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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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Ruth 1:1 NKRV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사사시대 -
1. 하나님이 이스라엘 구원을 위해 세운 사람
2. 여자를 재산처럼 여기던 시대 - 레위 지파(목사님) 베들레헴에서 첩을 들여서 일어난 토막 살인사건
Ruth 1:16 (NKRV)
16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룻은 자기 민족과 평생의 터전을 버리고 낯선 나라로 떠나기를 결심합니다. 오르바는 자신의 민족을 떠나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룻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베들레헴과 모압의 거리는 약 80킬로정도의 거리이고 유대민족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다.
모압족속은 이방인이었다. 유대민족에게 이방인이란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불가촉 천민 계급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심지어 창기보다 더 더러운 존재로 여겨지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민족이 믿는 유대지방으로 어머니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따라갔습니다.
이제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살펴봅니다.

보리추수

Ruth 1:19–22 NKRV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모압에서 돌아왔을 때는 보리를 추수하는 시기였습니다. 추수는 풍요로움입니다.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들어오면서 이제는 잘 살 수 있겠다는 희망과 확신으로 기쁨에 차서 돌아왔을 까요?
그런것 같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고향사람들이 나오미를 기억하고 나오미의 이름을 부르지만
나오미는 자기의 이름을 더이상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기쁨이 아닌 괴로움이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아직도 모압따에서 겪은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에 매여있는 채로 살기위해 돌아온 그들의 지친 모습이 보입니다.
이 부분을 보면 나오미는 혹시 나에게도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하나 붙들고 왔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나오미와 룻에게 베들레헴은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양식을 주었다는 소식을 듣고온 그들이었기때문에
자신들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작은 희망마저 비웃기라도 하는것 처럼 보이는 현실이 그들을 맞이합니다.
돌아온 나오미에게는 땅도 없고 추수할 보리도 없습니다.
나오미를 따라온 룻에게는 땅과 보리 뿐만 아니라 아는 사람도 한명이 없는 광야와도 같은 세상이었습니다.
어찌보면 모압 땅보다 더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이삭을 줍겠나이다

이제 모압에서 유대땅으로 건너온 룻의 상황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Ruth 2:2 NKRV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그들에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룻은 이삭을 줍겠다고 나갑니다. 이삭을 줍는다는 것은 가장 천하고 힘없고 가난한 자들이 먹고 살기위해 구걸하는 것과 같은 행동입니다. 가장 가난한 자들이 못먹어서 굶어 죽는 것을 막기위해 율법으로 떨어진 이삭은 그대로 남겨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나 쉽게 보리밭에 들어가서 마치 원래부터 자기 것인양 가지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주인의 허락을 받고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이방인인 룻에게는 더욱 힘든 일이었습니다.
고향을 떠난 나오미가 데려온 이방여인 룻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제 우리식구가 되었다가 아니라 왜 저런 이방인까지 데리고 온거야하는 시선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도 계속헤서 룻의 이름 앞에는 모압여인 , 모압소녀 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실제로 보리밭의 주인인 보아스가 찾아와서 자기 직원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보면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Ruth 2:5–7 NKRV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는 원어를 보면 계속 서있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땅의 주인인 보아스가 나타날 때까지 이방여인일 뿐이었던 룻은 하루종일 서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때 자신을 향한 배척과 무시의 시선을 느끼면서 하루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른 밭으로 가지 않았다는 것도 신기한 일입니다.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통해 알게된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결단하고 온 삶의 현실은
바로 외롭고 여전히 배척당하며 존재감 없는 먹을 양식도 없는 가난한 자의 삶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을 수 있습니다.
매일의 삶을 살아가며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믿음의 선택을 하셨습니까?
그리고 그 믿음의 선택끝에 마주하게된 현실은 어떻습니까?
여전히 초라한 모습으로 곱지 않은 시선속에 하루종일 서있어야 된적은 없었습니까?

내 딸아 들으라

하지만 룻은 이미 시어머니 나오미의 하나님을 알았고 나오미의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삶의 터전을 버리고 온 비장한 믿음의 선택을 하였기에 좀처럼 주눅이 들거나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시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보아스를 만나게 됩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9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추수 현장에 도착한 보아스에게 여전히 계속해서 모압여인, 모압소녀로 설명되고 있던 룻을 보아스가 내 딸아 라고 불러줍니다.
처음 만난 자리였지만 보아스는 이미 룻에대해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 가지말고 여기서 이삭을 주우라고 허락하며 여러가지 일들을 배려해줍니다.
보호해줍니다.
마실물을 주는 친절을 베풀어줍니다.
여기서 이런 보아스의 친절과 호의에 룻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이방인으로써 차가운 대우를 받고 있던 룻에게 이런 보아스의 친절과 호의는 이해가 안갈 정도 입니다.
그래서 룻이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라고 되묻습니다.
비록 룻이 어머니의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먼곳 까지 왔지만 자기 스스로도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유대사람들과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난, 배고픔, 천대, 외로움, 멸시, 배척등 모든 상황이 자신에게 당연할 뿐이었습니다. 힘들었겠지만 슬펐겠지만 당연했습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자신은 이방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상주시기를 원하노라

하지만 보아스가 룻의 정체성을 일깨워 줍니다.
Ruth 2:11–12 NKRV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보아스는 룻을 이방여인으로 모압여인으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자라고 말해줍니다.
룻은 천하게 여겨지는 이방인이 아니요 이스라엘의 회중에 들지 못한는 이방인이 아니요
여호와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주께 피하는 자임을 알아줍니다.
그리고 그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상주시기를 원한다고 말해줍니다.
믿음의 선택에 대한 대가로 가난과 외로움봐 배척과 수치와 조롱이 올지라도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내하고 믿음의 확신을 지킨 룻은 결국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고 그가 또 낳고 낳아 결국 예수님이 태어나게 됩니다.
이방여인 더럽다여겨지던 모압땅의 여인이 믿음의 선택과 인내로 예수님의 조상이 된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선택을 하고나서 만나게 될 보아스는 어디있을까요? 언제즘 보아스가 나타나서 나를 위로해 줄까요?
언제즘 나에게 니가 어떻게 행했는지 않다고 말해줄까요?
우리는 이땅에서 보아스를 만나고 싶고 이땅에서 위로를 받고 싶고 이땅에서 상 받기를 원합니다.
그럴수 있습니다.
하지만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나선 여정이 베들레헴에서 풍족한 삶을 누리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따라 나선것 처럼 우리도 이땅의 보상을 바라며 믿음의 여정을 따라나서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믿음의 여정을 계속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보아스는 바로 예수님 입니다.
오늘도 이삭을 주어야 하는 하루가 지나고 내일이 기다리고 있지만
예수님의 위로가 알아주심이 우리와 함께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백성 삼아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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