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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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42장 - 사도신경 - 성경봉독(교독)

3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4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5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6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7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8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9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1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2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15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의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16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이르되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17 이르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8 사무엘이 그것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19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20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21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설교 홍수의 시대

유비쿼터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라틴어 단어인 유비쿼터스는 “어디에나 있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본래는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가, 21세기에 들어서는 IT 기술이 발전하여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게 된 우리 시대의 놀라운 모습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신앙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이것이 우리의 주일의 모습에도 큰 변화를 끼치게 되었는데요, 아침에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거실에서나 침실에서 스마트폰을 보면서 예배하는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시간과 장소에 제한을 받지 않고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무엇인가 우리의 영혼이 메말라가는 듯한 느낌은 비단 저 혼자만이 느끼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이시간만 해도 유튜브에는 수백, 수천 개의 교회들이 제공하는 새벽 예배 영상이 중계되고 있습니다. 말그대로 예배 홍수의 시대입니다. 옛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요? “홍수가 나면 마실 물이 없다.” 예배는 넘쳐나는데 진정으로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영혼의 깊숙한 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일은 왜 점점 줄어들어가고 있을까요? 우리의 귓가를 울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넘쳐나지만 왜 우리의 영혼을 울리는 레마의 말씀은 사라져가고 있을까요?
말씀의 양적인 측면에서 말고 질적인 측면에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사무엘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던 때와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절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삼상 3: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예나 지금이나 무엇인가 문제가 생기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삶에 이 말씀을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 2절을 보면 당시 제사장이었던 엘리의 상태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삼상 3: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물론 그가 늙어 육체적인 눈이 어두워졌기도 했지만, 이는 당시 엘리 제사장이 영적으로도 눈이 어두워져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육체적인 눈은 나이가 들면서 어두워지는 데 비해, 영적인 눈은 나이가 들어도 어두워지지 않습니다. 영적인 눈을 어둡게 만드는 것은 절대 노화가 아닙니다. 영적인 눈은 오직 죄악으로 인해 어두워집니다. 그렇다면 엘리 제사장의 눈을 어둡게 한 그의 죄악은 무엇이었을까요?
13절에서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의 죄악을 명백히 드러내십니다. 삼상 3: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엘리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금하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이 그의 죄악이었습니다. 당시 엘리의 두 아들은 제사장으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본래 제사장은 예배자가 제물로 바친 제물의 일부를 취하여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는 제사장의 몫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엘리의 두 아들은 갈고리로 찔러 걸리는 부위마다 다 자신의 것 삼았습니다. 심지어는 제사가 마치기도 전에 고기를 날 것으로 취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성막 문에서 수종을 드는 여인들과 함께 잠자리까지 가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제사의 규례를 우습게 여긴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엘리의 집안에 선지자를 보내셔서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삼상 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이런 심판과 책망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엘리 제사장은 아들들의 잘못된 행실을 그치도록 금하지 못하였습니다.

성과 속의 구분

이는 성과 속의 구분이 사라지게 한 죄입니다. 거룩과 세속의 차이가 사라지게 한 죄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이스라엘의 제사장으로서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도록 가르치고 이끌어야 할 의무를 가진 자들입니다. 거룩히 구별된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말씀과 제사를 대하는 중심에 거룩히 구별된 마음이 필요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요. 하지만 엘리의 두 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제사를 대함에 탐욕과 정욕과 무분별함이 가득하였습니다. 이러한 중심에서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봉사와 섬김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엘리 제사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으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거룩함을 지키도록 가르치고 이끌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자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업신여기는데도 그들을 멈춰 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도록 불러내신 이스라엘이 그 거룩함을 잃고 세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방관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은 것이지요. 하나님은 이것을 결코 작은 죄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 자들로 인해, 이스라엘에서 거룩과 세속의 차이가 사라지도록 만든 자들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말씀하시기를 그치셨습니다. 이런 어두운 시기에 하나님께 한 아이가 보였습니다. 바로 사무엘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사무엘은 젖을 뗀 이후로 하나님께 바쳐져 성막에서 자란 아이입니다. 엘리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 이제 막 성막에서 레위인들이 해야 할 봉사의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유세비우스라는 유대인 역사가는 이 때의 사무엘의 나이를 12세 정도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삼상 3:2-3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여기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다는 구절에 주목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에게 해가 지고서부터 해가 뜨기까지 성전의 등불을 꺼지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사무엘이 맡은 봉사의 일 중에 이 성전의 등불을 관리하는 일 또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성전의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은 제사를 맡아 봉사하는 것에 비하면 아주 작고 사소한 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아무도 깨어있지 않는 시간에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소홀히 여기기 참 쉽지요.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업신여기는 제사장들이 가득한 성막에서 자란 사무엘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등불은 여전히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작고 사소한 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소홀히 여기기 쉬운 일이지만 사무엘은 이 일을 맡아 아주 성실하게 행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마음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향한 존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된 자로서 자기에게 맡겨진 것이 어떠한 일이던 아주 소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해 임했습니다. 그런 사무엘의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한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져있던 이스라엘에게 사무엘을 통해서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하나님께서도 존중히 여기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함을 지키며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사무엘은 결국 자라나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나타내는 선지자로 세워집니다. 사무엘 한 사람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졌던 실로에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 구별된 마음을 향해 임재하시고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시대의 모습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마음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를 대하는 모습은 어떻습니까? 유튜브에 예배 영상은 넘쳐나지만 우리의 영혼은 메말라가고, 우리 삶에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사라져가는 것이 우리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재미있고 흥미로운 영상을 보는 것인지, 예배를 드리는 것인지 전혀 구분할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실 것이라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몫과 나의 몫을 저울질하며 어떻게 하면 나의 몫을 조금이라도 더 남길까 고민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들려주실 것이라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삶인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의 삶인지 도무지 구분할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실 것이라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 구별된 마음을 향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엘리 대제사장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지고 사무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던 이유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과 행실을 바꾸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 깊숙히 들려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세상이 발전하면서 많은 것들이 변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모습 또한 하나둘씩 바뀌어 갈때에, 그것이 세상과 같아지는 모습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여기십시오.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켜나가십시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며 구별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를 대하십시오. 이것이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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