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로 자신을 가치를 증명하시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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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심판하십니다.

두로와 시돈은 성경에서 늘 한 묶음으로 등장하는 도시국가 입니다. 그리고, 두로와 시돈은 이스라엘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로의 왕은 다윗과 솔로몬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가졌습니다. 다윗은 늘 블레셋과 전쟁을 했습니다. 사실 두로는 같은 해안선에서 인접해 있던 블레셋을 적으로 두고 있었습니다. 즉,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두로의 공동의 적이었음으로 두로의 왕 히람은 다윗과 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이 궁정과 성전을 건축할 때 레바논 백향목(삼나무)을 비롯한 건축 자재와 목공, 석공 등 기술자를 지원했습니다.
또한 시돈은 이스라엘과 결혼동맹을 맺기도 했습니다. 시돈의 왕인 엣바알의 딸 이세벨은 아합의 부인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과 매우 친밀한 관계에 있는 두로와 시돈은 페니키아의 유명한 두 도시 국가 였습니다.
이 두로와 시돈은 전쟁이 아니라 해상 무역으로 많은 식민지를 지중해에 두었습니다. 한 마디로 장사를 매우 잘하는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2절과 3절에서 이렇게 시돈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Isaiah 23:2–3 NKRV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 상인들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된 너희 해변 주민들아 잠잠하라 시홀의 곡식 곧 나일의 추수를 큰 물로 수송하여 들였으니 열국의 시장이 되었도다
시돈을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 상인이라고 말합니다. 또, 큰 물로 애급의 곡식들을 수송하는 매우 큰 무역 상이 바로 시돈입니다.
또 8절 말씀을 보면,
Isaiah 23:8 NKRV
면류관을 씌우던 자요 그 상인들은 고관들이요 그 무역상들은 세상에 존귀한 자들이었던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냐
두로도 상인, 무역상으로 불렸습니다.
페니키아의 두 도시 두로와 시돈은 한마디로 장사를 매우 잘하는 부유한 도시 국가였습니다. 이러한 부유한 도시 국가를 하나님이 멸망시키 십니다.
왜 하나님은 부유한 이 도시를 멸망시키실까요? 단순히 부유하기 때문에 멸망 시키시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부자라고 해서 벌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하기 때문에 벌하십니다.
8절 9절을 보겠습니다.
Isaiah 23:8–9 NKRV
면류관을 씌우던 자요 그 상인들은 고관들이요 그 무역상들은 세상에 존귀한 자들이었던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것을 정하신 것이라 모든 누리던 영화를 욕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교만하던 자가 멸시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영화를 누리고 교만한 페니키아 인을 벌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벌하십니다. 다른 사람보다 좀 돈이 많다고 우쭐대는 교만한 사람을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우리는 교만하기 정말 쉽습니다. 우리는 지금 보다 하는 일이 좀 더 잘 되거나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좋고, 돈을 좀 더 벌면 금방 교만해 집니다.
조금만 더 잘 나가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표정부터 교만해 지기 시작합니다. 또 말투부터 교만해 집니다. 나 보다 못하다고 평가 하는 사람의 말을 무시하기 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마, 하나님께서 우리가 원하는 만큼 물질을 주시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우리를 교만케 하지 않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일 수 있습니다.
잠언과 전도서에서는 교만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Proverbs 3:34 NKRV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Proverbs 16:18–19 NKRV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나님은 교만을 싫어하십니다 교만하지 마십시오. 겸손하십시오.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패망하게 하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교만한 사람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전환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교만하지 않고 겸손할 수 있을까요?

2. 물질로 부터 자유로와야 합니다.

‘자낳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라는 말로 소위 돈을 쫓아 사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 입니다.
우리는 자본 주의 사회에 살고 있어서 사회 시스템 상 돈을 쫓아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돈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또 자기 자신을 평가합니다. 입은 옷으로 평가하고, 타고 다니는 차로 평가하고 살고 있는 집으로 평가합니다.
즉, 지난 주에 선교사님의 설교 처럼, 우리는 무엇을 가졌는가로 평가하고 평가 받습니다. 심지어 스스로 자기 자신도 내가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가로 평가합니다.
사실, 자존심과 자만심은 가운데 한 글자 차이일 뿐 거의 같은 말입니다. 또 열등감과 자존심은 매우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자존심이 쉽게 상하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열등감이 많이 있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자존심을 강하게 세우게 되면 결국 자만심이 됩니다.
특히, 체면 문화가 강한 한국사람은 그러한 열등감과 자만심이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몇 백, 천만원 하는 명품백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그 평품을 사기 위해서 새벽부터 줄을 섭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소위 말하는 슈퍼카들을 근래에는 종종 보게 됩니다. 페라리 람브로기니 등 몇 억씩 하는 차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벤츠, 아우디, BMW 같은 차는 요즘 너무 흔해서 꼭 국민 차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명품백과 슈퍼카의 소비 연령층이 어떻게 되는 지 아십니까? 2-30대 젊은이들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자기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에 두는 이들이 모두 젊은이 들입니다.
저는 아마도 그러한 젊은이들이 요즘 시대에 많이 볼 수 있는 이유가 교회를 포함해서 세상이 그렇게 교육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더 이상 찢어진 양말을 꿰매서 신지 않습니다. 자본 주의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더 많이 소비하고, 더 좋은 것을 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네가 무엇을 사거나 살 수 있는 지가 너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말하면, 자본 주의 세상은 계속해서 교만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의 가르침으로 부터 자유로와 합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우리가 더 좋고 비싸고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돈을 벌고 쓰는 것은 겸손입니다.
18절 말씀입니다.
Isaiah 23:18 NKRV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사는 자가 배불리 먹을 양식, 잘 입을 옷감이 되리라
하나님이 교만 때문에 멸망시킨 두로와 시돈은 70년 후에 회복하여 다시 무역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부유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회복은 비단 그들이 돈 벌이만 회복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겸손도 회복 됩니다.
두로와 시돈은 무역으로 얻은 모든 돈들을 자신들을 위해서 더 이상 쌓아 두지 않습니다.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그리고 여호와 앞에 사는 자, 즉 하나님을 믿는 교회가 배불리 먹게 하고, 옷을 잘 입게 합니다.
즉, 두로와 시돈은 이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그들이 벌어들인 돈을 쓰게 됩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업을 잘 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돈을 잘 버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돈, 그리고 돈을 많이 버는 것에는 어떤 선악을 판단할 기준이 없습니다.
하지만, 돈을 대하는 태도에서 교만과 겸손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내가 무엇을 살 수 있는지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교만입니다. 그러한 자본주의의 무한한 소비욕구에 길들여지지 마십시오. 돈으로 부터 자유로워 지십시오. 돈의 많고 적음과 상관 없이 하나님을 위해서 또 교회와 성도를 위해서 기꺼이 또 즐거운 마음으로 헌신하는 겸손을 배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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