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27새벽] 신실하신 하나님만 주목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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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317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본문 고전 3:1-9
자비하신 하나님, 이 새벽의 시간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세상 무엇으로도 감히 값을 메길 수 없을 귀한 은혜를 거저 주셨으니, 이 귀한 은혜를 묵상하며 오늘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께만 집중하게 하시며, 오직 하나님의 음성만을 쫓아 살아가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배경
배경
고린도교회의 문제 중 하나는 분쟁과 분열이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분열의 원인을 그들의 영적 미성숙으로 꼽는다. 함께 읽진 않았지만 2장 후반부부터 보면 바울은 육에 속한 자와 신령한 자를 구별하여 설명한다. 육에 속한 자들은 성령의 일들을 받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 반면 신령한 자, 곧 영에 속한 자들은 사람들의 판단을 중요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의 판단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고린도교회는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여 극심한 분열 중에 있다. 이는 곧 그들이 영에 속하지 못했다는 증거였다. 그렇기에 바울은 1-2절처럼 “내가 신령한 자들, 곧 영에 속한 자들을 대함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고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들을 ‘육신에 속한 자' 라고 평가한다. 여기서 ‘육신에 속한 자’라는 것은 여전히 그들이 구원받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지체이다. 그러나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쫓아 행하기는 커녕 여전히 육적인 것들을 버리지 못해서 육적 행동을 따라 하고 있는, 영적으로 어린 아이와 같은 초보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로 그러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파당을 나누어 분쟁하게 된 것은 세상적인 지혜로 하나님의 일을 판단하고 세상적인 기준과 관점에 따라 그들의 지도자를 편애하며 추종한 까닭이었다. 이에 바울은 농사의 비유를 들어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추구하던 교회 지도자들은 그저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하며, 신앙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강조한다.
사역자는 종일 뿐이다
사역자는 종일 뿐이다
추측하건데 고린도교회의 어느 교인들은 당대 유명했던 거물들, 예를 들어 바울이나 아볼로, 어쩌면 베드로와 같은 거물들과 맺었던 특별한 관계를 내세웠던 것 같다. 이런 유명한 자들과 내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이러한 자들의 후광을 입고 있다고 말하면서 교회 안에서 어떤 높은 지위를 확보하고자 했고, 교회 안에서 나름대로의 특권을 누리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이러한 특권의식은 누가 더 위대한 자인가에 대해 의견충돌로 이어졌고, 결국에는 추종자들끼리 당파를 형성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단 하나의 교회가 쪼개지고, 찢어지고, 분열되기 시작한 것이다.
바울은 말한다. 5절을 보라.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그는 아주 단호하게 말한다. 교회를 자기 피로 값주고 사신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아볼로는 무엇이고 바울은 무엇이냐. 이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가? 이들은 주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 두 행동 모두 중요한 행동이다. 어떤 사람이 물을 줄 수 없는 곳에서 다른 사람이 씨를 실컷 뿌려봐야 아무 소용이 없으며, 또 물을 뿌리는 사람은 있어도 씨를 뿌릴 사람이 없다면 또한 아무 소용이 없다. 심는 사람과 물을 주는 사람 둘 다 중요하다. 이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완전히 의지한다. 하나의 팀으로서 팀웍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9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다. 최선을 다해 각자의 일을 감당할 때 자기의 상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부분은, 그들이 심는 자로서, 또한 물을 주는 자로서 참 중요한 역할을 맡은 자들인 것은 맞지만, 그럴지라도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7절 말씀을 보라.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 뿐이니라" 바울은 5절에서 바울 자신과 아볼로를 가리켜 ‘사역자’라고 말한다. 여기서 ‘사역자’ 라고 번역된 단어는 ‘디아코노이' 로서 ‘집사' 라고 번역된 단어이다.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주방에서 시중드는 종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오라 하시면 오는 자들이고, 이것 가져오라 하면 가져오는 종들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하신 그들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씨를 심는 것이고, 물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한글 성경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심고 물을 주다”라는 표현의 시제는 단순 과거형이다. 즉 심고 물을 주던 행위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이다. 언제 어느 시점에서 시작되어 지금은 끝난 상황이다. 그들의 섬김은 끝났다. 그러나 바울은 뭐라고 말하는가? 6절 하반절에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시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다. 지금도 하고 계신다. 비록 성장이 더딘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단 한순간도 쉬신 적이 없다. 하나님의 종들이 가고 오는 동안에도,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세워지고 그 역할을 잘 감당하다가 그 사역이 중단되고, 또 새로운 종들이 세워지고 또 새로운 종들이 세워지는 그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계속해서 그분의 교회를 자라나게 하신다는 것이다.
여러분, 물론 농사에서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식물이 자라나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다. 때로 농부가 씨를 뿌리지 않아도 물을 주지 않아도 잡초들은 잘만 자라나는 것과도 같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세우신 종들을 통하여 일하신다. 바울은 롬10:14 에서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라고 말씀하며 전하는 종의 사역이 중요함을 강조함과 동시에 롬10:17 에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종들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지만, 새생명을 양육하는 일이 정말 필요한 일이지만, 이 모든 일들의 궁극적 원인은 하나님이심을 강조한다. 따라서 그 심는 자와 물 주는 자를 특정 당파의 우두머리로 만드는 행위는 어리석은 것이다. 생명의 근원자이시요 보존자이신 하나님께만 더욱 우리가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역자는 주인이 아니라 종이며, 손이 아니라 손에 들린 도구일 뿐이다.
상상해보라. 영화를 촬영하고 있다. 지금 촬영해야 하는 장면은 명품 조연배우로 알려진 한 배우가 맞은 편 주인공에게 수차례 뺨을 맞는 장면이었다. 주인공은 자신보다 연기경력이 훨씬 높은 조연배우 선배의 뺨을 치는 것이 참으로 내키지 않았는 모양이다. 뺨을 때리며 수차례 NG를 낸 것이다. 이때 한쪽 뺨이 벌겋게 달아오른 조연 선배가 주인공과 영화 스탭들을 나무라며, 어찌 나에게 이런 취급을 할 수 있느냐고 촬영중단을 선언한다면, 그는 명품조연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역할은 작품의 전체적 흐름을 위해 아주 맛깔나게 뺨을 맞는 것이었다. 그렇게 주인공을 빛나게 해주는 역할이다. 그런데 그가 오히려 주인공을 돋보이지 아니하고 자기가 주인공보다 더 돋보이려 한다면 그는 조연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까닭이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그분의 종들을 귀히 들어 사용하신다. 말씀사역자를 비롯하여 교회의 직분자들을 들어 사용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씨를 뿌리게 하시기도 하고 물을 주시기도 하게끔 하신다. 그들의 귀한 섬김과 사역은 교회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 자체가 성장하게 하고 열매맺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기르시고 자라나게 하시며 열매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9절에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라 말씀하시니 이 말씀이 참으로 합당하다. 우리 가운데 풍요로운 성장과 결실을 거두게 하시는 주된 요인과 영양분은 오직 하나님의 공급으로만 가능하다. 하나님의 집인 우리 안을 풍요롭게 채우시고 아름답게 가꾸시는 것도 오직 주인이신 하나님만이 가능하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종 그 자체가 아니라 종을 통하여 일하시는 주님이시다. 종을 사용하셔서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주님이시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참으로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놓고도 사람의 영향력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의 결실과 같은 세속적인 기준으로 당을 짓고 분열을 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육을 쫓아 살아가는 것임을 기억하라. 심는 것이나 물 주는 단편적인 행위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사람의 섬김과 행위들은 모두 그치는 날이 오겠지만 유한한 사람과는 달리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교회로 하여금 자라라게 하신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단 하루도 쉬지 않으시고 교회를 붙드시고 그 집을 채워가신다. 그러므로 신실하신 하나님만을 주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