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내 맘을 알어?

순종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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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저번 주 부활 주일.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쁨을 한 마음에 품고 활기차게 한 주를 시작하는 첫날. 예수님 부활 후 첫날 월요일 저에게 한 통의 전화가 옵니다.
“집사님, 저 민준기 목산대요 부탁하나 드려도 될까요?”
“당연하죠?”
“제가 코로나 걸렸습니다.”
‘아~~~, 이 불길한 느낌은 뭘까?
“다름아니라 이번 주 설교를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네, 그러죠”
그래서 지금 제가 여기에 있는겁니다.
그러니 놀라지 마시고, 두려워하지 마시고, 그냥 받아드리세요. 날이면 날마다 제가 나오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설교 중에 어떤 설교가 제일 힘들까요?
유아부, 유치부? / 유초등부? / 중고등부? / 청년부? / 장년부 대예배? /
제가 다 안해봐서 모르겠는데. 아마 중고등부 설교가 제일 힘들지 않겠는가?
왜냐면? 유초등부까지는 아직 어려서 그렇다치고, 청년부는 이제 좀 말이 통하니까 해볼만 하고,
문제는 이 중고등부는 애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고 어중한 상태.
어찌보면 불쌍하고, 어찌보면 답답한고. 볼 때마다 다르고.
말이 좀 통하다가도……영 못 알아먹는 것 같고…..

영적 사춘기 요나

마치 오늘 우리가 배울 요나서의 요나와 여러분과 같은 영적 사춘기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다른 예언서나 선지서들을 보면 하나님이 말씀을 많이 하세요, 심지어 환상도 보여주시고 상당히 많은 것을 선지자들에게 가르칩니다.
그런데 요나서에서 하나님은 요나에게 딱 하나만 말씀하십니다.
왜요? 사춘기이거든요?
사춘기 애들한테는 말을 많이 하면 안됩니다. 여러분 집에서 부모님이 여러분한테 말을 많이하고, 이거 시키고, 저거 시키고 하면 해요 안 해요? 안하죠? 오히려 성질내잖아요. 그렇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영적 사춘기 때를 보내고 있는 요나에게 어떤 말씀을 하나요?
간단하고 아주 명확합니다.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고 합니다.

요나의 도망

니느웨는 그 당시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앗수르는 BC 722년에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킵니니다. 북이스라엘에게는 원수와 같은 나라이지요. 요나는 북이스라엘 선지자 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가겠어요? 안가겠어요? 안가죠?
그러니 요나도 안갑니니다. 일제시대 때 일본의 수도 도코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말과 비슷하죠?
1장에 그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 1장 1절에서 3절까지 말씀을 읽어 볼까요?
퀴즈?
이것 맞추면 담주에 부장 선생님이 선물 주실겁니다. [부장집사님께 확인]
1장 3절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5, 4, 3, 2,
네. “다시스”입니다.
다시는 어디인가요? 지금으로 말하면 스페인 어느 항구 도시쯤 됩니다. 요나가 있는 북이스라엘 항구도시에서 니느웨는 동쪽, 다시스는 서쪽입니다. 완전 정반대 입니다. 그 당시 다시스는 땅 끝과도 같은 개념입니다.
즉 땅 끝까지 도망한 겁니다. 반항의 극치지요.
여러분과 비슷하죠?

하나님의 징계

하나님 가만히 두시겠어요? 가만히 안나두죠?
갑자기 바다 가운데 큰 바람과, 큰 폭풍우가 몰아침니다. 배가 깨질 것 같아 선원들은 난리도 아닙니다.
그런데 요나는 배 밑층에서 내려가 깊이 잠을 잡니다. 잠을 잔다는게 말이 됩니까?
배 타보셨어요? 폭풍이 안불어도 배는 울렁거립니다. 얼마 안가서 뱃멀미 하지요. 그당시 다시스까지는 정확하진 않지만 한달 정도는 가야할 거리입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폭풍까지 친다면 이건 완전 죽음이죠? 그러데 요나가 잠을 잔다는 것은 지금 요나의 신앙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죠? 선지자가 영적 잠을 자는데 일반 백성들은 말해 뭐하겠습니까?
선원들은 이 폭풍의 원인이 누구 때문인지 알아보기 위해 제비를 뽑는데, 누가 뽑혀요? 당연히 요나가 뽑히지요? 하나님이 요나를 잡을려고 폭풍을 일으켰느데 당연히 뽑히죠.
선원들이 요나에게 묻습니다. “니 정체가 도대처 뭐야?”
요나가 뭐라고 그랬게요? 1장 9절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그는 하나님이 누군지 압니다. 창조주 하나님. 자신의 입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경외한다는 것은 크신 하나님 앞에 두려워 떤다는 것입니다. 지금 요나의 모습과 다르죠? 그런데 어찌 이런 말을 할 수 있나요?
이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자신이 지금은 비록 하나님 얼굴을 피해 도망하지만 자신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여러분한테 당부드립니다. 청소년기에 많이 방황하십시오, 많이 고민하세요, 그러나 잊지마세요. 자신이 누군인지? 자신이 누구인지?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인지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고향합니다. 이것이 있어야 돌아옵니다.
요나는 이 폭풍 재앙이 자신으로부터 말미암은 줄 알고,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합니다. 요나는 왜 자신 스스로 바다에 뛰어 들지 않고, 선원들로 하여금 던지라고 했을까? 이긴 저도 정확히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선원들이 요나를 들어 바로 바다에 던졌나요? 아니죠?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을 함부로 바다에 던집니까? 성경에 보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노력합니다. 요나를 죽이지 않고 어떻게 해 볼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자신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고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집니다.
요나가 죽었을까요 살았을까요? 유치부 아이들 한테 물어보면 난리가 납니다. 여기서 죽었어요, 또 저기서는 안 죽었어요. 자기들끼리 난리가 납니다. 이제 여러분 한테 묻습니다. 요나가 죽었을까요 살았을까요? 답 : 죽었다가 살아났다.
예수님도 요나의 이 사건을 말씀하십니다. 신약성경 마12장 40절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나의 표적이 무엇입니까?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살아난 사건 아닙니까?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어 3일만에 살아나실것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의 표적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표적입니다.
이것가지고 이야기하면 오늘이 다 가도 모자랍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암튼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3일동안 있습니다.
요나의 회개 기도
그 속에서 뭘 했을까요? 그 이야기가 2장에 나옵니다. 2장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니다. 여러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어봤어요? 저는 있어봤습니다. 궁금하면 나중에 따로 찾아오세요.
자 암튼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의 기도를 합니다. 다시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하면서, 구원이 여호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것을 즉, 죽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을 시인합니다.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
그리고 요나는 물고기가 육지에 토해버립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두번째로 말씀하십니다.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명령한 것을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딱 하루 동안만 하나님의 말씀을 외칩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니니웨는 적어도 3일 걸어야 그 성읍을 다 돕니다. 근데 고작 하루 외칩니다.
아직 정신 못 차렸죠?
근데 이게 왠 일입니까? 니느웨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고 왕부터 일반 백성 동물들에 이르기까지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포악함을 회개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돌이키시고 니느웨의 재앙을 거두어들입니다.
이게 3장의 내용입니다.
결론
그리고 4장 오늘 읽은 내용입니다.
이 사실은 안 요나는 화가나가 하나님 앞에 팔짝 뒵니다.
내가 이럴줄 알고 고국에 있을 때 다시스로 도망친거 아닙니까?
원수 같은 니느웨를 멸하여도 모자란 판에 그들을 용서해 주면 어떻게 하냐고, 하나님 한테 고래 고래 소리 치면서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가 차겠습니까?
바닷물에 빠져 물고기 뱃속에서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또 살려주니까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고 하고, 자신은 회개하여 용서를 받아놓고 니니웨는 왜 회개해도 용서해도 않되는지 난리도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요나에게 “니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물어봅니다. 요나는 하나님 말에 댓구도 안합니다.
그러곤 니느웨가 어떻게 되는가 지켜보기 위해 초막을 짓고 그것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요나에게 깨우침을 주기위해 박넝굴을 예비하여 요나로 하여금 시원하게 합니다. 요나는 엄청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튼날 하나님께서 벌레를 예비하여 박넝쿨을 갉어 먹게 하시고 해 뜰때에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시고뜨거운 해는 요나의 머리를 쪼이개 하십니다. 얼마나 더웠으면 요나나 정신이 혼미했다고 합니다. 또 사는 것보다 죽는게 낫다고 성냅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또 묻습니다. “니가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요나의 마지막 말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습니다.”
죽여도 시원치 않을 요나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10절 11절 같이 한 번 읽어 봅시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느껴지십니까?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의 아타까운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큰~~~~~~성읍 니느웨, 큰~~~바람, 큰~~~~폭풍, 큰~~~물고기, 그리고 하나님의 예비하심. 이 모든게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와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 크~~신 사랑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 마음을 알아달라고 요나 선지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호소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의 전달자가 되어달라고 간절히 부탁하고 계십니다.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 하나님과 반대방향에 서 있는 사람이 됩니다. 영적 사춘기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평생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하는 인생을 살아가실 겁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이제는 여러분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 속에 하나님이 죽기까지 우리를 아끼신는 사랑의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그 사랑을 깨닫을 때, 자신이 어느 방향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할지 압니다.
여러분 지금 다시스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부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충성된 하나님의 사람이되어 평생토록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누리시길 예수님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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