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에겐 심판, 자녀에겐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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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늘 이 시간, “악인에겐 심판, 자녀에겐 위로”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겠습니다. 오늘로 우리는 나훔서를 다 살펴보게 됩니다. 나훔 서는 요나 서의 속편과도 같습니다. 실제로 구약 히브리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에서는 나훔 서가 요나 서 바로 뒤에 위치합니다. 하지만 현대 성경에서는 ‘요나 서’ 다음에 ‘미가 서’가 나오고 그 다음에 ‘나훔 서’가 나오죠.
어떤 면에서 요나 서의 속편 같다는 걸까요?
요나서의 내용은 어떠했나요? 요나는 자기 민족의 원수 앗수르의 회개에 원통해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앗수르에 자비를 베푸셨죠.
하지만 나훔서에서는 하나님의 자비를 누린 앗수르의 처참한 멸망에 대해 너무 사실적이게, 그리고 잔인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나훔이라는 이름의 히브리 원어 뜻은 ‘위로’입니다. 나훔서는 마치 앗수르의 구원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요나에게 위로가 되는 듯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앗수르에 의해 처절하게 짓밟힌 유다 땅에 위로를 주듯 느껴집니다.
궁극적으로는, 자녀들을 핍박하는 악인들을 결국 심판하시고 자녀들을 구원해 내실 것이라는 위로가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악인의 멸망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끝내 구원하실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함께 하나님 아버지께서 악인들을 어떻게 심판하시고, 자녀들을 어떻게 위로하시는지 2가지 로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첫 번째, 악인들의 죄를 온 세상에 벌거벗기듯 드러내십니다. 우리 함께 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Nahum 3:5 NKRV
보라 내가 네게 말하노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 치마를 걷어 올려 네 얼굴에 이르게 하고 네 벌거벗은 것을 나라들에게 보이며 네 부끄러운 곳을 뭇 민족에게 보일 것이요
성도 여러분. 뉴스를 틀 때마다 가장 많이 나오는 주제가 무엇인가요? 범죄와 사고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뉴스에서 볼 때마다 ‘어차피 낱낱이 파헤쳐지고 온 세상에 드러날텐데 왜 바보같이 저런 짓을 하지?’ 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악한 죄는 결국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교만한 자들은 그 사실을 모릅니다. 앗수르는 너무나도 교만했습니다. 그래서 바보같이 다른 민족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자신들의 만행을 공식 문서에 기록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앗수르는 자신들의 야만적인 행위를 오히려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심으로 그들의 악행이 결코 자랑스러워할 것이 아닌 수치와 능욕거리라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 때 온 세상의 반응은 어떠할까요? 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Nahum 3:7 NKRV
그 때에 너를 보는 자가 다 네게서 도망하며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폐하였도다 누가 그것을 위하여 애곡하며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 하리라
앗수르의 실상과 패망한 모습이 너무 끔찍해서 다 헛구역질하며 도망칠 겁니다. 누가 앗수르의 패망을 위해 애곡하겠냐고 질문을 던집니다. 사실 이 질문은 아무도 애곡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소를 의문형으로 쓴 것이죠.
또 어디서 앗수르의 패망을 위로할 자를 구할 수 있겠냐고 질문합니다. 이 또한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죠. 죄악에 대한 심판 후에는 위로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녀들은 죄에 대한 징계를 받지만 그 뒤엔 항상 하나님의 위로가 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복된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살아가실 때 죄의 권세는 징계 후에 위로도 없을 정도로 큰 심판을 당하나 우리 자녀들은 끝까지 용서하시고 위로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풍성히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 악인들은 피난처를 찾지만 결코 숨을 수 없고 철저히 정복 당할 것입니다. 우리 함께 11절과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Nahum 3:11–12 NKRV
너도 술에 취하여 숨으리라 너도 원수들 때문에 피난처를 찾으리라 네 모든 산성은 무화과나무의 처음 익은 열매가 흔들기만 하면 먹는 자의 입에 떨어짐과 같으리라
앗수르가 술에 취하여 숨으려고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고 숨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천하에 대적이 없는 줄 알았던 앗수르가 원수들 때문에 피난처를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요? 12절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의 첫 열매가 아무 힘 없이 땅에 툭 하고 떨어지고 재배하는 자의 손에 들어가듯이 정복 당하고 말 것이라고 나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한 탐욕과 교만을 삶의 법칙으로 삼는 이 세상은 결국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 정복당할 것입니다. 그것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고,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악한 세상을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게 절대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다 사하여 주시고, 부활하시므로 죄의 권세를 다 깨트리셨습니다.
고로 죄악으로 판 치는 이 세상도 이미 예수님께 깨진 존재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두려워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숙일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숙이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세상 법칙에 달려들면서 저항하자는 게 아닙니다. 끝까지 예수님처럼 겸손하게 묵묵히 걸어가자는 겁니다. 그래야 세상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표어 아닙니까? 사람을 살리고, 제자를 세우며, 세상을 치유하는 성덕교회.
세상은 지금 많~이 상처 입었습니다. 무엇에 상처 입었을까요? 자기의 탐욕과 교만으로 상처 입었습니다.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탐욕교만의 반대인 내려놓음겸손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죠.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아가면 됩니다. 그 때 세상은 치유될 겁니다. 앗수르처럼 치유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교만함을 내려놓지 못하는 세력은 하나님에 의해 철저히 멸망 당하고 말 겁니다. 멸망 당한 그들에게는 위로도 없습니다. 그 사실을 18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18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Nahum 3:18 NKRV
앗수르 왕이여 네 목자가 자고 네 귀족은 누워 쉬며 네 백성은 산들에 흩어지나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도다
목자가 자고, 귀족은 누워 쉰다는 표현은 ‘죽음’을 표현하는 어법입니다. 결코 그들이 편안할 거라는 게 아닙니다. 앗수르의 모든 권세가 힘을 잃고 죽어가도 그들을 모을 목자가 없다고 합니다. 이 세상은 죄를 목자 삼아 살아가죠. 하지만, 예수님의 마지막 심판 날에 죄는 그 세상을 울타리 안에 모을 수 없습니다. 흔적도 없이 다 심판 받게 될 테니까 말이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 죄의 지배를 받던 우리를 자신의 양으로 삼아주시고,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마지막 심판 날에 우리가 세상 끝에 있다 하더라도, 가난과 궁핍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죄악의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 서 있다 하더라도 결국 한 곳으로 불러 모으실 겁니다. 그리고 우리를 천국으로 들어 올리실 겁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결론

나훔서는 사용하는 단어나 이미지들을 볼 때, 시의 형식을 띄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시편의 탄원시와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줍니다. 탄원시에서는 다윗이 하나님께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멸망시켜주실 것을 요청하는 시들이 나옵니다. 나훔 서를 읽고, 시편의 탄원시를 읽고 어떤 이들은 ‘아니,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다른 이의 멸망과 심판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게 맞나?’ 하고 질문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결론을 말씀 드리자면, 악인의 멸망을 요청하는 나훔 서와 시편의 탄원시는 사실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노래하는 시입니다. 나훔 서와 시편의 탄원시의 본 의미에 귀를 기울이면 , ‘하나님, 제발 저 나쁜 인간을 벌해 주세요.’가 아니라, ‘하나님, 저들의 핍박에도 나를 구원해 주실 주님을 신뢰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로 들린다는 것이죠.
그리스도인은 악인의 패망을 즐거워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어떠한 압제와 핍박 속에도 나를 구원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앗수르와 같은 세상 속에서 살아보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혹은 지금도 앗수르와 같은 핍박 속에서 살아가고 계십니까?
세상은 하나님의 선한 방법대로 살아가지 않고, 교만과 탐욕의 방법으로 살아감으로 인해 상처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상처 입히려고 하죠.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능히 악한 세상을 벌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겁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그 진리를 증명해 주십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실 때, 상처 입은 세상, 나를 힘들게 하는 세상에 시선을 두지 않고, 그 가운데서 나를 건지시고 치유하시는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에게 시선을 고정합시다. 그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가득하리라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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