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일하시는 중

사도행전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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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승천하신 이유 2. 보좌에서 하시는 일 3. 아버지 하나님 우편 4.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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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ok

지난 주 청년부 아웃팅을 갔었잖아요? 이번에 함께 가지 못한 청년들은 혹 다음에 또 기회가 생긴다면 그 때는 함께 갔으면 좋겠어요.
야구를 보던 그 때 얼마나 뒤에서 속이 탔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거에요. 생각보다 날씨도 너무 더웠는데, 양팀 투수가 공을 너무 잘 던져서 투수전으로 흘러가니까 뭔가 혼자 미안한거에요.
‘아 이제 야구장 가자고 못하겠구나.’ 혼자 생각하면서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고, ‘하나님 저 좀 살려주세요ㅠㅠ'라고 기도 하던 그 때! 갑자기 터져나온 추신수의 홈런 한방이 절 살렸어요. 진짜 세상 행복했어요. MSG 조금만 타서 이야기 하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마음이었어요.
더워서 거의 녹아내려가던, 서서 응원하는 것을 쳐다만 보던 제 앞자리의 대연이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 같이 응원을 시작하더라구요. 지민, 소영, 혜원이도 어느새 일어나서 소리 지르면서 열심히 응원을 하는 것을 보면서 저는 정말 행복했어요.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시는구나. 여전히 일하시는구나. 나를 살리기 위해 이렇게 일해주셨구나. 싶어서 저에겐 정말 감사한 날이었어요.
제가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 어느 정도 진심이었어요.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셔서 일하시고 순간순간 나를 도와주시는구를 느꼈던 날이었어요.
여러분은 언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 라고 느끼나요? 여러분 느끼며 살아가죠?
나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 때문에, 여전히 살아계신 그 분을 믿기 때문에 우리 지금 예배 드리고 있는거잖아요?
언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일하고 계신다! 라는 것을 느끼나요?
하나님의 일하심은 거창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죠. 삶의 작은 한 부분이라도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느낄 수도 있는 있어요.
여러분.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믿나요? 그 일하심을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나요?
아니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일하고 계신다. 라는 이 문장을 여러분 정말 믿고 나의 현실의 삶으로 받아드리고 있나요?
오늘 함께 살펴볼 사도신경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를 통해 그 분이 지금도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정말 믿고 신뢰함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승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다시 살펴볼까요?
20절.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절.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절.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절.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여러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 믿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도 믿죠? 나를 구원해준 신.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성경이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세요.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다구요. 여전히 계속 일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20절 하반절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죽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원래 계셨던 곳으로 돌아가셨어요. 이번에는 육체도 함께 올라 가셨어요. 이 땅에 오시기 전 예수님은 신성만 하늘에 계셨어요. 하지만 이 땅에 오신 이후에는 신성과 인성을 함께 갖고 계셨죠. 원래 신성만 하늘에 계셨던 분께서 원래 계셨던 곳으로 돌아가시면서 육체를 갖고 가셨어요.
예수님이 돌아가신 곳은요.
닥터 스트레인지2에 나오는 멀티버스와 같은 곳이 아니에요. 여러분 스포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멀티버스처럼 동일한 혹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다중 차원세계로 넘어가셔서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구원하러 가신 것이 아니에요.
이것은 이 세상과 구별되어진 지금도 실제로 살고 계신 확실한 다른 차원. 원래 계셨던 곳으로 돌아가셨어요. 이것은 단순히 마음의 상태나 생각 속에 존재하는 그런 유토피아 적인 곳이 아니에요.
정말 하나님과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함께 있는 그 곳으로 가셨어요.
20절을 좀 더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 오른쪽에 앉아 계신다고 해요.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앉아 계신다"라는 이 표현이요. 단순히 그냥 앉아있다. 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요.
히브리서 10장 11-12절을 함께 볼까요?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여러분 구약 시대 제사장들의 역할이 무엇이었죠?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죄를 용서받도록 해주는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었어요. 11절의 말씀처럼 제사장들을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렸어요. 제사장들은 자리에 앉을 수 없었어요. 제사를 드릴 때 보면 제물들을 태우잖아요? 그러면 제물이 태워지는 동안 힘드니까 자리에 앉으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는데요. 앉을 수 없었어요.
하나님께서 이 제물과 제사를 기쁘게 받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며 제사를 인도해야 했기에 감히 앉아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어요. 11절 하반절을 보면요. 매일 서서 섬기고 자주 같은 제사를 드렸지만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제사장들이 아무리 서서 섬기고 대속의 제사를 드렸다 해도 죄는 여전히 존재했다는 것이죠. 이런데 제사장들이 감히 앉을 수 있었을까요. 심지어 성막에는 의자도 없었어요.
이어지는 12절을 보면요.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라고 적혀있죠. 예수님도 대제사장처럼 제사를 드렸는데요. 이 분은 서 있지 않고 앉아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왜 앉으셨을까요?
예수님이 드리신 그 제사는 제사장들의 제사와 달랐기 때문이에요. 인간 제사장들이 드린 제사는 죄가 계속해서 남아있었어요. 하지만 예수님이 드린 제사는 죄를 다 날려버렸어요.
모든 일을 다 마치셨기에 예수님은 자리에 그것도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어요.
여기까지 말하면 예수님의 역할은 끝난것처럼 보여요. 하지만요. 예수님께서 모든 일을 끝마치고 쉬기 위해 자리에 앉으신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그 자리에 앉으셔서 다른 일을 하고 계시는데요.
그 일은 바로 저와 여러분의 삶에 개입하는 것인데요. 그 개입을 통해 저와 여러분은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시는구나'를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승천하신 이유

예수님께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는 성령을 보내주시기 위해서에요. 성령에 관해서는 조만간 영화 오두막을 살펴보면서 나눌 예정인데, 성령에 대해선 그 때 자세히 나눌거에요.
오늘은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주신 이유에 대해서만 나눌 건데요. 왜 성령님을 보내주셨을까요? 그냥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을까요? 죽었다 부활하신 분이시잖아요. 신성을 갖고 계시기에 엄청난 능력도 소유하셨잖아요.
그분이 계셨다면 엄청난 상징적 의미를 가졌을텐데 굳이 가시고 성령님을 보내신 이유무엇일까요?
일단은 육신의 제약 때문이죠.
여러분 손오공 알죠?
제가 어렸을 때 날아라 슈퍼보드라는 만화를 티비에서 방영을 했었는데요. 손오공은 여러 도술을 부려요. 날아라 슈퍼보드를 보던, 어렸던 휘석이가 가장 부러워하고 가지고 싶었던 도술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머리카락으로 분신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학교 가기 싫을 때, 공부하기 싫을 때, 친구 만나러 나가기에 오늘 기분이 꿀꿀한데 나가야 할 때 등등 그 때 분신을 만들어서 대신 내보내고 싶었어요. 저 머리숱 봐요. 엄청 많잖아요. 저 파마 한 것 같죠? 아니에요. 순수 제 머리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보는 것보다 숱이 더 많아요. 꼬부라져서 이게 적게 보이는거에요.
그래서 저는 머리카락으로 분신을 만드는 도술이 있다면 정말 배우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건 만화니까 가능한거잖아요. 실제로 분신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요.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어요. 육신의 제약이 있었어요. 우리와 너무 똑같은 인간이었기 때문에, 모두와 같은 시간에 함께 할 수 없었어요.
예수님이 동시간에 여러 곳에 나타나는 것보다, 오히려 성령을 보내주시는 것이 더 유익한 것이죠. 모두와 모든 시간, 모든 공간에 함께 할 수 있으니까요.
성령님은 편재. 어디에나 함께 있을 수 있거든요.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 하셨어요.
보혜사 성령은요. 진리의 영이에요.
우리가 진리.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이에요.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깨닫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분. 바로 보혜사 성령이에요.
잘 이해되지 않던 말씀이 깨달아질 때, 묵상하기 어려웠던 본문에 집중하기 시작 했던 그런 경험들 혹시 있나요? 여러분 안에 내주하고 있는 그 성령님께서 일하기 시작하셨기 때문에 갖게 된 시간이에요.
저에게 있어 에스겔은 정말 무섭고 두려운 성경이었어요.
에스겔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소망과 또 회복되어질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진 성경인데요. 저는 1장을 읽을 때부터 너무 두려웠어요. 이상하게 한 장 한 절을 읽는 것이 너무 무서웠어요.
마치 제가 그 안에 있는 것처럼, 네 생물 앞에 서 벌벌 떨고 있는 에스겔이 마치 저인것처럼 느껴질만큼 감정의 대입이 있었어요.
그래서 에스겔을 읽다가 덮었어요. 그런데 그 두려움의 떨림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되는거에요.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는데 에스겔을 보지 못하겠는거에요. 그래서 정말 한동안 에스겔을 보지 못했어요.
인도에서 학교를 다니고 방학이 되어, 인도여행을 준비하면서 제 마음 속에 여행만 할 것이 아니라 에스겔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제가 있던 곳에서 뉴델리까지 가는데 기차로 38시간이었으니까 읽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 생각했거든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에스겔을 펼치고 기차에서 읽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감정이 저에게 다가오는거에요.
이스라엘을 포로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심경
그럼에도 정신차리지 못하는 이스라엘
회복을 약속하시며 마른 뼈들을 일으키시는 하나님
소망과 회복의 미래에 대한 말씀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애절한 마음이 느껴지면서 눈물이 왈칵 나더라구요.
솔직히 인도기차에서 성경을 읽는 것 어려워요. 나중에 인도기차를 한번 검색해보세요. 집중하기 어려운 그 상황에 갑자기 에스겔서 안으로 제가 빨려 들어간 것처럼 집중이 되었었어요.
이 순간이 바로 성경님이 일하신 순간이에요.
나는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사실 늘 이 안에 계셨던 성령님께서 일하심을 강하게 느꼈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며 에스겔이 사실은 무섭고 두려운 말씀이 아닌 하나님의 처절한 사랑 이야기. 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것이죠.
여러분은 어때요? 갑자기 말씀이 이해가 되고 여러분에게 은혜가 되었던 적이 있나요? 있었다면, 성령님의 역사하셨기 때문이에요.
정확하게 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에요. 늘 언제나 일하고 계셨어요. 그 일하심을 삶에서 자주 느끼고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정말 저는 기도해요.

보좌에서 하시는 일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죠. 성령님을 보내심으로 예수님의 사역이 끝이 났을까요?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오늘 설교 제목. 계속 일하시는 중이에요.
예수님은 우리 모두와 함께, 나의 시간과 장소에서 함께 하기 위해 성령님을 보내신 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또 다른 일을 시작하셨어요.
그 자리에 앉아서 쉬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교회를 다스리고 계셔요. 그리고 중보하고 계셔요.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도 낮에는 사역을 하셨고 밤에는 늘 기도하셨어요.
그것처럼 하늘에 오르셔서도 우리를 위해 바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계셔요. 앞으로 웨스트민스터소요리, 대요리를 또 제자훈련으로 함께 하게 될텐데요.
웨스트 민스터 대요리 문답 55번을 보면 이런 질문이 있어요.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간구하십니까?
땅에서 행하신 자기의 순종과 희생의 공로로 하늘에 계신 성부 하나님 앞에서 계속해서 우리의 본성으로 나타나시며
그 공로가 모든 신자들에게 적용되도록 자기의 뜻을 선포하십니다.
그들에 대한 모든 고발들에 답하시며 날마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양심의 평안을 주시며 은혜의 보좌로 담대하게 나아가게 하시며 그들 자신과 봉사를 받으십니다.
한 마디로 “매일 실패하고 넘어지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것이에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땀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듯 기도하셨던 것처럼요. 저와 여러분을 위해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고 계셔요.
로마서 8장 33-34절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그 어떤 세력도 우리를 고발하거나 정죄할 수 없도록 기도하셔요.
우리가 끊어버리지 못하는 죄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셔요.
이 땅에서 그 어려운 모든 사역들을 감당하셨기에 이제는 성령님께 맡기고 쉬어도 될텐데 예수님은 쉬지 않고 여전히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셔요.
우리 기도할 때,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해달라 기도하잖아요. 그것과 같아요. 예수님의 기도. 주님의 기도는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과 뜻이에요. 주님의 평생 기도제목은 바로 ‘여러분'이에요.
예수님은 보좌에 앉으셔서 바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우리가 그 분 곁으로 갈 때까지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하고 계셔요.
여러분은 예수님의 최대 관심사이면서 최대 기도제목이에요.
예수님의 모든 시선과 관심은 여러분에게 있어요.
제가 청년부 뿐만 아니라 영아부도 담당하고 있잖아요?
영아부 예배 때 설교를 할 때 엄마들의 눈을 보면요. 아기에게 고정이 되어 있어요. 귀는 설교를 듣고 있지만 눈은 아기에게 고정이 되어 있고 아기가 뛰어가면 시선이 거기에 따라가요. 설교를 듣다가도 아주 작은 아기의 목소리가 들리기만 해도 돌아서서 아기에게 가시더라구요.
여러분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이 이런거에요. 기도하시면서 여러분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거에요. 땀방울이 피가 되도록 집중해서 간절하게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면서도, 오늘 찬양 한 것처럼 작은 신음에도 바로 즉각 응답하시기 위해 모든 신경을 다 쏟고 계셔요.
그래서 우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다시 붙잡고 버티고 설 수 있는거에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예수님의 기도로 내가 다시 일어서고 매일을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앞으로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하는 3가지가 있어요.
첫번째, 담대하게 발을 내딛는거에요. 히브리서 4장 16절이에요. 함께 읽어볼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아멘
지난 2월 성막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을 때 속죄소를 소개했던 적이 있었어요.
속죄소 뚜껑 위에 그룹들이 있었다고 했었던 것 기억하죠? 그 그룹들의 시선은 속죄소 뚜껑을 향해 있었어요.
죄인인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감히 나아오지 못하도록 막고, 또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사람이 죽지 않도록 막았던 그룹들이 자리를 비켜주었어요. 그리고 그룹들의 시선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어요.
우리는 죄인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어요. 그런 우리가 그룹들 사이를 통과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에요.
하나님은 속죄소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아니곤 만날 수 없다는 것”“그 은혜가 아니라면 우리를 만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시는거에요.
우리가 다시 일어서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순간순간 마다, 필요한 때마다 돕는 은혜를 받고 누리는거에요.
주님 앞에 나아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나아가기만 하면!
나를 도우실 것이라는 것을 믿고 담대하게 발을 내딛기만 하면!!
그 순간 말도 안되는 돕는 은혜를 반드시 주실거에요.
두번째, 증인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거에요.
증인된 삶이라는 것은 거창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에요. 어디가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라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증인된 삶이라는 것은요.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살라는거에요.
여러분 지금의 삶에 만족하나요? 삶에 만족하는 사람 많이 없을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학생들은 개강하자마자 종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고,
자취 혹은 기숙사 사는 친구들은 빨리 주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할 것이고,
일하는 청년들은 이 곳이 정말 나의 평생 직장인지,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많은 고민들을 할거라 생각해요.
삶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은 중요하고 필요해요.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삶에 대해 만족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한다면 그 고민은 좋은 고민은 아닐거에요.
우리 삶의 끝은 승천하신 예수님이 가신 그 곳이에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꼭 해피엔딩만 있는 것은 아니죠. 새드엔딩도 있고 열린 결말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의 삶은 달라요. 우리의 삶은 오직 해피엔딩 밖에 없어요.
그 것을 기대하기에 우리가 이 땅에서 버티고 살아가는 것 아닌가요? 그런 소망이 없다면 굳이 우리가 이 세상을 힘겹고 버겁게 살아갈 필요가 없겠죠.
무엇을 하던 우리의 삶은 해피엔딩이에요. 우린 우리 삶의 결론을 알고 살아가고 있어요. 무엇을 의미해요? 내 삶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답답하더라도 그것은 그 순간뿐이라는 거에요.
그러한 부정적인 모든 감정과 괴로움은 끝나는 시점이 와요. 그것은 변해요. 하지만 우리 삶의 결론은 변하지 않아요. 우리의 모든 삶은 예수님이 계신 그 곳으로 가는 해피엔딩일 뿐이에요.
증인된 삶을 산다는 것. 나의 삶에 만족. 자족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요. 해피엔딩이라는 결론을 미리 아는 사람의 삶인거에요.
결론을 미리 알기에 지금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흔들어도 넉넉히 견디고 버텨낼 수 있거든요.
마지막, 마음을 매일 확인하세요.
요한복음 14장 2-3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유. 나중에 우리가 가게 될 그 곳에서 우리가 살 거처를 마련하러 가신거에요. 우리가 오면 함께 지낼 수 있는 집을 마련하려고 승천하신거에요.
이 본문을 잘 이해하려면요. 당시 이스라엘의 약혼식에 대해 알아야 해요.
당시 이스라엘은 결혼 전에 약혼식을 진행했어요. 먼저 신랑의 가족들이 지참금을 준비해서 신부 집으로 가요. 신부 집에선 신랑의 가족들을 맞이하기 위해 작은 연회를 열어요.
연회가 무르익을 때 쯤 신랑은 신부에게 포도주를 가득 부은 잔을 건네요. 이 때 신부가 결혼할 의사가 있다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잔을 받아 마셔요. 그럼 사람들이 박수치고 기뻐하며 그들의 약혼을 축복해 주어요.
허락을 받는 신랑은 신부에게 자신을 기억하라는 의미로 한 선물을 주고 집으로 돌아가, 신랑 아버지 집 옆에 신방을 만들기 시작을 해요.
신부는 자신이 가서 살게 될 집을 기대하며 하얀 세마포 옷을 입고 준비하며 신랑을 기다려요.
신부와 함께 살 신방이 만들어져도 신랑은 신부를 데리러 갈 수 없어요. 신랑 아버지가 때를 정해주지 않으면 계속해서 기다려야 해요.
아버지는 아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신부를 데려올 준비가 되었다 판단이 되면 그 때 신부를 데려오도록 해요.
신랑은 신부를 데려와 아버지 집에서 진짜 혼인 잔치를 벌여요.
이것은요. 우리의 구원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해요.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신부가 될 우리에게 찾아오셨어요. 신랑이 신부 집에 갈 때 들고간 지참금을 챙겨서 우리에게 오셨어요.
그리고 최후의 만찬을 통해 포도주를 마시도록 하셨어요. 그리고 승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셨어요.
신랑이 신부에게 자신을 잊지 말라고 선물을 주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셨어요. 성령을 통해 예수님을 잊지 말고 계속 기억하도록 하셨어요.
그리고 신랑이 신부에게 준 지참금 역시 주셨어요. 예수님이 가져오신 지참금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거에요. 그 지참금은 바로 “예수님의 생명"이에요. 그 분은 자신의 목숨을 지참금으로 하여 우리에게 혼인을.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떨어지지 않고 함께 하겠노라고 약속하셨어요.
그리고 아버지 집에서 우리와 함께 살 신방. 거처를 만들고 계셔요.
우리는 그 지참금을 통해 또 주신 선물 성령님을 통해 그 신방으로 갈 날을 기다리며 사는거에요.
하나님 아버지의 때가 되면 우리를 데리러 오시겠죠. 그리고 우린 신랑되신 예수님과 함께 진짜 혼인 잔치를 갖겠죠.
그래서 우리의 삶은 해피엔딩일 수밖에 없는거에요.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으신 그 분께서요. 우리만. 저만. 여러분만 사랑하시는 그 신랑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 집을 준비하러 가셨어요.

나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신랑 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집을 준비하고 계셔요. 우리와 함께 다시 할 그 날을 기대하며 오른편 보좌에 앉으셔서 쉬지 않고 일하고 있어요.
우리를 위해, 우리만을 위해. 평생의 기도제목인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우리에게 자신의 목숨을 지참금으로 주셨고, 그것도 모자라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음을 알려주셨어요.
신부인 우리와 함께 다시 살 날을 그 분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셔요.
그럼 (쉬고)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이 땅을 살아가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나요?
단지 신랑이 보내주는 생활비에만 관심이 있진 않은가요?
언제 내 기도를 응답해 주실까?
나는 언제 이직할 수 있을까?
원하는 시험 붙을 수 있을까?
도대체 이 고난은 언제 끝날까?
눈 앞에 있는 무엇인가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요?
예수님 이 땅에 오셔서 정말 힘드셨잖아요. 이제 쉬셔도 되잖아요. 쉬셔도 그 누구도 뭐라하지 않을텐데도 그 분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일하고 계셔요.
승천하셔서 우리가 앞으로 갈 곳이 어디인지 미리 보여주려고 가셨어요.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고"
그 분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정죄하거나 넘어뜨리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눈과 마음과 귀를 고정하고 중보하고 계셔요.
쉬지 않고 계속해서 지금도 일하시는 중이에요.
내가 예수님의 평생의 기도제목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세요. 그 기도가 있기에 우리는 절대 망할 수 없고 영원히 쓰러질 수 없어요. 그 어려움 곧 지나가요.
믿고 의식하며 살아감을 통해,
여러분의 삶에 개입하시는, 살아서 역사하시는 그 예수님을 마음껏 경험하는 한 주가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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