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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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사랑하는 고등부 친구들, 시험기간 너무 고생 많죠~ 능인은 지난주 목요일에 끝났나요? 다른 친구은는 진행 중이거나 다음주부터 시작되거나 그렇죠~ 여러분은 시험기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모르겠네요~
여러분은 시험기간에 제일 필요한 게 뭘까 계속 생각해봤어요~ 뭐든 막 주고 싶더라구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문득 드는거예요~
내가 가만히 있는게 도와주는 걸수도 있겠다~ 시험기간에 머리를 좀 식혀주고 환기를 시켜줘야 공부가 더 잘 되는 친구도 있고, 시험 치자마자 곧바로 내일 준비에 돌입해야 하는 친구들도 있죠~
여려분이 시험을 잘 치기 위해서 필요한게 뭘까요? 왜 시험을 쳐야 하는지, 왜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동기’. 그 동기가 필요하지 않겠어요?
본론
본론
여러분을 공부하게 만드는 그 동기는 무엇입니까? ‘전도사님, 학생이니까 그냥 하는거죠. 제가 직장인이면 공부하겠어요?’ 이렇게 말하기엔, ‘일’을 위해, 진급을 위해, 이직을 위해 공부하는 직장인들이 너무 많아요 여러분. 어쩌면 공부는 어른이 되어도 끊임없이 해야 하는 걸수도 있습니다.
전도사님이 말하고 싶은건 우리는 매 순간마다 인생의 동기를 찾아야 한다는 거예요. 왜 사는지 그 이유를 항상 분명히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왜 사는지 알기 위해선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학생이라는 걸 아니까 공부하는 거잖아요?
그럼, 여러분은 왜 사나요? 왜 사는지 알기 여러분이 누구인지 알아야 된다고 했죠.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원숭이가 진화한 사람입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입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사람이죠.
사람은 너무 너무 존귀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은 사람과 동물을 창조하시는데, 사람에게는 인생의 창문을 하나씩 선물해주셨는데, 동물에게는 그 창문을 주지 않으셨어요.
사람은 인생의 창문을 통해 자기 인생을 바라볼 수 있는 복을 누려요.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그 창문의 사이즈가 달라요. 스케일이 달라요.
앞에 사진을 보세요. 누군가가 좁은 직사각형의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죠. 이 시선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시선일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의 시선일까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창은 이렇게 좁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인생이 얼마나 드넓은지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미래가 얼마나 넓고 아름다운지 알고 계시냔 말입니다. 여러분을 만드신 분이 누구시죠? 하나님이시죠. 온 우주를 만드시고, 바다와 하늘을 구분 지으시고, 비를 내리게도 하셨다가 그치게도 하셨다가 천둥번개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만드셨어요. 그러니 여러분의 인생은 넓고 심히 기묘하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이 사진처럼 아주 작고 좁은 창으로 바라보고 있진 않으세요?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그냥 내 앞가림만 하며 살자.’ ‘일단 대학에만 입학하자. 대학생이 된 내가 그때 알아서 하겠지.’ 이렇게 좁은 생각에 갇혀 살고 싶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은 저 바다보다 더 깊다니까요. 저 하늘보다 더 높다니까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지으셨다니까요. 우리 오늘 본문 13절을 읽어볼게요. 시작.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내장을 만드셨어요. 우리의 심장과 창자를 정밀하게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세요. 우리를 엄마 뱃속으로 보내주신 분도 하나님이세요.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세요.
심장의 기능(수축과 이완, 산소와 영양분을 좌심실을 통해 각 신체로 보내고 우심실을 통해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받아들이고 폐로 순환시켜 폐가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교환해준다.)
창자의 기능(하부식도괄약근)
이 정교하고 놀라운 인간의 신체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지을 수 있어요. 그래서 다윗은 14절에서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 ‘기묘하심’이라는 말은 두려움이라는 뜻도 가져요. 사람을 이렇게 정교하고 아름답게 지으실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해 거룩한 두려움이 생기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 되심을 깨닫게 되면 저절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되는거죠.
여러분, 우리 14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다윗은 자신을 아주 놀랍게 지으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기이하다고 말하고 있어요. ‘기이하다’라는 말은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놀라움” 이라는 뜻도 가집니다.
다윗을 통해 행하신 하나님의 일이 어떠했나요 여러분? 참으로 기이했죠.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놀라운 일들이 수없이 펼쳐졌습니다. (다윗의 연대기를 읊어준다.)
사랑하는 고등부 가족 여러분. 하나님은 다윗을 향한 목적이 있으셨기에 기이한 일을 보이시면서 그를 지키셨던 거예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한 목적도 가지고 계세요.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향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는 걸 믿으시나요? 알고 계시나요? 그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17절과 1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생각은 히브리어로 ‘레아’인데, ‘목적, 의도’라는 뜻도 가지고 있어요.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정말 보배로우세요. 여러분의 삶을 보배롭고 아름답게 이끌어 가실 거예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 그 수가 모래보다 많다고 고백하고 있어요. 여러분, 이 모래 한 알 한 알이 다 뭔 줄 아세요? 바로 예배입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과 목적은 예배예요.
여러분, 예배란 무엇이라고 했죠? “하나님, 저는 할 수 없어요. 제 인생 제 힘으론 안 되네요. 하지만, 하나님. 하나님은 제 인생 기묘하고도 기이하게 이끌어 가실 수 있잖아요. 저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고백하는 순간이 예배입니다.
이 고백을 하는 모든 장소가 예배의 장소입니다 여러분. 이 고등부 예배실만 예배의 장소가 아니라, 여러분의 집도 예배의 장소입니다. 다니는 학교도 예배의 장소입니다. “내가 하는 이 공부, 나의 연약함만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주님. 하지만 나를 지으시고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은 하실 수 있잖아요. 저의 학업과 진학을 이끌어 주실 줄 믿습니다.” 학교에서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 학교에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고등부 예배를 왜 드리러 나온거예요? 부모님이 가라고 해서 왔나요? 목자님이 나오라고 해서 나왔나요? 여러분의 인생, 여러분의 힘으로 안 되니까 하나님께 여러분 인생 다 맡기려고 나온거예요. 그게 예배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지으신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 험난한 세상 가운데 던져 놓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꼬옥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결론
사랑하는 고등부 가족 여러분. 따라해볼까요?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나는 그 하나님을 영원히 예배합니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