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과 세우시는 영원한(변함없는)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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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1 아브라함, AG2 예수님, CP 이스마엘, AP 이삭, PW 변함없는 언약, MIW 이삭과 세우리라 SC 하나님의 불변하심 A 약속, C 의심(고안)

Notes
Transcript

S1. 환영과 인사

예배를 소중히 알고 이 시간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풍성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시간이 빨리 흘러가고 있습니다. 벌써 5월도 하순으로 접어 들었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더위와 장마가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6월 일정을 보니 코로나의 위협이 언제냐는 듯 많은 약속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조심하면서도 활기찬 여름을 잘 준비하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6월 4일은 교회 대청소 날을 가지고자 합니다. 연휴가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만 모두가 한마음으로 참여하셔서 교회당을 청소하는 일에 함께 해 주셔서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는 일에 다같이 동참하는 귀한 시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 지난 주 수요일부터는 실버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번 주부터는 점심 식사도 준비하고 있으니 오실 수 있는 분들은 함께 하셔서 말씀도 듣고 서로 교제도 하시고, 영적으로 충만한 노년을 이루어 가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S2. 주제 제시

오늘은 십삼 년 만에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교정하시고 변함없는 언약을 새롭게 주시는 은혜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하시다는 말씀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오늘은 변함없는 언약이 되시는 예수님에 대해 함께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이미 살핀대로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낳아 만족하며 잘 살았습니다. 부도 얻었고, 상속자도 생겼으니 누가 보아도 그는 복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신앙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삶이 순조로웠기에 모든 것이 다 잘 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사래의 이름을 사라라고 바꾸고, 그녀를 통해 아들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미 경수가 끊어져 하갈에게 아들을 얻었고 잘 사는데도 말입니다. 15, 16절 말씀을 봅시다.
창세기 17장 15, 16절
15.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하나님께 어떤 외적인 표현을 할 수는 없었지만 아브라함이 이 말씀을 듣자 그의 마음에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백 세가 곧 되는 사람이고 아내는 구십 세 노년인데 어떻게 사라가 아들을 낳고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날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17, 18절입니다.
창세기 17장 17, 18절
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처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새롭게 아들을 주시기보다는 자기와 사라가 만든 아들 이스마엘을 하나님이 주실 아들로 여기시고 잘 돌봐 달라고 하나님께 부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 부탁을 분명하게 거절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아브라함의 제안을 부정하십니다. 19절을 봅시다.
창세기 17장 19절
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제안을 일고의 고려 없이 거절하십니다. 히브리어의 부정어는 ‘로’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아발’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시가들에서 강한 부정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는 적극적이고 강한 부정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결코 이스마엘을 통해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성취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이스마엘에게는 아브라함으로 인해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은 아브라함 부부가 만들어 낸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아들과 맺으실 것입니다. 20, 21절 말씀을 함께 봅시다.
창세기 17장 20, 21절
20.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21.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도 창조의 복을 이어받게 하실 것이나 구속의 영원한 언약은 사라가 낳을 이삭과 세우실 것임을 분명히 선언하고 계십니다.

S3. 문제 제기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이러한 변함없으신 언약의 작정을 확인하면서도 한두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이러나저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것인데, 이스마엘이면 어떻고, 이삭이면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으로 하나, 저 사람으로 하나 결국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아무를 통해 언약이 이어지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요? 그리고 아브라함도 얼마나 고민을 하고 마음을 쏟았겠습니까? 더구나 이미 아브라함 부부는 이스마엘을 얻은 것으로 만족하고 있고, 하나님께서도 하갈을 돌려 보내셔서 아브라함 부부의 품에 이스마엘을 안겨 주셨던 것 아니냐 말입니다.

J1. 하나님의 마음, 속성, 그리고 방법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함을 봅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기에 일이 생길 때마다 부딪히며 문제들을 해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 전에 이미 영원한 작정을 세우시고, 역사 속에서 그 작정을 성취하십니다. 인간이 범죄하여 타락한 문제도 하나님은 이미 영원에서 작정하신 뜻을 따라 해결해 가십니다. 타락한 인간이 스스로 심판을 대신할 그 무엇을 만들어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없는 것은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미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위해 아들과 함께 영원에서 합의하신 구원의 작정을 이루십니다. 그리고 그 작정은 가장 완전하고 온전한 구원의 길입니다. 죄인인 인간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그 심판을 죄 없으신 아들이 중보자가 되셔서 구원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에게 어떤 구원의 길을 만들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은 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길을 붙들고 구원의 자리로 나오게 하신 것입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 동정녀에게 잉태되셔서 이 땅에 오신 죄없는 온전한 사람이십니다.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것은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본성적으로 그러하십니다. 더하여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으로 사시면서도 실제적으로 아무런 죄를 범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시고 죽기까지 최선을 다해 아버지의 말씀을 행하심으로써 참으로 죄없는 인간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바로 이 예수님만이 죄없으신 분으로서 죄인을 위해 오신 참 구주가 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셔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으나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신 참 구주십니다. 사탄은 에덴동산에 찾아와 선악과가 하나님과 동등한 신이 되는 길이라고 거짓말로 사람들을 유혹했습니다. 그때 우리의 처음 조상들은 그 온전함을 가지고도 사탄의 말을 믿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후손인 우리들도 다 죄인이 되어 부패한 죄성을 이어받아 죄를 범하여 살고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 번째 아담으로 오셔서 사탄의 모든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시고 이후에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의 모든 심판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이 예수님만이 하나님께서 영원한 언약을 성취하시고 죄인인 우리를 자신의 양자로 받아 주시는 유일한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W1. 예수님만이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약속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영원하고 변함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함으로 아들 이스마엘을 얻은 것이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런 아들을 구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갈과 낳은 이 아들이 결코 영원하신 아버지의 구원 언약을 이룰 수 없다고 명백히 선언하신 것입니다. 우리 19절 말씀을 다시 한번 더 읽어 보십시다.
창세기 17장 19절
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하나님은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잘 살게 해 달라는 아브라함의 부탁을 분명하게 거절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인을 구원하시는 은혜의 길은 하나님이 뜻하신 대로 세워가시는 것이지 사람이 자기 편의 중심으로 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인간의 지시를 받는 분이지 우주와 만물을 다스리시는 진정한 주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죄인이 무슨 권리가 있어서 자신의 구원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내신 구원의 길을 쫓아가는 것이 사는 길이지 죄를 범해놓고 무슨 낯짝이 있다고 자기가 구원의 길을 낸다는 말입니까? 그것이 바로 교만이고 그것이 바로 죽음의 삶을 사는 자들이 행하는 행동 아니겠습니까?

W2. 생명의 언약은 오직 아버지께서 주신 약속에만 근거합니다.

인간이 범죄하여 하나님 앞에서 타락했기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다 죽이셔도 이에 대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핵폭탄이 터져서 모두가 다 죽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탓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죄를 범한 인간이 스스로 져야 하는 죄의 값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하시는 기쁘신 뜻을 따라 죄인 중에서 구원하실 자를 택하시고 그들을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죄값을 다 지불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보내신 아들을 믿는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같이 읽어 봅시다.
요한복음 3장 16절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세상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아들 안에서 사람을 입고 오셔서 죄인의 죄값을 다 지불해 주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 안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심어 주시고, 그 믿음을 가진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사랑으로 주신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 곧 메시야로 아는 참된 믿음뿐입니다. 성령님께서 죄인에게 회개의 심령을 일으켜 주시는 것은 바로 이 아버지의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을 아는 참된 믿음밖에 없습니다. 이 길만이 유일한 용서의 길이고 회복의 길입니다.

W3. 하나님은 사라의 아들 이삭 안에서만 오실 메시야를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라의 아들 이삭 안에서 메시야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고 믿어 영접한 자들에게만 영생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이스마엘과 같이 자신이 만든 메시야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는 마지막 날에 하나같이 저주받아 죽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선포하시며 그 정죄가 이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9절을 봅시다.
요한복음 3장 19절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예수님은 사람들이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을 쫓는 이유가 자신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에 빛이신 주님을 거부하고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이외에 다른 것을 믿고 사는 모든 자는 스스로가 어둠에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통해 주신 예수 바로 그분을 아버지의 사랑으로 오신 구원주로 믿고 순종하는 자만이 진정한 구원의 길에 이르게 됩니다.

T1. 아브라함은 심판의 자리에서 벗어나 구원의 약속을 붙잡는 은혜를 누립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심판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죄를 범하면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리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방법을 따라 약속을 불신한 죄를 범한 것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를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그의 말을 거절하심으로 그를 책망하셨으나, 그의 죄로 그를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삭과 세울 영원한 언약을 믿는 변함없는 믿음을 굳게 하신 이후에 하나님은 그를 떠나 올라가신 것입니다. 22절을 봅시다.
창세기 17장 22절
22.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이것이 믿는 자가 가진 영적인 복입니다. 죄를 범했으나 심판이 아니라 용서와 온전한 믿음의 회복의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시편 32편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편 32편 1절
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아브라함은 허물의 사함을 받고, 죄가 가려지는 복을 누린 믿음의 조상이 되는 큰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범죄를 반드시 교정하시고 책망하시나 그를 심판하지 않는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T2. 세상은 자신이 만든 길을 구원의 길이라 여기기에 은혜를 얻지 못합니다.

세상은 마지막 날에 아버지의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물론 성도들도 그 행위로 인해 심판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는 아버지의 아들이 지신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소유하기에 그 자신의 죄에도 불구하고 심판의 자리에서 아버지의 용서의 자비함을 얻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스스로 아버지께서 주신 구원의 길을 버리고 자기의 고안물을 의지하기에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누구도 하나님의 율법의 의를 온전히 수행하고, 양심의 고발에 떳떳할 수 있는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T3. 그러나 성도는 유일한 구원의 길을 선물 받고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유일한 구원의 길이신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 날에 우리 성도를 향한 자비함의 은혜의 통로가 되십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칭의를 얻고 양자 됨의 영광을 누리며 거룩한 회개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인의 삶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죄에 굴복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거룩을 이루어가는 성화의 자리에도 항상 예수님의 대속 제물되신 은혜는 성도에게 최고의 필수품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자리에서 양심이 고발하는 모든 고소에도 굳건하게 견딜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하나님이 유일한 구원의 길로 주신 예수님 안에서의 용서의 은혜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죄를 범하여 슬퍼하고, 죽음 앞에서 눈물 흘리면서도 영원한 구원의 확신을 얻고 믿음 가운데 살고, 죽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주신 아브라함이 스스로의 고안물에 빠져 만족하며 사는 삶을 책망하시고 그를 죄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을 믿는 믿음을 그의 마음에 다시 세우심으로 그가 오해하고 스스로 만족하며 살던 죄의 삶에서 그를 건져 내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자들도 죄의 유혹에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함없으신 마음으로 이미 믿음 주신 자들을 심판하시기보다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시며 믿음 가운데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살게 하심으로 참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토록 변함없는 약속이며, 예수님은 바로 그 변함없으신 언약의 중보자로 오신 구주가 되심을 온전히 붙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말씀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약속이신 예수님만을 깊이 붙드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 성례들을 통해 오직 약속하신 메시야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유일한 하나님의 길임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길은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길이요 하나님이 내신 생명의 길입니다. 이 예수님을 마음에 구주로 믿고 영접한 삶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헛된 미혹들을 잘라내는 삶이요,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진정한 순종의 삶을 사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 모두 아브라함의 어리석은 말을 거절하심으로 그를 책망하시는 아버지의 음성을 깊이 새기고 죄를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깊이 들으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말씀을 따라 참된 구주로 오신 예수님만을 변함없는 믿음으로 온전히 붙들고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구하여 주님이 사셨던 그 순종의 삶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을 온전히 예배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거룩과 의의 백성이 되어 복음을 누리고 전파하는 성도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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