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의의 복음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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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다시 한 번 복음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자유라는 관점에서 두 번, 은혜라는 관점에서 두 번 복음을 살펴봤었는데요, 오늘부터는 칭의라는 관점에서 또 두 번 복음을 깊이 들여다 볼겁니다. 이렇게 보니 복음이라는 것이 참 깊고 풍성하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됩니다. 보고 또 보아도 여전히 바라볼 부분이 있고, 파고 또 파도 여전히 새로운 부분이 있으니까요. 이 복음은 베드로 사도가 말하듯 하늘의 천사들도 자세히 살펴보기를 원한다 말할 정도로 위대합니다. 복음을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신비가 끝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평생 들여다보아도 다 알지 못할 것이 복음이지만, 이 복음을 더욱 이해하고 누리는 자들마다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번 칭의의 복음을 나누고 나면 지금껏 나누었던 복음이 전체적인 관점에서 어떤 구조인지 설명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쪼록 계속되는 복음에 대한 설교가 우리의 믿음과 신앙에 든든한 밑바탕으로 자리잡게 되길 소원합니다.

바울의 복음

신약성경의 많은 저자들이 복음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요, 그 중에서 복음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그리고 복음에 대해 가장 짜임새있게 설명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바울입니다. 성경을 쭈욱 찾아 살펴보니 바울은 대략 85회 정도 복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간접적인 표현까지 포함하면 수백회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신약성경에서 그가 남긴 편지가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마태가 28장의 복음서를 기록하는 동안 총 5번, 누가가 52장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기록하는 동안 총 20번을 정도를 사용한 것에 비교해보면 대단히 잦은 빈도로 복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지요.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라며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바울의 인생의 최대의 관심은 이 복음이었습니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물론이고, 바울도 복음이라는 것을 설명할 때 그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복음서의 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자신들이 목격한 대로 증언하고 있는데 비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어떤 의미인지 자세하게 설명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과거 사울이었을 시절, 그리스도인들을 찾아다니며 핍박하던 때에 그는 예수가 거짓 메시아로서 율법이 선언하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죽은 것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하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예수님이 진짜 메시아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자신의 죄 때문에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 대신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이자, 우리 죄를 해결하기 위한 대속의 제사였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정말 한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로 이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진리 말입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그의 평생을 쏟아 이리저리 전도를 하며 돌아다녔고, 수많은 편지를 남겼습니다. 그의 편지들 속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즉, 대속의 제사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로 회복된 것을 표현하기 위해 칭의, 화해, 입양, 새창조, 성화 등 여러가지 다양한 그림 언어들(imageries, metaphors)을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을 하기에 그것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여 우리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로 회복시키는 걸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 주제를 가장 분명하게 밝혀주는 본문입니다. 이제 본문을 좀 살펴보도록 할까요?

대속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25절을 먼저 한 번 봅시다.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화목제물이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화목제물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힐라스테리온이라고 하는데요, 사실은 언약궤의 뚜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레위기 16장에는 일 년에 한 번씩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백성의 죄를 다 안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그 언약궤의 뚜껑에 제물의 피를 뿌림으로써 지난 일 년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모든 죄를 씻어 버려서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얻어 내는 제사가 나타나는데요, 여기서 핵심은 대제사장이 제물의 머리에 안수를 하고 제물을 잡아 제사를 드리고 난 후 이스라엘에게 죄가 씻겨졌다고, 하나님께 다시 한 번 의롭게 여겨졌다고 선언하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화목제물이라 말하는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레위기 16장에 제정된 대속죄일에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속죄 제사를 완전히 성취한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동물을 제물로 잡아 드리는 제사로는 부족했던 것일까요? 왜 예수 그리스도가 죄를 씻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화목제물이 되어야 했을까요? 히브리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9:22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또 이렇게 전합니다. 10:4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8: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이것은 구약의 동물의 제사는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키는 모형과 그림자였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인간의 죄를 어떻게 동물의 피로 씻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죽음을 어떻게 동물의 죽음으로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죄를 위해서는 인간의 죽음이 필요하지요.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에게 자신의 죄와 죽음을 대신할 제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면서도 훗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완전한 대속의 제사를 바라보시며 준비하셨구요, 또한 첫 인간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도 그 날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처음부터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계획하신 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이 붙들어야 할 것

바울은 모든 인간들이 죄인이며,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여기서 말하는 모든 사람은 말 그대로 모든 사람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 사람이 얼마나 흠없고 죄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한들 하나님의 기준에는 턱없이 모자라다는 것이지요. 늘상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그런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흔히 착각을 하곤 합니다.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의 기준에 다다를 수 있을거라구요. 우리의 열심히 노력해서 산다면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결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19절과 20절을 한 번 봅시다. 롬 3:19-20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께 죄가 없다고, 의롭다고 여겨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죄로 타락한 인간에게 율법은 그저 자신이 저지른 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게 해줄 뿐입니다. 이것은 율법을 모르는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율법을 모르는 인간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롬 2:14-15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율법을 모르는 인간들에게도 하나님의 기준이 무엇인지 마음 속에 어느정도 알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이 있는 인간들에게 율법이 그 죄를 깨닫게 하듯, 율법이 없는 인간들은 양심이 그 죄를 깨닫게 합니다.
율법을 가지고 있던 가지고 있지 않던, 모든 인간은 다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결코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이 사실이 더욱 분명해지지 않습니까? 우리가 율법을 몰랐을 때에도 가정과 학교에서 배운 규칙들을 지키며 살아가는데 얼마나 많이 실패했습니까? 그때마다 우리의 양심은 계속해서 그것이 죄임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알고 난 후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을 지키며 살아가는데 얼마나 많이 실패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율법을 들여다 볼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죄악과 한심함을 더욱 깨달을 뿐입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 앞에 서고자 하면 할 수록 우리는 점점 더 우리의 비참한 현실을 더욱 확실히 인식하게 되는데요,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서보고자 노력하는 것은 오직 이런 점에서만 의미가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루터는 이렇게 말했지요. “율법의 방망이로 실컷 얻어 맞은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율법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자신의 힘으로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에 양심의 고통을 더욱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율법의 방망이로 두드려 맞을수록 자신이 선하고 의롭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구하고 의지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칭의

사실 바울은 로마서의 첫장부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바로 직전까지 이러한 인간의 비참한 상황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죄의 문제를 깨닫고 절망에 빠져 탄식하는 모든 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지요.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바울은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구원이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죄사함이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는 값없이 하나님께 의롭다 여겨질 수 있다.”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놀라운 것들을 우리가 받아 누릴 수 있을까요?
롬 3:25-26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 의롭다고 여겨지게 됩니다. 우리의 열심, 우리의 노력이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우리는 비록 여전히 흠도 점도 많은 죄인이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교회에서는 흔히 칭의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의롭다 하려 하신다 할 때 쓰인 헬라어 단어는 디카이오오입니다. 이것은 본래 로마 시대 법정에서 자주 사용되던 단어인데요, 무엇인가를 근거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하나님의 법정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판사로는 하나님께서 앉아 계시고, 우리는 갖가지 죄로 사탄에게 기소되었습니다. 우리의 양심과 율법은 우리에게 변명의 여지조차 남겨놓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에 대한 응당한 심판으로 내려질 사망과 지옥의 선고만을 앞두고 있는데, 그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변호하기 시작하십니다. 자신의 희생을 근거로 우리의 무죄를 주장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들이시고 우리에게 무죄를 선고하시지요. 무죄 선고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쏟아 치르신 값비싼 희생입니다. 결코 우리의 노력으로 하나님께서 무죄를 선고하실 타당한 이유를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변호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우리에게 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롬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로 삼으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으로 자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변호를 맡기시고 무죄를 선고하심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지만, 오늘은 이것을 하나님의 하나님 노릇 하심, 하나님의 창조주이자 아버지로서 우리를 대하심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로 삼으시는 것으로 누구도 풀 수 없는 딜레마를 해결하셨습니다. 죄인을 심판하셔야 하는 동시에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셨습니다. 우리와 화목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제물로 삼으시고 우리와 화목을 이루셨습니다. 죄를 심판하시는 동시에 죄인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공의와 사랑을 모두 지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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