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뼈는 큰 군대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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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여러분. 저희가 2주 전에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에 대한 말씀을 나눴고, 지난주는 시편 말씀을 살펴봤죠. 오늘은 에스겔 선지자에 대해서 알아볼 거예요. 원래 예레미야 말씀을 전하고 그 다음 주에 바로 에스겔 말씀을 살펴봤어야 하는데, 지난주가 어린이 주일이었잖아요. 그래서 우리 고등부는 청소년주일로 지키자. 해서 나의 정체성을 알아보는 말씀을 나눴던 거예요. 여기까지 TMI였구요. 미안해요 ㅎㅎ
여러분. 예레미야도 선지자고, 에스겔도 선지자예요. 선지자들의 공통점이 있는데요. 무엇이냐?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고, 곧바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하나님의 사랑을 또 예언해요. 항상 심판과 구원을 같이 말해요.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랑 밀당하시는 것도 아니고, 심판했다가 구원하셨다가 심판했다가 구원하셨다가 이러시는 이유가 뭘까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죄를 지어서 마땅히 심판 받는건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끝까지 사랑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계속 그 심판 중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거예요.
죄를 짓는 백성들을 그냥 다 멸하셔도 백성들은 할 말이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끝까지 사랑하시겠다고 약속하셨죠? 그러니까 멸하실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잠시 잠깐만 심판을 허용하시는 거예요. 심판을 받아야 백성들이 아차! 싶어서 자기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거든요. 사람은 너무 악해서 편안~~ 하면 하나님을 찾지 않아요. 계속 죄를 지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내린 심판을 받으면, 아! 이거 뭐 잘못 돌아가고 있구나! 싶어서 회개하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 임하는 심판과 고통은 꼭 불행이라고 할 수 없는게, 그 심판과 고통이 있어야 그리스도인은 다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도 그런 심판의 순간들, 고통의 순간들에 처해 있을 때, 아! 하나님이 나를 지금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시려고 싸인을 보내시는거구나! 하고 기도하면 돼요! 그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고 했죠? 심판하시면 무조건 다시 구원해 내시는 분이세요. 그리고 결국 천국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인도하시죠.
본론
본론
오늘 살펴볼 에스겔 말씀도 그 축소판이라고 보면 돼요. 오늘 본문의 시작은 이미 심판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나와요. 우리 1절을 함께 읽어볼게요. 시작.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을요. 뼈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사람은 죽은 후에 뼈가 되죠? 그것도 오랜 시간이 지나야 뼈가 돼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오래 전에 죽어서 다 말라버리고 뼈가 됐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스라엘은 바벨론이라는 나라에 멸망 당하고 그 나라에 포로로 끌려간 상태였어요. 그 곳에 포로로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마치 마른 뼈와 같았어요. 이 사진들을 보세요. 골짜기에 뼈가 가득했다고 나오죠? 그 중심에 서 있는 에스겔에 심정이 어땠을까요? 참담하고 막막~~했을 거예요.
여러분. 많이 안 먹어서 몸이 마른 상태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진짜 살가죽도 없고 근육도 없고 그냥 뼈만 남은 상태를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 상태에 처해 있는 이스라엘이 답이 있어 보이냐고 질문하셔요. 3절을 함께 읽어볼게요. 시작.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에스겔은 참 지혜롭게 대답하죠?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사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눈 앞에 두고 엄청난 무기력함을 느꼈을 거예요.
사랑하는 고등부 친구들. 여러분은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무기력함을 느꼈을 때가 있나요? 전도사님은 학창시절 때 여러번 느꼈어요.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랬구요. “와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변하는 게 없네?” 그 생각이 들면 그냥 탁 포기하고 싶어져요. 공부든, 사람과의 관계든, 일이든간에 다요~
하지만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대답해 주시는 줄 아십니까? 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답도 없어 보이는 마른 뼈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기를 주시고 살아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세요. 하나님은요.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는 게 없어보이는 나의 상황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수 있는 분이세요.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이 ‘생기’는 히브리어로 ‘루아흐’이고, ‘성령’이라는 뜻을 가져요. 즉, 그리스도인에게 성령님이 임하시면 죽었던 자들도 살아난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살아가면서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나요? 전도사님, 그런 거 생각할 시간이 어딨습니까? 그냥 한 문제 더 볼랍니다. 태어났으니까 사는거죠 뭐. 고등학생인 게 죕니다 죄예요. 죄인은 공부해야죠. 이렇게 생각하는 친구들 있나요?
여러분.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면서 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걸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삶에 의욕이 없고, 무기력하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냥 그만 살고 싶다. 이렇게 느껴지는 사람은 성령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경험하는 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그저 뼈만 남았던 인생이었는데, 힘줄이 생기고 살이 입혀지고 가죽이 덮여지고, 성령님으로 인해 살아나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변화가 나옵니다. 우리 빨간 글씨만 한 번 더 읽어볼까요? 시작.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을까요? 바벨론 땅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없었어요.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밖에 없었죠.
바벨론에도 학생이 있었어요 여러분. 바벨론 땅 학생들은 무엇을 위해 공부했을까요? 다른 나라를 정복하기 위해 공부했어요.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기 위해 공부했어요. 바벨론의 국가적 목표가 타국 정복이었거든요.
바벨론에도 일하는 직원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무엇을 위해 일했을까요? 자기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서 일했어요. 그런 사람들 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살고 있었어요 여러분. 바벨론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이용 당했겠죠. 핍박 당했겠죠. 얼마나 서럽고 비참했을까요? 삶이 무기력했어요. 소망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주신 거예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닫게 해 주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실까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냥 포로로 살아가게끔 내버려 두시는 분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그냥 모른척하실 분이실까요? 아니에요.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이세요. 무기력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마음을 주신대요. 에스겔 선지자보다 이전에 활동했던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미 예언하셨어요. 우리 예레미야 29장 10절을 읽어볼게요. 시작.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요. 우리 아버지세요. 우리를 아들이라고, 딸이라고 불러주시는 우리 아버지세요. 아버지는 절대 고통 가운데 있는 자녀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으세요. 자녀가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멀리 떠났다가 아버지의 품이 따뜻했던 걸 그제서야 깨닫고 돌아오면요. “너 왜그랬어?” 따지지 않고, 그냥 말없이 안아주시며 ‘잘 왔어. 보고싶었다 우리 아들. 잘 왔어 우리 딸.’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세요 여러분.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 곁을 떠나 있나요? 하나님 품 안에 있나요? 여러분이 하루를 살아갈 때 하나님을 몇 분이나 생각하나요? 아니, 몇 초동안 하나님을 생각하나요? 하루 24시간 중에서 말이에요. 1초도 생각하지 않나요?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상태인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바벨론이라는 세상에 머물러 있어선 안 돼요.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하나님 품이에요. 그런데 세상에 찌들어 있는 사람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하나님 품이라는 걸 몰라요. 알 수가 없어요. 죄인이기 때문이에요. 죄인은요.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가 죄악 한 가운데라고 생각하고 살아요. 그래서 죄 짓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죄를 짓는데도 죄 의식을 느끼지 않아요 우리는.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죄를 더 좋아하게 되는 게 우리예요. 우리 마음에 죄를 더 채워넣으려고만 해요 우리는. 우리로서는 답이 없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그래서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께 도통 찾아가질 않아서. 우리 함께 1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뭐라고 나와있어요?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우리가 우리 맘에 죄만 계속 채워넣으니까,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생각도 안 하니까, 하나님이 먼저 찾아와 주셔서 우리 안에 주님의 영을 두신대요. 여러분. 그 영이 바로 성령님이세요. 우리 눈엔 보이지 않으시지만, 하나님이신 성령님.
마른 뼈처럼 답이 없었던 죄인인 우리 생각을 바꾸시고, 죄를 미워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믿어지게 하시고, 사랑을 베푸는 일을 즐겨 하게 하시고, 삶의 이유가 나 하나였는데, 하나님이 삶의 이유가 되게 하시는 분. 그 분이 바로 성령님이세요.
결론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안에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마른 뼈와 같았던 우리가 큰 군대가 될 수 있게 하십니다. 10절을 함께 읽어볼게요. 시작.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여러분의 영적 전투력은 얼마나 됩니까?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영적 전투력을 키워야 합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거 여러분도 잘 아시죠?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게 아닙니다. 마귀새끼들이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노립니다. 마귀의 목표는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 마귀새끼들을 단번에 제압하시는 분이 우리 성령 하나님이세요. 그 성령님을 의지할 때 우리의 영적 전투력은 ‘큰 군대’만큼 강해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떻게 전투력이 상승하는지 아세요? 우리 인생은 이 땅에서의 백년으로 끝나지 않아요.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면 천국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시죠. 그 천국이 우리의 본향이에요 여러분. 본향이 뭐예요? 원래 우리가 살던 곳을 본향이라고 부르죠. 우리가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원래 있던 곳은 저 천국이에요. 히브리서의 11장 16절을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거 중요합니다. 이 땅에서 위대한 일 해보는 거 중요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좋은 대학 가는 게 꿈입니다. 여러분이 좋은 직장 얻는 게 꿈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 곳에서 예수님을 드러내는 게 꿈입니다.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의 기준은 학교 간판과 연봉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드러나느냐? 안 드러나느냐? 입니다.
우리 모든 고등부 친구들은 고등학교에서도 대학에 가서도 직장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을 드러내며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대학생활하면서 직장 생활하면서 마른 뼈처럼 살아가지 않고, 영적 힘줄과 근육이 탄탄하게 꽉 차서 하나님을 드러내며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성령님이 그 일을 이루어주실 겁니다. 우리 맘에 계시는 성령님을 의지하며 살아갑시다. 찬양하겠습니다.
부록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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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성경은요. 한 맥으로 이어져요. 구약과 신약이 생판 다른 책이 아니구요. 하나의 중심점을 기준으로 쭈욱 이어저요.
오늘 살펴본 에스겔 37장과 에베소서 2장은 참 많이 닮아 있어요.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죠. 우리 몸에 보면 맥 짚는 곳이 여러군데 있잖아요. 위치는 달라도 그 곳에 같은 피가 흐르고 있죠. 그것과 마찬가지예요. 에스겔 37장과 에베소서 2장은 위치가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앞에 표를 준비했어요. 한 번 같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