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
창세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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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viewsAG1 아브라함, AG2 예수님, AP 할례, CP 이스마엘, PW 순종, MIW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SC 언약의 순종, A 순종, C 자기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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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환영과 인사
S1. 환영과 인사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순종하며 사세요’ 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5월의 마지막 주일이 다가왔습니다. 날씨도 조금씩 무더워져서 여름이 성큼 앞으로 온 느낌입니다. 이번 주는 지방 선거가 있습니다. 후보자들을 잘 보시고 적절한 분들을 잘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성도 중에도 입후보자가 계시네요. 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부터 교회는 실버 예배를 시작을 해서 이번 주에는 식사도 함께 했습니다. 교회의 식당이 움직이니까 전체 교회가 움직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고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해당되시는 분들은 수요 실버 예배에 함께 하셔서 같이 은혜와 교제를 나누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우리 6, 7여전도회를 중심으로 한 나눔터 모임을 시작합니다.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의 소그룹 나눔터를 통해 좋은 엄마로 자라가는 귀한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코로나 기간동안 준비했던 사역들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한마음으로 잘 참여해 주시구요, 오는 토요일 10시에는 교회당 청소가 있습니다. 교구별로, 사역 위원회별로 잘 준비해 주셔서 교회를 새롭게 잘 정리하고 앞으로 더 전진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S2. 주제 제시
S2. 주제 제시
오늘은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함께 묵상하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름을 바꾸어 주신 후에 사라를 통해 아들을 낳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 부부가 하갈을 통해 얻은 이스마엘은 영원한 언약의 자손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오직 사라가 낳은 아들만이 유일한 언약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도록 하시고 이를 통해 영원한 약속을 몸에 새겨 기억하고 순종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즉시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합니다. 본문 23-25절을 봅시다.
창세기 17장 23-25절
23.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으니 24. 아브라함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였고 25.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십삼 세였더라
여기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날에 할례를 행했다고 합니다. 이날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떠나신 바로 그 날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구십 구세였고, 이스마엘은 십삼 세였습니다. 그리고 그들만이 아니라 그 집에 있던 모든 남자들이 다 할례를 행했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에게는 많은 수의 종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을 확증해 주시자 그 모든 종들에게 즉시로 할례를 행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순종하는데 온 마음을 다했던 것입니다.
S3. 문제 제기
S3. 문제 제기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런 행동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왜 이렇게 외적인 행위들에 초점을 맞추어 신속하고 조급하게 행동하는 지 의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본문을 자세히 보면 가볍게 다루어도 될 이 일을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6, 27절은 앞에서 말한 것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같이 봅시다.
창세기 17장 26, 27절
26. 그날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27. 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의 나이 기록만 뺀다면 이것은 두 번에 걸친 반복을 통해 아브라함의 순종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 집니다. 왜 이렇게 아브라함의 순종이 강조되어 나타나고 있을까요?
J1. 하나님의 속성, 마음, 그리고 방법
J1. 하나님의 속성, 마음, 그리고 방법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두 종류의 언약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두 종류의 언약이 하갈과 사라를 통해 각각 주어졌다고 증언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 24-26절이 소개하는 두 언약을 같이 봅시다.
갈라디아서 4장 24-26절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성경의 중심 주제들 중 하나인 언약에는 두 종류의 언약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갈로 대비되는 시내산 언약이고, 다른 하나는 사라로 설명되는 예루살렘 언약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갈의 언약은 종노릇하는 언약이고, 사라의 언약은 자유하는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시내산 언약은 우리가 알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순종하여야 하나님의 복을 얻는 언약을 말합니다. 이런 언약은 행위 언약적 성격이 있어 아담이 맺은 것과 같은 쌍방적 순종을 통해 보장되는 관계를 보여 줍니다. 시내산 언약은 쌍무적인 언약으로써 이를 순종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역사에서 언약적 심판을 받고 이방의 포로로 살았습니다.
이처럼 죄인은 이 시내산 언약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성으로는 율법이 요구하는 거룩한 삶을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온전한 상태로 지음을 받았으나 사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범죄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는 쉽게 이해가 됩니다. 아담도 실패한 행위의 온전함을 죄인인 이스라엘이나 우리가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시내산 언약만을 붙들고 산다면 그들은 모두 죄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결과적으로는 우리 모두에게 죽음만이 있을 뿐입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그런데 하나님은 17장 1절을 시작하실 때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심을 알리시고는 아브라함에게 행하여 온전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우리 17장 1절을 봅시다.
창세기 17장 1절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만약 아브라함을 향한 이 말씀이 행위를 조건으로 하는 쌍무적인 행위 언약이었다면 17장의 하나님은 심판주 외에는 되실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믿음을 이미 저버리고 이스마엘을 만족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행위의 완전함을 문자적으로 요구하신다면 그는 분명 심판 외는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때 오셔서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케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2절을 봅시다.
창세기 17장 2절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여기에서 하나님은 행위 언약이 아닌 은혜 언약을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미 범죄한 아브라함을 용서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은혜 언약의 중보자로 아들을 보내셔서 그로 하여금 아브라함과 그의 모든 영적인 자녀들이 행위가 아닌 오직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J3.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J3.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이 언약의 중보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하나님과 죄인인 아브라함의 중보자로 오셔서 아브라함 대신 그가 지은 죄의 값을 지불하시는 대속 제물이 되어 주십니다. 이미 이스마엘을 얻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린 죄인이었지만 하나님은 할례의 언약을 통해 이 구속자를 약속하셨고, 중보자의 순종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우리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보장해 주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고난의 모든 길을 순종하여 걸으셨던 것입니다.
W1. 예수 그리스도는 순종을 통해 은혜의 언약을 성취하시는 중보자이십니다.
W1. 예수 그리스도는 순종을 통해 은혜의 언약을 성취하시는 중보자이십니다.
오늘 아브라함이 말씀을 받은 그 날에 즉시로 순종하여 할례를 행한 것은 이후에 그리스도로, 메시야로 오실 참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온전하고 즉각적인 순종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어떤 조건을 성취하신 것이 아니라 영원에서 아버지와 맺으신 그 언약을 온전히 순종하여 성취하심으로 죄인된 우리가 하나님의 흠없고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3-5절 말씀을 같이 봅시다.
에베소서 1장 3-5절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예수님만이 우리의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되게 하셔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흠없는 거룩한 자가 되게 해 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순종은 우리를 살리는 영원한 생명의 능력이 됩니다.
W2. 중보자의 순종만이 죄인에게 전가된 유일한 의의 옷이 될 수 있습니다.
W2. 중보자의 순종만이 죄인에게 전가된 유일한 의의 옷이 될 수 있습니다.
행위 언약 안에서 스스로 의를 이루고자 하는 이는 아무도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다윗 왕조 안에는 영원한 메시야의 약속이 있었으나 우리는 BC 587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파괴되면서 이후 다윗 왕조가 부활하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그 혈통은 지속되었지만 다윗 왕조는 부활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에 두 번째 성전은 세워졌지만 다윗의 혈통은 다시 왕이 되지 못했습니다. 다윗과 맺으신 영원한 언약 안에서 다윗의 자손들은 혈통의 자녀가 될 뿐 영원한 구원의 주체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오직 오신 예수님의 겸손하심과 순종의 사역만이 유일하게 우리를 구원하는 참된 의의 옷이 되십니다. 다윗은 더이상 유대를, 나아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메시야 왕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신 메시야,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의 죽으심만이 유일한 구원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W3.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행함의 순종 안에서만 죄인을 구원하십니다.
W3.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행함의 순종 안에서만 죄인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행위의 온전함을 명령하셨으나 당시 아브라함은 이미 범죄하여 심판을 받아야 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행위의 온전함을 가질 수 없었고, 말씀에 온전한 순종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행위의 온전함을, 철저한 순종을 요구하신 것은 참된 순종의 중보자를 주실 것에 대한 분명한 약속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즉각적 순종을 행하지만, 그것은 오직 오실 메시야에 대한 믿음과 그 성례로서의 할례를 행한 것입니다. 성도의 순종은 우리가 완전해지기 위해 율법을 향해 달려가는 것에 있지 않고, 오실 메시야를 주신다는 그 약속을 온전히 믿는 믿음을 붙드는 삶에 있는 것입니다. 그 주님을 약속하고 우리에게 새 삶을 명하시는 말씀과 성례를 붙드는 데 즉각적인 순종을 행하는 그 삶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한 삶이라 할 것입니다. 성례를 붙드는 삶은 곧 약속을 믿는 믿음이며, 은혜 언약을 붙드는 삶을 말합니다.
T1. 아브라함은 즉각적으로 할례를 행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자녀로 확정됩니다.
T1. 아브라함은 즉각적으로 할례를 행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자녀로 확정됩니다.
약속의 믿음을 온전히 붙들지 못해 행위적으로는 죄인이된 아브라함이이었지만 그가 하나님의 명령인 할례를 행했을 그의 집안과 그의 자녀들은 모두가 다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스마엘과 아브라함을 따르는 모든 종들까지도 아브라함 안에서 주신 은혜 언약의 복을 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행하여 온전하라고 하신 것은 모든 율법을 지켜라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말씀과 성례들을 온전히 순종하라고 하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행하여 믿음을 다시 회복하고, 세상은 알지 못하는 놀라운 은혜 언약의 복을 누렸던 것입니다.
T2. 세상은 순종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믿음의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T2. 세상은 순종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믿음의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세상은 구원의 길을 항상 스스로 찾아가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신다는 그 은혜의 언약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완성하고 그것을 통해 자기를 주장하며 사는 것이 세상입니다. 이는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비밀을 오해하는 데서 생겨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에게 행하여 완전하면 구원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창조 시의 완전함에 있을 때도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죄가 들어와 이미 죄 아래 살고 있는 인간은 항상 자신이 종교와 철학과 지식을 통해 구원의 자리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구원은 오직 아들을 통해 주신 온전한 순종을 믿고, 성례를 지켜 행하여 그 의를 전가 받는 은혜 언약의 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T3. 성도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선물로 받는 은혜의 복을 누립니다.
T3. 성도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선물로 받는 은혜의 복을 누립니다.
성도인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순종하심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은혜의 방편인 말씀과 성례들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할 때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선물로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쌍무조약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일방적인 은혜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물론 율법이 폐기되지는 않습니다. 율법은 이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이 거룩한 열매를 맺는 데 있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구원을 얻기 위해 필요한 도구는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순종의 은혜를 힘입고, 그분의 성품을 닮아 죄성을 쫓아내고 거룩을 향해 성령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전진하는 삶입니다. 이 역시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리스도와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오직 은혜 안에서 주신 율법을 통해 참된 순종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은혜의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쌍무적 언약으로 행하여 온전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도는 행하여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하지만, 그것은 죄성을 아직도 소유한 우리의 삶에서 온전히 맺어지는 열매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주는 할례 곧 성례를 굳게 하여 믿음에 힘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 성도 안에 은혜 언약의 풍성한 복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 안에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많은 열매와 인격적인 거룩함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것은 내 힘이 아니지만, 동시에 자발적인 소원을 가지고 힘써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중생의 은혜를 통해 타락한 의지가 자발적으로 순종을 향할 수 있도록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성을 가지고 있어 내 삶이 온전한 순종을 이루지는 못합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순종의 옷을 입고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는 성령님을 붙들고 믿음 가운데 거룩에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중보자를 주시고 은혜 언약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의 비밀인 것입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을 말씀과 약속하신 성례를 온전히 붙드는 삶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행하여 누린 온전함은 모든 율법을 순종하여 행한 완성이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약속의 성례인 할례를 믿고 즉각적으로 순종함으로써 약속하신 믿음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신뢰하여 영생을 누리는 길로 나갔던 것입니다.
이는 우리 교리 문답이 가르치는 진리와 일치합니다. 교리 문답은 신앙을 ‘믿음과 행위’로 규정을 합니다. 믿음은 사도 신경의 하나님과 그 사역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행위는 무엇일까요? 일차적으로는 십계명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죄인된 우리가 행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무엇에 힘을 써야 할까요? 그것이 바로 교회를 통해 주신 은혜의 방편을 붙드는 삶입니다. 은혜로 주신 회개와 믿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기에 성도는 이를 굳건하게 하는 은혜의 방편인 말씀과 성례와 기도에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같은 방편들을 주셔서 거룩하고 온전한 자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여기에 아브라함의 순종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즉각적으로 주신 말씀을 순종하고, 성례를 붙들고, 항상 기도에 힘쓰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온전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행위로 거룩해 지는 길은 그리스도의 순종을 옷 입는 것 외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도 은혜 언약의 약속 안에서 그리스도의 순종이 열매 맺기를 기대하면서 온전치 못한 나 자신을 말씀과 성례와 기도를 통해 충만히 채우시고 그 은혜를 누리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찬송가 449 예수 따라가며
찬송가 449 예수 따라가며
