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옷과 꿈의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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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5 views요셉이 입은 옷과 그가 꾼 꿈의 실현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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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성경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뱀의 시험에 넘어가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아담과 하와를 위해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가죽옷’입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에게 만들어 주신 인류 최초의 옷입니다. 이것은 짐승의 피를 흘려 만들었기 때문에 ‘은혜의 옷’으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타락 이후 아담과 하와는 자신이 벌거벗었음을 알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만든 그 치마는 자신들의 수치를 가리기에는 충분하지 못했으며, 임시적인 것밖에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가죽 “옷”의 케토넷(כְּתֹנֶת)은 무릎이나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가죽옷으로 그들의 수치를 확실하게 그리고 영구적으로 가릴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옷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존귀하게 여기셨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아담과 하와의 가죽옷을 이야기한 이유는 가죽옷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셉의 채색옷과 닮은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지어준 옷은 히브리어로 케토넷(כְּתֹנֶת)이고, 아버지 야곱이 여러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해 그를 위하여 지어 입힌 “채색옷”은 히브리어로 케토넷 팟심(כְּתֹנֶת פַּסִּים)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의 옷이 무화과 나뭇잎에서 가죽으로 바뀐 것처럼 요셉의 옷도 바뀝니다. 함께 읽은 본문에는 채색옷만 나오지만, 요셉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읽어보면 그의 옷이 수시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입은 옷은 그의 형편을 대변해주는데 그의 흥망성쇠에 따라 그가 입은 옷이 바뀝니다.
그 사람이 입은 옷은 그의 신분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한 예로 제사장은 제사장의 의복을 입습니다. 그리고 왕이 신하를 명예롭게 하려고 옷을 입혀주기도 합니다. 앞서 요셉의 옷이 수시로 변한다고 했는데 그의 옷이 변할 때마다 그의 신분도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간은 요셉이 입었던 옷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더 직접적인 표현으로, 요셉의 꿈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그의 옷은 어떻게 바뀌는지 말씀을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요셉의 옷이 바뀌는 과정과 그의 꿈이 실현되는 과정은 서로 맞닿아있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의 꿈은 그의 일생을 관철하는데, 그 꿈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때에 따라 맞는 옷을 입혀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요셉의 옷을 함께 보겠습니다. 성도님들께서 잘 알고 있는 요셉의 옷은 채색옷입니다. 우리말성경은 ‘귀한 옷’(또는 색동옷)으로 새번역성경은 ‘화려한 옷’(채색 옷)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채색옷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만든 <Joseph and the Amazing Technicolor Dreamcoat>라는 뮤지컬을 통해서도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유명합니다. 이 외투가 정확하게 어떻게 생겼는지와는 상관없이 그 옷 자체는 아버지 야곱의 편애를 확실하게 나타내는 증표입니다. 요셉은 아버지가 가장 사랑했던 라헬에게서 났고, 그것도 노년에 태어난 아들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을 더 깊이 사랑했습니다. 아들을 편애한 것은 야곱의 아버지 때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이삭은 야곱보다 에서를 더 사랑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 정도가 더 심합니다. 야곱의 이러한 행동은 형들로 하여금 요셉을 미워하게 했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미워한 또 다른 이유,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꿈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같은 의미를 가진 꿈을 두 번이나 반복하여 꾸었습니다. 첫 번째 꿈은 들의 곡식단 가운데 형들의 단이 자신의 단을 향하여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형들이 언젠가는 자신에게 절을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러한 꿈을 꾸고, 또 그것을 자신들에게 눈치 없이 자랑삼아 말하는 요셉을 형들은 더욱 미워했습니다. 두 번째 꿈은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자신을 향하여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열한 별”은 형제들을 가리키는 것이며, “해와 달”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리키는 것임을 듣는 사람은 다 알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두 번째 꿈을 형제들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 꿈은 형제들에게, 심지어는 아버지인 자신에게까지 도전하는 것으로 비쳤기 때문에 야곱은 요셉을 책망합니다. 그리고 이 꿈 이야기를 들은 가족들은 각각 다른 생각을 품게 됩니다. 형들의 증오심은 더 깊어갔던 반면,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요셉이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꾸었는데 형들은 그 꿈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꿈의 내용을 견딜 수도 없었고, 인정할 수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요셉을 없애면 꿈도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형들은 그 꿈을 없애기 위해 요셉을 죽이려 했지만, 꿈을 건드리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꿈이 주체가 되어 요셉을 이끌어갑니다. 성경이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요셉이 주체가 되어 꿈을 꾸었지만, 이제는 꿈이 주체가 되어 요셉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와 말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주체가 되어 말씀을 읽지만, 그 말씀을 읽고 믿는 순간 그리고 그것을 마음에 품는 순간부터는 말씀이 주체가 되어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말씀이 주인이 되어 나를 인도합니다. 나의 주인이 되는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꿈이 하나님과 요셉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데, 오늘날은 성경이 그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 약속을 주시고, 비전을 주십니다.
요셉은 그의 꿈 때문에 가슴이 벅차올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이 당장 그의 삶에서 이루어지길 바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할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역시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면 그때로부터 당장 우리의 삶이, 형편이 바뀔 것으로 바라고 기다립니다. ‘하나님 속히 그 말씀을 나의 삶 속에서 이루어주시옵소서!’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이 꿈을 꾼 이후 그의 삶이 어떻게 흘러갑니까? 아버지의 사랑이 듬뿍 담긴 그의 채색옷은 어떻게 됩니까? 37장 23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형들에 의해 채색옷이 벗겨집니다. 이어서 37장 36절과 39장 1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요셉은 귀공자로 있다가 갑자기 타국의 종으로 팔려서 자유를 상실하게 됩니다. 그의 채색옷을 더는 입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종의 옷을 입습니다. 신분상으로 엄청나게 처참한 상황을 맞게 됩니다. 결론을 모른다는 전제 아래서 이쯤 되면 우리도 요셉의 형들처럼 혀를 차면서 ‘그의 꿈은 그냥 헛된 꿈이었어, 그의 인생은 끝났어!’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겠습니까? 요셉은 둘째 치고 만약 우리의 삶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꿈(말씀)은 잊은 채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면서 그분을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의 채색옷이 벗겨지고, 종의 옷을 입는 순간은 그의 꿈이 이루어지는 시작 단계였습니다. 그의 꿈이 망해서 끝난 것이 아니라, 꿈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첫 단계였습니다. 비록 개인적으로는 비참한 현실을 맞게 되었지만, 꿈의 관점에서 봤을 땐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 발동이 걸린 것입니다.
요셉은 낯선 땅에 끌려 왔습니다. 가장 밑바닥 인생이 되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고 무지무지한 가시밭길이 전개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주셨을 때는 그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 전제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기로 계획하시고 결정하신 것입니다. 요셉 또한 분노로 세월을 허송하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드러냈습니다. 그의 성실함, 책임감이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보디발에게도 잘 전달이 되었습니다. 보디발은 왕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친위대장이었습니다. 오늘날로 하면 대통령 경호실장(비서실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유력한 사람에게 요셉을 이끈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이제 요셉은 보디발의 총애를 받아 총무의 복장을 갖추게 됩니다. 요셉은 종의 신분이었지만 보디발의 집에서는 주인 다음가는 실세가 됩니다.
그러나 순탄하게 자리를 잡아가던 요셉에게 다시 위험이 닥칩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매력에 빠져 그를 유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눈짓하다가 다음에는 동침하기를 청합니다. 요셉은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습니다. 상당 기간 이런 유혹이 계속되었습니다. 보통 젊은이라면 지속적인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단호했습니다. 그녀와 동침하지 아니할뿐더러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 마침 집안에 아무도 없을 때 여인은 노골적으로 요셉에게 덤볐습니다. 여인이 옷을 잡고 동침하자고 요구하자 요셉은 그 옷을 여인의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갔습니다. 요셉이 거절하여 자기를 민망하게 하자, 여인은 반격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철저하게 자기방어를 하고 나서며 남편에게는 옷을 그 증거로 제시합니다. 요셉이 옷을 버려두고 도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현장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요셉에 대한 신뢰가 두터운 보디발도 그 증거 앞에서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보디발 아내의 손에 의해 요셉의 총무 옷은 벗겨집니다. 그리고 죄수복을 입게 됩니다. 이방 땅에 팔려와서 입었던 종의 옷보다 더 형편없는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다시 억울한 상황을 맞게 됩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억울한 마음을 폭발시키지 않고, 마음을 잘 붙들고 인내했습니다. 고통의 상황에서도 그가 좌절하지 않고, 자결하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꿈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너무 억울해서 자결했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다 사라졌을 것입니다.
요셉은 억울한 누명을 덮어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에게 큰 어려움이 닥쳐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고통받지 않게 보호하시는 것보다 오히려 온갖 역경을 통과하게 함으로써 그의 길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39장 1–5절의 짧은 단락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이 다섯 번, 21-23절에서 세 번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셨습니다. 사도행전 7장 9절에서 스데반도 요셉에 대하여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야곱의 자손들을 애굽으로 보내서 번성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이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바로를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큰 그림 아래서 요셉과 함께하시며 요셉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가 감옥에 가는 것은 절대 돌아가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이방 나라의 한 청년이 바로 앞에 서기 위한 최단 코스였습니다. 우리들의 시간과 삶의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빠른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기도하고 인내하며 찬송하고 감사하는 저와 행복한교회 성도님들이 되셨으면 합니다.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왕에게 범죄하여 요셉이 갇힌 옥에 들어옵니다. 이제 요셉은 애굽의 고위층 인사를 대면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어느 날 아침 이 두 사람의 안색이 좋지 않았는데, 그들의 꿈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그들의 꿈을 듣고 그 의미를 설명합니다. 두 관원장의 꿈은 요셉이 말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되고, 떡 굽는 관원장은 죽게 됩니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에게 이후에 자신을 위해 힘써달라며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지만, 성경은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라고 기록합니다.
이렇게 요셉이 억울하게 옥에 갇힌 지 2년이 지납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언제 나갈지도 모르는 채 여전히 죄수복을 입고 있습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보디발도 떠나고, 술 맡은 관원장도 떠나고, 심지어 하나님도 자신을 떠나셨을까?….’라며 자신은 철저히 잊힌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서광이 비쳐왔습니다. 꿈 때문에 그의 비극이 시작되었지만, 이제 꿈으로 인하여 그가 햇빛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가 꿈을 꾸었고, 술 맡은 관원장에 의해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하는 기회를 잡게 됩니다. 요셉은 그렇게도 자신의 꿈이 더디 이루어지는 것 같았고 입기 싫었던 죄수복을 오래 입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니까 순식간에 상황이 바뀌게 됩니다. 41장 1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말 그대로 ‘급히’ 감옥에서 나옵니다. 길게 자란 수염을 깎고, 드디어 옷도 갈아입고 바로에게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이처럼 예기치 못한 때에, 순식간에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때는 하나님의 때입니다. 요셉의 삶을 통해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로의 꿈은 일곱 해 동안 풍년이 들 것이며, 그다음 일곱 해는 흉년이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바로에게 꿈을 해석해 줄 뿐만 아니라 처방까지 내려줍니다. 흉년을 대비하여 풍년일 때에 남는 곡식을 잘 비치하라고 합니다. 바로는 그 꿈 해석과 대비책까지 듣고 매우 흡족해합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다 들은 바로는 요셉을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라 보고 그를 자기 다음의 권력서열인 총리로 세워 애굽 온 땅을 다스리게 합니다. 요셉은 하루 만에 애굽의 제2인자 자리에 오릅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때가 되니까 모든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되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복을 입은 것은 그의 나이 30세 때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얼마 동안 요셉을 훈련하시고 인도하셨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채색옷을 입은 17세 때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 이방 세계에 종의 신분으로 팔려 오게 하셨고, 보디발의 집에서와 감옥에서 모두 13년을 보내게 하셨습니다. 이 기간이 요셉 편에서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참기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때가 되도록 때를 만드셨던 것입니다. 가만히 계셨던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연단의 시기를 통해 요셉의 영적인 맷집이 생기도록 하셨습니다.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놓지 않고 바라고 기도할 수 있도록 훈련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때를 참고 기다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13년이 지난 후 요셉이 총리복을 입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사는 우리 성도들에게 많은 위로가 됩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사는데 때로는 원치 않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또 다른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기간에 우리는 많이 불안하고, 답답하며, 힘들고, 갈등을 겪습니다. 하지만 요셉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때에 그분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옷을 입혀주실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성도의 삶을 지탱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바로는 인장반지와 함께 세마포 옷을 요셉에게 입혀줍니다. 바로가 이 일련의 일들을 행함으로써 요셉을 가장 높은 관직으로 올려줍니다. 세마포 옷은 고관이 입는 의복입니다. 또 제사장이 입는 복장이 세마포 옷이기도 합니다. 세마포 옷과 함께 결국 요셉의 꿈이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애굽으로 와서 요셉에게 엎드려 절합니다. 형들은 동생의 꿈이 실현되지 못하도록 동생을 타국으로 팔아버렸지만, 그 범죄가 씨앗이 되어 요셉이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형들이 악한 계획을 꾸미면서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라고 큰소리쳤지만, 요셉의 꿈이 마침내 실현되었습니다. 동생의 꿈처럼 형들은 요셉에게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형들은 요셉의 옷을 벗겼지만, 요셉은 자신을 찾아온 형제들에게 옷을 선물합니다. 그리고 요셉은 자기의 높아짐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인식하였으며, 결코 형들을 미워하거나 복수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함께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의 상속자인 이스라엘의 가족들을 보존하고, 세상을 위한 복의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꿈을 이루어주셨고, 때에 따라 그에게 맞는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에게 은혜의 옷인 가죽옷을 입히신 것처럼 말입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지금까지 어떤 옷을 입으셨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어떤 옷을 입고 있으십니까? 아담과 하와에게 옷을 입혀주시고, 요셉에게 옷을 입혀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은혜의 옷을 입혀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와 함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옷이 최고의 명품 옷입니다.
마지막으로 로마서의 말씀을 나누며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교회를 향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합니다. 로마가 세상적으로는 부귀영화와 사치를 누리고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깊은 밤이었고 죄로 말미암아 멸망할 ‘바벨론’과 같은 도시였기 때문에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그들이 속한 세상에 물들지 말고, 세상의 옷을 입지 말고, 깨어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구원의 때가 가까웠으니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라고 합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라고 합니다. 함께 로마서 13장 11-14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말씀 안에서 꿈을 꾸는 저와 우리 행복한교회 성도님들이 되셨으면 합니다.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지금 이 순간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꿈, 말씀을 주시고, 은혜의 옷을 입혀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저희들을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때로는 저희가 하나님의 그 크신 뜻을 알지 못하여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함께 하시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불평했음을 고백합니다. 이런 저희들을 용서하여주시옵소서. 절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시며 소망 가운데 인내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행복한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