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따라 사는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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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순종
말씀에 순종
하나님께서 아직 아브람 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무나 단순한 말씀으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설명이나 생각할 시간을 그에게 주신것이 아니라 너무나 단순화된 말씀으로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약속의 땅 이라고 불리는 가나안 땅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땅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 너무나 정들고, 어쩌면 그 어디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 하란땅을 떠나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자신의 정든 고향을 생각해볼 시간을 달라거나, 준비할 시간을 달라거나, 또는 타협해볼 수 있는 여지를 달라고 한마디 말도 없이 하나님께서 가라! 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을 듣고 떠날 수 있었을까요?
여기서 여호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속에서 우리는 감추어져 있는 그 영적 긴장관계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이러한 영적 긴장은 오늘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하여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지와 사람의 의지가 충돌할때, 우리는 수많은 질문과 걱정, 또는 핑계를 늘어놓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도 우리는 때때로 그것과는 정반대의 결정을 하기위해 수많은 타협안을 하나님께 내어놓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과의 밀당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영적긴장속에서 갈등과 유혹, 그리고 시험, 좋은 방향으로는 성장과 성숙을 경험하고 부적적인 방향으로는 방황과 방탕함, 죄와 걱정, 절망 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완벽하고 완전합니다. 하나님은 하고자 하시는 일을 행하시고, 그분의 선택과 결정은 완전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거기에는 인간의 어떤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여지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라는 것과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이것뿐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되심 진실되게 믿는 성도라면 우리에게 놓인 답은 오로지 “네 주님 그렇습니다.” , “아멘” 없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오로지 행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은 그의 삶에 지금 무엇인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을 믿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거나, 기존의 삶의 방식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그의 아버지 데라가 죽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선택해야합니다. 살길을 찾기 위해 머물러 있던지, 떠나야 하든지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 으로 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끝내 그는 하란에 머물러 살다가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제 가족을 이끌어야할 가장이 된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고대 사회 안에서는 신과 땅, 가족, 유산은 가장 의미있는 요소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아브라함은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고 아버지의 우상 신을 따라 살거나 혹은 이제 자신이 선택한 자신의 길을 가야하는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는 길을 찾고 있지 않았을 까요? 그는 어떤 결정을 해야할지 이미 고민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가라!
이에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반응한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믿음이란 것을 발견해야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삶에는 항상 영적 긴장이 있습니다.
우리도 늘 이러한 영적 긴장속에 살아갑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 긴장속에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하는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버지 데라가 가려던 가나안땅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같은 곳이라고 하나님과 동행하여 그분의 말씀을 따라 갔기 때문에 그는 복의 근원이 되게 된줄로 믿습니다.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하루 똑같은 생활의 양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겉은 똑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말씀을 따라 사는 성도의 삶에는 세상이 알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복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손에 자신의 생존의 문제, 자신의 미래, 자신의 안정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러한 삶의 방식, 이전에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방식으로 말씀하십니다. 고대 근동의 종교들을 살펴보면, 어떤 신도 인간에게 다가와 아무대가없이 복을 주는 신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고대근동의 다른 신들과 여호와 신앙의 큰 차이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먼저 찾아 오셨습니다. 보통은 사람이 신전을 찾아 신에게 엎드려 나아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무엇인가를 바쳐 신의 응답을 기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그러한 고대근동의 사람, 아브라함에게 의지한 신을 찾지도 못하고 물을 수도 없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와 주신것입니다. 게다가 약속까지 주십니다. 큰민족을 이루고 복을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우리 하나님은 복을 주실 힘 있고 능하신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찾아 오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약속하신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늘도 찾아오십니다. 그분이 함께 하심으로 우리는 복된 삶의 방식으로 살게 되는 것임을 믿습니다.
Brueggemann은 Abram의 선택에 내재된 비논리성을 지적합니다.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희망을 갖는 것이다”(1982, 118).
하나님께 희망, 소망을 두는 삶의 방식이 비논리적인것 같아도 그것이 가장 복된 삶의 ㅅ방식임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비상식, 비논리적으로 사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믿고 순종하는 것은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비논리 비상식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논리를 뛰어 넘고 사람의 방식을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축복의 사람이 아니라, 그 복 자체가 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히브리어 원어를 살펴보니 엄밀히 말해 축복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축복은 복을 비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누구에게 의지하여 복을 구하는 분이 아니라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고 구하는 삶이 아니라 복 자체가 되는 삶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람이것은 무슨 뜻일까? 이 복은 아브라함 자신이 복을 받는다는 말이 아니고, 아브라함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축복하거나 저주하는 것은 전적으로 아브라함에게 달려있다.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면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축복할 것이고,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저주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 자신의 행동 때문에 다른 사람이 그에게 저주를 할지라도 그에게 저주하는 사람을 친히 징벌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아브라함에게 준 하나님의 축복의 초점은 복이란 용어가 거듭 반복되는 것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에 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와 말씀하시고 인도하시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시기에 우리는 복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