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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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요새 참 달달한 노래를 듣기 좋은 계절입니다. 햇살도 좋고 바람도 좋고, 이렇게 좋은 날씨엔 달달한 노래와 함께 남자친구, 여자친구와 어디든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죠. 이런 연애 감정을 자극하는 곡들이 참 많은데요, 저는 요새 그런 노래 중에 별 보러 가자 라는 노래가 참 좋습니다.
//찬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면은 밤 하늘이 반짝이더라 긴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네 생각이 문득 나더라 ​ 서정적이다. 맘에 누군가 들어오지 않으면, 찬 바람도, 밤 하늘의 반짝임도 별로 의미 없는 풍경이 된다. ​ 반대로 누군가 마음에 들어온 뒤로는 내가 서 있는 풍경이 달라 진다. 스치는 찬 바람도, 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도 모두 특별해 보인다. ​ 긴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네 생각이 문득 났다고 했지만, 머릿속을 가득 채운 네 생각이 너를 아름답게 떠올리게 하려고 찬 바람을, 밤 하늘에 자리잡은 별빛을 내 눈에 띄게 만들었다. ​ 시원한 여름 밤이 떠오르는 가사다. 그냥 보내긴 아쉬운 이 밤.
어디야 지금 뭐해​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너희 집 앞으로 잠깐 나올래 가볍게 겉옷 하나 걸치고서 나오면 돼 ​ 용기내 네게 말을 건낸다. 어디야? 지금 뭐해? ...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너희 집 앞으로 잠깐 나올래? 너만 있으면 되니까, 꾸미지 말고 겉옷 하나 걸치고서 나오면 돼. ​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이의 설렘이 느껴진다.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라는 고백이 이 노래를 관통하는 구절인 것 같다. 별 보러 가자는 고백은 얼마나 순수한가. 어둡고, 고요하고, 오롯한 그 시공간에 너와 함께하고 싶다고.
오늘 같이 시원한 밤, 별들도 예쁘게 떠 있는 이 밤, 너와 이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너무 멀리 가지 않을게 그렇지만 네 손을 꼭 잡을래 멋진 별자리 이름은 모르지만 나와 같이 가줄래 ​ 어디로 별 보러 갈건데? 너무 멀리 가지 않을게 그렇지만 오늘은 네 손을 꼭 잡을래​ 용기있는 고백이다.
스쳐오는 바람에, 하늘을 채운 별빛에 깨달았다. 나는 너를 많이 좋아하고 있다.그래서 이 맘을 오늘 꼭 전해야겠다. 네 손을 꼭 잡을 거라고. 이 설레는 마음이 사라지도록 두지 않을 거라고.
멋진 별자리 이름은 모르지만 나와 같이 가줄래? ​ 귀여운 고백이다. 별자리 이름은 모르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이 아름다운 풍경을 너와 함께하는 게 중요하니까. 나와 같이 가줄래?
찬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면은 네 생각이 난 그렇게 나더라 긴 하루 끝 고요해진 밤거리를 걷다 밤 하늘이 너무 좋더라 ​ 우와.. 진짜 사랑을 하고 가사를 쓴 것 같다. 찬 바람이 불어 오면 네 생각이 그렇게 나고, 네 생각이 나서, 밤 하늘이 너무 좋더라.
어디야 지금 뭐해 ​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어디든 좋으니 나와 가줄래 네게 하고 싶었던 말이 너무도 많지만 ​ 이제 깨달았다. 이 풍경을 아름답게 만든 건 너였다는 걸. ​ 어디야? 지금 뭐해? ​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아름다운 이 밤을 그냥 보내기 싫은데 아니, 꼭 너와 함께 보내고 싶은데. 어디든 좋으니 나와 가줄래? 네게 하고 싶었던 말이 너무도 많지만 오늘은 너와 별 보러 가고 싶은데. ​ '별 보러 가자'는 순수한 고백이 너를 좋아하는 수십가지 이유보다 사랑스럽게 들린다. 가장 온전한 마음으로 너를 떠올리고 있다고. 너라는 존재 하나면 이 세상은 완성된다고.
너무 서두르지 않을게 그치만 네 손을 꼭 잡을래 멋진 별자리 이름은 모르지만 나와 같이 가줄래 ​ 벅찬 마음에 너무 서두르지는 않을게. 그치만 네 손을 꼭 잡을래. 그렇게 설레는 내 맘을 오늘 네게 꼭 전할래. 멋진 별자리 이름은 모르지만, 나와 같이 이 별 보러 가줄래?
너와 나의 걸음이 향해 가는 그곳이 어디일진 모르겠지만 혼자였던 밤 하늘 너와 함께 걸으면 그거면 돼 ​ 너 하나로 내 세상은 완성된다고. 너만 있으면 되기에 어디로 향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이 밤 하늘 아래 너와 내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너무 순수한 사랑 고백이다. 누군가 내게 이렇게 고백해준다면 무척 설렐 것 같다.
괜히 막 설레지 않나요? 설렘 가득한 맘으로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묻는 모습, 별이 쏟아지는 밤 하늘 아래 서로가 손을 꼭 잡은 모습, 혼자 걸어야 했던 길을 이제는 둘이 하나가 되어 걷는 모습. 하나 하나 그려보면 설렘과 기쁨이 가득합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사랑이 이렇게 기쁘고 설렌 것입니다. 연애하세요!

요한

사랑을 나눌 때에 더욱 잘 이해가 가는 성경의 구절들이 있습니다. 아니, 사랑을 해본 이만 이해가 가는 구절들이 있다고 하는게 맞겠습니다. 요 15:5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그가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다는 말을 설명해보려 수많은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개념을 들어 장황하게 늘어놓을 수 있겠지만, 그런 설명을 통해서보다는 사랑할 때 이게 무엇인지 단번에 이해가 갑니다. 사랑하면 그가 내 안에 있게 되고, 내가 그 안에 있게 되죠. 서로의 마음에 온통 서로가 가득해지는 이 신비를, 이 기쁨과 설렘을 맛보지 않고서 누가 알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사도 요한이 할아버지가 되어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처음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가장 어린 소년이었던 그가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되어 믿음에 대해, 신앙 생활에 대해 전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었을까요? 요한은 이것을 ‘사귐’이라는 주제로 쭈욱 써내려갑니다. 이렇듯 믿음과 신앙 생활은 남녀간의 사랑의 과정에 가장 가깝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교리 습득으로, 종교적 행위를 준수하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본질은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가 믿음의 핵심입니다. 그 관계를 다른 말로 하면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힘입고 그분께 사랑의 빚을 갚으며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남녀간의 사랑에 비유하면 믿음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파리의 연인이라는 드라마에서 “내 안에 너 있다”라고 했던 이동건의 명대사와 요한복음의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한다”라고 하는 구절이 참 닮아 있다고 느껴집니다. 드라마의 남주가 우연히 여주에게 반해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 생각에 빨려 들어가지요. 사랑은 이렇듯 서로에 대한 ‘매력’으로 시작합니다. 사랑에 빠진 남주와 여주는 이제 헤어져 있어도 보고 싶어집니다. 사랑을 느끼는 순간 그 사람이 마음을 점령했기 때문입니다.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에게 바람처럼 혹은 햇살처럼 오시는 주님을 만나고 나면 그분의 매력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분을 제대로 만나면 그 순간 마음을 점령당합니다. 내 안에 그분이 들어오십니다.
오늘 본문 1절과 2절에서 요한은 자기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을 내가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졌다. 무엇을 보고 듣고 만졌다는 것일까요? 말씀이셨던 하나님, 영원한 생명을 가지신 분, 하지만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가 보고 듣고 만져보았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대면하였고 함께 살았던 사람 중 하나인데요, 그는 지금 자기가 완전히 빠져버린 그 매력,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전하고 싶다 말합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던 것인지, 80세가 넘은 백발의 노인이 되어서도 그는 여전히 그 매력을 찬양하고 전하고 싶어 합니다.

영원한 생명

요한이 지금 전하고 싶다 말하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단순히 우리가 누리는 이 생명이 영원히 길어지고 연장되는 것을 말할까요? 아닙니다. 요한이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며 본 것은 단순히 영원히 이어지는 생명이 아니라, 완전히 질적으로 다른 생명이었습니다. 자신과는 달리 너무도 깨끗하고 순결하게, 참되고 바르게, 지혜롭고 의미있게, 아름답고 능력이 넘치게 살아가게끔 하는 그 넘치는 생명력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 생명이 너무나도 완전해서 죽음조차 그 생명을 꺼뜨릴 수 없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누리며 살아가시는 참 생명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듣고, 만져보았습니다. 요한은 이것에 반한 것입니다. 자신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았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이 완전하고도 꽉찬 생명에 완전히 매료되었던 것입니다.
요한은 이러한 하나님께서 누리며 살아가시는 영원한 생명을 함께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던 자였습니다. 요한이 증언하는 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 하신 이 약속을 믿는 자는 약속하신 대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사랑에 마음을 열고 그 사랑에 힘입어 하나님을 저도 사랑하게 되어 하나님과 함께 사랑을 나누는 관계 속에 이 영원한 생명이 흐르고 있는데요, 요한은 이 사랑의 관계를 ‘사귐’이라는 짧은 단어로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요일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요한은 성부와 성자의 관계 속에, 성부와 성자의 사귐 속에, 서로가 서로의 안에 거하는 사랑 속에 영원한 생명이 흐르고 있음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성부와 성자께서 부어주시는 사랑에 마음을 열고 저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다고 증언합니다. 그가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는 이 사랑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는 요한, 지금 그의 마음에는 온통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매력에 함께 빠져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길 원하는 것으로 가득합니다. 80이 넘은 노인이 되어서도 말이지요. 요한이 남긴 편지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을 너희에게도 전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과 사귐이 있게 하려는 것이야. 이 사랑의 사귐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고 기쁨이 가득하단다. 너희도 이 매력에 빠져들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사도 요한이 그토록 찬양하며 함께 누리고 싶다 말하는 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을까요?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면서 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계십니까?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고 계십니까?

영원한 생명의 증거

요한은 하나님과 사귐의 관계 속에 있는 사람,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사람에게서는 분명히 증거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사람에게서는 분명한 삶의 변화가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한 번 생각해봅시다. 두 사람이 동거와 동행을 해 가면서 사귐을 나누면 반드시 두 사람 모두에게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진정한 인격적 사귐은 그 사귐에 참여한 사람들을 그대로 놓아 두지 않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귐은 두 사람에게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제가 여자친구와 함께 사귐을 나누면서 여러가지 변화를 체험하고 있는데요, 제 여자친구는 생명의 소중함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포함해서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예요. 그래서 아무런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이 오직 고기만을 위해 길러지는 가축들을 안타깝게 여깁니다. 생명에 대한 어떤 존중도 찾아볼 수 없는 고기를 만들어내는 공장이 되어버린 축산업을 혐오합니다. 그래서 일절 고기라고는 입에도 대지 않는 비건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요. 또 무분별하게 개발되면서 파괴되는 자연 환경을 조금이라도 아끼고 보전하고자 일회용품도 쓰지 않고,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고, 시간을 내서 거리의 쓰레기를 줍습니다. 이 사람과 함께 사귀면서 생명과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인지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제 삶의 모습이 바뀌고 있구요. 저도 되도록이면 고기를 먹지 않으려 애씁니다. 일회용품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 하고, 분리 수거도 잘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내서 쓰레기를 주으러 나가기도 하구요.
자신의 마음을 열고 진실하게 인격적으로 사귐을 나누고 살면 서로에게 닮아가고 또한 변화됩니다. 연인 관계도 그렇고, 친구 관계도 그렇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진실한 사귐이 있으면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 사이의 사귐이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사귐은 얼마나 더 그렇겠습니까? ‘그분이 내 안에, 내가 그분 안에’ 거하며 사귐을 지속한다면, 그분이 우리의 삶에 만들어 내는 변화는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 변화에 대해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일 1: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빛은 어두움을 밝히고, 모든 어두움을 쫓아냅니다. 빛과 어두움은 절대 공존할 수 없지요. 빛이신 하나님과 함께 사귀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어두움이 남아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요한은 이어지는 구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일 1: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어두움에 빛이 비치면 빛이 어둠을 밝히고 어두움을 쫓아내듯이, 빛이신 하나님과 함께 사귀는 사람은 절대 어둠에 속한 일들을 계속해서 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귐의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이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대로라면 우리는 다 거짓말쟁이인것이 분명하거든요.
잠시 눈을 돌려서 8절과 10절을 보겠습니다. 요일 1: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요일 1: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이상합니다. 요한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요? 하나님과 사귐의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이 어둠에 행하는 것도 거짓말이고, 그렇다고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이러나 저러나 우리는 글러먹었다는 것을 뜻할까요? 아닙니다. 6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요한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구석이 있습니다. 6절의 ‘행한다’(peripateō)는 단어는 원래 ‘걷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동사는 여기서 현재 시제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계속 또는 반복의 의미를 나타내지요. 어둠 속에 한 번 두 번 행하는 정도가 아니라 계속하여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같은 단어가 7절에서도 쓰였습니다. 삶의 방향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빛이신 하나님과 함께 사귀는 사람이라면, 빛이 한번도 그 어둠에 비추인 적이 없었던 것처럼 계속해서 어둠 속에 머물러 살 수는 없습니다. 그는 이제 빛 가운데 드러난 어두움을 버리며 더욱 빛을 향해 나아가고, 빛 가운데에서 살아갑니다. 어두움이 드러날 때마다 더욱 그렇게 합니다. 즉, 회개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더욱 온전해지는 성화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회개와 성화야 말로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의 관계 속에 있다는 것,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다는 것의 가장 큰 증거입니다. 회개하는 자에게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것이라고 요한이 말합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나님은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자마다 우리의 죄를 거듭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은혜로 날마다 더 온전함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용납하시되 죄를 떠나라 하시는 하나님, 빛을 비추시며 어두움에 속한 것들을 버리라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변화를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사귐의 관계에서만 이러한 변화가 가능합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과 사귐의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만이 마침내 하나님께서 이루실 우리의 완성된 모습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관계의 기초가 우리에게 있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의 기초는 믿음과 사랑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활짝 여는 것, 그 하나님의 사랑에 매료되어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에 모든 것이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믿음과 사랑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오직 그 관계 속에서만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가게 하시는 영원한 생명이 흐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여전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붙드십시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십시오. 죄와 어둠을 버리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자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다시금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이끄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가득 채우셔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고 의지하는 이들에게 당신의 사랑이 영원토록 변치 않을 것임을 그 아들을 통해 나타내셨습니다. 우리를 여전히 사랑한다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오직 믿고 하나님의 사랑에 마음을 활짝 여는 자들에게, 변함없이 부어주시는 사랑에 힘입어 하나님과 사랑의 사귐을 나누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편지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일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이 사랑의 관계 속에 하나님과의 사귐 속에 우리의 모든 신앙 생활이 달려 있습니다. 연애하십시오. 하나님과 연애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먼저 손 내미시며 말씀하십니다. 어디야 지금 뭐해?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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