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08새벽] 몸의 부활을 사모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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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487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본문 고전15:50-58
우리에게 독생하신 아들을 내어주시어 영원한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분의 피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았고, 그분이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심으로 우리도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잠시 이 땅을 나그네와 같이 살아가면서도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게 하시고, 그 날 우리에게 이루어질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사모하며 살아가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의 모든 부분이 다 그러하겠지만, 특별히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본문의 말씀은 더욱 실제적으로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최종적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를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은 무엇에 대해 다루고 있는가? ‘몸의 부활’이다. 여러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마음 속으로 대답해 보라. 여러분은 정말로 몸의 부활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는가? 지금 나의 몸, 연약하고, 유한하고, 무능하고, 병약하며, 노쇠해가는 이 몸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영광스러운 그 부활의 몸을 정말로 소망하며 살고 있는가? 우리가 매주 예배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마지막 부분처럼, ‘몸의 부활과 영생'을 정말로 확신하며 그 순간을 소망하며 살아가는가?
설교 초두부터 이런 무거운 질문을 하는 이유가 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마치 우리 몸이 죽어 없어지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으며 이 땅을 살아가다가 결국 우리의 노쇠한 몸은 죽어 이 땅에서 썩어 사라지게 되고, 우리의 영혼만 저 천국으로 올려져서 영원토록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제가 방금 말씀드렸지만, 우리의 영혼이 어디에 있게 된다고 말씀드렸는가? 저 ‘천국' 이라고 말씀드렸지만 엄밀하게는 잘못된 표현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기 직전에 한편 강도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에서 보듯이 예수님은 회심한 자가 죽게 되면 그 영혼이 천국이 아닌 낙원에 있게 된다고 말씀한다. 바울은 이 낙원을 가리켜 ‘셋째 하늘’ 이라고도 표현했다. 그래서 성도가 죽고 그 영혼이 들어가는 곳을 ‘낙원’ 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다.
지금 낙원에 있는 영혼들은 아직 몸이 없는 상태이다. 이 땅에서보다 훨씬 더 영광스러운 상태임은 분명하지만, 아직 부활의 몸을 입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신학적 용어로 이를 ‘중간상태’ 라고 부른다. 중간상태에 있는 영혼들은 낙원에서 영원토록 머무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다가 낙원에 들어가는 것으로 우리의 구원의 완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남아있는가? 가장 마지막 단계이다. 생각해보라. 사도신경이 고백하는 바와 같이 우리에게는 ‘몸의 부활과 영생'이 최종적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몸의 부활'이 어디에서 이루어지는 것인가? 다시 말씀드리지만 낙원에서는 몸의 부활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부활이 이루어진다는 것인가? 오늘 본문 50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 몸의 부활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하나님 나라’가 어디인가? 하나님 나라를 한자로 옮긴 것이 천국이다. 천국, 하나님 나라는 낙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저와 여러분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될 것을 말씀하시지 않는가.
만일 지금 이 표현들이 여러분들에게 혼란스럽게 들린다면, 그간 여러분들의 쌓아왔던 천국개념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라고 기도한다.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라는 기도이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바와 같이 하나님 나라는 오는 것이다. 어디에 오는 것인가? 바로 이 땅에.
한번 따라해 주시겠는가? ‘낙원은 가는 것이고, 천국은 오는 것이다' 이 한마디를 꼭 마음에 새기시길 바란다. 저와 여러분은 장차 이 땅 가운데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위대한 존재이다. 그런데 본문 50절 말씀과 같이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다. 혈과 육이란 썩어질 육체를 가진 연약한 인간이라는 뜻이다. 즉 지금 우리의 상태로는 장차 이 땅에 완성될 천국을 이어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몸의 최종적 부활이 이 땅에서 완성될 천국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이 놀라운 사건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는 그 날에 모두에게 일어날 것이다. 51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마지막 나팔'이 울리며 예수께서 재림하실 그 날이 되면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된다고 말씀한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구약에 명시적으로 나오지 않는 한 비밀을 알려주고 있다. 즉,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그 날에도 육신의 죽음을 맛보지 않고 그대로 살아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이 말씀하시는 부활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일어난다. 먼저는 재림 전까지 지구상에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이 땅에 묻혀 있는 그 육신이 죽은 상태에서 영광스럽게 부활한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재림때까지 살아있는 자들의 육신은 비록 죽음을 맛보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영광스러운 부활체로 변화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바울은 53절에서 조금 더 쉬운 말로 표현한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라' 이 구절에서 ‘썩을 것'과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대조하고 있고, 또한 ‘죽을 것’ 과 ‘죽지 아니함'을 서로 대조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54절에서 그는 주의 재림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더 구체적으로 밝힌다. 후반부를 보면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이 말씀은 이미 구약에서 이사야를 통해 예언하신 대로, 재림의 날이 오면 모든 인간을 집어삼켰던 사망이 오히려 승리에게 집어삼킴을 당할 것이다. 여러분, 사망이 어떤 것인가? 모든 이들이 두려워하는 인생의 결말이다. 그런데 그 무시무시한 사망조차 우리 몸이 부활하게 될 그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이지 않는가?
계속해서 바울은 호세아의 말슴을 인용하며 부활에 관한 교리를 가르친다. 본문 55절을 함께 읽어보자.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 다시 말해서 부활의 때가 되면 사망은 더이상 우리에게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사망이 더이상 우리에게 독침을 쏠 수 없다는 것이다. 56절 말씀에서 보듯, 사망은 죄라는 독침을 우리에게 놓는다. 그래서 죄의 독침을 맞은 우리 인간은 사망의 독에 감염되어 있다. 이 때문에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또 한 마디를 덧붙인다.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다시 말해 죄가 힘을 가지는 것은 율법 때문이라는 것이다. 율법 자체는 거룩하고 선한 것이지만, 율법의 정죄하는 기능 때문에 죄가 우리를 대하여 무서운 힘을 행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죄와 사망으로 인헤 결코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왜그러한가? 바로 57절 말씀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하시고 율법의 마침이 되셔서 저와 여러분을 율법의 저주로부터 해방하셨다.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는 결코 절망하지 않고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설교 서두에서 드렸던 질문을 다시 한번 드린다. 진정 여러분은 몸의 부활을 기대하고 있는가? 우리 영혼이 낙원에서 안식을 누리다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에 이 땅으로 다시 내려와 우리의 부활의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될 그 날을 소망하고 있는가? 이 땅에서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 순식간에 일어나게 될 영광스러운 부활사건을 정말로 간절히 원하고 있는가?
정말 여러분이 그러하다면, 58절 말씀을 이 새벽의 시간에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시길 바란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비록 이 땅을 나그네와 같이 살아가며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이런 저런 손해를 입고, 여러 희생해야 할 부분들이 있으며, 때로 괴롭고 고통스러운 상황들이 있을지라도, 주님께서는 주님의 일을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왜그러한가? 우리의 삶이 지금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한한 이 땅에서의 삶, 비참하고 모자란 이 땅에서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삶, 삼위하나님과 모든 성도들이 함께 누릴 무한한 삶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잘 섬기기 위해 참고 인내하는 우리의 모든 수고, 주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 희생하고 괴로움을 감수하며 흔들리지 않는 우리의 모든 신앙의 행위들이 결국 장차 오게 될 천국에 기여하게 될 것이고, 이 모든 수고에 주님께서 영광의 면류관으로, 거룩한 상급으로 우리에게 갚아주실 것이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붙잡고, 부활의 소망으로 거룩한 주일을 보내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