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31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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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370[주 안에 있는 나에게]
본문 신1:29-33 [구p.261]
하나님 아버지, 늘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임에도 그 사랑을 거두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오래참으시고, 우리에게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을 부어주심에 감사합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유혹과 시험거리들이 찾아오겠지만, 그 순간들마다 우리의 하늘아버지를 기억하게 하시고, 그 하나님만 간절히 붙듦으로 모든 시험을 넉넉하게 이기는 우리만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가 잘 알다시피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서기 직전, 요단 강 근처의 평원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모세의 세 편의 고별설교로 구성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이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 곳에 들어서자마자 40년 전 정탐꾼들이 보았던 거대한 민족들을 상대해야 했고, 난공불락의 요새를 점령해야 했으며, 그 땅의 온갖 우상들과의 영적 전쟁을 감당해야 했다. 애굽에서 나온 이후로부터 그들의 힘과 능력으로 지금 이 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오직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였다. 따라서 모세는 고별설교를 통해 지난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행했던 죄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실하게 언약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은혜로 새로운 존재가 된 그들이 모든 하나님의 말씀들에 순종해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해 신명기를 기록한다.
특별히 오늘 본문이 속해있는 신1:19 이하로는 과거 40년 전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열두 정탐꾼을 보내었고, 그들을 통해 가나안 민족은 어떠한지, 그 땅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지를 보고하게 한 이후의 사건을 회상한다. 열 두 명의 정탐꾼들 중에서 열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다. 절망적이고 암울한 내용이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능히 이길 수 있노라고 말했을 뿐이다. 회중들은 누구의 보고를 선택했는가? 10명의 믿음없는 보고였다. 그들은 왜 10명의 보고서를 선택했는가? 그들 모두는 진정 하나님이 누구신지 몰랐던 것이다. 그토록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입어놓고도 정작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몰랐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을 의심하는 믿음없는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모세는 본문을 통하여 그 때를 회상하며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강조한다. 그는 지난 40년간 이스라엘을 지도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이별의 순간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사역을 마무리하며 그들에게 들끓는 심정으로, 이별을 앞둔 떨리는 부모의 심정으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해 호소한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정작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는 경우들이 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맹목적인 신앙이 되고,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 중심적으로 변질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오늘 이 새벽의 시간에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해야 합당한지 말씀을 전하려 한다. 기억하라.
우리 하나님은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분이시다. 30절 말씀을 보라.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노예였다. 엄청난 노역에 시달렸고, 산아제한정책으로 인하여 태어나는 모든 남자아이들이 나일강에 던져지는, 민족의 씨가 말라버릴 위기에 놓였던 자들이다. 어떠한 소망도 보이지 않고 암담한 미래만 있었던 자들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탄식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찾아가셨다. 그리고 애굽의 10가지 재앙을 통해 애굽의 왕을 비롯하여 그들의 거짓된 신들과 싸우셨다.
또한 라암셋을 떠나 숙곳과 에담을 거쳐 비하히롯이라는 바닷가에 장막을 쳤을 때, 애굽의 바로는 모든 병력을 보내어 추격하게 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전진하게 하셨고, “이곳에서 우리를 죽게 하려느냐"고 원망하던 이스라엘을 향하여 모세는 담대히 선포한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바다를 갈라 마른 땅을 건너가게 하셨고, 애굽의 추격해오던 군사들은 모두 바다에 수장시키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대적하던 애굽 군대와 싸우셨다.
그 뿐인가? 출17 장을 보면, 르비딤에서 아말렉과의 전쟁이 벌어진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전투방식이라고는 조금도 알지 못하던 자들이 출애굽하며 제대로 된 무기라도 챙겨왔겠는가.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 대신 싸워주실 하나님이었다. 이 사실을 알았던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쥐고 산에 올라가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의 손이 지쳐 떨어지면 아말렉이 이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지켜보던 아론과 훌은 모세의 양 팔을 붙들어 하늘 높이 올렸더니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 군대가 아말렉을 무찌르게 된다. 이 승리는 이스라엘이 가진 힘 때문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출17:15-16 말씀에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이외에도 얼마나 많은 곳에서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가?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앞서가시며 우리의 여정을 넘어뜨리려 하는 원수들과 싸우신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 여호와 닛시 승리의 깃발이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둘째로,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이시다. 신1:31 말씀을 보라.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앞에서 말씀드렸듯, 지금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가나안 입성 직전에 있다. 눈 앞에 요단 강만 건너게 되면 본격적으로 가나안 영역에 들어가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금 이 곳까지 그들이 올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인도하심 때문이었다.
애굽에서 고아와 같이 버림받은 바 된 것 같던 삶을 살았던 그들이었다. 어떠한 소망도 없이 매일매일 고통 속에 살던 그들이었다. 그랬던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찾아가셨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꺼내주셨다. 광야생활에서도 늘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거나 내치지 않으시고 지금 이곳까지 신실하게 인도해오셨다. 생각해보라. 출애굽 이후로 40년 광야생활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 목이 마를 땐 물을 내어주셨고, 양식이 떨어졌을 때는 신묘막측한 방법으로 양식을 제공하셨으며, 광야기간동안 옷이 헤어지지도 않았고, 신발이 닳지도 않았다. 그들이 지금 이 곳에 설 수 있는 것, 약속의 땅 가나안 직전까지 올 수 있었던 것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요, 그분의 도우심이며, 그분의 선하신 인도하심 때문이었다.
성경에서 우리는 교회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얼마나 자주 발견하게 되는가? 심지어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보아도 그렇다. 지금 이 순간까지 내가 잘 나서 살아온 것 같고, 내가 가진 것들로 버텨왔다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은혜요, 그분의 인도하심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라. 내가 가진 것중에서 온전히 내 것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들이 과연 있던가? 내 재산들은 온전히 다 내것이던가? 내 집도 정말 내 것이던가? 내 자식들도 내 것이던가? 심지어 내 몸, 내 손과 발, 내 시간들은 어떠한가.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한 인도자, 선한 목자가 되신다.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해 오셨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셋째로, 모든 앞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본문 신1:33 말씀을 보라.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때에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보다 앞서가시며 모든 앞길을 예비하셨고, 민10:33 말씀에도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다고 말씀하신다. 또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요단을 건널 때에도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먼저 요단 강에 들어서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보다 앞서 가시며 요단 강물을 막으셨다는 것이다.
모든 앞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사45:1-3 말씀에 “내가 너의 오른 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게 알게 하리라" 우리의 모든 앞길을 가장 선하게 예비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과 이 생에서만 형통으로 예비하시는 것이 아니라, 장차 임할 영원한 영광의 나라까지 예비하사 그 나라에 우리가 들어가는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우리 하늘 아버지는 우리의 이해와 생각과 상식과 지혜를 뛰어넘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모든 선한 것들을 우리 앞에 예비하시는 분이시다.
말씀의 결론이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분이시요, 지금까지 인도하시는 분이시며, 모든 앞길을 가장 선하게 예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자들로서 이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는가?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러한 분이라는 점을 깨달았다면 이제 어떠한 합당한 반응으로 나아가야 하겠는가? 모세는 그 장대한 가나안 거류민들 앞에 선 이스라엘을 향하여 29절에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다. 왜인가? 그 대적들이 아무리 장대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보다 강하시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여러분, 인생 가운데 밀려오는 여러 고난의 풍랑들, 시련의 바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날 집어삼킬듯이 밀려오는 높이 치솟는 파도들을 바라보며 두려워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 왜인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파도와 풍랑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이 모든 것들은 잠잠해질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이 모든 것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늘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분이시며, 지금까지 인도해오신 분이시고, 또한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의 모든 앞길을 예비하실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을 신뢰하라. 그 하나님만을 간절히 붙들라. 더욱 하나님을 사모하며 그분께로 나아가는 이 자리의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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