 힘써 주시고, 예배와 교육 그리고 구역과 부속회 모임을 통해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복된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S2. 주제 제시
S2. 주제 제시
오늘 우리는 아브람이 하갈을 아내로 맞이하는 일을 함께 묵상하면서 우리의 숨겨진 죄성을 드러내시고 이를 고치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다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을 통해 의로운 자로 여겨지는 칭의의 복을 누립니다. 그러나 여전히 믿음은 연약했기에 하나님께서는 언약식을 통해 부활하실 중보자와 그를 통해 주실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람의 삶은 모든 것이 다 잘된 것인가요? 그의 삶에는 이제 아무런 문제가 없고 무엇보다 의롭다 여겨진 그에게 허물없는 삶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본문 1, 2절 말씀을 봅시다.
창세기 16장 1, 2절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여기에 보면 남편이 아내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런 방식은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이 하와의 말을 듣고 죄를 범하는 방식과 너무 비슷합니다. 우리 창세기 3장 6, 7절입니다.
창세기 3장 6, 7절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아내가 금지한 과일을 주자 아담이 아무런 저항없이 먹은 것처럼 오늘 아브람은 아내가 여종에게 들어가라는 말을 그대로 들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하와는 뱀의 유혹에 넘어졌으나 사라는 세상의 문화를 따랐습니다. 뱀의 유혹과 세상의 문화가 가지는 차별성으로 인해 이 둘이 같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단은 자신이 마치 세상의 주인 인듯 예수님께 세상의 주권을 줄 수 있다고 큰소리쳤습니다. 마태복음 4장 8, 9절입니다.
마태복음 4장 8, 9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세상의 주권의 자신에게 있다는 사탄의 주장은 뱀의 유혹이나 세상 문화의 유혹이 본질상 사탄의 미혹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것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의 행위는 아담의 죄성을 이어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범죄라는 것은 결과가 좋지 못한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 6절을 봅시다.
창세기 16장 6절
6.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아브람은 하갈을 아내로 맞아 아이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자 하갈은 자신의 여주인인 사래를 멸시합니다. 이 일로 부부는 큰 갈등을 겪습니다. 그리고 하갈은 득세한 사래를 통해 큰 박해를 받게 되자 집을 나가 버립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출발하지 않은 일들을 통해 겪는 불행한 열매들인 것입니다.
S3. 문제 제기
S3. 문제 제기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몇 가지 것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것은 아이를 갖지 못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 책임인데 그 대안을 찾은 아브람과 사래가 무슨 잘못이 있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셨다면 안 그랬을 것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이 안 주시니까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문화를 따라 사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요? 시대마다 사람들은 그 나름의 방식을 선택하여 살고 있는데, 그런 방법을 따랐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라고까지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적용이 안되는 것 같고 상황이 긴박하면 사람의 방법이라도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라는 질문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J1. 하나님의 심정, 속성, 그리고 방법
J1. 하나님의 심정, 속성, 그리고 방법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정의와 자비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셨기에 인간이 아버지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로봇이 아니라 자발적인 마음으로 순종의 삶을 선택하며 살기를 기뻐하셨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인간이 타락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이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존재로 살도록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의 길, 곧 범죄를 선택함으로써 부패한 삶을 살게 되었고,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성취하며 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정의의 하나님 앞에서 최종의 심판을 받는 자로 그 지위가 내려앉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심판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이제 인간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부패하고 게으르고 교만한 철저한 자기 욕망을 성취하고자 하는 존재로 변한 것입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중생의 주)
J2. 하나님이신 예수님(중생의 주)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타락을 아시고 그들의 부패한 삶을 회복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참믿음의 구주가 되시는 중보자를 보내셔서 인간을 중생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스스의 죄인됨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아버지는 죄없으신 아들을 준비하셨고, 여자의 후손이신 메시야를 우리의 중보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인간은 죄를 알고 회개하며 자신의 뜻을 따라 살던 삶을 돌이키게 하신 것입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회개의 모범)
J3. 사람이신 예수님(회개의 모범)
우리 예수님은 아버지께 순종하고자 온갖 고난을 받으시며 낮아지신 구주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기 자신을 부인하고 순종의 삶을 사셨을 뿐만 아니라 그 이전부터 철저히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공생애의 모든 사역은 오직 아버지의 뜻을 구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만 사역하셨습니다. 사생애에서는 인간 부모의 지도를 받으셨고, 철저히 유대인의 율법의 의무를 준수하셨습니다. 절기를 지키셨고, 예배를 드리며 사는 삶에 게으르지 않으셨습니다. 신성을 내려놓고 오직 아버지의 뜻만을 구하며 인간으로 사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철저하게 순종의 삶을 통해 중생을 얻은 성도의 회개의 삶의 모범이 되어 주셨던 것입니다.
W1. 예수님은 철저한 순종의 삶을 통해 회개한 성도의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W1. 예수님은 철저한 순종의 삶을 통해 회개한 성도의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의롭다고 불러주시는 은혜를 우리는 칭의라고 합니다. 이 칭의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으로만 얻게 하신 구원의 은혜입니다. 사람의 순종이나 헌신이 칭의를 얻는 도구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아브람을 갈대아에서 불러내시거나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셨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그돌라오멜 전쟁이 마치고 두려움이 사로잡혀 있을 때 아브람을 믿게 하시고 칭의를 주셨던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의로움은 우리의 힘으로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하나님은 이제 믿는 성도가 회개한 자의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의 순종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의 모든 순종들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회개의 삶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W2. 참된 회개의 삶은 곧 견인의 삶입니다.
W2. 참된 회개의 삶은 곧 견인의 삶입니다.
견인이 뭐라고 했습니까? 견인은 우리가 죄와 싸우고 죄를 내려놓는 영적인 전쟁을 말합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시고 그것과 싸우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죄가 없이 깨끗해 지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죄성의 잔재들이 남아 있기에 이를 드러내시고 그것을 싸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칭의를 얻은 아브람이 범죄하는 일을 통해 그의 옛 성품을 드러내십니다. 이미 칭의를 얻은 자들에게도 자신도 모르는 숨겨진 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2절 말씀을 같이 읽어 봅시다.
창세기 16장 2절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아브람은 아내의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아내의 말을 듣는 것이 남편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런데 아내가 하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대도 그렇게 행하는 것은 죄가 됩니다. 사래는 아브람에게 약속이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우리의 풍습을 따라 약속의 모조품을 고안자고 제안을 합니다. 믿음으로 칭의를 얻은 아브람이라면 이제부터는 믿음의 눈으로 깨달은 진리를 순종하며 사는 삶에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도 아브람은 도리어 세상 풍습을 따르자는 아내의 말을 나무라지 않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람의 죄성입니다. 그의 내면에는 자신의 의가 남아 있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우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은 안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틀린 것 같아서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말씀이 아니라 내 생각과 내 형편이 기준이 되어 말씀을 잘라내고 자기의 마음을 쫓아 사는 것입니다.
W3. 하나님은 아브람의 죄성을 들추어내어 그를 견인의 삶으로 이끄십니다.
W3. 하나님은 아브람의 죄성을 들추어내어 그를 견인의 삶으로 이끄십니다.
성도는 구원을 받고서도 여전히 자기의 가치관으로 말씀의 약속을 왜곡시키기도 합니다. 이는 인간의 철학이 여전히 내 속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이 말씀보다 우선이고, 내가 살아가는 삶과 사회적 관습이 말씀에 더 권위를 두는 태도입니다. 실제로 십삼년 뒤에 아브람은 사래를 통해 이삭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웃음으로 여기고 오히려 이스마엘을 복을 구합니다. 우리 17장 17, 18절을 봅시다.
창세기 17장 17, 18절
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아브람이 이스마엘을 낳고 십삼 년 후의 일입니다. 아브람은 약속을 성취하러 오신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이 만든 대안, 그 시대의 세속의 흐름을 따라 얻은 아들의 복을 구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버리고 십 삼 년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T1.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의 불신을 드러내시고 그에게 견인의 회복을 주십니다.
T1.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의 불신을 드러내시고 그에게 견인의 회복을 주십니다.
아브람은 긴 세월 자신의 철학과 사회적 삶의 소견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은 사래를 통해 아들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으나 아브람은 문화와 풍습에 따른 자신의 대안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런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가정의 불화와 하갈의 가출이라고 하는 큰 환란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는 일반적인 눈으로 보면 큰 시련이고 환난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잘못된 자녀를 깨닫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을 봅시다.
히브리서 12장 6절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사랑하는 아들은 아버지의 징계를 받고, 채찍질을 당합니다. 히브리서 12장 8절은 이렇게 교훈합니다.
히브리서 12장 8절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징계가 없는 아들은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닙니다. 아브람의 가정에 환란이 찾아오고 내적 삶에 균열이 생기고 평안이 깨어진 이유는 아브람이 자기 철학과 문화를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을 징계를 통해 그의 죄성을 드러내시고, 환란을 통해 그의 죄를 들추시고, 아브람이 견인의 삶을 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T2. 세상은 참된 아들이 아니기에 징계가 없습니다.
T2. 세상은 참된 아들이 아니기에 징계가 없습니다.
세상은 죄가 드러나는 비밀의 은혜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죄를 감추어 두려고만 하고, 드러내지 않게 하려고만 힘을 다합니다. 그 결과는 겉으로 자신을 꾸미고 외적인 화려함과 부를 통해 빼앗겨 버린 진정한 내면의 평안과 깨끗함을 얻지 못하는 불행을 가리며 사는 것입니다. 내적으로는 무수한 죄를 범하고는 이를 감추어야 하기에 세상은 외적 옷 입기를 기뻐하고, 외식하며 살기를 즐거워합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이러한 악의 유혹에 휩쓸리기 쉽습니다. 진정한 내면의 거룩은 없고 겉으로만 번드러지게 꾸며 남을 압도하려고 하는 유혹은 우리 모두가 지양해야 할 가치들입니다.
T3. 하나님은 성도의 죄성을 드러내시고 견인의 삶의 복을 주십니다.
T3. 하나님은 성도의 죄성을 드러내시고 견인의 삶의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죄를 드러내셔서 온전한 회개의 삶, 곧 견인의 을 살게 하십니다. 복음을 믿어 성도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는 자신의 가치관을 버리지 못하고, 나의 생각과 나의 주장과 고집을 결코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하고 명령하는 삶에 대해 자기 생각을 더 앞세우고 이 시대의 가치관을 가지고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세상의 가치 따르기를 원하는 아내의 말을 듣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세상의 가치와 세상의 방식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약속을 성취하는 의지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아브람의 삶의 방식에 감추어진 죄성을 들추어내시고 그를 죄성과 싸우는 참된 삶을 살게 하십니다. 고난과 고통의 삶을 통해 그의 삶의 실패를 알리고 죄성으로 인한 삶을 회개하여 돌이키게 하십니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내면의 악한 고집들과 옛 성품들이 힘을 가지곤 합니다. 성도의 삶에서 반드시 행해야 하는 순종보다 옛 삶의 가치들과 행습을 따르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정신세계와 삶의 방식을 그리스도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나를 내세우는 교만의 삶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대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죄의 삶을 내 속에서 죽여야 합니다. 내 힘으로는안되기에 성령님을 따라 살면서 죄를 죽여야 합니다. 로마서 8장 13, 14절을 봅시다.
로마서 8장 13, 14절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L6.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L6.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영으로써 몸의 악한 행실들을 죽여야 합니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아들의 신분을 확신하고 참된 견인을 이루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칭의를 얻은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내면에 있는 깊은 죄성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이 기간은 하루만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신뢰하도록 팔십 육세부터 그를 다시 찾아오신 구십구세까지 십삼년 동안 그를 훈련시키셨습니다.
창세기 16장 16절 – 17장 1절 상)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1.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죄성을 도려내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자가 되기를 기다리시는 사랑의 아버지심을 말해 줍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이 사랑을 마음에 붙들고 온전한 믿음의 자녀로써 자신의 철학을 내려놓고 오직 믿음만을 붙들고 살기까지 힘 다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참된 견인이 우리 안에서 아름다운 열매 맺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통성기도
통성기도
찬송 342장 너 시험을 당해
찬송 342장 너 시험을 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