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의 표징을 주시는 예수님

창세기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120 views

AG1 아브라함, AG2 예수님, AP 언약, CP 이방인, PW 교육, MIW 포피를 베어라, SC 성례를 통해 믿음을 세움, A 표징, C 고안물

Notes
Transcript

S1. 환영과 인사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하고 같이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오늘은 스승의 주일로 지킵니다. 특별히 우리 장로 교회는 교육을 강조하는 특성을 가집니다. 이는 중생한 성도가 지속적으로 양심을 경각시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바른 계승의 삶입니다. 내가 누구에게서 배우고 어떤 사람의 삶과 사역을 따라 살았는가 하는 것은 나를 형성하는 매우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이런 까닭에 성도에게는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참 중요하고 목사님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어느 목사님에게서 어떤 신앙을 배웠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궁극적 교사로 오신 예수님을 깨닫고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 성도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도 나의 교사로 주신 분들이 누구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감사하면서 그런 교사를 통해 나를 자라게 하신 참 주님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S2. 주제 제시

오늘은 특별히 참된 믿음을 가르치는 영적 교육의 수단이라 할 수 있는 성례에 대해 함께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앙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 믿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교육적인 조치도 취하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이 아닌 이스마엘을 낳고 십삼 년의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 그를 찾아오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시행해야 하는 신앙 교육적 도구를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할례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할례를 통해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지속적으로 참믿음을 기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고, 우리 삶에도 참된 교육과 가르침으로 주신 성례 주심을 확인하고 참믿음을 온전히 세워가기를 결심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대대에 행할 할례를 허락하십니다. 우리 9, 10절 말씀을 같이 봅시다.
창세기 17장 9, 10절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할례를 행하도록 명하십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할례를 행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할례가 무엇입니까? 할례는 난지 팔일 된 남자 아이의 생식기의 포피를 잘라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12절 말씀을 봅시다.
창세기 17장 12절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오늘날 할례는 남자아이의 포경 수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언약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언약의 징표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11절 말씀을 봅시다.
창세기 17장 11절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할례는 언약 자체가 아니라 언약을 맺은, 혹은 원어적 표현으로 보면 언약을 자른 것으로 외적인 확증하는 상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 외적인 표징을 언약만큼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13, 14절을 봅시다.
창세기 17장 13, 14절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어진 은혜 언약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언약의 징표인 할례가 반드시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표징이 사라지면 언약을 배신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 할례의 표를 행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서 끊어지게 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S3. 문제 제기

우리는 여기에서 매우 큰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외적인 표징이 무엇입니까? 외적인 것은 내적인 것을 증거하는 증인이지 내적인 언약 자체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외적인 것을 행하지 않으면 내적인 것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니 마음을 보시고 외면을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할례에 관해서는, 특별히 언약에 관하여서는 이렇게 외적인 표징을 중요시하는 것입니까? 할례 안해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내적인 약속인데 왜 외적인 할례를 안하는 것을 언약을 배반한 것으로까지 여기면서 외적인 표징을 중요시하는 것인가요?

J1. 하나님의 마음, 심정, 그리고 방법

우리 하나님은 죄인인 성도들이 참된 믿음 안에서 온전한 영의 삶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아담의 범죄와 타락에도 불구하고 택하신 작정을 이루시고자 아들을 보내셔서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은 그 아들을 믿는 믿음이 우리 성도의 마음에 깊이 자리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인간의 영이 쉽게 죄의 유혹에 흔들려 넘어지고, 믿음을 끝까지 붙들지 못하는 연약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보내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신 아버지께서는 아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온전히 붙들도록 외적인 상징들 곧, 성례들도 함께 행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씨를 주셔서 구원을 베푸실 것을 믿도록 하신 하나님께서는 십 삼년 동안 가짜 아들을 만족하며 사는 아브라함에게 참 아들을 주실 믿음을 붙들도록 언약을 기억하게 하는 징표를 몸에 새겨 주시는 것입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를 이 땅에 오게 하심으로 아브라함과 믿음의 자녀들을 구원할 계획을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작정은 예수님을 이 땅의 진정한 구원자로, 죄인의 죄악을 대신하여 심판받으시는 대속 제물이 되게 하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없으신 분이 우리의 죄값을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순종의 의로써 성도인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먼 미래에 오실 바로 이 예수님, 곧 메시야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사라를 통해 오실 것을 온전히 믿어야 했던 것입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

이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셔서 온전히 율법을 순종하심으로 의를 완성하시고, 나무에 달려 죽으심으로 죄인을 향한 모든 죄값을 대신 하시는 구주가 되셨습니다. 이 주님은 반드시 이 땅 가운데 오실 분이시고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셔서 우리의 구주가 되실 분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을 계시하는 아브라함의 아들은 결코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 믿음을 저버리고 이스마엘을 붙들고 살았기에 하나님은 이제 이 연약한 믿음을 온전히 세우시고자 살을 찢어 내고 피를 흘려 죽으실 예수님의 오심을 할례를 통해 아브라함과 그 후손의 몸에 새기게 하십니다.

W1.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주요 구원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이스마엘은 결코 아브라함 언약의 약속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사라와 함께 세상 문화 속에서 만들어 낸 인간의 고안물이지 결코 약속의 아들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복을 주시지만, 그는 육신의 복을 이어받은 자이지 진정한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아브라함이 이삭 주실 것을 잊어버리면 그는 믿음의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자가 됩니다. 이미 믿음을 주셨는데 어떻게 그것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까? 약속을 붙들지 않고 다른 아들을 믿으면 아브라함이라 할찌라도 구원의 희망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들 주심을 온전히 붙들게 하시려고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할례를 주시는 것입니다.

W2. 할례는 구세주의 오심을 가르치는 진정한 영적인 교육 도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살을 찢고 피를 흘리는 할례를 몸에 새겨 진정한 구원주로 오실 중보자 예수님을 믿고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례가 주님이 오셔서 세례로 바뀌기까지 모든 믿는 자들은 할례를 통해 참믿음의 은혜를 마음에 깊이 새기며 살아야 했습니다. 오실 중보자 예수님이 살을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가 영원한 구원을 얻어 아담이 잃어버린 천국을 회복하고 새생명을 얻게 하시는 진리를 항상 붙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을 온전히 붙들고 진작시키기 위해 주신 거룩한 성례였던 것입니다. 이 성례가 행해지지 않으면, 이 진리가 가르쳐지고 보여지는 할례를 행하지 않는 자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끊어진 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W3. 하나님은 성례의 교육을 통해 자기 자녀들이 믿음을 지속하고 성장케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믿음을 주신 후에는 믿음을 교육하심으로써 성도들의 신앙이 지속되도록 하십니다. 이는 성도들에게 믿음의 교사를 세우시고 그 교사를 통해 배우도록 하심으로 지속적인 신앙생활과 삶이 전수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계승자이며 동시에 할례의 잔파자, 곧 할례의 교사가 되어 자녀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있습니다. 믿음을 통해 언약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신앙의 교사로 세우셔서 그 자녀들이 아브라함에게 참된 언약의 신앙을 교육하게 하십니다. 부모는 자녀의 일차적인 윗사람이며, 진정한 교사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교육을 받고 신앙을 보고 배워서 진정한 믿음의 계승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 예배, 가정 기도, 가정 성경 읽기 등 가정에서의 참된 신앙의 삶을 전수함으로서 진정한 믿음이 전수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할례와 같은 성례는 바로 이런 교육적 기능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계승하고 성장하는 교육적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T1. 아브라함은 할례를 계승하며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누립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할례를 외적인 할례의 계승으로만 여겨서는 안됩니다. 아브라함의 할례는 마음의 할례를 외적으로 드러낸 것이지 겉으로만 할례를 행한 것이 아닙니다. 에스겔 44장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에스겔 44장 9절
9.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있는 이방인 중에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선지자들은 아브라함이 물려준 할례를 마음과 몸의 할례라고 가르쳤습니다. 마음이 언약의 주인이신 아버지를 모시고, 언약의 중보자로 오실 메시야를 영접하지 못하면, 몸의 할례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가정 예배나 부모의 기도 생활이나 교사가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영의 양심을 통한 온전한 것이 못되고 시간만 때우는 외적인 것이 되면 자녀에게 신앙은 계승되지 않습니다. 그저 형식만 남아 있는 그런 신앙은 자녀들의 대에서 끊어지고 사라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마음과 몸, 영과 육 전체의 온전한 할례를 행함으로 참된 믿음의 계승자가 되었고, 자녀들을 믿음으로 세우는 참 복음의 전수자가 된 것입니다.

T2. 세상은 종교의 외면만을 보고 그 내면의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할례로 표현되는 성례는 외적인 드러남입니다. 세상은 이런 신앙의 외적인 측면만을 보고 믿음이 가져오는 참된 언약의 회복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외적인 것이 경건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은 종교성에만 관심을 가지고 진정한 언약적 인 하나님과의 내적 회복을 알지 못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분들 중에도 참된 신앙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들은 외적인 형식만을 따라 할 뿐 마음의 변화가 없고 삶의 진정한 새로움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교회의 온갖 외적인 것에는 관심을 가지나 진정한 인격과 내면의 변화를 얻지 못하고 기대하지 못하는 까닭에 참 복음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T3. 참 성도는 성례를 통해 믿음의 약속을 항상 기억하고 감사하는 삶을 누립니다.

구약에서 할례는 유월절과 함께 중요한 성례를 이룹니다. 이들은 모두 신약의 세례와 성찬에 대비되는 믿음의 외적 표지들입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는 성례가 이보다 더 많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오실 구원의 중보자를 상징하는 외적 표지는 노아 시대 때에는 방주와 무지개가 있습니다. 기드온에게는 양털이 성례적 기능을 감당하고, 삼손에게는 머리털이 그런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는 믿음의 외적 상징들로서 성례라고 이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신 예수님도 구약의 상징들을 다 정리하시고, 두 가지 성례만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그중에서 예수님은 성찬을 새 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19, 20절입니다.
누가복음 22장 19, 20절
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이처럼 성찬은 세례와 함께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기억하게 하고, 그분을 영접한 믿음을 항상 가르쳐 깨우치는 소중한 은혜의 방편입니다. 또 세례는 물과 피로써 우리를 중생케 하신 그 은혜를 고백하는 성례입니다. 성도는 이러한 외적인 표징들을 행함으로써 믿음을 굳건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단번에 온전케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은혜는 단번의 사건이지만, 역사를 사는 우리는 반복하여 이 가르침을 행해야 믿음을 굳건하게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주신 구원을 취소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시간을 사는 우리가 끝까지 신앙의 길을 싸우며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은혜를 기억하도록 예수님은 성도의 교사로 목사를 세우시고, 예배 안에서 말씀과 함께 세례와 성찬을 행하게 하심으로 참믿음을 온전히 붙드는 위로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더하여 어린 자녀들을 위해 교사들을 세우시고, 성도들이 자라가는 과정에서 목사와 함께 항상 교사를 주심으로 믿음을 강화하고 붙들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믿음의 부모들이 바로 진정한 자녀의 교사들인 것입니다.

L5.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믿음을 선물로 주실 뿐만 아니라 그 믿음을 항상 기억하고 되새김질 할 수 있는 성례도 선물로 주십니다. 그리고 이 성례를 집례할 교사도 주시는 것입니다. 목사는 교사가 되어 성도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는 것입니다. 더하여 교회는 많은 교사들을 세워 성도의 자녀들을 가르쳐야 하고, 나아가 성장의 과정 과정마다 많은 교사들을 세워 성도들이 자라도록 도와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평생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주신 믿음을 소중히 간직하고, 그 믿음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 평생 성례를 행하며, 지속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배우고 익히고, 그분의 삶을 행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항상 성경과 함께 교리 문답서를 펼쳐놓고 자녀와 대화하고 가르치고, 예배하며 사귐을 가지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생명이 태어날 날 때마다 할례를 행하고 믿음을 전수하는 일을 행했습니다. 비단 할례만이 아니라 예배와 신앙 교육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굳게 하고,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항상 배움에 익숙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신앙을 주신 은혜를 붙들고 지속적으로 배우고 익히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그래서 배움이 끊어지면 신앙은 죽습니다. 교회를 두신 이유는 이 가르침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배와 성례는 신앙을 가르치고 배우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교회의 기강은 바로 이 신앙을 배우고 익히도록 질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기강은 단순히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강은 참된 본질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익히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배우지 않는 자를 권면하여 배우게 하는 것이 기강입니다. 배우지도 않고 직분을 수행하는 이들은 스스로 직분을 내려놓고, 바르게 배운 후에 그 온전함으로 섬기게 하는 것이 기강이고 질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바른 믿음의 질서로서의 성례를 허락하고 계십니다. 왜요? 아브라함이 스스로 아들을 만들어서 그것에 만족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응답을 만들고 자기 방법으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새겨 주시려고 성례를 주시고, 바른 기강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스승의 날에 우리 모두 바른 가르침을 주시는 참 교사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붙들고, 그 주님의 사역을 위임받은 나의 교사들에게 감사하며 믿음의 온전한 성장을 이루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찬양 85장

구주를 생각만 해도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