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08 내 마음에 말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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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1:31–34 (NKRV)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마음이 텅텅 비면 딴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마음을 얼마나 영적으로 채우느냐가 인생 승리의 관건입니다. 마음이 비면 헛된 생각이 자꾸 들어와서 여러분을 괴롭히는 거에요.
자꾸 쓸데 없는 생각이 들어온다면 여러분은 말씀 훈련이 안 된 것입니다.
말씀이 없기 때문에 영혼이 텅텅 빈 것입니다.
말씀이 있어야 해요.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을 채우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삶이 달라져요. 목적이 뚜렷해집니다.
성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사람을 부르십니다.
‘나를 위해 일해주겠니?’ 하면서,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런데, 쓸 사람이 없어요.
마음이 텅텅 비어서, 시도때도 없이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을 사용할 수는 없죠.
마음이 채워져야 합니다. 마음이 단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편하게 마음껏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교회에서도 기도를 안 합니다.
기도가 무엇인지도 잘 모릅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구원받지 않았다는 거죠.
너희가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무슨 말입니까?
천국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새로운 영적 출생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교회 안에도 이런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러니 사명은 커녕, 일상조차도 견디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에 예레미야라는 선지자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1장에서 예레미야를 부르셨습니다.
예레미야야 내가 너를 잘 알고 있다. 나는 니가 태어나기 전부터 너를 알았다. 그리고 니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너를 내것으로 구별하였다. 왜냐? 너를 세계열방의 선지자로 세우기 위해서이다.
이런 믿음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잘 알고 계신다는 믿음이 없습니다. 그러니 구원받지 않은 거지요. 구원받은 사람은 본능적으로 압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신다. 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압니다.
이런 믿음이 있는 사람은 결코 흔들리지 않아요. 결코 딴 길로 샐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교육이 무너졌습니다.
교회교육 뿐만 아니라 가정교육도 무너졌지요. 여러분이 왜 부모님 말을 듣지 않는 줄 아십니까?
부모님이 여러분의 권위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여러분에게 영향력 있는 리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부모님의 말이 들어오겠습니까? 안 들어오죠.
오늘날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지도자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목사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목사의 말도 믿지 않습니다. 이런 시대에 목회자가 되는 거 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르셨으니 순종해야지요.
목사가 지도자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게 오늘날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너희는 나의 몸이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조차 교회를 믿고 따르지 않으니 무슨 구원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3. 예레미야도 그런 시대에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말을 해도 전혀 듣지 않는 시대, 설교를 전혀 듣지 않는 시대에 사명을 받았습니다.
내가 너를 태어나기 전부터 알았다. 나는 너를 태어나기 전부터 나의 것으로 구별하였다. 너는 내 것이다. 나는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운다.
이것이 예레미야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러자 예레미야가 굉장히 기뻐했을까요?
너무 슬픕니다. 하나님 저는 어린 아이와 같아서 말도 잘 못하고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저를 선택하지 마십시오. 저는 못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는 그들 때문에 염려하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겠다.
장차 너는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을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또 반대로 건설하고 심는 사역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는 완전히 뽑고 파괴하고 파멸시키고 넘어뜨리는 일을 하겠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나라는 건설하고 심는 사역을 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이런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예레미야와 똑같아요.
전도해도 듣지 않습니다. 말씀을 들려줘도 믿지 않습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어요. 우리가 전도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을 잘해서? 아닙니다.
하나님이 택해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여 세우셨기에, 그저 순종하는 거죠.
여러분, 반기독교라는 말 들어봤습니까?
기독교를 반대한다. 교회를 반대한다. 성경책을 거부한다. 이런 게 반기독교죠.
오늘날 한국이 바로 반기독교 주의자가 넘치는 시대입니다.
학교에서 교사 선생님들도 반기독교 주의자들이 있을 겁니다.
이런 사람들 밑에서 배우면 당연히 신앙의 의문이 들죠.
종교를 미신취급하고, 천지창조니 부활이니, 노아의 홍수니 이런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을 정신병자 취급하는 게 요즘 세상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지 않고, 교회도 다니려고 하지 않죠.
이 사람들은 눈이 먼 사람들입니다. 눈이 멀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손으로 만든 가짜 우상들을 숭배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이 뭡니까? 인간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뛰어난 사람, 능력있는 사람, 1등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숭배하거나,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낸 여러가지 기술이나 업적을 찬양하기에 바쁩니다.
교회에서만 찬양부르는 거 아닙니다.
교회에서만 예배드리는 거 아닙니다.
세상에서도 찬양 부르고 예배 드립니다.
그게 다른 말로 하면 가짜 신, 우상 숭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상숭배하는 사람의 특징이 뭐에요?
평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텅텅 비어서 헛된 생각들만 날마다 한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성경에서는 ‘헤벨’이라고 부르는데, 허무하다, 헛되다 라는 뜻입니다.
허무하고, 헛된 것을 숭배하니까, 당연히 그 마음도 허무하고, 헛된 것이죠.
여러분, 사람이 허무함을 느끼고, 헛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을 숭배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그 외에 다른 답은 없어요.
아, 세상 살아서 뭐하나? 이런 허무감이 드는 거 왜 그럴까요?
우상숭배자라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은 마음이 허무하지 않습니다. 인생이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평안하고, 자유하고, 가득가득 채워진 마음으로 삽니다.
하나님은 우상이 아니기 때문이죠.
4. 오늘 본문을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하나님은 31절에서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새언약은 독특한 특징이 있는데,
우리가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함께 홍해를 건너고 나서, 시내 산에서 돌판에 십계명 받고 맺은 언약을 들어 봤잖아요?
그걸 시내산 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시내산 언약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32절에 보면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돌판에 새겨진 이 언약을 이스라엘이 깼다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친구들이랑 약속하잖아요.
약속했는데, 약속을 깨면 어떻게 됩니까?
친구 관계에 문제가 생기죠.
얘는 약속을 해도 잠수를 탄다. 연락을 받지 않는다.
이런 관계에 문제가 생기죠.
그래서 약속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약속을 깨뜨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지 않습니다.
31절에도 새 언약을 맺겠다고 했고,
33절에도 새 언약을 맺는데, 이 언약은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이랑은 뭔가 다르다고 합니다.
뭐가 다를까요?
첫째,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내장에,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하겠다는 것입니다.
시내 산 언약은 하나님의 말씀인 십계명을 어디에 기록했나요?
딱딱한 돌판에다가 기록했죠.
그런데 새롭게 맺는 새 언약은 어디에 기록합니까? 바로 우리의 마음, 우리의 영혼 자체에다가 새겨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이 텅텅 빌 수가 없죠.
가득가득 마음이 말씀으로 가득채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결코 하나님을 알고 싶은데 모르겠다.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언약을 맺은 사람은, 새 언약의 백성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하나님을 잘 알게 된다는 거죠.
그게 34절입니다.
이제는 여호와를 알라고 말하지 않을 거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당연히 잘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두 번째 특징이 뭡니까?
새 언약의 두 번째 특징은 하나님이 그들의 악행을 용서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받는데, 잠깐만 용서받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용서받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깔끔하게 전부다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영원히.
이게 새 언약의 두 번째 특징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의 마음이 텅텅 빌 수 있겠습니까?
가득가득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질 수 밖에 없겠죠.
5. 말씀을 정리하는데요.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마음 안에 새겨져 있지 않다면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건 거듭나지 않은 증거일 수 있어요.
새 언약을 맺은 사람은 하나님이 말씀이 그 마음 속에 기록이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세요.
그러니 하나님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모르겠고, 하나님의 말씀도 잘 모르겠고, 그러면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거듭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거듭남의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세요.
하나님을 믿어야 사는 것입니다.
그 외에 우리 영혼이 사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거듭남의 은혜를 주세요. 하나님을 믿는 은혜를 주세요.
텅텅 빈 마음, 갖가지 우상을 숭배하며 허무함과 헛된 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주세요.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본문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주요 이미지
집 / 언약
남편
나는 그들의 하나님 / 그들은 내 백성
여호와를 알라
버려질 것 같은 기분. 열등감. 거절감에 대하여
첫째는 잘못된 자아상에서 열등감은 출발합니다.
두 번째는 지나친 이상과 욕심이 열등감을 낳습니다. Abrham Mslow는 “인간의 가장 바라는 것은 자기실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을 가지고 있게 마련입니다. 사회적 성취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상이 현실과 너무 거리가 멀 때 사람은 열등감을 느낍니다.
세 번째 다른 사람을 표준으로 비교할 때 열등감이 생깁니다.
네 번째는 실패가 열등감을 갖게 합니다. 시험에 떨어지면 “나는 불가능해!” 할 때 열등감이 그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누구든지 시험에 한두 번 떨어지면 그냥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 자꾸 실패하면 자기 능력을 의심합니다.
사역
31 보라!(힌네)
날이 왔다, 여호와의 네움(속삭임, 발표)이다.
그리고 내가 카라트(자르다, 베어내다 / 미완)할 것이다, 이스라엘 바이트(집, 궁)과 유다의 바이트와
하다쉬(새로운, 신선한, 다른) 베리트(언약, 계약, 약조)를
*날이 왔다. 여호와의 발표가 들린다. 여호와가 새로운 언약을 이스라엘과 유다 집과 맺을 것이다.
32 그 베리트(언약)은 아니다, 내가 그들의 아브(조상, 아버지)들과 카라트(자르다, 베어내다)한 것과, 내가 그들의 손을 하자크(히필, 강하다, 붙잡다)한 날에, 그들이 애굽 땅으로부터 나오던,
그들이 파라르(분쇄하다, 끊어지다, 파괴하다) 한, 나의 베리트(언약)을,
내가(아노키) 바알(지배하다, 다스리다, 결혼하다, 동침하다)하였다, 그들 위에,
여호와의 네움(속삭임, 발표)이다.
*이 언약은 애굽 땅에서 여호와의 손에 붙잡혀 나오던 날에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이 아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그들과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언약을 깨버렸다.
33 이 베리트(언약)은, 내가 카라트(자르다, 베어내다 / 미완료)할, 이스라엘 바이트와, 그들의 날 후에,
여호와의 네움이다.
내가 나탄(주다)하였다, 나의 토라(계명, 교훈)을, 그들의 케레브(속, 몸의 내부, 장기) 안에,
그리고 그들의 레브(마음, 심중, 숨, 콧김) 위에, 내가 카타브(기록하다, 새기다 / 미완료)할 것이다, 그것들을.
그리고 나는 그들을 위하여, 엘로힘(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위한 암(백성)이 될 것이다.
*이 언약은 하나님이 그들의 몸속에 그리고 마음 속에 토라를 기록하는 언약이다.
그래서 여호와는 그들을 위한 엘로힘이 될 것이고, 그들은 여호와를 위한 백성이 될 것이다.
34 그리고 그들은 라마드(배우다, 가르치다, 능숙하다 / 미완료)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각기 그의 친구(이웃)에게, 그리고 각기 그의 아흐(형제)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야다(동침하다, 알다, 배우다 / 명령)하라. 여호와를
이는 그들 모두 나를 야다(미완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카탄(나의가 적은, 어린)한 자로부터, 그리고 그들의 가돌(큰) 자들까지.
여호와의 네움(속삭임, 발표)이다.
내가 살라흐(용서받다, 사하다 / 미완료)할 것이다, 그들의 아본(죄벌, 죄악, 허물)을
그리고 그들의 하타트(죄, 속죄)를 내가 자카르(이름하다, 기억하다, 기념하다, 마음에 두다 / 미완료)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이 언약의 주인공들은 서로 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배우라고 말하지 않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이가 어린 사람들부터 나이가 많은 사람들까지 모두 하나님을 알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용서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마음에 기억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시는.
여호와의 선언이다.
주석

시내 산에서 맺은 언약으로부터 온 친숙한 말들, 즉 언약, 율법, 그들의 하나님…내 백성이 여전히 제시된다. 그러나 그것은 그 언약과 같지 않을 것이다

백성들은 시내 산 언약을 깨뜨렸다. 하나님이 깨뜨리지 않았고, 백성들이 그것을 깨뜨렸다.

새 언약은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기록된 형태로 모세에게 알려졌던 하나님의 뜻(신 30:10 참조)이 사람들의 마음에 기록될 것이다. 율법이 ‘내면화된다.’ 백성들은 내면으로부터 하나님이 그들이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성들은 개인적으로 친밀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알 것이다.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고 사는 것과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을 알지 않는’ 때는 끝이 난다.

백성들의 죄가 용서함 받을 것이고, 그러므로 하나님과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관계를 방해하는 것이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예레미야 31장은 백성들의 삶의 모든 면에서 희망과 회복이 가득한 메시지를 전한다. 백성들에 의하여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는 기대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회복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바뀌어서 백성들이 과거와 달리 악이 아니라 선을 행하는 경향을 갖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예레미야 31:31–34은 예레미야의 희망의 메시지의 정점으로 간주될 수 있다. 심판을 통하여 새로운 때가 올 것이다. 누가복음 22:20에서 예수님은 이 절을 자신의 구속 사역에 적용하셨다. 예수님은 새 언약을 시작하신다(고전 11:23–25, 히 8:8–12; 10:16–17).

30–31장은 여러 면에서 용어들을 번복하여(reversing) 사용함으로 예레미야의 심판과 파멸의 메시지와 대조된다(‘하나님을 알지 않음’-‘하나님을 앎’; 슬픔-기쁨; 황폐한 땅-열매 맺는).

백성들의 희망과 미래의 기초는 이들 자신의 의에 놓여 있지 않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긍휼 속에 놓여 있다(31:3, 20).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백성들은 급진적으로 변화될 수 있으며,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삶을 살아낼 수 있다.

새로운 ‘출애굽’에 대한 모티브가 나타난다. 심판 받아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은 새로운 언약을 맺으며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집은 곧 12명의 제자들로 연결된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집을 12명의 제자들로 바꾸셨고, 그들과 유월절 전에 새언약을 맺는 식사를 집행하셨다.
영원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어지는, ‘은혜의 작용’이 효과적으로 진행된다. 이제는 무한한 은혜의 공급으로 인하여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게 된다.
새 언약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인간의 중재 없이도 신자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체험은 직접적이며, 외부의 가르침에 의존하지 않는다. 말하는 지식은 종교적 가르침에 의해 전달되는 이론적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신성한 은혜에 대한 마음의 경험에 기초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며, 신자가 죄 사함을 통해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 들여 졌음을 확신하면서 성령에 의해 부여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하나님께 직접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옛 언약의 중요한 특징은 인간 중재였다.
이제는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새 언약의 기초는 모든 죄의 절대적이고 완전한 용서이다.
영혼에 말씀이 새겨진 사람은 고민도 염려도 없다.
기준이 없는 세상, 기준이 없는 마음은 항상 회복되지 않는다. 세상은 길이 없다. 살아도 사는 이유가 없다. 남들이 사는 삶을 살아가는 것 외에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 그러니 공부가 재미가 없다.
그러나 성경은 직선적 세계관이다. 답이 있다. 처음이 있고 끝이 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다.
개요
1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 /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2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3 옛적에,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4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5 사마리아 산들
6 에브라임 산 / 파수꾼
시온 /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7 여러 민족 / 야곱 / 전파 /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8 인도하며 / 모으리라 / 돌아오리라
9 울며 돌아오리니 / 인도함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 /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
10 이방 / 먼 섬 / 모으시고 / 목자 / 지키시리로다
11 야곱을 구원 / 속량
12 찬송 / 물 댄 동산 / 근심이 없으리로다
13 즐거워하겠고 /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
14 기름 / 내 복 / 흡족 / 만족
15 라마 / 통곡 / 라헬 / 애곡
16 네 울음 소리 / 네 눈물 / 멈추어라 / 돌아오리라
17 장래에 소망 / 자녀 / 돌아오리라
18 에브라임 / 징벌 / 멍에 / 징벌 /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19 돌이킨 후에 /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20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 기뻐하는 자식
21 처녀 이스라엘 / 이정표 / 푯말 / 돌아오라 / 돌아오라
22 반역한 딸 / 방황 /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
23 사로잡힌 자 / 돌아오게 할 때 / 의로운 처소 / 거룩한 산
24 유다 / 농부 / 양 떼 / 함께 살리니
25 피곤한 심령 / 연약한 심령 / 만족
26 내 잠이 달았더라
27 사람의 씨 / 짐승의 씨 / 이스라엘 집 / 유다 집
28 깨어서 / 깨어서 / 세우며 / 심으리라
29 아버지 / 신 포도 / 아들들의 이 / 시다
30 신 포도 / 자기의 죄악 / 죽으리라
31 날 / 이스라엘 집 / 유다 집 / 새 언약
32 이 언약 / 애굽 / 남편/ 깨뜨렸음
33 그 날 후 / 이스라엘 집 / 맺을 언약 / 나의 법 / 그들의 속 / 그들의 마음 / 기록
그들의 하나님 / 내 백성
34 이웃과 형제 / 여호와를 알라 / 작은 자 / 큰 자 / 악행 / 죄 /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35 / 낮의 빛 / 달 / 별 / 밤의 빛
바다 / 파도 / 만군의 여호와
36 이 법도 / 폐할진대 / 끊어져 / 영원히 나라
37 하늘 / 측량 / / 탐지 / 다 버리리라
38 이 성 / 하나넬 망대 / 모퉁이 /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될 것
39 측량줄 / 가렙 언덕 / 고아
40 시체 / 재 / 기드론 시내 / 고지 / 동쪽 마문 / 여호와의 거룩한 곳 / 영원히 다시는 뽑거나 전복하지 못할 것이니라
하나님 나라 관점으로 읽는 구약신학
바벨론 포로 생활이라는 심판을 가져온 시내 산 언약의 실패를 돌아보면서 예레미야서는 새로운 언약을 선포한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예기치 못한 사건이 아닌 불순종의 결과이다.
예레미야의 사역은 파괴의 사역이자 해체의 사역이며 오래된 정원과 오래된 집을 제거하는 사역이었다.
그러나 파괴 동사 뒤에 ‘건설하며 심게’ 라는 건설 동사가 나타남으로써, 파괴 마저도 긍정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언약은 단순한 법적 계약이라기보다 사랑의 바탕이 우선되는, 인격적이고 살아 있는 관계였다.
바벨론의 공격으로 토지의 가격은 폭락했다.
정당한 심판 / 바벨론 포로생활에 대한 선포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그들의 땅으로 이끌고 나오실 것
그들이 ‘토라’를 따를 새로운 마음을 받게 하실 것이다.
예레미야 32:41 (NKRV)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올 수 있게 되는 것은 여호와의 장자에 대한 책임과 사랑 때문이다.
에브라임이 울며 돌아오고, 땅은 회복이 되며, 주님은 집으로 돌아오는 지친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키신다.
예레미야 30-33장에 나타난 구원신탁 연구
예레미야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하나님을 반역한 유다와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북쪽 나라를 통해 멸망 당할 것이며, 70년이 지난 후에는 회복이 될 것이라”는 것이.
예레미야 1-25장이 전체 626절 로 구성되어 있는데, 회복의 말씀은 단지 25절에 지나지 않는다. 이 것은 예레미야 1-25장이 심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심판의 이유로 3가지가 강조되는데, 그것들 은 우상숭배, 도덕적이며 윤리적 죄악, 강대국 의지에 관한 것들이다.
예레미야 1-25장에서는 대부분 심판의 말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심판의 대상도 예레미야 25장 15-38절에 언급된 열방의 심판을 제외하면 거의 예루살렘과 유다로 한정되고 있다. 그러나 예레미야 26-52장은 말씀의 초점이 심판 외에도 회복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으며, 심판의 대상도 예루살렘 과 유다 외에도 열방의 심판을 자세하게 다룬다. 게다가 예레미야 선 지자의 고난의 삶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II. 심판과 회복과 열방에 대한 말씀 렘 26-52장
A. 예레미야의 전기 26-29장
B. 위로의 책 30-33장
C. 예레미야의 전기 34-45장
D. 열방의 심판 46-51장
1. 애굽 46장
2. 블레셋 47장
3. 모압 48장
4. 암몬 49:1-6
5. 에돔 49:7-22
6. 다메섹 49:23-27
7. 게달과 하솔과 엘람 49:28-39
8. 바벨론 50-51장
E.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 52장
예레미야 26-52장에서 회복의 말씀은 대부분 예레미야 30-33장의 위로의 책에 언급된다.
열방의 심판은 예레미야 46-51장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예레미야 30-33장은 ‘위로의 책’으로 귀환과 회복의 내용을 풍성 하게 가지고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귀환의 내용이 앞에 나타나 고 뒤이어 회복의 내용이 나타난다. 따라서 예레미야 30-33장은 귀환 + 회복의 구조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6번이나 반복된다.
I. 구원 신탁
A. 첫 번째 구원 신탁 30:1-17
1. 귀환 30:3
2. 회복 30:4-17
B. 두 번째 구원 신탁 30:18-31:6
1. 귀환 30:18
2. 회복 30:19-31:6
C. 세 번째 구원 신탁 31:7-22
1. 귀환 31:7-9
2. 회복 31:10-22
D. 네 번째 구원 신탁 31:23-40
1. 귀환 31:23
2. 회복 31:24-40
*아나돗의 밭 구매와 예레미야의 기도와 야훼의 응답 32:1-35
E. 다섯 번째 구원 신탁 32:36-44
1. 귀환 32:36-37
2. 회복 32:38-44
*야훼의 심판과 그 이유 33:1-5
F. 여섯 번째 구원 신탁 33:6-26
1. 귀환 33:6-7
2. 회복 33:8-26
이러한 구조 속에서 특이하게도 예외적으로 2개의 본문이 나타난다. (1) 예레미야 32장 1-35절은 ‘아나돗의 밭 구매와 예레미야의 기 도와 야훼의 응답’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다. 1-15절은 예레미야가 아나돗의 밭을 사는 이야기를 통해 이후에 언젠가 백성들이 귀환하여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는 날이 있음을 미리 암시한다. 이런 점 에서 아나돗의 밭 구매 이야기는 회복과 밀접하게 관련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16-25절의 예레미야 기도는 야훼의 능력과 은혜를 백성 들이 잊어버림으로써 야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26-35절은 백성들의 반역으로 야훼가 그들을 갈대아인의 손과 바벨 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넘기게 되었다고 말한다. 심판의 이유와 심판의 도구가 강조된다. (2) 예레미야 33장 1-5절은 백성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야 훼가 갈대아인을 통해 심판하시게 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도 심판 의 이유와 심판의 도구가 언급된다.
이런 점에서 귀환과 회복의 내용에서 벗어나 있는 위의 2개의 본문도 귀환과 회복의 내용을 보강하기 위해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
예레미야 새 언약에 관한 연구
베리트를 아카드어인 “비리투(biritu)”를 따라 “속박”으로, 아라비아어를 따라 “쪼개다”로 혹은 히브리어 바라(hrb)와 관련하여 “식사”의 의미로, 아카드어 “비리투(biritu)”를 따라 “중간”으로 해석하였다.
히브리어 베리트(tyriB)는 바라(hrb) “자르다, 먹다, 선택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
이는 언약을 수행하는 의식에서 동물을 자르는 것과 연관되어 있어 언약과 식사하는 것과의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 주고 있다.
구약성경에서도 언약 체결 의식에서 “희생 동물을 둘로 쪼개는 관습”이 있었으며 잘려진 희생 동물 사이를 언약 당사자들이 지나가는 의식이 뒤따랐던 것을 보게 된다. 이 때 사용된 용어가 카라트 베리트로서 이 문맥의 의미는 “언약을 자른다”로 번역된다. 따라서 베리트는 “언약”이라는 의미가 자연스럽다.
“피의 약정”이란 말은 “피흘림 없이는 죄사함도 없다”는 성경의 강조점과도 잘 부합된다. 성경에 나타난 피의 의미는 잔인하거나 살벌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상징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피로 맺은 약정” 또는 “삶과 죽음의 약정”이라는 구절은 계약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결속의 궁극성을 표현한다. 계약을 체결하실 때 하나님은 결코 인간과 우연한 혹은 비공식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신다. 대신 그가 세우신 약정의 의미는 삶과 죽음의 궁극적인 문제를 포함한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다”는 주제를 사용한 예레미야의 생각을 통해서 보면, 새 언약의 배경을 이루는 언약이 바로 하나님이 모세와 맺은 언약이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예레미야 7:22-23에서 제기된 문제는 “이스라엘의 현상주의와 형식주의”이다. 따라서 분명한 것은 예레미야가 제사 자체를 배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의와 순종에서 동떨어진 제사를 거부한 것이다.
예레미야는 청중들의 이러한 오해의 근원을 “백성들이 거짓 선지자들이 전하는 거짓말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밝힌다.(4절) 거짓 선지자들이 전한 거짓 메시지의 내용은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는 것인데, 이 메시지가 거짓으로 판명된 이유는 “그곳에만 하나님이 거하신다는 것” 때문이다. 곧 여호와께 삶 속에서 올바로 순종하지 않고 단지 예배 의식만을 회복하는 것으로 요시야의 개혁을 이해했던 것이다. 때문에 백성들은 하나님 법도의 안에 있는 올바른 제사와 순종의 개념을 깨닫지 못했다. 앤더슨도 “예루살렘에로의 예배의 집중은 이스라엘 백성이 야웨께서 자기네 가운데 있다는 생각으로 헛된 안정감만 갖게 하였다. 그리고 율법은 종교를 통해 이득을 취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방책으로 사용되었다.” 라고 요시야 개혁의 신학적 결핍을 지적하였다.
본문은 새 언약도 분명히 “이스라엘과 유다집에” 세운다고 하셨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지리적 분단이 현존해 있음을 가리키는 31절이 대칭어는 솔로몬이후 분단된 민족의 현실적 상황을 인정하고 있으며 새 언약은 이러한 장벽을 허물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새 언약의 연속성의 두 번째 내용은 “나는 그들이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렘 31:33)는 문구에서 표현되고 있다. 이 요소가 아브라함 언약과 모세언약, 다윗의 언약에서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 그것은 언약의 핵심이다.
주님은 그의 백성과 관계를 맺으시길 원하셨으나 언약의 규례에 대한 그들의 불순종은 구약에 담긴 약속들을 백지화 시켰다. 그러나 새 언약은 영원하며(렘 32:40) 수혜자의 순종을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언약은 언약 공동체를 위한 약속들을 보장해준다.
새 언약은 “나는 너희 하나님의 되리니...” 라는 출애굽기 6장 7절의 약속이 예레미야 31장 33절의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약속으로 이어져 언약이 통일적 연속성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약속을 세우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7),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8)고 말씀하심으로 창12:2에서의 그의 백성의 통치자로서의 임재를 재확인 하셨다. 그리고 출애굽과 관련하여 하나님은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인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다”(출6:7; 19:5 레11:45; 신 4:20; 29:13)고 약속하셨다. 또한 동일한 약속이 다윗 언약에서도 나타난다(왕하 11:17; 대하 23:16;시135:4)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임마누엘 약속은 구약과 신약의 복음을 관통하여 흘러오다 마침내 그리스도 안에서 그 완전한 영광을 보게 된다.(요 1:14)
새 언약의 창시자는 옛 언약의 창시자와 똑같은 하나님이시고, 언약의 대상 또한 옛 언약과 같은 이스라엘이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 내가 또 하나의 다른 법을 주리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다만 “내가 나의 법을 기록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새 언약에 의해서 기록될 율법은 하나님의 신에 의해 마음과 영혼 속에 숨겨지고, 생명의 원리를 소생케 하는 힘이 된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의 또 하나의 차이점은 예레이먀 31:34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다시는 기억치 아니하신다는 죄사함의 약속이다.
새 언약은 옛 언약보다 더욱 포괄적이며, 효과적이며, 더욱 영적이며 더욱 영광스러움을 알 수 있다. 사실 너무 월등하여 과거의 언약과는 다르게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계시의 진보를 나타내는 것이다.
신약에서 새 언약이란 표현은 6번 나타난다. 구약에서 언약은 “베리트”라면 헬라어에서는 “디아데케”라 불린다. 헬라인들은 쌍방간의 조약을 지시할 때 “디아데케”(diaqhvkh)보다는 “순두케”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헬라어 “디아데케”란 용어는 쌍무적인 조약이 아닌 일방적인 조약관계를 지시한다. 그래서 신약 기자들은 하나님과 자기 백성간의 관계를 지시할 때 쌍방이 협의하고 타협하여 체결한 쌍무 조약을 의미하는 “순두케” 보다는 일방적인 설정인 “디아데케”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새언약의 성취는 일차적으로 유대인의 추방 이후의 귀환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첫 번 귀환은 주전 538년에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약 5만 명의 추방자들의 귀환으로 나타났고, 두 번째 귀환은 주전 458년 에스라의 지도하에 약 1500명의 귀환자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그때에 나타난 성취는 예레미야가 바라보았던 그 영광스러운 모습과 상당히 차이가 있다. 따라서 추방 이후의 귀환은 비록 1차적 성취이긴 하나 그 궁극적인 성취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약 교회에서 영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신약시대 전체를 통해서 유대인 중 남은 자들과 이방인들이 메시아에게로 돌이킨다. “예언의 다중성취”라고도 불릴 만한 이러한 성취는 신약성경이 구약 예언들을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서 성취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방식으로 지지된다. 새언약은 구약 문맥에서 이스라엘 민족(유대인)을 당사자로 말씀하지만 이처럼 신약적 이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당사자로 말씀한다. 곧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새언약의 당사자가 된다. 구약 문맥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졌다 여겨지는 약속들이 이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아브라함 언약이 새언약으로 완성된다는 것은 갈라디아서 3장에서 바울이 제시하는 논증으로 알 수 있다. 아브라함 후손을 통해서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은 새언약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또한 다윗언약(삼하 7장,시 89편) 역시 새언약으로 완성된다(암 9:11 이하; 행15:15 이하). 다윗의 후손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어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다윗 왕위를 이어 영원히 왕 노릇하신다.
모세언약 역시 새언약에서 완성되었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은 모세언약을 친히 다 이루셨다. 모세언약의 근본원리는 하나님 사랑이다. 모세언약의 모든 조항들을 하나같이 주님은 순종하시고 이루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모세언약을 다 이룬 것이 된다(전가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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