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손

사무엘상 강해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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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새벽기도에 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제 본문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에 대한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분 스스로가 영광을 회복하시고 다시금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도록 일하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일하시는지 그 은혜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손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신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의 손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에게서 대승을 거뒀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전리품으로 얻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신전에 두었습니다. 다곤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물고기, 곡식이라는 뜻인데, 고대근동 여러 지역에서 섬기던 농사의 신, 풍요의 신입니다. 머리와 손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물고기의 모양을 하고 있는 신입니다. 고대에는 민족과 민족간의 전쟁을 각 민족이 후원하는 신들의 대결로 보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아마 다곤 신이 여호와 하나님을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대근동에는 다른 민족과의 전쟁에서 이기면 그 민족의 신상을 자기가 믿는 신의 신전안에 안치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믿는 신이 다른 민족의 신을 통치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과에전쟁에서 이긴 것을 다곤이 하나님께 이겼으며 다곤보다 하나님이 아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다곤이 하나님을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 일어나서 다곤의 신전에 가보니까 다곤 신이 법궤 앞에서 절을 하는 듯한 모양새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3절에 보면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느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스돗 사람들이 다곤의신상을 일으켜서 원래 자리에 두었습니다. 4절에 보시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 다음 날 아침에 가서 보니까 다곤이 법궤 앞에서 엎드려 있었고 그전날과는 달리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져서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제사장들은 다곤 신전의 문지방을 밟지 않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신의 머리와 손이 있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상황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방의 신전에서 이방 신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보지 못한다고 하나님께서 가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이방의 신을 심판하는 심판자 사역을 수행하고 계셨습니다. 이방 나라 가운데 심판의 사역을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사역을 하고 계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메시아적인 사역을 하나님께서 직접 하고 계십니다. 다곤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며 여자의 후손의 사역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방 세계에 복음으로 빛을 비추시며 그분의 나라를 확장하고 계십니다.
다곤 신전에서의 일을 시작으로 하나님께서 본격적으로 블레셋 주민들을 심판하시기 시작합니다. 6절에 보면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셨습니다.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돋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일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다곤의 신상 다곤신의 머리와 손이 잘려나갔습니다. 다곤은 블레셋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통해서 다곤은 그들의 민족을 구원할 손이 없는 가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손은 건재하여 블레셋 민족에게 재앙을 내리고 있지만 다곤은 머리와 손이 없어 그가 수호한다고 했던 블레셋 사람들의 고통을 지각하지 못합니다. 블레셋 사람을 도울 손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눈에 보이지 않고 다곤신의 손은 눈에 보였지만 정작 현실적으로 실제적으로 역사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손입니다. 본문은 이런 대조를 통해 진정한 신이 누구인지 참된 신이 누구인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아스돗 주민들이 너무 고통스러워하니까 그 성의 지도자들이 모입니다. 8절에 방백이라고 소개된 인물들입니다. 이 방백들이 해결책을 내놓는데 하나님의 법궤를 같은 블레셋 민족인 가드로 보내자고 하는 것입니다. 블레셋은 다섯 개의 도시로 된 나라입니다. 그중 하나가 가드입니다. 법궤가 가드로 넘어갔습니다. 9절에 보시면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읍에 더하셨다고 나옵니다.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들이 다 독한 종기가 생겼다고 말씀합니다. 가드 사람들은 법궤를 에글론으로 보냈고 하나님의 손은 아스돗에 이어 가드에서 그리고 에글론에까지 그 힘을 미쳤습니다. 에글론도 동일한 재앙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에서 패배하고 법궤를 빼앗겨서 절망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은 손으로 신실하게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적용) 하나님의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 삶의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삶의 문제를 놓고 기도를 하지만 갑자기 눈 앞에 하나님의 손이 나타나서 문제를 딱 해결해주는 모습을 경험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이 보이지 않는다고 일을 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분이고 그분의 백성을 위해 항상 일하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한 이후로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없었고 블레셋 사람들조차 신상이 넘어지고 몸에서 종기가 나는 이 사건을 명확하게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어떻게 역사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도와주실 손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다급해서 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빨리 내 삶에 나타나서 일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의 마음도 이랬을 것입니다. 애초에 블레셋이랑 싸울 때 하나님께서 능력의 손을 좀 펼치셔서 블레셋에게 완전히 이기도록 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은 인간의 시간과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가장 적절한 순간에 일하십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손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하나님의 손은 낮이나 밤이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쉬지 않으고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고 보호할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장소를 불문하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의 손을 들어 일하십니다.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하나님의 일은 나타납니다.
2- 하나님의 손은 이길 수 없는 것을 이긴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의 손은 이길 수 없는 것을 이기신다는 것입니다. 4장에 나온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두 번에 전투에 걸쳐 많은 전사자를 내었고 흡니와 비느하스까지 사망했습니다. 블레셋은 바다를 근처에 두고 철 생산을 독점하여 군사무기를 제작하고 사용하는데 탁월한 민족이었고 이스라엘은 전쟁에 특화된 그런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블레셋이 투지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상대했을 때 이스라엘은 꼼짝도 없이 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능력으로 절대 블레셋을 이길 수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5장을 보시면 법궤가 블레셋 사람들을 통해서 블레셋 땅으로 갔을 때 하나님께서 법궤가 가는 곳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블레셋을 능히 이기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 거짓신인 다곤을 심판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며 블레셋에 선전포고 하시고 가는 곳마다 블레셋을 독종으로 심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심판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이스라엘이 이길 수 없는 것을 이기셨습니다. 블레셋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은 웃음거리였을 것이고 패배자였지만 하나님이 웃음거리가 되시거나 패배자가 되시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충분이 블레셋을 심판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이 독한 종기는 신명기 28장 27절에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는 수단으로 등장합니다. 27절에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실 때 나오는 피부병 목록이 있습니다. 이 독한 종기가 거기서 나옵니다. 히브리어 ‘오펠’이라고 하는 이 독한 종기는 신명이 28장 27절에서 치질로 등장합니다. 이 독한 종기가 27절에 열거 될 때 애굽의 종기 그 다음으로 열거가 됩니다. 이 독한 종기는 애굽을 쳤던 여섯 번째 재앙 종기와 동등한 수준의 심판입니다.
출애굽기에서도 애굽의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손을 경험했습니다.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슨 수로 당시에 강대국이었던 애굽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이스라엘 단독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으로는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예들의 힘으로 불가능한 출애굽의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마치 출애굽의 역사와 같은 구원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블레셋을 심판하고 법궤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 애굽 했듯이 법궤가 출 블레셋 하도록 하셔서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 곁으로 법궤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으로는 법궤를 다시 탈취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은 이스라엘이 법궤를 탈취할 엄두를 내기도 전에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보기엔 하나님께서 애초에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했을 때 이렇게 초자연적인 역사를 일으키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지는 순간에 그 결정적인 순간에 갑자기 하나님의 손이 딱 등장해서 이스라엘이 이기지 못하는 것을 이기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손을 펼치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편의에 따라 움직이는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계획에 하나님의 손을 펼쳐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어렵고 힘든 순간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펼쳐질 때까지 믿음으로 기다리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펼쳐지는 순간 우리가 이길 수 없는 것을 이기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소망이 있기에 기도로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적용)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 가운데서 빛과 소금으로 영향력을 미치며 살고 싶은데 우리의 능력으로는 우리의 인격으로는 도저히 세상이 감당이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도 세상에서 살아남을까 말까인데 정직하게 살고 믿음을 지키며 살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며 복음을 전하며 사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많이 듭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정말 어렵고 힘듭니다. 법궤를 빼앗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무기력하고 절망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다시금 힘을 얻습니다. 법궤를 빼앗긴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일하십니다. 우리 힘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의 손이 해내십니다.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불가능한 일인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식으로 해결하실 것입니다. 나의 문제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도구로써 하나님의 손에 들려 놀라운 일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나에게는 사제의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손이 활동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가 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우리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을 의지할 때 블레셋이 하나님의 손을 인정한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손을 인정하는 일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우리가 볼 수 없고 알 수 없을 때에도 쉬지 않고 신실하게 움직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손은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내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확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이 보이지 않아서 절망하지만 알고 보니 그게 아니라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감사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은 나의 예상과 상상과 계획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가 모를 때에 내가 감당 못할 때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경험하는 하루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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