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15중고] 고난 중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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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본문 출 3:1-5
총리 요셉을 통하여 이집트는 큰 기근의 때를 잘 넘길 수 있었고, 또한 야곱의 가족들 70명이 이집트로 건너와 요셉과 함께 살게 되었다. 어찌보면 요셉은 이집트의 영웅과도 같았다. 그랬던 그가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점점 잊혀졌다. 그러면서 이집트에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세워졌고, 그들은 점점 야곱의 후손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부리면서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이스라엘의 신음소리와 울부짖음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이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을 이집트에서 건져 내시려 한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배경이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쫓겨나 미디안 광야의 호렙 산에서 양을 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어떤 장면을 보게 되는데 그 장면이 모세의 눈을 사로잡았다. 장작에 불을 붙여본 친구들은 알겠지만, 바짝 마른 장작에 불이 붙으면 활활 타오른다. 하지만 장작이 다 타버린다면 그 불은 어떻게 되는가? 곧 꺼진다. 지금 모세가 보고 있는 이 장면은 참 신기하게도, 바짝 마른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다면 그 나무가 다 탄 후에 금방 그 불이 꺼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지금 눈 앞에서 타고 있는 그 나무는 불에 사그라들지도 않고 불꽃이 꺼지지도 않는 것이다. 참 희한하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방금 읽은 2절과 4절에 그 대답이 있다. 거세게 타오르는 떨기나무 사이에서 모세와 말씀을 나누는 분, 하나님으로 인해 그 나무의 불길이 사그라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떨기나무의 불꽃 가운데 계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모세를 부르셔서 이집트에서 고통받고 있는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을 탈출시키는 사명을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부르셨을까? 이왕이면 천둥번개가 치는 폭풍우 속에서 부르셔도 되고, 거센 토네이도 바람 속에서 모세를 부르셨어도 되었는데 왜 하필 아주 뜨겁게 타오르는 떨기나무 속에서 모세를 부르셨을까? 이는 이 장면을 통해 모세에게 어떤 교훈을 주시고자 했기 때문이다.
신4:20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시고 너희를 쇠 풀무불 곧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자기 기업의 백성을 삼으신 것이 오늘과 같아도” 라고 하시고, 또 사48: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라고 말씀하신다. 이 외에도 여러 부분에서 성경은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있는 이집트를 ‘고난의 풀무불'로 말하고 있다.
풀무가 무엇인가?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거나 녹이기 위해 화로에 바람을 불어넣어서 화력을 올리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바람을 불어넣어 산소를 공급받은 풀무불은 단단한 쇠까지도 녹여버릴 정도로 뜨겁게 타오른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를 풀무불이라고 말씀한다. 이 뜨거운 풀무불 속에서 이스라엘은 금방이라도 타버릴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망해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와 같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풀무 속에서 이스라엘이 망하지 않는 것이다. 사그라들지 않는 것이다. 마치 모세의 눈 앞에서 불에 타고는 있지만 사그라들지 않는 떨기나무처럼 말이다. 왜 떨기나무가 불에 타고 있지만 사그라들지 않았는가? 그 떨기나무 가운데에 누가 계셨기 때문에? 하나님이시다.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 앞에서 참 신실한 예배자들이었다.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던 자들이었기에 하나님께 많은 복을 받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로 일곱 배나 더 달궈진 풀무불 속에 던져졌다. 그들을 풀무불에 던졌던 병사들도 그 뜨거운 불로 죽었지만, 정작 그 불길 속으로 던져졌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 옷자락 하나도 불에 타지 않았다. 어떻게 그 맹렬한 풀무불에서도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이 다치지 않았던가? 그 불길 가운데 누가 계셨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고난의 풀무불인 이집트 안에서 극심한 고통 중에 있다. 이집트는 이스라엘을 완전히 말살시키려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태어나는 족족 강에 던져버리게 하였고, 너무나도 힘든 일들을 시켜 그들을 괴롭게 하였다. 절망적이다.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숨쉬는 것 조차 버겁다. 고난이 아주 맹렬하게 타올라서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 주님의 몸된 교회를 태워버릴 것 같았는데 그 고난이 교회에 조금의 해도 입히지 못했다. 어떻게 그 거센 고난 중에도 이스라엘이 망하지 않았던가? 그들이 고난 받을 때 누가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인가? 하나님이시다.
택하신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며, 그 아들의 이름을 친히 말씀해 주신다.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이며, 이 이름의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라는 의미이다. 즉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교회인 저와 여러분들 가운데 함께 하시며, 고난 중에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며 참 힘겨운 순간들이 있다. 가정의 문제, 친구들 간의 문제, 진로문제, 개인적인 문제들, 셀 수 없이 많은 문제들이 일어난다. 어떤 문제라도 상관없다. 어떤 힘든 상황이라도 상관없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힘겨운 상황들을 다 알고 계신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고민과 괴로움을 다 알고 계신다. 우리 예수님은 힘들어하는 여러분들을 그냥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다. 여러분들을 포기하는 분이 아니다. 나몰라라 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다.
인생 속에 여러 어려움들이 찾아올 때, 고난의 순간들이 찾아올 때, 너무 아프고 괴롭고 눈물날 때, 지금 모세가 바라보고 있는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길 축원한다. 우리 주님은 고난받는 주님의 교회와 함께 하신다. 여러 어려움들이 날 넘어뜨리려고 다가오지만, 세상 어떤 힘보다 강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주님과 함께 모든 어려움들, 고난들을 넉넉히 이기는 이 자리의 모든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