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다시 선포되어져야 합니다!(롬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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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 나의 복음은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을까요?

여러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 뜻일까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일까요? 천국에 가는 것 그 이상이겠죠. 교회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에만 초점을 둔다면 교회는 이 세상의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사실 신약 성경의 대부분은 이 땅에 있는 교회에게 복음을 살아내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저는 교회가 복음을 잘 이해하고 정직하게 반응한다면, 하나님 나라 자체이신 예수님을 바로 보여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개인적 결론 : 복음에 제대로 반응하면 삶이 바뀐다

1. 복음을 지식으로 전달하려고 했다. 복음은 오히려 혁명적인 삶의 양식이다.
2. 복음이 필요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나도 죄인이며,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3. 복음을 누리지 못했다. 이 세상 공중권세 잡은 자가 더 능력있다고 생각했다.

선교가 로마서의 기록 목적이다

로마서는 다소 사람 사울이 쓴 가장 길고 중요한 편지입니다. 그는 원래 바리새파에 속한 유대인 랍비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을 큰 위협으로 여겨 교회를 핍박했고,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극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나게 됩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은 한때 핍박자였던 사울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세우십니다. 사울은 이방인 즉 비유대인을 위한 예수님의 공식대표가 된 것이죠. 지금으로 말하면 선교사입니다. 그는 이제 로마식 이름인 바울로 불리며, 고대로마제국 전역을 다니면서 부활하신 왕 예수님을 전하고, 자신의 제자들을 ‘교회’라 불리는 새로운 공동체로 세워갑니다. 바울은 때때로 이들 새로운 예수공동체에 서신을 보내 그들의 믿음이 자라도록 돕고 질문에 답을 해줬는데요. 로마서는 이러한 서신중 하나입니다.
사실 로마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아마도 오순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유대인들(목사, 선교사, 사도가 아닌) 의해 세워졌을 것입니다. 로마서를 읽어보면 로마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어있었습니다(우리랑 비슷). 역사적 자료를 읽어보면, 로마교회는 큰 수로 증가했을 것이며, 이것이 유대교 신자들과 갈등을 일으켰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것에 위협을 느낀 글라우디오 황제는 모든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했다가(행18:2, AD49) 약 5년 후에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허락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18:2에 나오는 얘기죠. 바울의 2차 선교여행때에 고린도에서 바울이 이탈리아에서 온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처음 만나고, 그 이후로 로마교회성도들과의 인연이 시작됩니다.
로마교회로 돌아와봅시다. 생각해 보십시요. 5년이 지나서 로마에 돌아온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그 사이 로마교회의 관습과 관행이 매우 비유대화되었다는걸 발견합니다. 이로 인해 당연히 많은 갈등이 일어났겠죠.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는 이미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방식에 대해 의견이 나뉘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방인 그리스도인도 안식일과 유대음식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를 논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몇 가지 목적을 이루고자 이 서신을 썼습니다. 그는 분열된 교회가 복음 안에서 하나되기를 바랬습니다. 복음은 언제나 교회를 생명력있는 공동체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그의 소망은 로마교회를 중심무대로 삼아 더 멀리 당시 로마제국의 서쪽 끝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려는 그의 사명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바울이 그들에게 복음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게 되는 동기가 됩니다. 김용희선교사님이 외치는 “다시 복음 앞에”는 교회분열의 문제를 직면한 그들에게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한번 선포되어야 합니다.

1세기 유대인에게 복음이란 “하나님의 통치로 인한 심판, 해방과 임마누엘”이다

복음은 무엇일까요? 사랑?(톨스토이) 죄용서?(C.S.Lewis) 비폭력?(간디)
그 당시 사람들에게 ‘복음’이란 어떤 의미였을까요? 당시 ‘복음’이란 단어는 전령이 앞서 가서 전쟁에서의 승리와 그에 따른 평화를 선포하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하는 자의 뒤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진짜 왕이 등장했다. 당시에 여기 저기에 폭동과 전쟁으로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울 때 왕이 나타나서 무질서와 혼란을 잠재우고 새로운 통치아래 평화가 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1세기 유대인에게 복음이란]
① 하나님께서 왕이 되시며 이스라엘을 해방시킨다
② 하나님께서 악에 승리하시고 열방을 심판하신다
③ 하나님께서 시온에서 돌아오신다
예언자 전통에서 복음은 상당히 포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사52:7-8;11, 평화 와 구원, 하나님의 통치, 돌이킴) .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 복음의 세 가지 주제의 ‘주체’는 누구인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회개하고 믿어야. 메시야에 대한 희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 1:1).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믿으라(막1:15)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전적으로 새로운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 ‘회개하라 ’는 말은 세계관을 바꿔어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문은 ‘회개’ 라는 문입니다. 회개(metanoia)란 새로운 생명을 받는 것뿐 만 아니라 삶의 방향을 완전히 트는 것까지 포함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종교개혁을 이끈 루터는 말하기를 “우리의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 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신자들의 삶 전체가 참회의 삶이 되어야 할 것을 요구하셨다” (루터, “95개조 논제“ 1항)
회개란 과거의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을 것을 넘어 하나님의 나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맞춰가는 것이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로마 방문을 간절히 바라다

이 복음의 축복을 온전히 누리도록 하기 위해(롬1:11-13) 바울은 그토록 간절히 로마를 방문하고자 하는 이유였습니다(선교적 이유). 이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롬1:8 )사도는 로마에 있는 사람들의 믿음을 듣고 흥분이 되었습니다. 당시 교회가 오늘과 같은 멋진 예배당이 있었겠습니까? 가정에서 비공식적으로 모였겠죠. 어떤 사람들은 이상한 종파에 속했다가 자신의 지위와 재산을 다 빼앗겨 버리고 믿음을 지킨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핍박과 환란 중에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은 온 세상에 전파되었고, 사도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길은 넓은 길이 아닙니다. 좁은 길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시련을 통해 달려되지만, 예수 안에서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여전히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각 언어권 성도들의 믿음의 소식이 본국에 까지 퍼지기를 축복합니다.
(롬1: 9-10) 바울은 로마 성도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가서 대면으로 그들을 만나기를 기도하고, 그들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일에 하나님이 증인이라고 하죠. 저는 이것이 바울이 교회에 대해 갖고 있는 강력한 연대의식, 성경의 말로 지체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과 민족에 상관없이 우주적 교회를 이루는 것이지요. 저는 제자양육과 소그룹 공동체가 교회의 핵심이 되어야 하고, 이것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지체들이 소외되지 않고 머리이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결속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복음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롬1:4)에 대한 헌신은 예수님이 구원하고자 하시는 사람들에 대한 헌신인 길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것을 전파하는데 그치고 않고 복음을 듣는 자들을 위해 스스로 그들의 종이 되었습니다(고전9:22). 그래서, 그는 자유와 권리가 있지만, 복음의 수신자들의 믿음에 해가 되는 일은 철저히 포기합니다. 이것이 제자의 모습, 전도자의 모습, 성육신적 선교사, 참 목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결여된다면, 우리는 한낯 종교쟁이에 머무를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사도는 로마를 방문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에 합한 일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허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13절을 보니까 여러번 가고자 했으나 길이 막혔습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할 때에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죠. 우리가 더욱 겸손히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그의 인도하심을 알도록 말입니다. 선한 일은 위대한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되면 주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롬1:11-13) 바울이 로마를 방문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죠. 11절을 보면 어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 견고하게 하려고 한다. 여기서 신령한 은사란 무엇일까요? 이 은사는 고린도전서 12장의 성령의 은사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사,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영생을 말합니다(롬6:23). 이것은 로마서 전체와 바로 다음 절 12절을 보면 확인할 수 있가 있죠. 너희와 나의 공통된 믿음으로 위로를 얻으려 함이라. 그리고, 로마 교회에서도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열매란 로마에서 추수를 기다리는 영혼들을 말합니다. 당시 그리스나 로마 시대의 신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서 많은 이방인들이 신비종교에 빠진곤 했다고 합니다. 이방 종교의 여러 의식들은 감정적 만족을 주었지만 쉬 사라져 버렸죠. 오직 참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그분 만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와 교제하시는 그분 만이 인간의 깊은 갈급함을 채워주십니다. 복음은 준비된 영혼들을 추수합니다.
(14-15) 사도바울은 자신을 빚진 자에 비유합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그릇으로 자신을 선택하신 것을 알았습니다(롬1:1, 행9:15). 그리고, 빚진 자는 빚을 갚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편애하지 않으십니다. 복음은 모든 자에게 열려있습니다. 한국인이나 외국인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까요? “내가 좋은 하는 사람이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나 나는 복음의 빚진 자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를 열렬히 원한다고 고백하는 것이죠. 할 수 있는 대로…조금 수동적인 느낌. 그리고 그들의 후원을 얻어 로마제국의 땅끝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복음으로 이어지는 나와 너 우리

오늘 말씀의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피조세계에 들어오셔서 악의 세력에 대한 승리를 주신 사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는 백성들에게 평화와 구원을 선물하신 사건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통치가 예수와 성령을 통해 시작되었다. 자아 중심의 옛방식을 버리고, 예수 중심의 새로운 세계관을 갖으라. 우리가 복음에 반응하는 것은 회개하고 믿는 것입니다. 회개란 ‘삶 전체가 참회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고, 믿는 것은 지적 동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먼저 나에게 다시 선포되어져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만나지도 못한 사람에게까지 강력한 연대의식, 즉 지체의식을 갖고 중보가 올려집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목적은 그들이 복음의 축복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죠. 잃어버린 영혼을 향해 복음이 선포되어지고, 성령께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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