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로서 경주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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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 views인내로서 경주를 하라 히브리서 12장 1~2절 경주와 같은 믿음 생활에 있어서 인내함은 필수이다. 1) 우리 앞의 믿음의 선배들을 돌아보며 인내하라 2) 믿음의 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며 인내하라 3) 하나님 보좌 우편을 바라보며 인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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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1. 서론
1. 서론
2022년 새해가 되었다고 흥분해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월입니다. 어렸을 때에는 정말 시간이 늦게 가는 것 같아서 답답했는데 이제 저도 반백년이 접어들다 보니까 왜 이리 시간이 빨리 가는 지, 또한 아이들은 왜 이리 빨리 커가는 지, 아쉽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저도 빨리 늙어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벌써 5월, 제가 올 해를 시작하면서 열매 맺는 교회가 되자는 표어를 가지고 믿음의 열매부터 시작을 해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대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벌써 사랑과 희락과 화평 세 가지 열매가 끝이 나오 오늘부터 4번째 열매인 인내, 즉 오래 참음의 열매에 대해서 설교를 시작하니 말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가 2년 넘게 코로나 19 상황 속에서 정말 오래 참고 있었는데 이제 정말로 일상으로 돌아가는 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에서는 내일부터 실외 마스크 착용 규제를 해제한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그동안 마스크 쓰고 다니는 것이 정말 불편했는데 이제 좀 편해질 것 같습니다. 사실 안경 안쓰신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안경 쓰는 사람의 경우에 마스크를 쓰고 밖에를 돌아다니다 보면 안경에 서리가 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물론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스크를 벗는다 하더라도 사람을 접하게 될 때에는 가급적 쓰는 것이 아직은 좋을 것 같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은 것은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자유를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게다가 오늘 부터는 교회에서 식사도 하고, 또 오후 찬양 예배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로 좋은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번 코로나 19의 2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보면 오늘 여러분들에게 설교할 이 오래 참음이라는 열매를 맺지 않고는 못 버틸 그러한 시간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그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사실 이 세상 가운데에서 더 인내해야 하는데 오늘 본문을 통해 어떻게 우리가 인내를 할 것인지, 특별히 인내하는 우리의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배경을 먼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신약성경을 보시면 자주 운동시합과 관련해서 우리의 믿음 생활을 비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지만 고린도전서 9장에서도 운동장에서 달음질 하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실상 이런 비유가 가능한 이유는 당시 사회 문화적 배경과 관련이 있는데 신약 성경이 쓰여지고, 그것을 각 교회에서 읽혀질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레코로만 시대입니다. 여러분 그레코로만이라는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시지요? 어디서 들어 보셨나요? 레스링에 보면 그레코로망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보통 그레꼬로망이라고 발음을 하시는데 정확하게는 그레코로만이고 그것은 그리스와 로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그레코로만, 그리스 로마라고 하는가 하면 바로 신약 성경의 시대가 바로 그리스 로마 시대인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 로마가 근동 지역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이전에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전 지역이 통일 되었고, 그리고 그리스의 높은 문화가 전세계를 휩쓸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로마가 그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을 때에 로마는 유행된 그리스의 문화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가 전세계를 지배했음에도 당시에 세계 공통어는 로마어인 이탈리아어가 아니라 그리스어였습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도 그리스 어로 기록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리스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무엇보다도 그리스 하면 올림픽을 처음 시작한 곳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날 올림픽을 할 때에 성화봉송을 하면 그리스에서부터 불을 받아서 올림픽하는 나라에 그 불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만큰 당시 그리스 인들은 운동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리스가 정복한 나라들에 콜로세움, 즉 운동 경기장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을 모아서 운동경기, 당시에는 주로 육상 경기를 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성경 기자들은 믿음의 생활에 대해서 무엇을 통해서 쉽게 알려 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당시에 유행하는 그러한 운동 경기를 비유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 운동 경기와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인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서 운동 경기와 유사한 여러분들의 믿음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시고, 특별히 운동 경기에서 가장 필요한 열매인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많이 맺으시어 우리의 목표인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실족하지 않으시기를 소원합니다.
2. 본론
2. 본론
1) 우리 앞의 믿음의 선배들을 돌아보며 인내하라
1) 우리 앞의 믿음의 선배들을 돌아보며 인내하라
자 먼저 첫 번째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시면 우리의 앞의 믿음의 선배들을 돌아보며 인내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이 히브리서 12장인데 제일 처음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러므로 라는 말은 앞의 말에 대한 결론을 나타내는 접속사입니다. 즉 그 앞에 무슨 내용이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이것이다라고 결론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앞의 부분을 알아야 하는데, 그 앞장인 11장을 보시면 그것을 우리가 보통 믿음장이라고 말을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믿음에 대해서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부터는 그 실예들을 보여주는데 가인의 동생 아벨로부터 시작해서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등 구약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위인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신약에 있어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본 여자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핍박과 환난 가운데에서도 끝까지 지지 않는 그래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불리는 그런 믿음의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그 모든 사람들이 있는데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어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허다한 증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그러한 믿음의 선배들이 바로 우리를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전제를 가지고 보면 단지 성경에 언급한 그러한 신앙의 선배들 뿐만 아니라 한국 선교 초기에 환난과 핍박을 견디어 냈던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 일제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가 순교를 당한 수많은 목사님들, 그런 모든 신앙의 선배들이 바로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은 운동 시합으로 친다면 운동장을 둘러싼 수많은 관중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중들은 운동경기를 보기 위해서 운동장을 옵니다. 그러나 그것 뿐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팀을, 운동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서도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대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서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춤도 추고, 소리도 지르고 박수도 치고 하는 것입니다. 작년에 코로나로 인해서 운동 시합을 무관중으로 많이들 했는데 선수 입장에서 보면 무관중으로 시합을 하는 것이 참 힘이 듭니다. 누군가 봐주고, 자기를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힘을 내는데 아무도 없는 텅빈 관중석을 보면 선수들이 힘이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관중들이 있는 것이 엄청난 힘인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경주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구름 같이 허다하게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우리를 응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단지 상징적으로, 상상해서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이 편한 것이 아니냐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영원한 생명을 약속 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천국에서 또한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냥 가상의 허구적인 존재들, 우리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그러한 존재들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로 우리의 믿음의 경주를 응원하며 지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들의 믿음의 인생길, 결코 여러분 혼자가 아님을 잊지 마시고 여러분들을 응원하며, 격려하며 돌보는 여러분들의 믿음의 선배들을 바라보며 승리하시기를 소원합니다.
2) 믿음의 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며 인내하라
2) 믿음의 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며 인내하라
자 두 번째로 또한 오늘 본문에서 보시면 믿음의 주여,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앞에 우리를 위로하며 응원하고 있는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운동을 하는 선수들에게 있어서 관중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코치, 감독입니다. 링에서 1라운드 3분의 경기를 하고 나면 잠시 쉬는 1분 간의 시간 가장 바쁜 것이 바로 감독과 코치입니다. 선수를 앉혀 놓고 릴렉스 할 수 있도록 해 주고, 뿐만 아니라 이전 라운드의 문제점들을 가르쳐 주고 다음 라운드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농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략을 짜고 그것을 선수들에게 가르쳐 주어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 2002년 월드컵 때에 열심히 뛰어 4강 신화를 이끌었던 선수들도 있었지만 누구보다도 수훈을 세운 사람이라고 한다면 히딩크 감독이었을 것입니다. 누가 감독의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 시합의 승패가 달려 있다고 할 만큼 감독의 위치는 중요한 자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음의 경주에 있어서도 감독이 있는데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유능한 감독인가 하니 그냥 말로만 지시하는 그런 감독이 아니라 친히 본을 보여 주신 감독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시면 예수님에 대해서 소개를 할 때에 첫 번째로 믿음이 주인이시고, 두 번째 우리를 온전하게 하신 분이시고, 세 번째가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신 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인이시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우리가 이 경기를 승리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인데 예수님이 이 경기의 주관자라는 것입니다.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시고, 주관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감독이시고 코치이신데 누가 과연 우리를 대적할 수가 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분으로 우리의 실력이 부족하고, 능력이 부족하지만 그것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시는, 즉 우리를 키워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요즘에 있어서 정말 유능한 감독이라고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이 한명 더 있는데 바로 박항서 감독입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유능한 감독인가 하면 박항서 감독이 맡기 전만해서 베트남은 아시아에서 축구 약체로 분류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랬던 베트남이 박항서 감독이 맡고 나면서 우승을 하기 시작하는데 무패 행진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박항서 메직이라는 말도 나올 정도였습니다. 결국 약체였던 베트남을 축구 강국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감독의 역량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더 놀아우신 감독으로 우리를 온전하게 만드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가기만하면 이 믿음의 경기의 우승은 따논 당산인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러한 유능한 감독을 믿고 인내하며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실 박항서 감독의 말을 믿고 그 선수들이 잘 따라 주었기 때문에 박학서 신화가 생긴 것이지 그냥 거저 생긴 것은 아닌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을 바라보며 인내하며 예수님을 따라갈 때에 이 믿음의 경주를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히딩크보다도, 박항서 보다도 더 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며 인내하며 따라감을 통해 승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3) 하나님 보좌 우편을 바라보며 인내하라
3) 하나님 보좌 우편을 바라보며 인내하라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가 이 믿음의 경주를 인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을 바라볼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보여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참고 인내하시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입니다. 모든 스포츠 경기를 보시면 골이 있습니다. 축구에 보시면 골대가 있습니다. 골이라는 말은 영어로 고올이라는 말로 목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경기에 목표가 있는 것입니다. 달리기 선수들은 골라인, 즉 목표가 있는 라인까지 죽을 힘을 다해서 달립니다. 축구, 농구 다 골대를 향해 공을 차고, 던집니다. 이와 같이 목표가 있는 것입니다. 국가 대표 선수들에게 이 골이 무엇일까요? 바로 금메달인 것입니다. 이들은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그렇게 인내하며 열심히 연습하고 시합 때에도 죽을 힘을 다해서 경기에 임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인내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확실한 골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마라톤을 하는데 골라인이 없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무리 달려도 결승점이 없는 그런 경기라고 한다면 누가 과연 그것을 하겠습니까? 결승점이 있으니까 목표가 있으니까, 끝이 있으니까 그것을 바라보고 지금 힘들고 죽겠어도 참고 가는거 아닙니까? 결국 우리의 믿음의 경주도 그 결승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보좌 우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 인생의 모든 것이 끝이 나고,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영생 복락의 자리인 것입니다. 바로 복의 근원아신 하나님의 보좌의 우편인 것입니다. 그곳은 마치 올림픽 경기가 끝이 나고 시상대에서 1등과 2등과 3등이 서서 기다리는 메달이 오기를 기다리는 바로 그러한 자리와 같습니다. 바로 그곳에 설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지금 이 믿음의 경주를 인내하는 여러분들이라는 것입니다.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한명, 은메달 한명, 동메달 한명이지만 그러나 이 믿음의 경주에서는 인내하고 버틴 모든 사람들에게 금메달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것을 인내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의 보좌 우편을 바라보시고 지금 현재의 어려움, 환난과 핍박을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아는 스테반 집사의 경우 유대인들에게 돌을 맞아 가며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스테반 집사가 웃으며 그것을 맞을 수 있었던 것이 그의 눈에는 하늘이 열리며 하늘 보좌에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가 자기의 자리가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주님의 영광의 자리를 바라보시고 지금 여러분들의 믿음의 경주의 자리를 인내하시고, 결국 승리하시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3. 결론
3. 결론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 앞에 있는 이 믿음의 길은 마치 경주와도 같습니다. 운동 시합과도 같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그렇게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상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경주가 아닙니다. 성경은 이것을 또 다른 비유로 말을 하고 있는데 영적 전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지 이것을 경주라는 말로 사용을 한다고 하면 이것은 죽음의 경주, 즉 죽음의 레이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나오는 승패가 갈라지는 것은 결국 생명과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이 생에서의 삶과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냐, 영원한 죽음이냐의 갈림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 경주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고, 이 경주에서 패배하는 사람은 영원한 죽음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이 믿음의 경주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냥 단순하게 더 많은 골을 넣어서 스코아를 많이 받으면 끝이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우리들의 유능한 감독,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인내한다면 여러분들은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여러분들 주위에 여러분들을 응원하고 있는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이 믿음의 경주들을 다 겪은 사람들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여러분들을 지금 응원하고 있고, 여러분들을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전쟁과도 같은 죽음의 레이스를 하고 잇는 상황이지만 이 경기는 질래야 질 수가 없는 그런 경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래 겁을 먹고는 포기해 버린다면, 지금 있는 어려움에 겁을 먹고, 환난에 겁을 먹고 포기해 버린다면 그것과 같이 어리석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대적 사탄 마귀는 그러한 전략을 짜고 있습니다. 너는 할 수 없어, 니가 뭔데, 어떻게 니가 할 수 있겠니. 등등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려고 부정적인 생각을 심어 줍니다. 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습니다. 우리로 인내하지 못하도록 공포심을 심어 줍니다. 따라서 그런 것들에 휘둘리다 보면 자칫 이 경기에서 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결국 인내, 오래 참음인 것입니다. 그런 유혹들에 눈감고, 우리를 응원하는 믿음의 선배들을 바라보고, 우리를 온전하게 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우리 앞에 있는 하늘 영광을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인내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들이 가고 있는 이 믿음의 길이 믿음의 경주인 것을 잊지 마시고 인내의 열매를 많이 맺으시는, 그것을 통해 승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