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를 배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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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고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고백이 참 어렵고 약합니다. 제가 저희 집사람을 전도사 때 첫 번째 사역지에서 만났습니다. 저는 초등부 전도사였고 저희 아내는 초등부 교사였습니다. 사역지에서 사역은 안하고 연애를 했다 이렇게 보시면 안되구요. 얼마나 교회에만 있었으면 교회에서 자매를 만났겠습니까? 사역을 열심히 하다 보니까 교회에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이렇게 보아야 합니다.
저는 고백하는 걸 멋지게 할 줄 몰라가지고, 연애 시작할 때도 카톡으로 고백을 해서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혼할 때도 프로포즈를 해야 하잖아요? 아무 생각도 없이 있었습니다. 결혼하기 한 달 전에 저희 어머니랑 저랑 같이 티비를 보고 있는데 저희 어머니가 ‘니 프로포즈 했나?’라고 하길래 ‘아니요. 아직 안했는데요?’라고 대답하다가 등짝을 맞았습니다. 그 때 스물여덟에 대학원생이었는데 굉장히 자존심에 스크레치가 생겼습니다. 등짝을 한 대 맞고 오만 인상을 쓰고 “아빠는 프로포즈 했어요?” 이렇게 따졌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당연히 했지 얼마나 멋지게 했는데!” 그러니까 제가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저희 어머니가 결혼 준비하면 여자들끼리 남자가 프로포즈 어떻게 했는지 물어본다고 저희 집사람이 얼마나 곤란하고 창피하겠냐고 남자가 그러면 안 되다고 계속 잔소리를 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교회에서도 좀 쎈 권사님이시거든요. 프로포즈 늦게 했다가 얼마나 꾸중을 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하고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고 교회를 열심히 다니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내가 하나님께 어떤 은혜를 받아서 살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 고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고백을 우리는 교리라고 합니다. 교리라고 생각하면 딱딱하고 어렵고 지루하고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하는데 교리는 원래 그런 게 아니예요. 고백이고 사랑입니다. 고백을 할수록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내가 하나님께 어떤 사랑을 받았는지 더 깊이 알 수 있습니다.
교리는 쉽게 말해서 성경의 가르침을 요약한 것을 말하는데 실은 신약 성경이 다 완성되기 전에도 교리는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교훈이라고 적혀 있는 건 대부분 다 교리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께 받은 교훈을 모아서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또 이 성경을 요약한 것이 교리입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교리는 예수님의 가르침, 교훈이다 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성경이 다 완성되기 전에 있던 교리도 있고 완성된 성경을 잘 요약한 교리도 있는 거예요.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어떤 교리가 있었어요?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다라고 고백한거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한 교리지요! 이때 성경이 다 완성 되었어요? 아직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믿기 전이니까 당연히 없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완성되고 나서 생긴 교리는 뭐가 있을까요? 우리가 잘 아는 사도신경, 또 생소하지만 니케아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 같은 것이 성경이 생긴 뒤에 성경의 가르침을 요약하고 정리한 교리예요. 또 학교에서 배웠죠 종교개혁시기에 많은 신앙고백서가 생겼습니다. 이게 교리입니다. 한 번 쯤 들어봤을 거예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또 우리 교단 표준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 그리고 도르트 신조, 벨직 신조, 프랑스 신앙고백서 등등 굉장히 많습니다. 이게 다 성경을 체계적으로 요약한 거예요. 그 내용은 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래서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렇게 생소한 단어를 나열하면 대부분 잠이 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교리 중요한 줄 알겠는데 이거 옛날 옛적에 만들어진 거 아니냐! 지금이 21세기인데 무슨 17세기 꺼를 언급하냐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이 때 만든 교리를 뛰어넘는게 없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만들기 위해 굉장히 많은 재정과 인력이 투입되었습니다. 우리는 돈 하면 눈이 번쩍 뜨이기 때문에 돈 이야기를 한 번 하겠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만들 때 회의를 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라고 하는데 이 총회를 위해 엄청난 돈이 들어갔습니다. 정규 참석자가 151명입니다. 그 중에 전설적인 성직자들이 121명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신학교수정도 되는 천재들이라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귀족이나 국회의원급의 사람들이 30명 정도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왔어요. 당시에 대륙에서 대륙으로 이동하는 비용 엄청나죠. 그리고 이 회의를 위해서 웨스트민스터 사원 근처에 건물들을 다 빌렸습니다. 6년 동안 빌려서 회의를 1163번을 회의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6년동안 머물면서 호텔비용 식사비용 회의할 때 사례비 지금 돈으로 따지면 이게 수백억 규모의 대형프로젝트입니다.
이런 대형프로젝트를 우리 한국교회가 해서 지금 가지고 있는 신앙고백서를 뛰어넘는 걸 만들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겠죠! 이렇게 할 수 있는 재정도 없고 그만한 학자들도 없습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뛰어넘을 수 있는 교리는 없다고 보시면 되요. 그래서 우리가 믿음의 선배들로부터 받은 교리, 신앙고백을 잘 전수 받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교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교리를 통해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는 교리를 고백할 줄 알아야 한다.
(설명) 오늘 여러분과 첫 번째로 나눌 내용은 우리가 교리를 고백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교리가 나오게 된 배경을 성경안에서 찾고 그 다음에 역사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오늘 마태복음 본문을 먼저 읽으셨는데요. 오늘 본문이 어떤 상황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명령을 내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자들에게 무엇이라 명령합니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자 다시 한 번 생각해봅시다. 예수님께서 이 명령을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다르게 질문을 해볼께요. 여러분이 이 명령을 지킬 수 있어요? 없어요? 없죠. 없습니다. 이 명령은 2천년전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한 명령이지 저와 여러분한테 한 명령이 아닙니다. 그리고 세례라는 한 단어만 봐도 이건 우리에게 하신 명령이 아닙니다. 여기 세례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목사만 세례를 베풀잖아요!
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명령을 내리셨어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여기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은 무엇일까요? 분부하다라는 것은 명령하다는 뜻도 있지만 맡긴다는 뜻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맡긴 가르침이 있어요. 그것을 사도들에게 세례 받은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배우게 하고 지키게 해야 합니다. 이 지킨다는 것은 교통질서를 지키는 것처럼 준수한다는 뜻도 있고 감옥에서 간수들이 죄수들을 지키는 것처럼 간수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들이 예수님께 배웠던 어떤 가르침들을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다시 배우도록 하고 그것을 준수하도록 하고 간수하도록 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제부터는 예수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사도적인 가르침이라고 할 거예요. 사도적인 가르침이 뭘까요? 사도는 역사상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장 순수하게 배운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도들이 예수님께 배운 것들에게는 절대 오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이 이 사도적인 가르침을 세례 받은 사람들에게 전달해서 교회를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사도적인 가르침이 교회에 남아 있을까요? 교회에 남아있지 않을까요? 당연히 교회에 남아 있습니다. 이 사도적인 가르침이 잘 보존되고 잘 가르쳐지고 있는 교회는 순수한 교회고 이 사도적인 가르침이 덜 보존되어 있는 교회는 덜 순수한 교회가 됩니다. 그래서 좋은 교회는 사람이 많은 교회가 아니라 사도적인 가르침이 있는 교회 사도적인 가르침을 잘 실천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이 가르침들을 잘 가르치고 남기라고 하셨고 사도들이 죽은 이후에는 이제 남은 성도들이 사도의 명령을 이어 받아서 사도적인 가르침을 잘 가르치고 잘 간수 해야 합니다. 그걸 잘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교리입니다.
물론 사도적인 가르침이 가장 순수하게 보존되어 있는 책이 있죠? 성경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수 천년 전에 다른 문화권에서 여러 가지 문학장르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이 성경을 통해 사도적인 가르침을 간편하고 빠르게 캐치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잘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이상한 오해를 하기도 하기 때문에 사도적인 가르침이 잘 요약된 교리를 기준으로 읽어야 오해하지 않고 성경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성경이지만 이 성경을 통해 사도적인 가르침을 잘 캐치 하기 위한 도구로 우리는 교리를 사용합니다. 좀 더 쉬운 예시를 한 번 들어볼게요. 여기서 반지의 제왕 책 읽어보신 분 있어요? 아니면 나니아 연대기 책으로 읽어보신 분 있어요? 아니면 이건 무협지인데 사조영웅전 읽어보셨습니까? 셋 다 엄청나게 유명한 판타지 소설, 무협소설입니다. 반지의 제왕 같은 거 그냥 읽으면 세계관도 방대하고 인물도 많고 지명도 많아서 어디서 뭘 하는 건지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반지의 제왕 영화를 보면 전체적으로 어떻게 굴러가는지 이해가 됩니다. 나니아 연대기도 엄청 두꺼운 책인데 뭐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영화를 한 번 보고 책을 읽으면 전체적인 그림이 이해가 됩니다. 사조영웅전도 만화책으로도 나오고 영화로도 작품이 몇 개가 됩니다. 이걸 먼저 보고 책을 보면 좀 이해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기록된 성경을 들고 펴서 읽으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힘들지만 교리를 이해하면 성경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고 성경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리를 이해하는 건 골치아픈 일이 아니라 편리하고 좋은 거예요.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지켜야 한다고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 시대에는 사도가 없기 때문에 사도의 사명을 이어받은 교회가 우리에게 사도적인 가르침을 가르치고 보존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소속되어서 세례를 받는 우리가 혹은 세례를 받아야 할 우리가 예수님이 분부하신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교회에 부탁하신 일이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참된 신자란 교리를 배우고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적용)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교리를 배우고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까 이야기 했지만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교리를 배우고 이해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 대부분은 서점에서 교리에 대한 책을 사가지고 그걸 막 공부하면서 교리를 배우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리에 대해 모르는 건 아니예요. 우리는 교회에서 교리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습니다. 매주 고백하는 사도신경을 통해서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내용들을 고백합니다. 또 설교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교리에 대해 배웁니다. 부활절에 부활 설교 들으면서 부활에 대한 교리를 배웁니다. 십자가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서 구속에 대한 교리를 배웁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자연스럽게 교리를 배웁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믿음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교리를 흡수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교리를 아예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수준에서 좀 더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장로교 표준으로 정한 신앙고백서와 대교리문답 소교리문답이 있습니다. 그걸 읽으면 됩니다. 그걸 해설하는 책이 있는데 해설하는 책은 오히려 어렵습니다. 그냥 신앙고백서랑 대교리문답 소교리문답 자체를 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이거 어플도 있습니다. 어플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제가 지난 번 교회에서 어플 다운 받으라고 해도 절대 다운 받지 않습니다. 게임 어플은 그렇게 많이 받고 인스타니 틱톡이니 해도 핸드폰을 켜서 신앙고백서를 읽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책을 사는걸 추천합니다. 공부하다가 머리 아플 때 핸드폰 보면 한도 끝도 없이 보니까 교리를 잠깐 보는 게 좋습니다. 제일 좋은 건 우리 장로교 표준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소요리문답을 사는 걸 추천합니다. 인터넷에 다 있어요. 이것도 내용이 많다 하시면 이 책 추천합니다. 종교개혁시대에 만들어진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아주 짧게 요약한건데 너무 허무할 정도로 짧습니다. 요거라도 읽으면 기본적인 교리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청년부 단톡방에 링크를 올려드리겠습니다.
2- 교리를 고백함으로써 삶의 위로를 얻을 수 있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교리를 고백함으로써 삶의 위로를 얻을 수 있다는 거예요. 교리의 유익한 점 중 하나는 교리가 우리 삶에 위로를 가져다준다는 거예요. 교리의 가장 기본이 되고 뿌리가 되는 게 사도신경입니다. 사도신경은 성경에 있는 건 아니지만 기독교 신앙을 가장 잘 요약한 문서고 제일 오래 된 문서예요. 제일 오래 되었다는 건 오랬 동안 신뢰를 받았다는 거예요.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써서 만든 건 아니고요. 사도적인 가르침을 잘 요약해놓은 거라서 사도신경이라고 부릅니다. 이 사도신경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말씀 드리겠습니다. 굉장히 재밌습니다. 교리가 수도 없이 많은데 이 교리들을 다 설명할 순 없으니까 사도신경 첫 번째 문장으로 맛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도신경에 나오는 제일 첫 번째 문장이 뭐예요?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입니다. 사도신경이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이야기 합니까? 아버지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될 수 없어요.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같은 죄인의 아버지가 될 수 있겠어요? 홍길동 조차도 어머니가 다르다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는데 어떻게 저 같은 죄인이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겠습니까? 원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예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죽으셨다는 복음을 믿으면 예수님의 아버지가 바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예수님께 속하게 되고 예수님의 아버지가 우리의 아버지가 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거예요.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또 어떤 분이라고 사도신경이 이야기합니까? 천지의 창조주라고 고백합니다.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사도신경에는 단순히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이라고만 고백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더 확장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셨고 이 세상을 운영하시는 분입니다. 또 세상을 운영하실 때 세상 가운데 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켜주시는 거예요. 오늘 읽은 본문 시편 124편 8절에 뭐라고 이야기 합니까?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 말할 때 간단하게 창세기 1장 1절을 가져와서 이야기할 수도 있었는데 굳이 시편에 있는 구절을 들고 왔습니다. 이 부분을 이때까지 한 번도 안 읽어본 사람도 있을텐데 굳이 이걸 들고 왔어요. 시편 124편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원수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는 그 하나님을 찬송하는 내용이에요. 사람들이 우리를 치려고 할 때 물이 우리를 휩쓸 때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신다는 내용의 시편이에요. 그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를 넉넉하게 지키시고 우리는 이 시편을 기록한 다윗처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윗이 원수들의 손에서 벗어나서 “이야!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 제가 살아났습니다.” 이렇게 고백한 내용의 시편입니다. 이 고백이 사도신경에도 그대로 묻어나 있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자녀 삼으신 아버지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려운 순간 곤란한 순간을 굉장히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 순간을 버티게 하는 것이 이 사도신경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교리의 가르침이어야 합니다.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이 세상 가운데서 우리를 지켜주세요. 이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알기도 전에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셔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신 경력이 있으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 위기에서도 우리를 지키고 돌보신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현재 뿐 만이 아니죠. 우리는 불안한 미래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신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 미래가 불안하죠. 고 3시절만 잘 보내서 대학만 들어오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20살이 되는 순간부터 극한의 헬게이트를 경험합니다. 선배들 이야기 들어보면 취업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처럼 힘듭니다. 학점 관리에 토익 점수에 봉사 활동에 별의 별 걸 다 해도 취업이 너무 힘들어요. 그리고 형제들은 취업 고민하기 전에 군대에 취업해야 합니다. 군대에 가면 어떤 환경에서 지내게 될까 이상한 사람을 만나지 않을까 불안한 거예요.
이렇게 20대를 입시와 군대와 취업으로 다 보내면 그 다음에 뭐가 기다립니까? 사회생활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사회 생활은 어떤지 공부 잘하고 똑똑한 걸로 해결이 다 안 됩니다. 제 대학 동기들 중에 목사가 안 되고 공무원이 된 친구들이 좀 있어서 이야기를 들어봤어요. 사회생활 착하게 하고 성실하게 하고 자기가 똑똑해도 뭔가 처신을 잘못하면 직장에서 희생양이 되는 거예요. 제 친구가 직장에서 너무 힘드니까 결국 사표내고 또 다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직장 생활 잘 하면 또 뭐 남았어요. 결혼이 남았어요. 결혼 지나면 또 뭐가 남았어요. 자식 잘 키워야하죠. 승진 준비해야 하죠. 인생에 어려움과 문제가 한도 끝도 없어요. 내가 성실하고 똑똑하다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어요. 내가 열심히 살아도 내 힘으로 해결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신경 첫 번째 문장이 필요합니다. 나의 아버지이신 분, 천지를 만드신 전능하신 분에 대한 고백이 필요합니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서 자녀 삼아주셨기 때문에 험난한 세상 가운데 있어도 의지할 소망이 있는 거예요. 내가 최선을 다해 살다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열심히 살았던 것만큼 거대한 절망이 나에게 다가옵니다. 그래도 우리가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이 절망과 비교되지 않는 소망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천지의 창조주를 믿으며 세상 가운데 나아가게 됩니다.
이걸 알아도 위로가 안 되고 자꾸 마음이 무너지는 걸 경험합니다. 그래서 반복해야 해요. 수학공식도 같은 유형을 계속 풀면서 반복해야 내 것이 되는데 교리는 어떻겠어요. 교리를 삶으로 만드는 과정은 더 느려요. 우리가 교리를 반복해서 이해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사도신경을 통해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통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통해서 계속 반복하고 숙달해야 합니다. 특히 기도로 교리를 소화시켜야 합니다. 기도가 없으면 교리가 머리로만 남아서 소화가 안 됩니다. 동역자들과 이걸로 어떻게 은혜를 받았는지 나누면 너무 좋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우리 영혼이 교리로 무장되고 단련되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굳건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이 사도들을 통해 남기신 가르침을 배우고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남기신 가르침을 잘 이해하기 위해 있는 것이 바로 교리입니다. 교리를 이해하고 고백하는 것은 성도가 마땅히 해야할 의무이고 우리 정체성입니다.
너희가 성도니까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배우라고 하면 참 힘들겠죠? 우리가 성도이기 때문에 교리를 익혔는데 이 교리는 우리 삶에 위로가 됩니다. 오늘 사도신경 첫 번째 문장을 가지고 예를 들어서 우리 삶에 어떤 위로가 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불안한 우리 삶 가운데 예수님의 아버지 되신 분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이미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현재와 미래의 불안과 고난 가운데서 우리를 지켜줄 것을 고백합니다. 이 교리를 통해서 우리는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삶의 무게를 이겨냅니다. 교리가 우리 삶을 위로하기 때문에 우리는 교리를 붙들고 나아갑니다.
사랑하는 중고등부 친구들 학신회 친구들 성도로서 교리에 관심을 가지고 교리를 고백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이 교리로부터 삶의 위로를 얻어 세상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