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에 맞게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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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에 맞게 살아가는 법다/주님이 우리를 부르셨기에 우리를 인도하시고, 채워주시고, 능력을 주신다
부르심에 맞게 살아가는 법다/주님이 우리를 부르셨기에 우리를 인도하시고, 채워주시고, 능력을 주신다
[서론]
여러분, 이국종 교수 누군지 아시나요?
아주대 중증 외상환자들을 수술하는 분인데 사고로 거의 죽어가는 사람들을 많이 살려낸 훌륭한 분입니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이 분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엄홍길은 아시나요?
히말리야 8000미터 봉우리를 여러번 정복한 대단한 산악인입니다.
등반하다가 목숨을 잃은 분들이 많은데도 도전하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송해 할아버지는 아시나요?
빰빰빰 빰빰빰빰 빠라빠라빠라 빰빠, 전국노래자랑의 MC를 34년간 하신 분입니다.
지금 연세가 95세신데 여전히 은퇴를 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비단 이런분들 뿐이겠습니까?
예술가 분들중에도 조수미씨, 정명훈씨 등등 평생을 음악에 헌신한 멋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분들이 아니더라도 소위 장인이라고 불리는 분들이 계십니다.
집안 대대로 칼을 만드는 일을 하시는 분이 유퀴즈에 나온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칼은 잘 썰리기만 하면되지 무슨 기술이 필요하냐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더라구요.
또 평생 북만 만드시는 장인분이 나온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북도 그 소리가 그 소리같은데 일반 사람들은 뭐가 다르지 할 지 모르지만, 그 분들은 좋은 북소리와 그렇지 않은 싸구려 북소리의 차이를 아시더라구요.
이런 장인들 말고도 평생 간호사로서, 교사로서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삶을 사신 멋진 분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그럼, 이런 분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평생 한가지 일에 자신의 삶을 헌신한 분들 아닐까요?
무엇이 이들에게 이런 삶을 살게 했을까요?
저는 그들의 삶을 어떤 식으로 설명하든 천직, 즉 소명의식이라는 말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니 사람의 직업을 세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먼저, 직업을 일(Job)으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직업을 단순히 물질적 보상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깁니다.
두번째, 직업을 경력(Career)으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직업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현재 직업을 통해 돈, 지위, 명예를 얻으려 합니다.
세번째, 직업을 소명, 즉 Vocation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Vocation은 Calling이라는 단어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이런 소명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보상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개인에게 주는 깊은 행복감과 자신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있다는 기쁨으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직업이라도 같은 게 아니라 Job이냐 Career냐, Vocation이냐로 구분됩니다.
그런데 직업을 일로만 보거나 경력으로만 보는 사람들보다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질 때 직업윤리가 제대로 서고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한다고 합니다.
제가 이런 소명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에 꺼낸 이유는 오늘 말씀에도 소명을 받는 한 사람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본론]
오늘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대적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여전히 사사시대이며, 블레셋이라는 나라가 이스라엘을 매번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5절에 보면 블레셋 수비대가 이스라엘 진영 안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라는 훌륭한 사사가 20년간 나라를 잘 지켰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 이스라엘은 미래를 걱정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의 아들들을 보니 엘리의 아들들처럼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해서 사사시대가 끝나고 왕정시대가 시작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왕인 하나님보다, 자신들 눈에 항상 보이는 강력한 군대를 가진 인간왕을 요구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백성들의 요구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만 블레셋에 괴롭힘을 당하는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셔서 왕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9장에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인물이 바로 사울입니다.
1절입니다.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그에게 입을 맞춘 다음에,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주님의 소유이신 이 백성을 다스릴 영도자로 세우셨습니다.”
원래 사울은 아버지가 시켜서 도망친 나귀들을 찾으러 다니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베냐민 지파라서 너무 힘이 약한 지파였습니다.
사사기 마지막 부분에 레위인 첩이 강간당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그 일을 벌인 주동자가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지파들에게 공격당해 거의 멸망당할 뻔 한 지파가 바로 베냐민 지파입니다.
그래서 키크고 잘 생긴 거 빼놓고는 잘난게 없는 사울이 왕이 된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하나님이 자신을 왕으로 찜했다니 사울은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구약에서는 이렇게 기름 부음을 받을 수 있는 존재는 왕이나 예언자, 제사장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위해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기름을 부었다는 말은 이제 하나님이 왕으로 찜했다는 말입니다.
나중에 이 기름부음의 실제 의미가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영, 성령이 사울에게 임하게 됩니다.
1절 ‘주님의 소유이신 백성’이라는 말을 보면 이스라엘에서 왕이 된다는 것은 절대 권력을 쥐는 게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대리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왕이 되면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다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백성들을 다스려야만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할 단어는 ‘주님께서 세우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기기 위해 사울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calling이라고 하는 것이죠.
사울이 스스로 왕이 되고싶어서 선택한 게 아닙니다.
하고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나 아니면 안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소명의식입니다.
원래 소명이라는 말은 종교개혁때 루터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당시 성직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에도 소명,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말을 했죠.
소젖을 짜는 소녀의 일도 성직이다라고 말이죠.
그런데 이게 세월이 지나면서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보통명사가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행복한 일, 내 적성에 맞는 일, 내가 평생 일할 곳을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안 믿는 사람들이 진정한 소명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요?
내면의 콜링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자신이 선택한 것이지, 그 일에 누군가 자신을 불렀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소명의식과 프로의식은 다릅니다.
일은 너무 잘해 프로라는 말을 들을 지 모르지만 소명의식은 없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소명의식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부분은 모두 2차 부르심, 즉 직업으로서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본질적인 1차 부르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 분의 자녀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독교 용어로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말로는 사울처럼 성령의 기름부음 받았다,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맡기신 일, 사명이 있습니다.
소명은 부르심이고, 사명은 부르심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된 게 소명이라면 그 자녀가 해야할 일은 사명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기위해 우리는 택함받았고, 만들어졌습니다.
그 선한 일이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선한 일을 하기 위한 2차 부르심이 바로 직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해야할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 직업은 은사, 즉 gift나 talent에 따라 정해집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제 친구는 예수님을 믿기전 원래 회계사를 공부하며 돈을 많이 벌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게 되자, 즉 1차 부르심을 받자 자신의 2차 부르심을 알고자 했습니다.
결국 청년들을 전도하는 일이 자신의 사명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열심히 공부해서 교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친구에게 어느 정도의 지적 능력을 주지 않으셨다면 교수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 지적 능력이 그의 은사였던 것이죠.
그는 현재도 자신의 직업을 통해 대학생들을 전도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반드시 교수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은사에 따라 교직원이 될수도 있고, 대학교 수위아저씨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좀 더 효과적으로 전도하기 위해서 교수가 된 것입니다.
직업은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그의 소명은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직업은 소명을 잘 감당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가가 아닙니다.
나의 2차 소명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 소명을 정확히 알면 직업은 은사에 맞춰 결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러한 직업으로의 부르심은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요?
처음부터 소명을 발견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맨날 기도만 한다고 소명을 깨닫게 되는 게 아닙니다.
요셉도 그렇고, 모세도 그렇고, 모두 처음에는 자신의 소명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다보면 하나님의 소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사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은 아버지 심부름으로 나귀 찾으러 다니다가 사무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열심히 찾으려 하지 않았다면 아마 사무엘을 만나지 못했을 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는 종과 함께 온 도시를 다 돌아다녔고, 마지막으로 예언자까지 찾아가 나귀를 찾으려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일상들 속에 하나님의 부르심은 숨어있을 지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사무엘과 같이 소명을 직접 알려줄 사람은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소명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럼 우리는 이러한 소명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2-7절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소명에 대한 세가지 증거를 보여주십니다.
성경에서 3은 완전함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사울이 자신의 소명을 확신하도록 증거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첫번째 증거는 사울이 찾던 나귀들을 찾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찾아다녀도 못찾던 나귀들을 하나님은 찾아주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 하나님이 내 일을 해결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에 집중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분은 선교사로 나가려는데 집에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나가는게 마음에 불편했는데 선교사로 떠나자 하나님이 그 일들을 기적적으로 모두 해결해주셨다고 합니다.
그 기적을 통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지지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만약 그 일들을 다 해결하려고 선교지로 나가지 않고 지체했다면 어땠을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소명에 집중하도록 그 외의 많은 일들을 해결해주십니다.
두번째 증거는 예배하러 가던 세 사람이 예물로 드리려 했던 빵 두 덩이를 사울에게 준 일입니다.
예물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기름부음받은 자뿐인데 사울에게 그것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왕이 될 것이라는 점을 확인해준 것입니다.
세번째 증거는 하나님 영이 임해서 사울이 예언자 무리들과 함께 예언을 하게 된 일입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이 자신을 선택하셨다는 영적인 체험입니다.
이 체험은 사람들이 의아해 할 정도로 놀랬습니다.
11,12절에 보면 사울이 예언을 하니까 놀래가지고 속담이 만들어지기까지 합니다.
이 체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성경은 세번째 증거만 따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어도 소명대로 일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면 소명을 잘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갈 수 있도록 돕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7절입니다.
‘이런 일들이 그대에게 나타나거든,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증거이니,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 하십시오’
이처럼 하나님은 세가지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사울과 함께 하시고 그의 길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부르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섣불리 내 부르심을 스스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소명이 내가 행복한 일, 내가 잘하는 일, 내가 평생 할 수 있는 일들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더라도 소명이라면 감당해야 합니다.
물론 소명이 반드시 힘들고 어려운 길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좁은 길이고, 힘든 길일지라도 소명이라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확신과 성령의 도우심, 인도하심이 없다면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것이 소명입니다.
예를 들어, 노숙자 사역을 소명으로 여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게 쉬운 일입니까?
내가 행복한 일인가요? 내가 잘하는 일인가요? 내가 평생할 수 있는 일인가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럼 소명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이 자주 나타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명을 감당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 자리로 나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도우시고, 성령의 위로와 격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 삼촌을 만나게 됩니다.
삼촌이 사울에게 어디 갔었느냐고 묻는데 사울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자신에게 기름부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왕이 될거라고 떠벌이고 다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준비될 때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신중하고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왕이 되기 위해서는 사무엘의 기름부음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백성들의 인정절차가 있어야 하고, 전쟁에서 그 리더십을 증명해야만 최종적으로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울은 겸손하게 자신에게 올 시간을 기다린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기다릴줄 아는 인내와 기다리면서도 신중하게 준비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중에 내 소명을 위해 잘 쓰임받으려면 현재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기름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세가지 증거를 주시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증을 주셨습니다.
이제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겸손히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울을 부르시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우리의 직업은 일인가요? 아니면 커리어인가요? 아니면 소명인가요?
여러분은 하나님이 현재의 직업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확신하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다면 분명히 우리에게는 직업적 소명이 있습니다.
그 소명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사는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그러나 그 소명이 무조건 고상한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소명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성하며 살아간다면 분명 하나님은 여러분이 소명을 깨닫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요셉은 집사를 하다가 총리가 되었고, 모세는 양을 치다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사울은 아버지 당나귀를 찾다가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세상 사람들도 소명이라는 단어를 쓰며 자신이 하는 일에 행복해하며 최선을 다합니다.
하물며 우리 하나님이 부르신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도록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 일을 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