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중심적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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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우리는 2교구 새벽예배를 통해서 십자가의 복음을 처음부터 쭉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은 1단원 제5과 자기 중심적인 삶의 전반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앞선 내용들을 통해 우리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이며,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동참하는 것임을 나눴습니다.
동시에 우리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며, 포도나무의 삶 또한 오직 하나님 중심적인 삶에서만 가능한 것에 대해 배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이 가득 흘러 넘치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와는 반대되는 타락한 삶, 즉,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삶인 자기 중심적인 삶에 대해서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주일설교를 통해서 성경은 하나의 큰 이야기인 것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6막으로 구성할 수 있다고 나눴습니다.
1막 - 하나님이 자신의 나라를 세우시다: 창조
2막 - 반역이 일어나다: 타락
3막 - 왕이 이스라엘을 택하시다: 구속의 시작
4막 - 왕의 오심: 구속의 성취
5막 - 왕에 대한 소식이 전파되다: 교회의 선교
6막 - 왕의 귀환: 구속의 완성
우리는 신앙의 본질의 삶에 대해 배우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떠한 의도로 만드셨고, 우리가 마땅히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나눴습니다.
제1막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나라를 세우실 때,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의도에 대해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나눌 ‘자기 중심적인 삶’은 이 창조의 목적과 의도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선한 창조세계를 죄로 물들게 했습니다. 이 자기 중심적인 삶이 바로 성경이야기의 제2막 ‘반역’, ‘타락'의 본질입니다. 인간의 자기 중심적인 삶으로의 타락은 창조세계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준 중대한 범죄였습니다.
우리는 먼저 인간의 타락의 지대한 영향을 준 사탄을 묘사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많은 학자들이 이 구절을 천사장 루시퍼가 타락하여 사탄이 되는 과정에 관한 구절이라고 이해합니다.
이 구절을 보니까 사탄은 자신을 지극히 높이고자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했다는 것은 그가 자신이 무한히 자비롭고 거룩하신 하나님처럼 완전하고 온전해지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 위에 그 어떤 통치권자도 두지 않고, 자신이 모든 것 위에 있어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되고자 한 것입니다. 그는 이를 통해 자신의 욕망이 채워지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결과는 사탄이 하나님처럼 된 것이 아니라 음부의 맨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사탄은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인간이 자신과 동일한 범죄를 짓도록 유혹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탄의 방법을 보게 됩니다. 그는 어떠한 우상을 숭배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을 숭배하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는 거짓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고, 인간 자신이 자기 생각에 좋을대로 행동하게 합니다.
인간을 유혹하는 사탄은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이 거짓이라고 말하며, 절대 죽지 않는다고,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탄은 아주 미묘하게 아담과 하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하나님의 본질적인 선하심까지도 의심하게 합니다. 그리고 뱀은 그들이 선악과를 먹으면 진정한 삶의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너희들이 하나님처럼 될거라고 말합니다.
그 말에 인간은 속아 넘어갔고, 하나님을 거부하기로,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되기로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처럼 된 것이 아니라,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타락의 본질이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것, 자기가 중심이 되는 것, 자신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되는 자리로 나아갔을 때, 회복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인간 본연의 위치인 것입니다.
인간은 다시 하나님을 우리의 왕으로,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가장 먼저하는 것이 내가 주인되고 왕 되려 했던 자기 중심적인 삶을 회개하고, 예수를 우리의 ‘주'로 영접하여, 우리 삶을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잘못된 것을 다시 바로 잡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지 않는다면 여전히 타락한 삶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 몇가지 헌신한다고 하는 것, 혹은 심지어 많이 희생한다고 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에서는 예레미야서의 구절을 예를 들며 아무리 종교적인 의식과 헌신과 희생이 가득해도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타락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이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그 위에 아무리 어마어마한 것을 쌓아 올린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시대 유대 백성들은 시바에서 유향을 가지고 오고 먼 곳에서 향품을 가져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정성을 들이고, 애쓴 것입니다. 우리로 예를 든다면,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찬양팀 밤낮 며칠을 모여 기도하고, 연습하며, 합을 맞추고 더 아름다운 찬양을 드리기 위해서 애쓴 것입니다. 그 자체로는 참 귀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떤 상태에서 이런 수고를 쌓았는지 보십시오.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신들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 얼굴을 향하지 아니하였으며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그들이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삶 위해 주님께 드린다고 애써 예배를 준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이 정말로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위한다면, 하나님을 위해 몇가지 하겠다고 애쓰기 전에 자신이 진실로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주목하는 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그들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고 자신을 보게 하며 자신을 내세우게 했습니다.
그렇기에 세상은 자신이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어 사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로 여깁니다. 그렇게 그들을 꾄 사탄의 계략에 빠져 사탄을 따르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모두 사탄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중심적인 삶과 세상 그리고 사탄은 마치 삼위일체처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까지도 여전히 사탄의 계략에 빠져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삶이 아닌, 자기 자신이 중심되는 삶을 버리지 못합니다.
때때로 신앙의 본질에 대해 아는 우리조차도 불쑥불쑥 자기 중심적인 행동을 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 또한 여전히 제 생각과 제 열심으로 그럴 때가 많이 있습니다.
다윗과 베드로도 그러했습니다. 다윗은 사탄의 충동질에 넘어가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병력을 힘 삼기 위해 계수를 했다가 하나님께 심판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지켜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다는 일에 자신의 생각대로 예수님을 막아서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가 아무리 좋은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지라도 하나님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중심적으로 그 뜻을 막아서려는 베드로, 사탄의 속임에 넘어가는 베드로를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가장 우선순위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인가, 하나님이 먼저인가. 내 생각이 지혜로운가, 하나님이 지혜로우신가.
나의 소망은 내게 있는 것인가, 하나님께 있는 것인가.
우리가 무엇이 지혜로운 것인지, 무엇이 소망인지,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무엇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의 이유가 되는 것인지를 생각할 때, 항상 하나님이 우리의 중심되는 것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어야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근원적인 죄는 바로 우리의 왕이신, 주인이신 하나님을 거부하고, 반역을 저지르고 내가 왕이 되고자 한 것, 내가 주인이 되고자 한 것입니다. 그 삶의 열매가 바로 자기 중심적인 삶의 모습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회복하는 길은 우리의 자리를 본래의 자리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듣지 않는다면, 주님이 지금 우리 삶의 중심이 아니라면, 우리가 주를 위해 한다는 것이 전혀 주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