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3)

사무엘상 강해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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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늘 본문은 사무엘이 나이가 들고 나서 생긴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죄인인 우리가 문제를 맞이할 때 어떤 실수를 하게 되는지 이 실수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1- 죄인은 현실의 어려움을 체제의 변화로 극복하려고 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죄인은 현실의 어려움을 체제의 변화로 극복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8장 1절을 보시면 미스바에서의 대각성 이후로 세월이 많이 지났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40대 정도의 왕성한 나이였던 사무엘도 이제 많이 늙었을 것입니다. 8장 1절을 보시면 사무엘이 했으면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절에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에서 사무엘이 사사직을 세습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명에게 세습한 것이 아니라 두 명에게 세습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르던 사무엘이 왜 이런 실수를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사사기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사직분이 세습되는 경우는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역사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케하셔서가지고 사사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런 드라마틱한 역사가 없더라도 적어도 사사기에는 사사직분을 자식한테 물려주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사무엘이 성경적인 전례가 없는데, 자식에게 사사직분을 세습해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에게 사사직분을 세습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래도 사무엘 선지자의 자녀들을 세우면 되겠지 하고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자녀들을 직접 가르치면 사사사직분을 잘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3절에 보시면 사무엘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사사의 직무중에 하나는 군사적인 지도자가 되는 것 이외에 재판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사 드보라가 이 일을 했습니다. 사사직을 세습받은 사무엘의 아들들은 전혀 사사다운 사역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사직분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그 직권을 오용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사무엘을 찾아갑니다. 5절 말씀입니다.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에 죄인의 특성이 드러납니다. 사람을 세우는 문제를 임의로 했다가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또 다시 사람을 세우는 것으로 이 문제를 풀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의 공동체로서 옛 언약 시대의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에 어려움이 생기면 이것을 믿음으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사무엘이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번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사직분을 세습해서 세워보지 않았습니까? 사무엘의 아들이니까 잘 하겠지 그래도 내 아들들이니까 내가 잘 가르치면 되겠지 했다가 결국 그 결과가 안좋게 나왔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체제를 세웠다가 결과가 이렇게 나왔는데 이때 회개하고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또다시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죄인의 특성은 현실에 어려움이 닥치면 자꾸 제도를 변화시켜 나가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늙으면 그 아들들이 똑같이 잘하겠지 하다가 잘 안되니까 그러면 왕을 세우자 이런 식으로 사고하게 됩니다.
당시 왕정체제는 세속적으로는 정말 좋은 시스템이었습니다. 크고 강한 나라들은 이스라엘처럼 임시적인 지도자가 아닌 왕정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왕이 신하를 세워서 나라를 다스리고 군사를 양성해서 다른 나라로부터 국가를 지키고 백성들간에 문제가 생기면 엄한 벌로 징계를 하고 세금을 걷어서 필요한 시설들을 휘황찬란하게 짓고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렇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나라들 중에 왕정제도를 잘 사용해서 아주 크게 중흥기를 맞이한 나라들이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세상에서 검증된, 세상의 방식을 의지해서 그들의 삶을 풍요롭고 안전하게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무엘상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닙니다. 환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믿음의 문제입니다.
우리도 오늘 본문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착각하지는 않습니까?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믿음의 문제인데 환경만 조금 바뀌면 내가 잘할 수 있다는 핑계를 대거나 착각을 합니다. 내 주변에 좋은 신앙의 선배들이 좀 있으면, 말이 잘 통하고 은혜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신앙생활을 더 잘했을텐데, 내가 조금 덜 피곤하고 여유가 있는 직장에 있으면 내가 신앙생활을 더 잘 할 텐데 저 사람만 아니면 진짜 우리 교회가 재밌고 행복할 것 같은데 등등의 핑계를 대고 그것 때문에 내가 신앙생활이 안된다고 착각을 합니다. 물론 겉으로 보면 그럴 수 있습니다. 정당한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해결한다고 해서 신앙생활의 과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어려움이 옵니다. 심지어 사역자인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사람이고 죄인인지라 안 맞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 전도사님은 너무 안 맞는데 저 분만 없으면 사역이 진짜 재밌겠다. 저 권사님은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할까레 우리 부서에 저분만 없으면 내가 진짜 사역 잘할 수 있는데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저 전도사님이 사라지면 또 다른 전도사님이 저를 괴롭히고 또 어디서 다른 강도사님이 나타납니다. 저 권사님이 우리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가면 우리 부서에 있던 다른 집사님이 갑자기 저를 힘들게 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문제는 제 자신의 믿음의 문제입니다. 제가 믿음으로 바로 서고 제가 더 기도하면서 이겨내야 하는 문제인데 자꾸 환경이 문제고 시스템이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주변 환경을 바꾸면 당장 이전의 문제는 없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바뀐 환경에서 또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결국 문제는 나 자신입니다. 내가 성령 충만해서 내가 더 믿음 충만해서 이 정도수준의 문제는 와도 얼마든지 뛰어넘을 준비가 되어 있으면 됩니다. 내가 더 기도의 사람이 되면 됩니다. 우리는 죄인이라서 늘 그걸 못해가지고 또 다시 환경 탓을 하고 시스템 탓을 합니다. 결국은 믿음의 문제고 기도의 문제고 성령 충만의 문제입니다. 실제로 내가 문제가 아니라 환경이 문제라고 치더라도 그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달라지는 것이 더 빠르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2- 어려움은 결국 불신앙에서 나온다.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어려움은 결국 불신앙에서 나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은 어려움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면 자꾸 환경을 바꾸려고 하지만 결국 문제는 불신앙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이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을 믿지 못합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의 불만을 접수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7절에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이스라엘이 눈에 보이는 인간왕을 세워달라고 하지만 이스라엘에는 이미 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 되십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주시고 그 나라를 신실하게 통치하시는 분이 이미 계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당장 눈앞에 문제를 가지고 그것도 자기들의 잘못으로 생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또 자신들의 판단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쏙 빼버리고 자신들이 하나님 보다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 뿌리 깊이 박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이상한 방식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대합니다. 이제 문제는 점점 더 커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상숭배와 관련이 있습니다. 8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해주셨는데 모든 일마다 하나님을 버리고 지금까지도 우상을 숭배했다는 것입니다. 그 행동을 하나님께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사로 세우신 사무엘에게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을 세워달라는 이스라엘의 요청을 우상숭배로 보고 계십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우리는 우상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왕정체제라는 세속적인 우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체제의 문제일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당시 고대근동에의 왕들은 마치 신과 같이 행사했습니다. 고대의 왕들은 눈에 보이는 신들입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이스라엘이 종살이 하던 애굽입니다. 애굽의 왕족들은 살아있는 태양신의 후손들입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적인 왕, 강력한 왕권이 있는 카리스마 있는 왕을 세워서 백성들이 그를 동경하게 하고 그런 권위를 바탕으로 나라의 기틀을 다져보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풍요를 얻고 잘 살수 있다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방식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적인 존재를 만들어서 의지하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세상을 문화를 참고해서 이렇게 세운 왕 사울 때문에 이스라엘은 곤욕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악한 왕들이 하나님께 도전을 하고 이스라엘이 배교의 길을 걷게 됩니다. 어려움은 사실은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생기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불신앙 때문에 어려움이 오게 됩니다. 어려움을 불신앙으로 해결하면 또 어려움이 찾아오고 그것을 또 불신앙적인 태도로 해결하면 더 큰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이런 식으로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왕이신 하나님을 좀 더 믿고 의지하는 훈련을 하고 난 뒤에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될 다윗왕을 보내는 것이었지만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버리고 사울 왕을 선택했습니다.
(적용) 우리에게도 이런 유혹이 따릅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불신앙이 우리 영혼에 똬리를 틉니다. 어려움이 불신앙에서 오는 건데 자꾸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내 힘으로 내 지혜로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잘 이용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입니다. 우리 문제의 본질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것들보다 못한 분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불신앙에 대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통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것을 그분의 십자가 사랑으로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환경이 문제라고 생각될 때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쳤다고 생각될 때 그것을 환경을 고치는 것으로 해결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신앙의 태도를 유지하며 또 다른 문제를 양산해선 안됩니다. 우리를 정말 사랑하셔서 목숨을 거신 왕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지키기 위해 십자가까지 지신 분을 의지해야 합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죄인은 문제가 생기면 환경을 바꾸려 합니다. 어려움이 우리의 불신앙으로 인해 생기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이때 우리는 문제를 기도로, 믿음으로, 성령충만으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어려움을 불신앙으로 대하면 또 다른 어려움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불신앙이 생길 때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지신 가장 헌신적인 왕 그리스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번 한주도 믿음의 방법으로 어려움에 부딪히고 불신앙을 품는 대신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 지신 분을 기억하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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