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을 통한 예수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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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다윗의 믹담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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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는 예기치 않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예수님 믿고 모든 것이 평안하게 진행되면 좋겠는데, 두려움과 낙심, 어려움과 환란이 우리의 심령을 요동치는 일을 만납니다. 이러한 위기의 순간에, 우리의 마음이 불안을 느낄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무엇을 의지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안전을 보장하십니다. 다윗이 바로 그것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했을때,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기쁨과 안전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놀랍게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되길 축원합니다.
이시편은 표제에 다윗의 믹담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기도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고백한 이 시를 베드로가 인용하면서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행2 24-25“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
분명 다윗이 말한 것인데, 사도 베드로는 이것이 예수님을 가리켜 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즉 이 시는 다윗이 고통중에 기도하여 건짐을 받은 것을 넘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에서 다윗의 기도가 예수님의 기도이며, 다윗이 누린 응답이 예수님께 성취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어떠한 상황가운데 “나를 지켜주소서”하는 간구를 드렸는지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9~11절에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이라는 표현을 보면 그가 위험가운데 멸명당하지 않을 까 하는 두려움에서 이와 같은 기도를 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죽음이 올 것임을 들었습니다. 삼하7 12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자신도 언제가는 죽게 될 것인데, 자신이 스올에 버려지지나 않을까, 멸망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찾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런 두려움이 찾아 올때가 있지 않습니까? 예기치 않은 사고와 환란을 만나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두려움이 찾아오지 않습니까? 우리의 죄악된 모습이 우리를 덮칠때 이런 두려움이 찾아오지 않습니까? 저는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나서 아빠 노릇을 하고 있는데, 참 어렵습니다. 네 아이의 성격도 다르고 아빠에게 떼 쓰고 반역하는 모습이 제각각 입니다. 불쑥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제 일만 바쁘지 아이들 돌보는 일은 뒷전이기 일쑤입니다. 불신자 아버지의 모습을 그렇게 싫어했는데, 예수님 믿고 있는 저에게서도 동일한 모습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제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노와 불평, 사랑없음을 느끼면서 낙심하게 됩니다. 롬7 24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는 답답한 심경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때 어떻게 합니까? 오늘 시편이 우리에게 답을 줍니다. 주께 피하라는 것입니다. “나를 지켜주소서! 하나님!” 외치면서 주님께 속히 피하는 것입니다!
이 시의 구조를 보면 훨씬 메시지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시는 크게 2두분으로 나눌 수 있씁니다. 첫번째 파트는 1절~8절까지 하나님 안에서 안전을 구하는 다윗의 간구 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파트는 9~11절까지로 다윗의 간구의 결과로 누리는 하나님 안에서 기쁨입니다.
긴박한 도움이 필요한 다윗이 주를 의지하며 간구했고, 하나님 안에서 기쁨과 안전을 선물로 누리게 되는 구도로 되어 있습니다.
1. 하나님 안에서 안전을 구함.
1. 하나님 안에서 안전을 구함.
먼저 다윗은 1절에 고백합니다. 시16 1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영어로 표현하면 “Keep me, God!” 또는 의역하면 “Help me God!” 이 될 것입니다. “저를 도와주세요! 하나님!” 아주 긴급하니까 이렇게 이기도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뉴질랜드에서 한 번 물에 빠진 일이 있다. 영어도 못할 때 인데 죽을 상황이 되자 나도 모르게 이말이 튀어나왔다! “help me!” 바로 이러한 상황이다. 너무 급해서 이것 저것 가릴 것 없이 지켜달라고 하나님을 부르는 상황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이런 상황을 만나지 않는가? 갑자기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했거나, 어려운 일을 만났을때, 두려움이 찾아왔을 때, 어쩔 줄 몰라 당황하면서 주님을 부른다. 물에 빠지는 베드로가 무서워하며 예수님을 이와 같이 부른다. 마14 30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우리는 시편에 이와 같은 기도가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시편은 이스라엘 즉 구약 백성의 기도 모음집인데 이것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게 감사해야 한다. 이와 같은 긴급한 기도가 있으니 우리도 말씀에 근거하여 주님께 긴박한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새벽에 깨면 대체로, 아니 거의 대부분 마음이 냉담하다. 오늘 어떻게 주님을 섬길까, 어떻게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 열정이 불타기 보다는 그저 그런 마음 상태로 하루가 시작된다. 잡생각이 사로잡기도 하며,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그러면 그대로 가만히 두면 생기가 살아나는가? 없던 힘이 생기는가? 아니다. 바로 이렇게 외치면서 기도의 자리로 나와야 한다! 시16 1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얼른 입을 열어 주님께 기도하며 주께 피해야 한다. 주님께 피하면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주께 피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지키신다. 모든 유혹과 낙심과 어려움에서 우리를 지키신다.
다윗은 이러한 안전을 주님께 피하면서 구했다. 그러면서 이제 2~8절에 안전의 증거들을 차례로 고백한다.
크게 3가지로 주안에 있는 안전의 증거들을 떠올리며 고백합니다.
먼저, 2, 5절에서 주님 만이 나의 복이요, 나의 산업이라는 것이다.
시16 2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원문에는 내가 라는 표현이 여성형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kjv “내영혼이”라는 여성형 동사로 주어를 표현하고 있는데, 저는 이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즉 내영혼이 여호와께 아뢰되 “당신은 나의 주님이시오니 당신 밖에는 나의 복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 거듭난 영혼이 육신의 연약함을 이기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여호와의 선함을 고백하길 주저합니다. 그것을 이기고 내 영혼이 내입술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낙심거나 번잡한 마음으로 예배에 나온 심령이라도 찬양을 부르며 그 가사에 드러난 여호와의 선하심을 붙잡고 기도할 때 은혜를 주십니다. 여기서 복이라고 번역된 말은 토브인데, 선함입니다. 즉 모든 선함이 주님께 있습니다. 내가 누리는 모든 선한 것은 주님께 비롯된 것입니다. 그것을 내영혼이 고백합니다. 내 마음의 중심이 그것을 알고 시인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5절에서도 시16 5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여호와가 나의 산업이고 나의 분깃을 지키시는 분임을 고백합니다. 마치 아론과 레위지파에게 어떤 기업이나 분깃을 주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과 분깃이 되어주신 것과 같습니다. 민18 20 “20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 되십니다. 다윗이 이것을 기억하며 하나님이 자신의 기업이시니 “저는 안전합니다.”라고 안전의 근거를 여호와께로 돌리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주안에 있는 안전의 증거는 3, 6절에서 나타나는 기쁨입니다. 3절에서는 성도들을 기뻐하고 있으며, 6절에서는 자신의 기업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시16 3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거듭난 성도들의 모든 기쁨은 성도들과 함께 누리는 기쁨입니다. 불신자와 아무리 많은 얘기를 하고 시간을 보내도, 영혼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힘들때, 위기를 만났을 때, 긴급한 기도 제목이 있을때, 누구를 찾습니까? 불신자 선생님들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줄, 하나님의 위로를 들려줄, 하나님의 교훈을 깨닫게 해줄, 하나님께 함께 기도해줄 경건한 성도들을 찾습니다. 오늘 새벽기도 시간에 청소년부 고3 김필승 학생이 어제 축구공에 맞아 출혈이 심해서 시력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어서 김태경 목사님께서 긴급한 기도제목을 내셨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함께 기도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우리가 찾는 사람은 다름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인 것입니다. 다윗의 인생에서도 위기때에 하나님께서 꼭 필요한 성도들을 보내주셔서 그 위기를 잘 넘어가게 하셨 습니다. 자신의 대적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그랬고, 아비가일이 그랬고, 도망하던 그에게 모인 억울하고 원통한자 400 명이 그랬습니다. 다윗은 그들을 기뻐했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다윗이 고백이지만 동시에 예수님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안에서 성취된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께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놀라운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기쁨이 성도들 즉 우리에게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표현이 사62 4 “4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여기서 헵시바는 헵시: 나의 기쁨 이란 단어와 ‘바아’ 그녀 안에 라는 단어가 합쳐진 것입니다. 나의 기쁨이 그녀 즉 교회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회복될 교회의 모습을 내다 보면서 주님의 기쁨이 교회에 있다고 하였는데, 여기서도 나의 모든 기쁨이 그들에게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헵시밤) 예수님의 모든 기쁨이 우리에게 있다는 표현은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의 비참한 죽음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십자가의 동기는 우리를 향한 그의 기쁨입니다.
히12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볼 때 얼마나 부족하고 추악하고, 부끄럽고, 노하기를 자주하고, 감사를 멀리하며, 인자와 진리를 무시할 때가 많은 자인지를 생각하면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의 모든 기쁨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기쁨을 느낀 성도는 다윗처럼 다른 성도들을 기뻐합니다. 땅에 있는 성도들이 존귀한 자들인 것을 알고, 그들이 삶의 모든 기쁨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을 성도들도 기뻐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모든 기쁨이 우리에게 있음을 알게하시고, 그 주님의 기쁨으로 성도들을 기뻐하는 축복을 주시길 축원합니다!
성도들을 기뻐하는 다윗은 또한 그의 기업을 즐거워합니다. 시16 6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 우리의 기쁨이 됩니다. esv 성경은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즐거운 곳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가정, 교회, 직장, 사역의 현장, 학교 모두가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주신 선물입니다. 때로 힘들고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아름답고 즐거운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영원한 기업이 되시니, 그에게서 내게 주어지는 모든 것은 아름답고 기쁜 것으로 여겨야 하겠습니다.
세번째 안전의 증거로 4절과 7-8절에서 그의 결단을 말합니다.
4절에서 시16 4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 이외에는 결코 내가 이름도 부르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하겠다고 말합니다! 나를 가르치시고 지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밤마다 여호와의 가르침을 따라 고침을 받고 살아가는 것에 감사하며 여호와를 송축하겠다고 결단합니다. 그러한 주님의 지도 아래, 또한 시16 8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 하나님 만을 내 앞에 모시겠다고 합니다. 항상 주님만 모시고 살겠다고 결단 합니다. 항상 주님만 모시고 사는 것이 그의 인생의 목표가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자 흔들리지 않는 확신가운데 서게 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훈계와 교훈을 기쁨으로 여기며, 하나님을 항상 인생의 목표로 삼고 결단하며 나갈때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흔들리지 않는 확신가운데 서게 됩니다. 우리도 이러한 확신을 향햐
2.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안전을 누림.
2.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안전을 누림.
이러한 주님안에서 안전을 차례로 생각하며 기도하는 다윗은 드디어 9절에 주님안에서 영원한 안전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시16 9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전 존재)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내 마음 뿐만아니라, 전존재가 기뻐합니다. 육체도 안전을 보장받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시16 10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이는’ 하고 이유를 설명합니다.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실 것을 알았기때문입니다.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을 알았기때문입니다. 그는 죽음이 두려웠지만 자신의 죽음이 결코 그대로 영원한 끝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자손으로 오게 되는 메시아를 통해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을 안 것입니다. 시16 11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자신이 처한 죽음의 두려움이 끝이 아니라 생명의 길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께 피하였더니 주께서 그의 눈을 열어 주 앞에 있는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결국 이일이 예수님안에서 그의 죽음과 부활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이러한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도록 초대되었습니다.
결론
결론
다윗이 죽음의 두려움에서 주께 피하여 주님만 의지하기로 결단하고, 주님만이 우리의 기업이심을 고백하며 주님의 교훈을 즐거워하며 주님만을 그 앞에 모시기로 결단하여 나갈때 주님께서 그에게 주안에 있는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주님께 나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주소서!” 외치며 기도의 자리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하고 주님께 알리며 주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이심을 고백하며 기도해야 겠습니다. 왜 주님안에서 우리가 안전을 누릴 수 있는지 다윗처럼 하나하나 하나님 앞에 아뢰면서 나아갑시다!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하고 주님께 매달립시다!
주님이 우리를 너무나 기뻐하셔서 자신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하는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그 어떤 다른 것도 의지하지 않겠다고 그 이름도 부르지 않겠다고 결단하며 주님께 나아갑시다! 여호와 만이 나의 기업이시고, 따라서 내게 주신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것임을 기억하며 주님께 나아갑시다! 주님의 훈계와 교훈을 즐거워하며 주님만 우리 앞에 모시고 살기로 결단합시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다윗이 주님 앞에서 누렸던 그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