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가운데 말씀을 공급하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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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오늘은 사무엘이 본격적으로 선지자로 쓰임 받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분의 언약 백성을 회복시키고자 하시는지 볼 수 있습니다.
1- 어둠의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시대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시대는 어둠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사사시대는 어둠의 시대입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여기서 나오는 거룩한 윤리가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타락한 시대에 말씀 맡은 선지자를 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3장 1절에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히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뒤에 나오는 이상은 앞에 나오는 말씀과 같습니다. 여기 ‘이상’은 ‘하존’으로 꿈이나 계시를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이 환상과 같은 신비한 경험을 하도록 하셔서 말씀을 전달하셨습니다. 사사시대에는 이런 것들이 끊어지다시피 했습니다.
2절에 보면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자기 처소에 누웠고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문학적인 요소로 보고 해석해야 합니다. 물론 엘리 제사장이 나이가 많아서 노안이 왔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뒤 문맥을 잘 살펴보면 이건 단순히 노안이 왔다고 하고 지나갈 부분이 아닙니다. 1절에 이상히 흔히 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고 2절에 엘리제사장이 눈이 어두운 것, 자기 처소에 누운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영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엘리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 딱 들어맞습니다. 그리고 2절에 엘리 제사장이 눈이 어두운 것과 3절에 사무엘이 자고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있는 등불이 켜진 이미지가 대조됩니다. 엘리가 눈이 어두운 것은 연로해서가 아니라 엘리의 영적인 상태를 이야기해주는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의 영성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엘리에게 영적인 어둠이 드리웠고 이스라엘도 어둠의 시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인 엘리에게 말씀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들인 젊은 제사장들이 계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 수련생인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봅니다. 이것을 보고 이야 사무엘이 나이도 어린데 대단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다른 의미에서 불행입니다. 이스라엘에 제사장이 멀쩡히 있는데 이제 이 제사장들을 통하여서 일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멀쩡이 있어도 어른이 아닌 아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셔야 할 정도로 이스라엘의 상태가 심각한 것입니다.
만약에 어느 교회에 담임목사님이 계시고 목사님 강도사님이 다 있는데 이분들이 강단에 올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왔다고 합시다. 이분들 대신에 신학대학 1학년 1학기를 보내고 있는 학생이 강단에 올라간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학생을 대단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 것입니다.
실로에 제사장들을 다 지나치고 사무엘이 하나님께 계시를 받은 것은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가 그만큼 심각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대가 타락해서 너무 어두웠고 계시를 담을 그릇이 없어서 한낱 어린아이가 계시의 중보자 역할을 할 정도로 이스라엘의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적용)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이 지금 겪고 있는 어둠의 시대를 겪고 있습니까? 아니면 계시가 풍성한 빛의 시대를 겪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말씀에 메마르게 되면 우리는 점점 말씀이 희귀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치열하게 성경을 묵상하면 말씀이 우리 삶에 다가와 우리 삶을 비추고 어떻게 해야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할지 해답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치열한 성경묵상이 없으면 점점 성경을 멀리하게 되고 그야 말로 우리 삶에 말씀이 오지 않는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삶이 점점 어두운 시기로 스며들게 됩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굉장한 치열함이 필요합니다. 기존에 우리가 유지하던 삶의 균형을 깨뜨려야 할 수도 있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잘라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 읽는 것이 굉장히 뻔하고 지겹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신대원 다닐 때인가 성경이 지긋지긋하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지긋지긋하게 어머니한테 맞아가면서 성경을 읽고 신학을 전공한다고 대학 다닐 때 읽고 졸업 시험 친다고 읽고 신학교 입학시험 친다고 읽고 학년 진급 때문에 읽고 진짜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성경이 저의 삶을 비추는 것을 조금씩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나의 삶을 펼쳐 읽고 나의 삶을 밑줄 치고 나의 삶을 교정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나의 삶에 녹아 길을 제시하고 성경이 내 삶을 인도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먼 옛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고 이끄는 강력한 능력이었습니다. 이 능력은 지금의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동일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말씀이 없으면 우리는 어둠의 시대를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시간을 다 잘라내서라도 치열함을 가지고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말씀을 부단히 읽고 묵상할 때 말씀이 내 삶을 변화시킬 토대가 마련됩니다.
2-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공급하신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공급하신다는 것입니다. 3장 3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이 등불을 통해 보여주는 이미지와 메시지가 있습니다. 비록 인간 직분자는 타락해서 눈이 어둡고 잘 보지 못한 상태이지만 하나님의 빛은 남아서 이스라엘을 비춘다는 것입니다. 이 빛이 있는 곳에 누가 있습니까? 사무엘이 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전 안에 누워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전 안에 누워있는 것을 보면 사무엘이 영적으로 하나님과 굉장히 친밀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27편 4절에 다윗이 노래하기를 여호와께 바라는 것 한 가지는 평생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성전에서 사모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무엘도 성전을 사모하는 영성을 어릴 때부터 기른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두운 시대에 사무엘의 영성을 훈련시켜서 사용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절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이 희귀한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는 장면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분의 언약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말씀을 주시고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7절에 의하면 사무엘이 이전까지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인지 엘리가 이야기하는 것인지 구분을 잘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세 번이나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세 번이나 부르는 것을 통해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구분하고 찾는 것이 서투를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다려주시고 끊임없이 말씀을 전달하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사람 중심으로 본문을 보려고 하기 때문에 사무엘과 엘리제사장이 잠을 깬 것만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사람을 보기 이전에 하나님을 봐야 합니다. 엘리가 육신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눈이 어둡고 잠들었을 때 하나님은 깨어계셨습니다. 어두운 시대를 밝힐 등불을 남겨두셨습니다. 그분의 백성을 계속 부르셨습니다. 말씀을 공급하고자 하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처음 부르실 때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다.’라고 했으면 사무엘이 엘리에게로 달려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부르시고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엘리의 목소리로 오해하도록 내버려 두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는 사무엘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선지자로, 지도자로 세워지는 것을 직관하게 됩니다. 이런 계시의 방식조차도 엘리 제사장에겐 메시지가 됩니다. 이제 타락한 엘리의 시대는 청산 되고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말씀을 주신다는 것을 엘리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엘리는 이 일에 어쩔 수 없이 증인이 됩니다. 만약에 사무엘 혼자서 계시를 받고 그렇게 끝났으면 아무도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말씀을 전하셨다는 것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무엘이 엘리를 깨워서 확인하는 방법으로 사무엘의 예언이 공식적으로 인정 받도록 의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전한 메시지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엘리 가문의 심판입니다. 성막 질서를 어지럽히고 예배를 타락시킨 이 집안이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14절에 보면 제물로나 예물로나 속죄 받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12절을 주목하겠습니다. 12절에 보시면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은 언제 일어난 일입니까? 이게 한국말로 보면 구분이 잘 안되는데, 히브리어나 영어로 보면 완료형 문법을 사용합니다. 사무엘이 계시를 받기 전 과거에 하나님께서 어떤 선지자를 통해 엘리에게 말씀하신 것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2:27에 어떤 선지자가 엘리의 집이 망할 것이라 예언한 것을 염두한 이야기입니다.
어린 사무엘이 받은 계시와 2:27절에 나온 선지자가 받은 계시가 내용상으로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전한 계시는 사무엘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선지자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선지자의 특징은 자기 혼자 메시지를 지어내는 것입니다. 그 메시지를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로 거짓선지자는 메시지 자체가 아니라 권력에 기생해서 거짓메시지를 계시로 둔갑시킵니다. 참된 계시는 여러 명을 통해 말하고 확인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도 여러 선지자들이 동일한 심판의 메시지를 말하도록 해서 그 메시지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혼자 계시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 선지자입니다. 여러 선지자가 같은 메시지를 말하면 참된 계시의 조건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이 공식적인 선지자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 이런 장치들을 마련하셨고 하나님께서는 어두운 시대에 참된 권위를 지닌 선지자를 마련하셔서 그분의 백성에게 말씀을 전달하십니다. 말씀을 통해 이전에 타락한 제도와 직분자를 개혁하시고 회복의 시대 새로운 시대를 마련하셨습니다.
(적용) 하나님은 지금 이 시대에도 우리에게 말씀을 공급하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공급하는 것을 통해 역사하시고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양심을 자극하시고 잘못된 것을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있는지 그 길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회복의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나약한 죄인이라서 자꾸 말씀에서 멀어지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씀을 가지고 다가오십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의 혀를 이용해서라도 이스라엘에 말씀을 전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보잘 것 없는 수단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을 공급하십니다.
사역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전도사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든 때가 있습니다. 열정을 가지고 사역을 시작했는데 1년, 2년이 지나니까 점점 지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패배의식에 사로 잡혔습니다. 나는 사역에 자질도 없고 다른 동역자들처럼 뛰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하루 하루를 억지로 사역하며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성경 이미지를 검색하고 있었는데 조그맣게 고린도전서 15:57이 영어로 보였습니다. 저는 영어가 아주 미숙하기 때문에 영어로 뭘 읽으면 아주 천천히 읽을 수 밖에 없어서 순간 그 말씀을 아주 천천히 읽게 되었습니다. 뭐라고 되어 있었느냐면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이 말씀을 보고 그 자리에서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대형교회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동역자들끼리 경쟁 아닌 경쟁을 해야 하고 성도님들 사이에서 서로 비교 아닌 비교를 당하는 것이 너무 지치고 힘들었는데 이 말씀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진정한 승리는 남보다 뭘 잘해서 얻는 게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것임을 다시 깨닫고 회복하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가지고 제게 다가오셨습니다. 한글로 읽으면 대충 읽고 넘어갈까봐 저에게 익숙치 않은 영어로 더듬더듬 읽게 하시고 새롭게 다가오셨습니다.
우리가 때론 말씀 읽기가 싫을 때 지쳐서 다 포기하고 싶을 때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말씀을 가지고 오실 때가 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숨어있는 아담에게 다가오신 것처럼 죄를 지은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신 것처럼,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 하시러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신 것처럼 다 포기하고 싶고 너무 못난 모습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을 가지고, 말씀으로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말씀을 보고 은혜에 잠기는 것이 되지 않는 날에 하나님께서 은혜의 마중물을 밀어 넣으셔서 강권적으로 은혜를 공급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다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내가 넘어져 있을 때 누군가 손을 내밀면 나도 그 누군가의 팔을 잡아당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말씀의 은혜를 주시는 때가 마지막 필사적으로 힘을 내어 말씀의 은혜를 좇아야 하는 순간입니다. 그 때 어둠에 싸인 일상에 하나님의 등불로 빛이 임하고 삶이 회복되는 역사가 시작 될 것입니다. 말씀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 시작됩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는 말씀에서 멀어질 때 어둠의 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 어둠의 시기에 스며들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공급하고자 하셔서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말씀의 백성입니다. 우리의 삶에 말씀이 희귀한 시기가 지나고 말씀의 능력이 충만한 때가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