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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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0:13–16 (NKRV)
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말씀 읽기전 활동>
곧 있으면 5월 5일 어린이 날입니다. 보통 어린이 날이 다가오면 교회에서는 어린이 주일을 준비하여 많은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거나 또 여러가지 행사들을 준비하며 어린이 주일을 준비합니다. 혹시 여기서 아직 어린이 날때 선물을 받는 친구들 있습니까? 전도사님도 확실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난 뒤 부터는 어린이 날때 선물을 받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어린이 주일이니깐 전도사님이 선물을 몇개 준비 했습니다. 그냥 주지는 않을거고 문제를 맞추는 친구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선생님들도 참석이 가능하니 문제의 정답을 아는 친구들, 선생님들은 할레루야 하고 손을 들고 전도사님이 이름을 부르면 답을 이야기 해주면 되시겠습니다. 그럼 문제 나갑니다.
예수님께서 쇼핑몰에 쇼핑을 하러 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마음에 드는 옷을 찾으셨는지 가게 점원을 불러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예루살렘)
예수님께 옷을 팔았던 점원은 알고보니깐 쇼핑몰에서 가장 많이 물건을 판 1등 직원이었습니다. 이 직원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요?
시험을 칠때마다 올백을 맞는 성경인물이 있다고 합니다. 누구일까요? (미리암)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고 난뒤 읽으면 안되는 성경책은 무엇일까요? (갈라디아서)
그렇다면 신혼부부가 읽어야 되는 성경책은 어디 일까요? (에베소서)
네 이렇게 준비한 선물이 다 떨어졌습니다. 전도사님이 이렇게 오늘 선물을 나누어 주고 무언가 조금 어린이 같이 여러분들을 대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면서 여기 앉아 있는 우리 모두가 어린아이를 본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할때 어린이들에게 무엇을 본받을것이 있겠냐만은 오늘 우리가 읽을 성경 본문에서는 어린이들에게 본받을 것이 분명하게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선포되어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한명의 어린아이와 같은 자로 세워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은 바로 마가복음입니다. 10장 13절에서 16절의 말씀을 우리가 다 함께 합독하며 읽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 이렇게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수가 없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단순히 어린아이에게 어떤 것을 배우고, 본받는 의미를 넘어서서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한다면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것이 될수 없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는 말은 무슨의미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야 한다는 말일까요? 사실 어린아이라면 보통 천진무구한 순수함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천진무구란 눈과 같이 희고 한 점의 때도 없는 순진함을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천국에 갈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일 것으로 보입니다. 어른이 되면서 험악한 세상살이 하다 보니 세상의 때가 많이 묻게 되고 속을 일도 많다 보니 쉽게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 어른들에겐 본문이 순수하고 단순하게 그저 가르쳐 주는 대로 믿는 어린아이로 돌아가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교훈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물론, 요즘 초등학생들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는 분도 계십니다. 우리나라의 치열한 교육 현실 속에서 아이들의 삶이 어른만큼이나 경쟁적이고 사회의 개인주의로 아이들도 어른 못지않게 이기적이 되어 가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사회가 척박해도 대체로 아이는 아이입니다. 가끔 어린아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지고 기분도 좋아집니다. 세상에 찌들지 않아 티 없이 맑고 고운 아이들의 미소와 눈빛을 바라보면 내 맘도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예수의 사람이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더욱이 한 발짝도 부모 곁을 떠나지 않으려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면 나도 저렇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겠구나 하는 마음도 듭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어린아이는 이런 순수함, 가식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의미일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진짜 어린아이의 뜻은 어린아이의 "무력하고 천한 사회적 위치"로 이야기 할수 있습니다. 당시의 어린아이의 사회적 위치가 어떠했습니까? 어린아이는 당시 여성의 천함, 가난한 자 부정한 자와 같은 무력함과 소외됨과 같은 계층의 사람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오늘날 선진국의 어린아이 말고 제3세계의 아이들의 상황을 보십시오. 부유한 집 아이들이 아니고는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경우들이 허다하고 어떤 아이들은 일부 어른들의 범죄에 가까운 행동, 혹은 범죄의 희생양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역사 속에서 빈곤과 기아로 시달리는 시절일 때 어린아이들은 자주 길거리에 버려졌으며 어른들의 범죄에 이용당하거나 영양실조로 아사하기 일쑤였습니다. 어린아이는 당시 가정에서 사회에서 가장 작은 자였습니다. 아이들은 어른에게 종속되었기에 쉽게 군림당하고 착취당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린아이가 대접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방정환 선생님은 당시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못한 우리 사회에 분개하셨습니다. 그분이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십시오!"라고 호소하고 다니신 것만 보아도 우리나라 사람들도 얼마나 어린아이들을 하대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의 많은 노력으로 말미암아 당시 어린이를 부르던 보편적이었던 '아 새끼'란 표현이 점차 사라지고 어린이란 표현이 사회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지요. 당시의 어린아이는 부유층이나 귀족 같은 특권계층이 아니고서는 현대사회와 같은 어린이의 위치와 권리를 누리던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부모는 신생아를 버려 노출에 죽게 내버릴 법적 권리가 있었습니다. 때론 낯선 사람이 신생아를 데려갔는데, 대부분 그런 아이들은 노예가 되었답니다. 이방 문화에서 어린아이들에 대한 성적 학대가 자주 일어났습니다. 당시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체벌은 심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폭력적이었던 스파르타 문화에서는 사내아이들을 강한 군인으로 만들기 위해 사내아이들이 7세가 넘으면 모두 막사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게 하면서 때론 이유 없이 정기적인 채찍질과 폭력을 가했습니다. 의도적으로 음식을 부족하게 제공해 훔치는 기술을 터득하게 했고 아이들의 모든 잘못에 대하여는 심한 채찍질로 다스리기도 했습니다. 스파르타처럼은 아니더라도 로마의 학교교육도 꽤 엄격했는데 주로 그리스출신 노예들로 이루어진 선생들은 학생들을 심한 체벌로 다스렸습니다. 유대의 어린아이도, 당시 주변 문화처럼 대체로 천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방어 능력도 없고 생산능력이 없던 어린이들은 어른들에게 복종해야 할 뿐 그 어떤 높임의 대상도 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은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어린아이의 연약함과 사회적인 위치를 통해서 도대체 제자들에게 무엇을 말씀하려 하셨습니까? 그것을 알기위해서는 마가복음의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볼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의 그 전 내용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하나님 나라에서 큰자가 되기 위한 법을 물어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반복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낮아져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이는 제자들이 따라야 할 예수님의 삶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당하실 고난과 십자가를 언급하며, 그리고 그 이후에야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예수님을 통해 높아지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제자들은 비천하게 낮아지시는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십자가에 사형당하실 것이라는 말씀에 공포를 느끼기만 합니다.예수님께서 자신이 곧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사형을 당할 것이라고 가르쳐 주시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제자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에만 관심을 보이며 한심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는 것을 우리는 마가복음 9장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답답해하시며 진정 높아지기 위해 세상의 가치관과 정반대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당시 낮고 보잘것없는 약자였던 어린아이를 예로 드신 것이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낮은 자가 되어야 높은 자가 될 수 있다, 또한 이처럼 천한 자를 영접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나를 영접하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가장 낮은 자를 영접하는 것이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라는 역설적 진리입니다(막 9:35~37). 예수님은 어린이의 예를 통해 천한 자를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무력하고 천한 자의 자리까지 낮아짐이 진정 높아지는 길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13~16절은 세 단락의 순서로 전개됩니다.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을 사람들이 데리고 예수께로 나옵니다. 예수님이 아마 그들을 만져주시며 축복해 주시길 원하기 때문입니다(16). 제자들은 그러나 그들을 꾸짖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그러하듯 그들도 어린아이를 하찮고 귀찮은 존재로 대한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와 같이 낮은 자리에 서라고 바로 전에 하신 말씀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막 9:30~37).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사회적 신분상승의 욕망을 채우는 곳으로 엉뚱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 모두 여전히 영적으로 장님인 상태입니다(비교 막 8:17~2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화를 내시면서 아이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사회적으로 낮은 자와 소외된 자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도 그런 모습이 되어야겠지요. 본문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아니하면"은 낮아짐에 대한 요청입니다. 스스로를 높아지려고 한다면 절대로 하나님 나라를 받을수 없음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예수님께서 먼저 그 본을 보이시지 않으셨습니까? 하늘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스스로 낮아지시고, 스스로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가운데 내려오셔서 우리와 눈높이를 먼저 맞추시지 않으셨습니까?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먼저 이 땅 가운데 오신 분이 바로 우리 예수 그리스도 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되신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어린이 주일 가운데 주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연약한 자들에게 찾아가 그들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사랑하며 그들을 귀하게 여겨주는것. 그들에게 다가가 친구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어린아이를 받는것.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받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 주변에 분명히 연약한 자들이 있을 겁니다. 분명히 소외된 자들이 있을겁니다. 셀에서, 교회에서, 학교에서, 학원에서 또는 가족이 될수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이건간에 여러분들이 먼저 찾아가서 그들과 같이 되어 사랑해주고 귀하게 여겨주고 우리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그들을 섬기며 나아 가십시요. 예수께서 여러분들을 그렇게 섬기셨듯이 여러분들도 그렇게 섬기며 살아가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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