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어지지 않는 말씀으로 드러나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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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오늘은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무엇을 위해 역사하는지에 대해 나눠보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드러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하나님께 말씀을 받고난 후 아침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제 막 계시를 처음 받아 본 선지자였고 어린아이였습니다. 사무엘은 걸음마를 뗄 시기부터 성막에서 자랐고 엘리 대제상을 부모님처럼 스승으로 모시고 살았습니다. 아직 엘리를 더 의지하며 살고 싶고 엘리가 심판 받는다고 하는 사실이 두렵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아직 사무엘이 선지자로 활동하기에 나이가 너무 어리고 선지자로서의 담력도 약하고 준비가 덜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기준에서 준비 되었을 때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때에 하나님의 때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사람의 때를 맞춘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아침에 일어나서 성막의 문을 여는 업무를 하기까지 두려워서 엘리에게 이 사실을 전달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면 전해야 하는데 갑자기 생긴 자신의 선지자 직무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엘리가 사무엘을 부릅니다. 17절입니다.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엘 리가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요청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숨기지 말고 듣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또 엘리가 무엇이라 이야기합니까?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엘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100%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더함이 없고 소실이 없는 순수한 말씀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선지자는 저주 받을 것이라고 사무엘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선지자가 순수한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을 때 저주를 받는다는 것에는 하나님의 의도와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말씀 있는 그대로가 숨겨지지 않고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엘 리가 저주 내린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이 순수한 하나님 말씀 그대로 다 드러내길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18절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했습니다. 엘리는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회개의 기미 없이 처벌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19절에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사무엘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비슷합니다.
엘리가 사무엘에게 요청한 것처럼, 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전체가 숨겨지는 내용이 하나도 없이 드러나야 합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단 한 글자도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리숙한 아이의 입안에 있을지라도 반드시 드러나집니다. 아직 자신의 직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초보 선지자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다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뤄지지 않고 땅에 떨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증명) 우리는 성경이 기록되어 우리에게까지 남은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숨겨짐 없이 다 드러났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성경을 말씀을 없애고 불태우려는 시도가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은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우리에게 남았습니다. 중세시대에는 라틴어라는 언어의 감옥에 갇혀서 성직자들만 성경을 읽고 연구했었지만 위클리프나 마틴루터같은 위대한 번역자들이 언어의 감옥에 있는 성경을 해방시켜 모든 이가 성경을 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성경은 갇힘이 없고 막힘이 없이 반드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적용) 이렇게 성경의 특성은 폐쇄적이지 않고 개방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죄인인 우리가 이 성경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를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 말씀을 자꾸 드러나고 싶어하는데 우리가 그 드러난 성경 말씀을 읽으려 하지 않고 자꾸 덮어두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일상 가운데 분명히 이 부분은 말씀이 명령해서 하라고 하는 부분인데 하지 않으려고 하고 분명히 이 부분은 말씀이 하지 말라고 하는 부분인데 우리의 욕망따라 하고자 하지는 않습니까? 성경이 우리 삶을 바른 길로 이끌려고 하는데 우리가 성경에 목줄을 채우고 재갈을 물려서 성경을 나의 욕망 안에 가두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말씀은 절대 우리 욕망에 길들여지지 않습니다. 말씀은 반드시 드러납니다. 오히려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욕망을 길들입니다. 중세시대에만 말씀이 갇히고 탄압 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도 얼마든지 차가운 무관심과 혹은 불타는 욕망으로 말씀을 가두고 탄압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합니다. 말씀은 반드시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를 하시든지 어떻게든 우리를 깨우쳐서 말씀이 드러나게 하십니다. 엘리 제사장이 2장에 나타난 선지자의 말을 무시해도 결국 사무엘을 통해 말씀이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저와 성도님들은 보다 능동적으로 말씀이 드러나서 우리를 주장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2- 드러난 말씀은 하나님을 나타낸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드러난 말씀이 하나님을 나타낸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나야 하는 목적은 말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삼위 하나님이 드러나는데에 있습니다. 20절에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선지자가 누구의 선지자라고 말씀합니까? 여호와의 선지자라고 말씀합니다. 선지자는 일종의 메신저고 계시의 중개자 역할을 합니다. 선지자는 말씀의 근원이 없으면 유명무실한 존재입니다. 어떤 존재의 말을 전달하느냐가 선지자에게 중요합니다. 본문에서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움을 받았다고 나옵니다. 선지자가 있고 그다음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있고 선지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고 하나님을 드러내시고 그 드러내신 것을 통해 그분의 백성들과 소통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여호와의 선지자가 된 것,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은 이제 숨겨진 사실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이 아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은 이제 사무엘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21절에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영어 성경은 원어의 다른 뜻에 주목해서 이 다시 나타난다는 말 대신에 계속해서 나타난다는 의미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두 의미다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태 불성실한 엘리와 그 아들들에게는 계시가 임하지 않았다가 다시 사무엘에게 계시가 임하고 다시 사무엘을 통해 나타나셨다는 의미도 될 수 있고, 혹은 성막에 불성실한 제사장만 있는 시대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그분을 나타나신다는 의미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1절 본문은 결정적으로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십니다. 바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신다고 말씀합니다. 나타낸다는 히브리어 동사는 갈라라고 하는 동사입니다. 여기 나타낸다고 할 때는 감춰져 있는 것이 드러난다고 하는 뜻입니다. 우리의 죄성으로 인해 하나님은 어두운 우리 눈에 감춰져 있는 존재셨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빛으로 삼아서 우리는 감춰져 있는 것 같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치 베일에 숨겨져 있는 것이 드러나듯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나타난다라고 하는 이 히브리어 ‘갈라’는 뜻이 굉장히 많은 단어인데 ‘사로잡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위에 계신 존재이며 모든 물리적 영적인 한계를 초월하신 분이 우리에게 사로잡혀주셨습니다. 말씀이라는 수단 안에서 우리에게 사로잡혀 주셔서 우리와 관계를 맺어주시고 우리와 교제해주셨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놀아달라고 떼를 쓰면 어른이 그걸 거절할 힘도 있고 거절할 명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사로잡혀서 아이와 함께 놀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말씀 안에서 말씀에 사로잡혀 주셔서 우리 또한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적용) 원래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는 것은 선지자 같은 이들만 할 수 있었습니다. 선지자들이 꿈을 꾸거나 환상을 보거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서 하나님께 몇 마디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성령이 충만한 시대가 왔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 하나님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기독교 방송을 보고 갑자기 회심하도록 하는 그런 일도 충분히 일으키십니다. 오늘 교회에 처음 와서 설교를 들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고 가슴이 뛰며 말씀에 반응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에는 처음 말씀을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반응이 그렇게 강렬하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고 이해하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도록 훈련을 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지속적으로 말씀에 노출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게 정말 귀찮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약시대에는 특별한 사람 몇몇이 선택을 받고 고도의 훈련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극히 제한적으로 받았습니다. 성경 기준으로 한사람이 몇 구절, 많아야 성경 한 권 분량정도 듣고 이해했습니다. 때론 여기에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치명적인 부담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번역된 성경을 가지고 굉장히 체계적으로 성경을 듣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십명의 선지자들이 일평생 받았던 계시를 수많은 정교한 해석의 틀을 가지고 체게적이고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일입니다. 불과 오백년 전만해도 교회 한 군데 당 성경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저만해도 핸드폰에 성경 하나 아이패드에 하나 책으로도 몇 권씩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훈련될 수 있는 최적의 시대입니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조금만 노력하고 훈련하면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만나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말씀에 지속적으로 노출 될 때, 말씀에 대한 깊이가 더할 때 말씀 안에서 내 현실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경이 너무 현실적이고 입체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 드러난 말씀의 목적은 바로 삼위 하나님을 드러내고 경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강하게 드러나는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교제하는 기쁨 누리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